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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체험판)

가키야 미우 장편소설
가키야 미우 지음 | 고성미 옮김
레드박스

2018년 07월 0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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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8.92MB)
ISBN 979118803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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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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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 부부로 살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득하게 펼쳐지는 시댁 수발의 길
“며느리 노릇은 그만하겠습니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설은 남편과 사별한 중년의 여자가 ‘며느리’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해 '사후 이혼'을 감행하며 자립의 길로 나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년 실업, 결혼난, 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작품 소재로 탁월하게 다뤄온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의 장편소설로, 현실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연민 어린 시선이 잘 녹아들어 있다.
15년 결혼 생활 내내 무정했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홀로된 가요코는 크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안도하지만, 참한 며느리 역할을 기대하며 점점 옥죄어오는 시집 식구들이 부담스럽다. 사생활을 구속하기 시작한 시어머니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히키코모리 시누이까지 살뜰히 보필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는 걸까? 가요코는 이제 자신이 누구의 아내도 아닌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1

왜 슬프지 않은 걸까. 남편이 죽었다는데 어떤 감정도 북받쳐 오르지 않는다. 그뿐인가. 제단에 놓인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생판 모르는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정 주위로 수많은 국화가 장식되어 있다. 하얀 꽃과 초록 이파리의 두 색감을 묘하게 살려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디자인해놓았다. 흐트러짐도 없고 꽃의 크기까지 가지런해서 꼭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처럼 보였다. 생화인데도 한 송이 한 송이 서로 다른 개성은 여기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_ 7쪽

나와 시라카와는 사오리의 등 뒤에 정좌하고 앉았다. 사오리의 호리호리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도채에 언제까지 저렇게 합장하고 있을 참인가? 언제까지 저렇게 눈을 감고 있을 예정인가? 긴 속눈썹이 아름다운 그녀의 옆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한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불쾌했다. 혹시 이 여자는 지금 남편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이렇게 끊이지 않을 만큼 화제가 풍부했다는 말인가. _ 76쪽

나는 설마설마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시댁과 인연 끊기'라는 검색어를 넣어봤다. 놀랍게도 많은 검색 결과가 펼쳐졌다. 차례로 읽어보니 시부모와 연을 끊고 싶다는 상담 사례가 엄청 많았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는 구청에서 제공하는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안도 씨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양식도 실려 있었다. 본인과 남편의 이름을 기재하고 도장만 찍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보증인의 서명이나 인감도 필요 없어서 혼인신고보다 간단하다. 게다가 남편 집안 쪽의 서명조차 필요하지 않아 시부모 모르게 서류를 제출할 수도 있었다. _ 218쪽

“가요코, 진즉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 겐타로가 왜 갑자기 죽었지?”
“왜냐니요? ……뇌졸중이었죠. 사망 진단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잖아요.”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이다카이!”
시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내가 깜짝 놀라 온몸을 움찔했다. 시어머니의 사투리를 처음 들었다.
“그동안 겐타로에게 음식을 잘해 먹였는지 그거를 묻고 있는 거 아이가?”
한껏 눈을 치켜뜬 시어머니의 모습이 절에서 볼 수 있는 사천상처럼 보였다. _243쪽

그녀는 왜 며느리를 그만 두기로 했을까?

남편은 매일 야근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고 생일이나 기념일에도 집을 비우며 선물 한번 챙겨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것 같았고, 속을 알 수 없는 남편과 살다 보니 아내 가요코 역시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 조심히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로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출장을 다녀온다던 남편의 말은 거짓이었고,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이 숨겨왔던 크고 작은 진실을 하나둘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당혹감과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가요코는 남편의 죽음보다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분향을 한다며 시도 때도 없이 집에 들이닥치는게 더 괴롭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걸어다니는 상식'이라 불릴 만큼 품위 있고 경우 바른 시어머니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남편과의 건조한 결혼 생활을 견뎌낼 수 있게 힘이 되어주던 시어머니는 이제 연락도 없이 수시로 집을 드나드는가 하면 며느리의 사생활을 자꾸만 통제하려고 한다. 남편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는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데 숨이 막힌 가요코는 고민 끝에 남편의 가족들과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인척관계종료신고서'라는 서류를 관공서에 제출해 '사후 이혼'을 하고, 성씨도 결혼 전의 성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혼돈으로 가득한 현실과 자기 안의 갈등 속에서 시월드에 졸업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상과 삶의 고민들을 날카롭게 작품에 투영해내는 가키야 미우는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에서 남편과 사별한 뒤 '사후 이혼'을 선택한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에서는 배우자 사망 후에 법률적 이혼은 할 수 없더라도 배우자 가족과 인연을 끊고, 배우자와 같은 묘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제출하는 사후 이혼 신청 건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가키야 미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시어머니로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며느리는 무조건 남편의 부모를 평생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신화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키고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정보

저자 가키야 미우 垣谷 美雨 는 1959년 일본 효고 현에서 태어났다. 메이지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소프트웨어회사를 다니다 2005년 단편소설 「토네이도 걸??ガ?ル」로 소설추리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결혼, 고령화, 주택 노후화 등에 대한 사회 문제를 소재로 잘 다루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TV 드라마로도 제작된 『리셋リセット』과 『남편의 그녀夫のカノジョ』를 비롯해 『뉴타운은 저물고ニュ?タウンは?昏れて』, 『노후자금이 없습니다老後の資金がありません』,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드립니다あなたの人生、片づけます』, 『육아는 이제 졸업합니다子育てはもう卒業します』, 『피난처避難所』, 『농사짓는 젊은 여자, 그들의 삶農ガ?ル、農ライフ』, 『당신의 군살을 빼드리겠습니다あなたのゼイ肉、落とします』 등 다수가 있다.

역자 고성미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열린기획'에서 번역 일을 했다. 오랫동안 일본 도서의 검토 및 저작권 계약 업무를 해왔다. 출판사에서 저작권 관련 일과 일어와 영어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나만의 사진 찍기’를 반半 화두 삼아 열심히 피사체를 좇아 그 성과물을 인터넷에 올리며 사진을 통한 새로운 소통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 촬영 및 편집력에 따라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가를 절감하며, 사진이야말로 삶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 곳곳에서 찍은 작품들 가운데 일부를 추려 포토 에세이집 『바람』이 있다. 역서로 가메지마 고지의 『아름다운 선택』, 후쿠다 미도리의 『동행』, 와타나베 준이치의 『눈물 항아리』, 아키모토 야스시의 『너는 10대, 네 삶의 지도를 그려라』, 정신과 의사인 스콧 펙(Scott Peck) 박사의 잠언집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조언』과 그리스 비극 모음 『세상에서 가장 뜻깊은 독백』, 『낚시질하는 물고기』, 『똑부러지는 여자로 살아남기 위한 100가지 방법』『사진을 즐기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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