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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발칙하게

서이나 지음

2014년 02월 11일 출간

종이책 : 2013년 09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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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0.90MB)
ECN 0102-2018-000-002687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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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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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나 장편소설 『은밀하고 발칙하게』. 안면실인증(Prosopagnosia),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 하지만 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맺는 인연이 무서워 스스로 관계를 잊어버렸다. 그런 그의 기억으로 한 여자가 스스럼없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프롤로그
제 1 장
제 2 장
제 3 장
제 4 장
제 5 장
제 6 장
제 7 장
제 8 장
제 9 장
제 10 장
에필로그.
작가 후기

“당신이 먼저 나한테 작업건거라고 말한 거 잊지 마요. 이건 희롱죄 절대로 아니야.”
“끄윽, 끅!”
“그냥 난, 당신 작업에 넘어가주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이내 태하는 단아를 붙잡은 어깨를 앞으로 살짝 당겨 그대로 입술을 삼켰다. 그의 입술이 닿을 때까지도 단아는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뭔가 뜨거운 숨결이 온몸을 휩쓸자, 단아는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고 이내 입안으로 느껴지는 뜨겁고 강렬한 무언가에 심장 위로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훑었다. 독한 술기운과 함께 뭔가 달큼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을 깊게 파고들며 꿈틀거렸고 단아는 그 감각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밀려들어 왔다. 더더욱 독한 술기운이 감돌았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어설프게 얽힌 혀와 혀가 주는 감촉에 아랫부분이 달콤하게 바짝 조여들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몽롱한 기억 너머로 지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나는 그와 이런 키스를 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짜릿한 쾌감을 주는 키스를. 그와는 느낀 적이 있었나?
몸 안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힘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허리에 어설프게 묶여있던 재킷이 이내 스르르 풀리면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찢긴 치마 사이로 그녀의 새하얀 허벅지가 은밀하게 드러났다. 마침내 태하의 입술이 살며시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단아의 정신이 그대로 뚝 끊기면서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것은 태하와의 키스가 아닌 한지한이라는 남자한테 정말로 큰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 왜냐면…….
‘이런 기분, 난 그에게 준 적도 느낀 적도 없었으니까.’
나는 정말 의무적으로 사랑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태뿐인 사랑에 그는 상처받은 거야. 하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난 아마 평생 사랑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어깨에 꼬꾸라진 단아를 보면서 태하는 아직 입술에 남은 감각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내렸다. 키스하다 잠드는 여자라. 내 키스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하긴, 제 애인과 침대 위에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여자인데.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그런 여자인데.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신과 그 남자는 끝난 거야.”
태하는 이젠 아주 달콤하게 잠에 빠져 버린 단아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용히 술만 마시고 푹 잠들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꿀꿀했던 기억은 잊어버릴 수 있었으니 뭐, 상관없나? 이제 정말 다시 볼 사이도 아니고. 설사 보게 되더라도 아마 그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또 보게 된다면? 하, 그럴 리가 없지.
태하는 바닥에 떨어진 재킷을 주워 다시 그녀의 허리에 묶어 주었다. 그리곤 웨이터에게 다가가 팁과 돈을 건네주었다.
“저분 깨워서 택시 좀 불러드려요.”
그리곤 마지막으로 세상 모르게 뻗어버린 그녀를 짧게 스치며 바를 빠져나갔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7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1. 앞표지

“오늘 인터뷰를 못한 대신, 중요한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포토그래퍼 공태하는 사람 얼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기억한 사람은 그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2. 뒷표지

안면실인증(Prosopagnosia)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 하지만 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맺는 인연이 무서워 스스로 관계를 잊어버렸다. 그런 그의 기억으로 한 여자가 스스럼없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더 소중했던 동생을 잃은 뒤, 텅 빈 가슴에 다른 이를 채울 수가 없었다. 행복해질 수 없었다.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저 동생을 죽인 그 살인마를 찾기 위해 무작정 달려가던 그녀에게 한 남자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친구, 그거 합시다.”
“네?”
“하자고요, 친구.”
“하, 하지만. 정말?”
“대신 나한테는 절대 아무것도 숨기지 마. 당신의 감정도 숨기지 마. 모두 다 나한테는 보여줘야 해.”
태하는 무척이나 강렬한 시선으로 단아를 끌어당겼다. 그녀 역시 그 강렬한 시선에 천천히 얽매이기 시작했다.
“나랑 관계가 맺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한테 휘말리는 거야.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겠어? 그럼 난, 이제 완전히 기억할 거야. 남단아. 당신이란 여자를.”
낮고 깊은 보이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단아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그의 팔뚝을 꽉 붙잡았다.
태하 역시 뭔가 아릿한 것이,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완전히 끊어지면서 그녀가 그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그렇게 은밀하게 시작되었던 관계 속에 우린 발칙하게 휘말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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