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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붉은 울음

한센인 할머니의 시 삶을 치유하다
김성리 지음
알렙

2014년 01월 09일 출간

종이책 : 2013년 11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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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0.73MB)
ECN ECN01112020000000641282
쪽수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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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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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치유로 가는 문이다!
인문의학자가 만난 한센인 할머니의 삶과 그녀의 시 『꽃보다 붉은 울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웹진 ‘e시대와 철학’에 ‘치유 시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였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센인 할머니가 구술과 시쓰기를 통해 경험한 치유의 과정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는 치유 시학적 기록으로, 기록 보존이나 자료 수집을 위한 논문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치유 과정을 할머니와 나눈 대화를 통해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였다.

60여 년의 병력을 지닌 한센인 할머니는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대담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구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저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여름밤’, ‘어머니’, ‘아가야’, ‘사랑’ 등의 11편의 시로 완성하였다. 이를 통해 시가 실제로 치유성을 지니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 알 수 있으며, 나아가 한센인으로 살아왔던 할머니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프롤로그 시(詩), 삶을 치유하다

1부 할머니, 지금 만나러 갑니다
1장 60년의 닫힌 문을 열다
2장 거울과 눈물
3장 쫓겨나고 버려지다
4장 죽음 끝에 새로운 삶을 만나다
5장 잃어버린 나를 찾다

2부 핏자죽이 어린 길
6장 사랑, 그 고통의 여정
7장 기억 속의 이름
8장 혼란의 시간 속에서
9장 부를 수 없었던 내 아들의 이름
10장 추운 계절의 끝에서
11장 꽃보다 붉은 울음
12장 핏자죽이 어린 길
13장 고향이 없는 사람들

3부 삶의 자유를 위하여
14장 또다시 찾아온 이별
15장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16장 푸른 하늘 밑에는 내 살던 집이 있겠지
17장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는
18장 삶의 자유를 위하여
19장 매듭을 풀어나가는 자기 실현의 길

에필로그 못다 한 이야기들
부록 1 할머니의 시 전문
부록 2 한센인 여성 이말란의 생애 연보

▩ 어두운 교정에서 나무를 보며 묻는다. ‘너는 아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아직까지 나무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밤보다 더 어두운 불확실성만 나를 속박해 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시를 공부한 지 이제 겨우 8년째다. 시가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공부를 하며 확실하게 느낀 것은 인문학은 삶과 관련된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와 녹아들 때 생명력을 지닌다. 시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여기서 나왔다.(6쪽)

▩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세계 안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내면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의해 세계와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전체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쪽의 ‘나’와 저쪽의 ‘그’가 ‘있다’라는 것이다. ‘나’와 ‘그’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겠지만,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의 역할을 시가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닫힌 마음이 세상을 향해 열릴 때 시는 창이 될 것이다.(10쪽)

▩ 할머니를 통하여 내가 다시 깨달은 것은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으며, 바다로 가면 바다가 되고 돌틈으로 흘러 들어가면 맑은 샘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또 얻은 게 있다면, 나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자각을 얻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는 능력은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고통을 덜어주고자 시를 읊어주거나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할머니가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고 스스로 치유해 갔던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은 그와 같은 힘을 찾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게 아닐까 한다.(250쪽)


오늘은
펜을 손에 들고 구구절절이
너와 내가
우리의 사연들을 일기장 속에
기록하고 있네.

언젠가
승팔이도 이 일기장을
볼 때가 있겠지

이 모든 것이 허공에
꿈이 되었으면 싶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이것이 나와 승팔이의
맺힌 열매이다.

승팔아
이 어리석은 에미
바보 같은 에미
병든 나를 용서해 다오.
---할머니의 시, 〈아가야〉 중에서(259~260쪽)

시 쓰기와 “마음 치유”에 관한 인문의학적 접근
한센인 할머니는 어떻게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었는가?

“절망에서 솟구쳐 오른 삶의 찬가가 퍼질 때, 삶은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된다.” -강신주(철학자)
“할머니의 시(詩)들은 한센병이라는 단단한 갑옷 뒤에 숨겨진 한 여인의 해맑은 영혼을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준다.” -정여울(문학평론가)

인문의학자가 만난, 한센인 할머니의 삶과 그녀의 시

필자가 만난 한센인은 당시 81세의 여성이었다. 발병은 19세 때 임신과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한다. 필자와 처음 만났을 당시, 그 여성의 가장 큰 문제는 한센병이 아니라 한센병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이었다. 그 고통의 실체는 한센병 발병으로 겪어야 했던 세 번의 이별이었다. 자신 때문에 극심한 심리적인 고통 속에서 갑자기 사망한 어머니, 사랑하는 남성과의 강제적인 이별,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한센병 환자이기 때문에 키우지 못하고 입양 시킨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 아들의 존재를 60여 년 동안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죄의식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한센병으로 인하여 얼굴 모습이 상당히 변형되어 있었으며, 정상적인 마디를 지닌 손가락이 없었다. 발에서는 항상 양말을 신고 있어도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구술에는 변형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으나 현재까지 지속되는 고통의 원인으로 한센병을 언급했다. 표면적으로는 질병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한센병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여성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삶을 시로 구술하도록 시도하였으며, 그녀는 모두 11편의 시에 자신의 삶을 구술했다. - 김성리 글, 「치유의 방법으로서 구술사: 한센인의 구술사를 중심으로」중에서

생애의 마지막 나날. 한 한센인 할머니는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고, 그녀는 시를 통해 어떻게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었는가?
이 책은‘치유 시학’과 연관하여 한센인의 시 쓰기와 구술을 통한 치유를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논픽션이다. 기록 보존이나 자료 수집을 위한 논문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치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였다. 60여 년의 병력을 지닌 한센인 여성은 점차 자신의 삶을 관조적으로 구술하기 시작하였고, 필자와 함께 시 11편을 완성하였다.
지금까지 한센인에 관한 연구와 기록에서는 한센인 개인의 삶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 한센병으로 인하여 생기는 삶의 문제를 질병 중심의 시각에서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과 문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김성리 교수(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한센병에 대한 질병 정책이나 마을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기록 보존이라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시가 실제로 치유성을 지니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를 알고자 하였다. 기록 보존이나 자료 수집의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센인으로 살아왔던 삶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몸의 병을 치료했다고 해서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모든 고통을 치료하지도 못한다. 질병의 치료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몸의 변형이나 치료의 흔적은 한 사람의 삶을 고통 속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이때의 고통은 치료보다 치유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치료는 진단을 통해 의학의 기술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이지만, 치유는 돌보는 것, 안아주는 것에 가까운 개념이다. 의학은 과학적인 기술로 병을 낫게 하지만, 문학은 상처받은 내면을 돌보고 안아줌으로써 상실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책이 가진 의의는, 저자의 다음 말로 요약된다. 시는 마음을 치유한다. 그러나 실제로 치유는 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덤으로 얻었다. 시는 치유로 가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

책의 내용
한센인 할머니의 생애

이 책에서 필자가 만난 그녀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의 내용 전개이기도 하다.

이말란은 1927년 4월 20일 울산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남겨진 재산이 있어서 가세는 넉넉하였다. 오빠와 두 언니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으로 가서 살고 있어 거의 만나지 못했다. 해방 후에는 오빠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오빠 사후에 오빠의 유언을 받들어 일본인 올케언니가 다녀갔다.
한센인 여성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호적에는 이말란, 공공요금 청구서에는 이숙자, 마쓰시타에게는 요시코로 불리었다.
부산고녀에 재학 중이던 17세에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났다.
18세~19세에 한센병이 발병했다. 의학적으로 진단받지 못하여 정확한 발병 시기를 모르지만 18세에서 19세 되던 시기로 추정하였다.
19세인 1945년 해방 직전에 마쓰시타의 부모에 의해 마쓰시타와 헤어지고, 같은 해 8월에 미혼모로 아들을 낳았다.
194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주위의 권유로 아들을 일본 대판(오사카)에 살고 있는 김해 출신 재일한국인에게 입양 보냈다.
1946년 아들을 입양 보낸 후 혼자 살기 힘들어 20세 겨울에 당시 26세 김철수 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이 “많이 배워 똑똑하고 사리를 잘 알아 집단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했다. 위원장으로 마을 일을 참 많이 봤다”고 회고하였다. 김철수 씨는 83세에 별세하였다.
23세 때 딸을 낳았다. 이 딸은 10세 되던 해에 미감아로는 공부를 계속하기 어렵고 양육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고아원으로 보냈다가 울산으로 입양시켰다. 외손자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말란 씨의 존재를 알고 찾아왔었지만, 사위는 여전히 이말란 씨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2007년 당시 41세인 작은딸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 혼자 들어온 아이로 양녀로 입적하여 키웠다.
현재의 마을에서 주로 닭과 돼지를 키우며 살다가 부산?대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로 보상을 받아 경제적으로 나아졌다고 했다. 이후로는 보상금과 정부 보조금, 그리고 약간의 임대료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말란 씨는 한센병 이후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못하고 강제적인 이주가 자주 있었다고 구술했다. 잠시 머물다 쫓겨난 곳은 지명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정착하다가 강제로 이주한 지명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주 경로는 ‘울산(발병)?울산(바닷가 외진 마을)?용호동(잠시 머물렀음)?을숙도?용호동(을숙도에서 나와 잠시 머무름)?현재 마을’
2006년 6월, 저자 김성리와 처음 만났다. 그해 7월부터 2007년 2월까지 20차례에 걸쳐 김성리에게 자신의 삶을 구술하였으며, 시 11편을 함께 지었다.
2009년 6월 5일 소천하여,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구술과 시쓰기, 치유로 가는 문

이 책은 시와 구술사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는지 알기 위하여 한센인 여성과 만나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한센병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천형)로 표현될 정도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질병이다. 그러나 한센인은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치료와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소외와 격리, 그리고 강제 수용의 대상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한센인에 대한 강제 수용은 치료의 목적보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여 격리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한센병에 대한 의학적 사실과는 관계없이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의 눈길은 냉담했다.
이웃 마을 주민들은 한센인 정착촌이 이웃에 세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문둥이가 아이에게 해코지한다는 속설 때문에, 그리고 한센병의 전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들은 한센인들을 공격하였고, 마을에서 추방하였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이 책에 나오는 한센인 여성도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그 어디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것은 김정한(소설가)의 「모래톱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을 한센인 여성 역시 비슷하게 경험했다는 증언이다.
“그긴갑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요쯤(여기쯤)은 바다고 또 한쪽은 땅인디, 한센 환자들이 거기 살려고 했제. 그런데 주민들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데 너거가 왜 오노 하고 막았다. 살라고 하는 한센 환자들하고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들하고 크게 싸웠제.” (140쪽)

할머니의 마음의 상처는 바로 “인간의 삶”이 아닌 “벌레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한 데서 온 것이다. 의학의 기술로 다스려질 수 있는 질병을 앓고 있는, 치료와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회와 공동체는 철저히 한센인들을 격리, 추방시켜 왔고, 가족과 생이별하게 했고, 가족을 이루지 못하게 했고, 자손을 낳지 못하게 해왔다. 그것이 20세기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이 한센인들에게 저지른 야만적 행위였다.
“벌레가 따로 없제. 그냥 발 잘못 디뎌 굴러 떨어지면 죽는 기라. 안 죽을 거라고 꿈틀꿈틀 기어 다녔제. 그래도 살아볼 기라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도 비를 피할 데를 찾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옷 보따리뿐인데. 그리 울던 아들(아이들)도 안 울더라. 저거도 무서운 기라. 본능적으로 무서웠던 거라.”

필자와 만난 할머니가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대담 초기에는 구술 중간 중간 침묵과 한숨이 이어졌다. 가슴이 답답한 듯 몇 마디의 말을 하고 나면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또 필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며 가만히 있기도 했다.
할머니의 고통은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 입양 보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 아들의 친부이자 첫사랑이었던 마쓰시타에 대한 회한, 아들의 존재를 끝까지 숨겼던 남편과 딸에 대한 미안함 등 네 가지였으나 공통점은 원인이 한센병이라는 점이다. 그들에 대한 구술은 일목요연하지 않고 감정의 변화에 따라 매우 들쭉날쭉 표현되었다. 대담이 시작된 2007년 7월에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주로 침묵, 한숨, 옷자락을 만지는 행동 등이 많았다. 필자와의 대화도 날씨와 이웃의 이야기,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2007년 8월에 접어들면서 간단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8월 말에 「여름밤」이라는 시를 구술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2007년 10월까지 산발적으로 나타나던 자기비하적인 표현들은 2007년 11월에 시 「내 인생길」을 구술한 후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한센인이며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피력했다. 그리고 필자와의 대담 과정에서 구술한 시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고 싶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이러한 변화는 구술을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자아,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기대를 형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구술과 시 쓰기에 의한 자신의 목소리는 자기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자체가 매우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기 이전의 자신을 이야기한 내용을 필자를 통하여 다시 들으면서, 자기에게도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앎은 자신을 다시 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한다. 성찰에 의해 병이 든 몸을 관조함으로써 병은 그 힘을 상실하고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된다. 구술을 통하여 고통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고통 자체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치유의 촉매가 된 것이다.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 사실이 더 이상 실제 생활 세계를 방해하지 않는 것, 즉 나와 세계가 균형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현실을 응시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과거의 기억은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사유는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것이 치유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 변화 단계는 미국 정신과 의사 퀴블로 로스가 ?인간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임종 환자 심리를 5단계로 나눈 것이다. 불치병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변화는 5단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술과 시쓰기를 통한 마음 치유를 시도한 결과 한센인에게서는 6단계의 변화를 보였으며, 심리 변화의 단계도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의학적인 처치가 끝났지만, 질병에 의한 결과가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경우에는 심리 변화도 개인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삶을 산다고 들었다. 육신은 가고 없어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분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맺는말)

추천의 글
보살이라는 생각마저도 버려야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애정은 자기를 한없이 내려놓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법이니까. 상처받은 영혼들과 시로 교감하려는 김성리 선생님의 글에서 보살의 아름다운 얼굴이 스쳐 지나간 것은 오직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자각을 얻게 되었다”고 선생님은 토로했지만, 그것은 아마 선생님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가 아닐지. 선생님의 책을 따라 가슴 아리도록 진지하고 먹먹하도록 서러운 삶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설움들 사이에 공명하는 삶의 맨땅을 쓸어가는 진솔한 시들에 귀 기울여보도록 하자. 절망에서 솟구쳐 오른 삶의 찬가가 퍼질 때, 삶은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강신주(철학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난치병에 걸린 한 할머니’의 고통받는 삶보다는, 그녀가 그토록 아프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을 삶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나의 상상이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아홉 살 때부터 한센병을 앓아온 할머니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오면서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한, 그 자체로 꾸밈없이 아름다운 분이었다. 할머니의 자작시들, 그리고 저자가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아름다운 시(詩)들은 한센병이라는 단단한 갑옷 뒤에 숨겨진 한 여인의 해맑은 영혼을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준다. 한하운과 김춘수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타인의 아픔’은 할머니의 말 못할 아픔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하고, 할머니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지는 따스한 엄마의 손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정여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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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김성리

저자 김성리는 문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문학이 지닌 치유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본인의 두 전공을 융합하여 자신이 명명한 “치유 시학”을 한국연구재단의 학술 지원을 받아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에서 연구 중이다. 치유 시학을 연구하는 틈틈이 샤머니즘과 신화가 지닌 치유성을 시와 연관해서 공부하고 있으며, 관련 과목을 인제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현재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인제대학교 한국학부에서는 현대시 관련 강의를,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서는 인문학 분야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김춘수 무의미시의 지향적 체험 연구」, 「예술가의 삶의 형상화와 그 의미」,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현대시의 치유시학적 연구」, 「시치유에 대한 인문의학적 접근-한센인의 시를 중심으로」 등과 『김춘수 시를 읽는 방법』, 『문장으로 배우는 한자』(공저), 『엄마의 책방』(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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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꽃보다 붉은 울음
    한센인 할머니의 시 삶을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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