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Devilmas (메리 데빌마스) - 악마와의 계약 시리즈

눈사람 지음

위즈덤커넥트 2019년 04월 1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선택과 후회, 영혼을 파는 계약이라는 모티브가 깔끔하게 펼쳐진 미스터리 단편.
실명 위기를 앞두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작은 쪽지가 하나 전해진다. 아들의 눈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내용의 쪽지에는 '산타'라는 서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한 달 남긴 시점, 자정을 알리는 시계가 울리자 병원 침대 머리맡에 괴상한 산타 복장을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악마라고 소개한다. 아버지는 간절히 아들의 눈을 낫게 해달라고 빌고, 악마는 작은 대가를 치른다면 그 소원을 이뤄주겠노라고 약속한다. 대가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악행을 저지르면 된다는 것. 즉, 아들 대신 한 아이를 눈 멀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목차

표지
목차
본문
시리즈 및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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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종이책 기준 쪽수: 37 (추정치)

책 속으로

한 달 뒤면 크리스마스인데, 찬수에게 무엇을 선물 받고 싶으냐고 물었다.
"보고 싶어요."
찬수는 가볍게 말했지만 내 마음의 살갗은 산 채로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알아요, 아빠. 안 된다는 거."
내가 말이 없자 찬수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그냥 크리스마스에 눈이 온다면, 병원 앞의 버드나무로 절 데려가 처음으로 내리는 눈송이를 제 손에 쥐어주시겠어요?"
보고 싶은 것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덧칠할 첫눈이리라. 찬수가 그토록 좋아하던 우람한 버드나무와 함께.
하지만 찬수가 볼 수 있는 건 붕대 속의 어둠이 전부였다.
<실명입니다. 되돌릴 수 없어요.>
언젠가 의사가 더없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찬수의 퇴원 날에 어떤 멋진 풍경을 보러갈까 계획을 짜놓았던 차였다.
<찬수의 시력을 되돌리는 건 현재 의학 기술로써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동물을 보러 대공원으로 갈까. 마침 가을의 절정기이고 하니 다홍빛으로 물든 뒷산이나 갈까. 아저씨 같은 취미지만 찬수도 좋아하지 않을까.
'유감입니다. 찬수 아버님.'
허나 정작 눈앞에 닥친 건 구역질나는 절망과 암흑뿐이었다.
"아빠?"
상념에서 퍼뜩 깨니 찬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왜 그러니, 우리 아들?"
"미안해요."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하늘은 눈보라라도 내릴 듯 혼탁한 회색이었다. 창밖의 나뭇가지가 처연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겨울의 메마른 고요가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빌었다. 찬수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우리 예쁜 찬수가 뭘 잘못했다고?"
찬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깨끗한 조약돌의 표면을 손으로 훑는 것 마냥 매끄러웠다.
"아빠 마음 아프게 만든 것 같아서요."
행여나 내 마음이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들은 한없이 예뻐 보였다.
나는 지독한 죄악감에 구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같은 놈이 네 아비가 아니었더라면. 넌 햇살보다도 밝게 빛나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을 텐데.'
신혼 후, 시인이었던 내 직업을 누구 앞에 내놓기 부끄럽다고 패악을 부리던 아내는 삼 년 전에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나는 마음을 좀먹는 자학감에 괴로워했으나, 이제는 그녀에게 들끓는 증오를 느꼈다.
'당신은 내게 찬수를 보살필 자격도 없는 병신 같은 머저리라고 욕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정말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놈인 걸 진작 알고 있었더라면. 나에게서 찬수를 데려가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뺏어서라도 데려가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찬수를... 나라는 지옥에 던져두고 가면 안됐던 것 아닌가.
당신의 뱃속에서 찬수가 자라고 이 세상에 나왔다.
당신은 찬수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아빠.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찬수가 안절부절 못한 채 떨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찬수가 아빠한테 미안할 게 뭐 있니. 찬수는 무얼 하든 아빠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아이스크림 몰래 먹어도요?"
찬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나는 웃었다.
찬수의 선함이, 순수함이 언제나 지켜질 수만 있다면.
추악한 세상에 굽히지 않고 어여쁜 마음을 내주지 않는 아이일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칠 텐데.
"우리 찬수... 또 몰래 빼먹었구나?"
"아니에요! 간호사 누나는 잘못 없어요! 제 잘못이에요! 간호사 누나 혼내지 마세요!"
별 소리 안했는데 다짜고짜 간호사 누나를 변호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출판사 서평

<추천평>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악마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병든 아이의 눈을 뜨게 하거나, 젊음을 되찾게 해주거나,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돌려준다면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의 후회와 선택, 운명, 계약의 대가라는 주제의 단편 연작 - 악마와의 계약 시리즈. 국내 작가의 참신한 접근이 산뜻한 미스터리 단편들이다."
- 위즈덤커넥트 편집부

작가정보

저자(글) 눈사람

사시사철 녹지 않고 글 끼적이는 눈사람
쓸 때 쓰고, 놀 때 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