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디에

리지명 지음

글도 2015년 07월 0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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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례♪

작가의 말
총성이 울린 뒤
복수의 화신
사랑을 위하여
삶은 어디에
비극열차
무검의 결정
마지막 얼굴들
에필로그
[해설]리지명의 『삶은 어디에』를 읽고
남북한 말 비교

책 속으로

며칠 후, 최문기는 기진맥진해 돌아온 아내를 맞았다. 매일 같이 역에 나가 아내를 마중하던 문기는 정작 아내가 돌아오자 처량하리만치 수척해진 그 모습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아내는 돌아오자마자 아랫목에 누워 끙끙 앓으면서 웬일인지 그칠 사이 없이 그냥 눈물만 쏟고 있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압록강의 그 푸른 물, 굽이치며 흐르는 깊은 물속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알몸뚱이의 여인이 미친 듯 웃으며 걸어 나온다. 여인의 온 몸에 온통 처바른 선혈, 물속에서도 씻겨지지 않고 그냥 그녀의 몸에 묻어있는 피. 그것이 정녕 죽어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윤의 넋이였던가.
"기숙아!"
춘희는 정신 없이 외치며 달려 가다가 우뚝 멈춰섰다. 검푸른 강물, 춘희는 그것이 두려웠다.
"아 하하… 언니. 여기 들어와. 이 속에 편하게 살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어. 어서. 뛰어만 들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니까. 어서. 뭐해, 뛰어들지 않구…"
웃으며 거침없이 춘희에게 달려나오는 여인 가까이 다가드는 여인은 분명 기숙이가 아니다. 일그러진 얼굴, 갈쿠리 같은 손으로 자기를 사정없이 움켜쥐려 양팔을 벌리는 여인 아닌 여인.
"악!"
놀라 깨어보면 질펀한 땀만이 잔등을 적신다. 정말 그녀의 말처럼 그 깊은 강심속에 또 다른 편한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비명에 죽은 그의 넋이라도 잠재울 수 있으련만.
기숙이가 불쌍했다. 죽은 남편을 부등켜안고 통곡하던 기숙이는 끝내 미쳐 버렸다. 아무리 입혀 주어도 입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기숙이. 검푸른 강물 속에 뛰어들 때 그녀는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문기는 오열에 시달리는 사랑하는 아내를 조용히 보듬어 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어린애처럼 남편의 품에 파고 들며 왕왕 소리내여 울고있는 김춘희. 문기는 품속에서 한태규가 넘겨준 그 옥가락지를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아내의 손가락에 조심히 끼워 주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울기만 하는 아내, 김춘희.

작가정보

저자(글) 리지명

1953년 2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다. 1971년부터 인민군 제1군단(강원도 회양군)사령부에서 10여년간 군 복무하다. 군 생활기간 중 시, 극작품들을 써서 조선인민군 신문에 투고하여 발표되다. 인민군 군인계급교양물로써의 그의 작품들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무대에 올린 그의 작품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감상하며 내린 김일성의 평가로 하여 그는 1974년 4월 평양연극영화대학 추천을 받는다. 그러나 출신성분 때문에 한 달만에 퇴학처분을 받고 다시 군부대로 돌아가게 된다. 제대 후 청진광산금속대학 광물학과에 입학하여 학업 중 청진 제1사범대 국문학과 야간수업을 겸직하여 받게 된다. 졸업 후 함북 탄광 현장기사로부터 책임기사로까지 사업하였으나 천성적 취미인 글쓰기를 언제 한번 소홀히 한 적이 없다. 그 후 조선작가동맹 월간지(조선문학)과 군중창작(청년문학) 월간지에 그의 소설과 시 극작품들이 게재된다. 1984년 조선작가동맹후보맹원, 1992년 5월에는 정맹원으로 등극하면서 그때부터 전문작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창작된 작품들이 세편이나 영화로까지 제작되었으나 단 한편도 그의 이름으로 나간 것은 없다. 그것은 자작농(부농)으로서의 타협할 수 없는 그의 출신성분과 관계된다. 이에 분노를 느낀 그는 단호히 결별을 결심하고 1998년 탈북을 단행한다. 쫓고 쫓기는 대륙에서의 방랑생활. 그 속에서도 그는 소설 창작을 멈출 수 없었다. 너무도 처참한 조국 인민들의 비참한 삶을 결코 외면할 수 없어 인부들이 잠든 야외 천막 한쪽 구석에 촛불을 켜놓고 밤새워 가며 한자 한자 써나간 것이 바로 이 소설 "삶은 어디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