빌라에서 생긴 일

지미준 e단편 1집

지미준 지음

천재창조 2020년 10월 0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같은 공간, 같은 인물에게 펼쳐지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짧은 이야기 <빌라에서 생긴 일>
작가의 실험과도 같은 ebook 전용 단편집!

부동산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수도권 외곽의 어느 신도시. 그곳의 한 빌라에 정용근과 최정희 부부가 살고 있다.

용근은 아내 정희와 함께 귀가하다 이웃집인 602호로 들어가는 낯선 남자를 만난다. 빈집인 줄 알았던 602호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공교롭게도 축구선수 차덕훈을 쏙 빼닮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어찌나 무뚝뚝한지 차덕훈이냐고 말을 건네도 찬바람만 쌩쌩 분다. 다음 날 용근은 자신의 차에서 긁힌 흔적을 발견한다. 용근은 블랙박스와 CCTV를 확인해 뺑소니차의 번호를 알아내지만, 경찰에서는 대포차라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한 달이 지나도록 사건은 오리무중이다.

한편,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빼입고 외출에 나선 정희는 집을 나서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다. 때마침 그녀를 구해줄 구원해줄 남자가 나타나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다. 지난 밤 사건 때문이다. 과연 정희와 남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목차

-유명인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책 속으로

용근이 낯선 남자에게 물었다.

“몇 층 가십니까?”

남자는 용근을 향해 고개를 돌릴듯 말듯 하며 대답했다.

“6층요.”

정희가 입술을 꼭 다물고 눈알을 굴려 용근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602호는 빈집이었다.

1호와 2호 뿐인 빌라에서 6층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용근 내외 밖에 없었다.

용근이 호흡을 가다듬고 웃으며 다시 물었다.

“몇 호 가십니까?”

남자는 그제야 용근과 눈을 마주쳤다.

까무잡잡하고 반질반질한 그의 얼굴이 한눈에 용근의 시야에 들어왔다.

용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남자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용근이 먼저 입을 뗐다.

“어, 어? 그, 차덕훈……?”

“602호요.”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땡. ‘6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렸다.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나와서 602호의 도어락 기기에 스마트키를 대고 잠금을 푼 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게 더 편리할 법도 한데 그는 번거롭게도 스마트키를 이용했다.

용근과 정희는 뒤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남자가 602호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남자가 사라지자 정희가 용근의 팔을 붙잡고 목소리를 죽여 물었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글쎄, 모르겠어. 축구선수 중에 차덕훈이라는 공격수가 있는데,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용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한 선수야?”

“유럽에서 뛰고 있으니까, 꽤 유명한 선수지. 근데 그런 사람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유럽에서 뛴다면 유럽에 있겠지. 이 동네에 있을 이유가 뭐 있겠어. 아무튼 기분 나빠. 모자 푹 눌러쓰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이사는 언제 온 거래?”

“이삿짐 들어오는 거 봤어?”

“아니, 전혀.”

<유명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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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지금 시간이 몇 신 줄 알아요? 잠 좀 잡시다. 건물 무너지겠네.”

용근은 집을 나설 때와 다르게 조금은 차분한 투로 말했다.

여드름 청년은 올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다시 눈을 뜬 청년은 용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반말해?”

“반말?”

“네가 반말하니까 나도 반말한다. 내 집에서 내가 노는데 뭔 상관이야? 어린놈이 혼자 산다고 무시하는 거야?”

정희와 용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 말을 잃은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희는 팔짱을 풀고 남편의 팔을 잡아당긴 뒤 그녀 특유의 콧소리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학생. 누가 반말을 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어른이 애한테 반말 좀 할 수 있지, 거기다 대고 뭐? ‘네가’? 학생보다 어린 사람이 학생한테 ‘너’라고 하면 기분 좋아? 야,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네가 지금 이웃들한테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겠어? 대가리가 나쁘니?”

<빌라에서 생긴 일:엘리베이터> 중에서

출판사 서평

이 전자책의 출판은 일종의 실험이자 성장의 기록이다.

일정량의 지면이 있어야 제작이 가능한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적은 원고량으로도 발행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짧은 소설을 딱 두 편만 실어보았다. 음악가들이 발매하는 싱글앨범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 책의 부제목에 '1집'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 e단편 1집에 실은 작품들은 문예지 <소설미학>을 통해 발표했던 소설들이다. '유명인'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인간의 확증편향 심리를 다룬 소설이고,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는 타인에 대한 미움이 인도적 행위를 방해하는가를 생각하며 쓴 소설이다.

실험은 계속된다.

작가정보

저자(글) 지미준

지미준1982년생. 컴퓨터자수 디자이너, 번역가, 영어 강사 등의 직업을 체험한 뒤에 어느 날 번개를 맞은 것처럼 영감이 떠올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어릴 때는 음악가를 꿈꾸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할 때 가장 즐겁고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직장인 록 밴드 활동을 취미로 했다. 외국어 배우기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헬로, 곤니치와, 올라. 넘치는 호기심에 늘 이 분야, 저 분야를 기웃거린다.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집필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소설가 인생의 시작점에는 복수심이 있었지만 최후 동력으로 봉인해 두기로 했다.아무도 모른다. 바로 내일,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주요 작품2018년 계간 《소설미학》 신인상 단편소설 <김 씨의 구두>, <빌라에서 생긴 일: 엘리베이터>, <유명인>, <‘나의 투쟁’>, <베토벤은 아니지만>, . 장편소설 《게토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