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맑음

김태형 지음 | 박지영 그림

글과글사이 2016년 06월 2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만나는 범상치 않은 순간들
행복의 조건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시인 김태형의 세 번째 산문집 『하루 맑음』은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만나는 예기치 않은 이야기와 시인이 음식을 만들며 마주한 생각을 한 올 한 올 풀어낸 책이다. 고비사막과 인도를 여행한 후 두 권의 여행기를 펴냈던 시인이 이번에는 음식을 소재로 한 기억들을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맑은 시선이 일상의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음식은 선한 자가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꼭 행복한 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선한 자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나누고 기뻐하고 상처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 음식을 먹는 일과 만드는 일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시인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직접 쿠키를 굽고, 오므라이스와 파스타를 만든다. 직접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느긋이 기다려주는 마음이 문장마다 아로새겨져 있다. 또한 살아온 날들의 아픈 상처를 음식을 통해 다독여 주고 싶어 한다. 직접 오디를 따서 맛을 보고, 수제 맥주를 만들고, 스스로 궁리한 레시피로 요리하면서 모든 감각과 시간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게 시인은 자기의 시간 속으로 한 발 다가서기도 한다. 그것이 자기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 속에는 슬픈 시간도 배어 있다. 가난한 미자 누나는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간 김치병을 길거리에서 깨뜨린 채 울먹이고, 그의 남동생 윤희는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오면 아파트로 이사 갈 거라고 말하던 가난한 시절의 풍경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시인은 인도를 여러 번 다녀온 후부터 짜이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이태원에서 짜이 재료를 사가지고 오면서 즐거워하지만, 자신이 끓인 짜이가 인도에서 맛을 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짜이는 짜이를 끓이는 바로 그곳의 맛을 낼 뿐이다. 그러니 내가 만든 짜이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맛이 배어 있다. 내가 살아가는 맛이다. 바로 내 삶의 향이다. 어쩌다 손님이 올 때면 나는 꼭 짜이 한 잔을 대접한다.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내 삶을 내놓고 있었다.”고 말한다. 짜이를 만들면서 시인은 자신의 삶과 마주하는 것이다.

만 21세에 등단한 김태형 시인은 20여 년 동안 네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산문집을 냈다. 밤하늘을 보며 별을 헤아리는 것을 좋아하고 느짓이 사는 삶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시인은 자기를 찾아가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시를 쓰고 다시 그 시를 허물어 산문을 쓴다. 게다가 시인은 문래예술창작촌에 출판사 겸 작은 책방 [청색종이]를 연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따뜻한 짜이를 나누며 허물없이 만나는 곳이다. 『하루 맑음』은 시인이 직접 만든 책이며 이번에 전자책 버전으로도 출시되었다. 본문에 수록한 사진과 영상 역시 모두 시인의 작품이다. 시인이 음식을 만들듯 정성껏 쓰고 다듬고 매만진 산문집은 그래서 특별하다.

목차

서문_ 다 끓어올라 가만히 내려앉을 때까지


[귀하고 좋으니까 세상에 가득하지]

낮에는 오디를 줍고 밤에는 별을 올려다보고
흔한 게 아니라 귀한 것이다
가볍게, 뚝
미자 누나
똥만이를 아시나요
삼겹살이란 무엇인가
노점
바보야, 넌 참 행복한 거야
슬픈 식당
목마른 손님에게는 물 한 잔이라도
쿠키를 구웠어
오징어회는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노을이 있는 나의 아름다운 부엌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내 삶을]

파스타를 삶는 시간
그리운 짜이
낯설고 긴 여행의 조건
밤하늘을 다 마셔버린 듯한 와인
죽음과 소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가 있다면
가을에는 수제 맥주를
인생은 캠핑이 아니겠지
중국집이 주문을 받지 않으면 내가 바쁘다
짬뽕, 불맛이 아닌 한나절 묵은 맛
망고 느낌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이 세상에서 아직은 더 상처받고 꿈을 꾸고]

여신을 따라서
광장시장 마약김밥
짬비라는 이름의 강아지
멍게젓 예찬
그래도 나의 요리
향기가 스스로 가득하니 그 열매를 따서
어느 날 먼 창밖을 내다보고 싶을 때, 쑥국
너른 들판에서 블루베리를
삭힌 홍어와 나의 음식들
자전거와 계란빵
찔레꽃 그늘에 뱀이 많다
인간의 음식

책 속으로

상대의 따뜻한 손을 잡아본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따뜻한 손길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 바보야, 넌 참 행복한 거야 中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어떤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 낯설고 긴 여행의 조건 中




"어떤 와인이었나요?"
"그건 고독의 맛인데...... 글쎄요."
"밤하늘을 다 마신 듯한 맛이라니. 너무 궁금해요.”


- 밤하늘을 다 마셔버린 듯한 와인 中




시는 영원을 꿈꾸는 절망적인 장르다.
그리고 그 긴 어둠의 회랑을 한없이 걸어서 다시 빛의 세계로 되돌아올 것이다.


- 죽음과 소녀 中




묵처럼 살자고 했다.
이 세상에서 아직은 더 상처받고 꿈을 꾸고 고된 노동에 허리가 굽어야하기에
조금은 천천히 살자고 했다.
이 세상의 첫 음식이었다.


- 인간의 음식 中

작가정보

저자(글) 김태형

"염소자리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자신의 별이 목동자리에 있는 알파별 아르크투르스라고 믿는다. 스스로 자기를 이끌고 가는 것은 운명에 가깝다. 밤하늘을 보며 길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올려다보는 별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별이다. 그 별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지금 그는 느짓이 가는 중이다. 그렇게 자기를 찾아가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 길 위에서 시를 쓰고 다시 그 시를 허물어 산문을 쓴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2년 《현대시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로큰롤 헤븐』 (민음사)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문학동네) 『코끼리 주파수』 (창비) 『고백이라는 장르』 (장롱), 시선집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지식을만드는지식),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마음의숲) 『아름다움에 병든 자』 (마음산책) 등이 있다."

Illustrator 박지영 | Photographer 김태형

그림/만화 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