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2(BL The Classics 14)

미힐 지음

더클북컴퍼니 2015년 08월 2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선동하를 오랫동안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좋아해 온 강준영. 하지만 동하는 준영을 친구 이상으로는 볼 수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한 지 오래다. 긴 시간 아픔을 겪고 난 후에야 동하가 준영을 받아들이면서 연인 관계가 된 두 사람이지만, 준영은 느닷없이 동하를 떠나 가는데....단편 <환상통>의 과거 이야기를 그린 장편 외전 도 함께 수록.

목차

Your Mark 하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Epilogue

책 속으로

그 와중에 준영이 반쯤 꼬여도 시원찮을 혀를, 잘도 놀리며 물었다.
“……행복하냐, 너? 혜경이랑 정말 행복해…?”
잠시 그들의 탁자 위로는 침묵이 흘렀다. 각자 약간의 의미가 다른 적막이었다.
동하가 조금 뜸을 들였다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래. 행복하다.”
동하의 담백함과 솔직함은 때로 상대에게 무한한 상처를 주곤 했다. 게다가 거기에 고의가 섞여 있을 때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였다. 지금처럼 말이다.
잔인한 새끼……….
기찬은 내심 욕설을 씹고 있었다. 그는 만사 다 듣기 싫은 심정으로 애꿎은 술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동하야….”
준영은 아까부터 주문처럼 동하의 이름만 불러대고 있었다.
그리고는 모자란 놈같이 피식 웃더니, 맥주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크게 삼켰다. 입가로 흘러내린 술은 대충 소매로 훑었다.
“나는 말이야…….”
말을 꺼내 놓고 한숨부터 한번 크게 쉬었다. 그의 주먹은 가슴의 심장이 있는 부근을 탁탁 두드렸다.
“……여기가 뭉개져서 썩은 냄새를 풍겨도, 네가 행복하면 그냥 참으려고 했거든….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럼 충분한 거라고 자신을 납득시켜 왔는데…….”
준영은 술 취한 사람 특유의 몸짓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흔들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하소연하는 건지, 혹은 자신을 향해 넋두리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웅얼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프냐, 동하야. 왜 이렇게 숨이 막히지…? 왜 너는 행복하다고 하는데 내 여기가 이렇게 쓰린 거야…? 속이 상하고 화가 나고, 또 뭔가 때려 부수고 싶어지는 거냐, 나는…? 응…? 그냥 네가 행복한 걸로는 부족한 걸까? 꼭 네가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 줘야만 아픈 게 없어질까……?”
“……….”
동하는 어느새 술잔도 손에서 내려놓고 있었다.
가만히 준영을 바라보고 있는 동하의 얼굴에서는 일체의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눈동자 역시 불투명하게 가라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상념의 한 올도 비추어 주지 않는다.
너무나 무표정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파 보일 만큼, 동정도 이해도 경멸의 빛조차도 없는 완전한 무념의 안색.
그 와중에도 준영은 노래처럼 동하의 이름을 띄엄띄엄 불러 댄다. 결코 그를 향해 호응해 오는 대답이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늘 그래 왔듯이 버릇처럼, 그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일종의 중독처럼 그는 내리 동하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출판사 서평

<환상통>과 는 2000년에 개인지로 나온 미힐의 소설집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미힐의 초기작으로, 선동하와 강준영의 가슴 아픈 이별을 그린 단편 <환상통>과,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장편 를 함께 실었습니다. 미힐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 묘사를 맛볼 수 있으며, 한국 BL동인계 초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금에는 독자들의 해피엔딩 선호도가 높아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초기 BL계에서는 언해피엔딩 수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요, 이 글도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잔물결처럼 밀려와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줄 작품, 한 번 만나 보세요!

작가정보

저자(글) 미힐

<그대에게>, <그에게선 언제나 장미 향기가 풍겼다>, <나비의 꿈> 등 장편소설 외에 <환상통>, <물의 그림자>, <메마른 숲의 저편> 등 중단편소설도 다수 발표한 바 있는 미힐은 불안정한 감정선의 섬세한 묘사에 특히 강점을 보이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