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고창근 지음

삶의문학 2015년 12월 02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사회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파헤치고
여성의 욕망을 그린 조선 최초의 환쟁이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인간의 본능, 욕망(慾望)을 갈구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이 아닌 외설 취급으로 탄압받아 그림 전시중지 및 책 판매금지, 구속, 실종된 현대화가 K의 이야기와 인간의 본질인 욕망을 그린 신윤복의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혜원 신윤복은 K를 통해 현대사회의 욕망을 욕망한다.

목차

작가의 말..............5

행방불명.............11
정이 많은 아이................24
첫 사랑..........36
그대의 몸뚱이..............56
권위.........65
화원의 길.................70
해체돤 몸뚱이..........99
열망.......111
N강...............160
천주교박해...............171
문체반정...........180
폭력.........187
전시회..............193
검열............204
현감 김홍도.........214
반발.....228
귀양.............237
탄압...........251
라이프케스팅............270
파직.........281
실종.................299

추천사...........................310

책 속으로

지금도 자네가 그리는 것에 신념이 확고한가?”
김홍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비속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사의적인 문인화를 그리면 더없이 좋을 듯하였다. 하지만 그 아비인 신한평도 풍속화를 즐겨 그리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전 이런 그림이 좋습니다.”
신윤복은 짤막하게 말했다.
“풍속화를 그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풍속화를 그리되 비속하지 않게 그리면 어떻겠느냐는 말일세.”
김홍도의 말에 신윤복은 차를 마시다 고개를 들었다.
“비속한 게 무엇입니까?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비속한 그림이라면 날마다 후원에서 기녀들을 끼고 술 마시는 양반들의 모습은 고고한지요.”
신윤복의 말에 김홍도는 눈을 감았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영원히 양반들의 탄압을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계속 그런 그림만 그릴 작정인가?”
김홍도는 여전히 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의 육체와 감정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걸 드러낼 필요가 있는가?”
“딴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표현할 뿐입니다.”
맞는 말이다. 김홍도는 신윤복의 말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그리는 것이리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양반들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었다.
“자네는 그렇게 얘기하지만.”
김홍도는 잠시 말을 끊고 일어나 주전자를 들어 자신의 잔과 신윤복의 잔에 차를 따랐다. 신윤복은 두 손으로 받았다.
“저번에 그림 있잖은가. 양반들이 배 타고 노는 그림 말일세.”
“예.”
신윤복은 알고 있었다. 그 그림은 양반 셋이 뱃놀이하는 그림이었다. 한 양반은 기녀를 끼고 있고 한 양반은 물에 손을 담근 기녀와 속삭이는데 한 기녀는 생황을 불고 한 양반은 지그시 먼 곳을 바라보는 그림이었다. 근데 그 먼 곳을 바라보는 양반이 문제가 되었다. 허리띠가 흰색이었던 것이었다. 흰색은 상중(喪中)이라는 의미였다. 그로 인해 양반들의 노여움을 많이 샀고 당장 도화서에서 쫓아내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다.
“왜 하필이면 상중의 양반이 유흥을 즐기는 그림을 그렸느냐는 말일세.”
“…….”
신윤복은 가만히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그림도 양반들이 술에 취해 기녀들을 끼고 노는 그림이 많지 않은가. 그런 그림을 봤을 때 양반들의 속은 어떻겠나. 백성들이 본다면 또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이고.”
“화원은 어떤 그림이라도 다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세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신윤복의 말에 김홍도는 허허, 혀를 찼다.
“그럼. 자네, 일본 그림도 보았겠구먼.”
“예.”
“어떻던가? 우키요에가. 우키요에란 부세화(浮世畵), 그러니까 덧없는 세상, 뜻없는 세상을 일컫는 말 아닌가?”
김홍도는 신윤복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람의 본능이 아닌지요.”
“본능이라.”
김홍도는 중얼거렸다.
“올해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 일행 중 한 이가 말하길 일본은 집집마다 춘화가 있고 길거리마다 창가(娼家)가 널려 있다고 합니다.”
“그러이, 나도 들었네.”
김홍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출판사 서평

혜원의 풍속화나 춘화는 조선조의 성리학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혜원의 그림은 성리학적 관념의 세계를 그린 문인화와는 달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추구한다. 혜원은 관념의 세계가 아닌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미학을 추구한다. 그의 예술행위는 천박하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체제를 수호하려는 기득권 세력이다. 양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양반의 벌거벗은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학구도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생명체의 생존의 조건인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이 시대의 석학 노암 촘스키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증오하지만 나치를 옹호하는 글을 쓰다가 해직된 포리송 교수를 구제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탄원서」에 기꺼이 서명했다. 표현의 자유는 내용의 옳고 그름에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고창근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예술적 관점을 바탕으로 혜원의 그림 세계를 산책한다. 이 소설의 사용설명서를 쓰라면 이렇게 쓰겠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단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이 보면 다칠 수 있다.
권서각(시인 문학박사)

작가정보

저자(글) 고창근

저자 고창근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으며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막걸리 마시며 살고 있음
소설집
『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
『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
장편소설
『누드모델』『존재의 이유』
『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서양화 개인전 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