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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목성균 지음
연암서가

2015년 01월 14일 출간

종이책 : 2010년 12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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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69MB)
ECN 0102-2018-800-002623959
쪽수 6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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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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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수필다운 수필을 쓰는 사람, 목성균 수필 전집!
목성균의 유고 수필 전집 『누비처네』. 57세라는 늦깎이로 등단해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하고, 갑작스런 발병으로 타계한 목성균의 수필을 하나로 엮었다. 죽을 때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후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양성될 정도로 뒤늦게 평가받은 수필가인 목성균이 <명태에 관한 추억> 이후 작성한 원고와 그 작품집에 실리지 않았던 원고를 하나로 모아 소개한다. 목성균은 시적 언어 구사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평범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묵묵히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돈독한 삶을 그려내 감동을 전한다. 이 책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적 체취가 있었던 지난 세월을 애정 어린 필체로 그려낸다.
수필계의 기형도라 불리는 목성균은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이미 퇴직 후 다 늙어서 등단한 작가였다. 그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으며 출신 잡지마저도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반응 없는 글쓰기에 지쳐 그가 문학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쯤 그는 <옹기와 사기>라는 작품으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에세이스트 김종완이 가장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는 수필가가 목성균이라고 말할 정도로 목성균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한다. 특히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발간사

제1부 억새의 이미지
고개
그리운 시절
누비처네
다랑논
부엌궁둥이에 등을 기대고
사기등잔
살포
억새의 이미지
옹기와 사기
조팝나무꽃 필 무렵
세한도
만돌이, 부등가리 하나 주게

제2부 혼효림
목도리
새벽의 거리
선배의 모습
앞자리
액자에 대한 유감
어떤 직무유기
의사 선생님께
조선낫과 왜낫
파리 목숨
혼효림
약속
둥구나무

제3부 기둥시계
고향집을 허물면서
기둥시계
돼지불알
명태에 관한 추억
소나기
아버지의 강
국화
할머니의 세월
꽃 냄새
뻐꾸기 울 때
선풍기
알밤 빠지는 소리
우정의 무대

제4부 불영사에서
장모님과 끽연을
희권이의 실내화
간이역
거진항의 아침
길 위에서
논란의 여지
불영사에서
장마전선을 넘어
전장포
휴게소에서
속리산기
본개나루에서
새벽 등산
강진의 밤

제5부 생명
고모부
깃발 1
눈물에 젖은 연하장
당목수건
미움의 세월(歲月)
생명
손수건
소년병(少年兵)
아버지의 도장
할머니의 산소

제6부 봄비와 햇살 속으로
가을바람 부는 대로
봄빛을 따라서
봄비와 햇살 속으로
산읍 소묘(山邑素描)
새우젓
수루 앞에서
억수리에서
얼음새꽃
칸나의 계절
H형께

제7부 행복한 군고구마
고향설(故鄕雪)
동구(洞口)
바래너미의 고욤나무
배필(配匹)
수탉
얼굴
이화령(梨花嶺)
조령산(鳥嶺山)
행복한 군고구마
현암리에서

제8부 괘종시계
가을운동회
괘종시계
깃발 2
막내의 아르바이트
무심천의 피라미
아파트의 불빛
진달래꽃
찔레꽃 필 무렵
큰밭
한들 산모퉁이 길

제9부 꽃이 핀 자리
꽃이 핀 자리
나의 수필
돈독(敦篤)에 대하여
말복(末伏)
백로(白露)
생쥐
여덟 살의 배신
존재와 이름
첫눈
커피에 관한 추억(追憶)

해설: 목성균의 수필 세계/김종완(수필가?문학평론가)
목성균 연보

추석을 쇠고 우리는 아버지의 명에 의해서 근친을 갔다. 강원도 산골 귀래 장터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한가위를 지낸 달이 청산 위에 둥실 떴다. 그때부터 십리가 넘는 시골길을 걸어가야 했다. 아내는 애를 업고 나는 술병과 고기 둬 근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아내 옆에 서서 말없이 걸었다. 달빛에 젖어 혼곤하게 잠든 가을 들녘을 가르는 냇물을 따라서 우리도 냇물처럼 이심전심으로 흐르듯 걸어가는데 돌연 아내 등에 업힌 어린 것이 펄쩍펄쩍 뛰면서 키득키득 소리를 내고 웃었다. 어린 것이 뭐가 그리 기쁠까. 달을 보고 웃는 것일까. 아비를 보고 웃는 것일까. 달빛을 담뿍 받고 방긋방긋 웃는 제 새끼를 업은 여자와의 동행,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구체적으로 알았다.
아버지는 푸른 달빛에 흠뻑 젖어 아기 업은 제 아내를 데리고 밤길을 가는 인생 노정에 나를 주연으로 출연시키신 것이다. ‘임마, 동반자란 그런 거야’ 하는 의미를 일깨워 준, 아버지는 탁월한 인생 연출자였다. 처네 포대기가 그 연출의 소도구인 셈이었다.
그때 “그 처네 포대기 아버지께서 사오라고 돈을 부쳐 주셔서 사온 거야.” 내가 이실직고를 하자 아내가 “알아요” 했다. 그러고 말하기를, 추석 대목 밑에 어머니가 아기 처네 포대기 사게 돈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가 묵묵부답이셨다는 것이다.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려면 애를 업고 갈 포대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하고 성미를 부리자 아버지가 맞받아서 “애 아비가 어련히 사올까” 하시며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아내는 그때 시아버지께서 무심한 신랑과 친정을 보내 주실 모종의 조치를 꾸미고 계시다는 것을 눈치채고 가슴을 두근거렸다고 한다.
교교한 달빛 아래 냇물도 흐름을 멈추고 잠든 것 같았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내가 아내의 손을 잡았던 모양이다. “그때 내 손을 꼭 잡던 자기 얼굴을 달빛에 보니 깎아 놓은 밤 같았어.” 아내가 누비처네를 쓸어보며 꿈꾸듯 말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내의 칭찬이었다. 아마 그때 내게 손을 잡힌 걸 의미 깊이 받아들였던 모양이다.-27쪽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추울 때다. 하루 종일 햇볕에 단 부엌궁둥이에 기대 서서 초저녁별을 바라본 적이 있다. 부엌궁둥이가 그렇게 따뜻하고 은밀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지 나는 저녁 밥상이 들어갔는데도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엌궁둥이로 돌아가서 숨었다. 고샅에서 할머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리고, 방안에서는 “그 놈에자식, 밥도 주지 말어” 하시는 아버지의 역정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부엌궁둥이로 돌아가서 바람벽에 외로운 신세를 기대게 될 줄을 알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남향의 바람벽이 동지 섣달 막 저녁 밥상이 들어간 부뚜막처럼 따뜻했다. 거기에 등을 기대고 서서 어두운 산등성이 위로 돋는 별을 바라보니까 서러웠다.
그 후 새신랑인 나는 꽤 여러 번 해질녘이면 부엌궁둥이의 바람벽에 기대고 서서 초저녁별을 바라보았다. 꿈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심한 농사를 지어야 할 건지 말 건지, 이 부엌궁둥이에 와서 젊은 인생의 전말(顚末)을 화두(話頭)로 잡고 고뇌하면 응결된 가슴이 열렸다.-34쪽

나는 어려서부터 바깥 사랑방에서 증조부와 같이 잠을 잤는데, 증조부께서는 한밤중에 내 엉덩이를 철썩 때리셨다. 오줌 싸지 말고 누고 자라는 사인이었다. 그러면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사랑 뜰에 나가서 앞산 위에 뿌려 놓은 별떨기를 세며 오줌독에 오줌을 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증조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을 발로 걷어차서 물 개력을 해 놓고 말았다. 아닌 밤중에 물벼락을 맞으신 증조부께서는 벌떡 일어나서 “어미야-” 하고 안채에다 벽력같이 소릴 치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처럼 어머니야말로 잠결에 달려나오셔서 죄인처럼 황망히 물 개력을 수습하셨다. 그동안 나는 놀란 토끼처럼 구석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54쪽

그래도 나는 그런 실수를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 실수가 있은 후에는 증조부가 밤중에 엉덩이를 ‘철썩’ 때리시면 나는 일단 일어나서 어둠이 눈에 익기까지 서 있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정체를 드러내는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 그것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사기대접은 마치 노출된 매복병처럼 ‘어디 한번 걷어차 보시지, 왜-’ 하고 하얗게 내게 대들었지만, 천만에, 나는 그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을 잘 피하고 지뢰를 밟지 않은 병사처럼 의기양양해서 가소롭게 노려보았다. 그러면 주무시는 줄 알았던 증조부께서 “오냐, 그렇게 조심성을 길러야 하느니라” 하시는 것이었다.-55쪽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 과거가 새롭다
삶의 돈독함을 꿈꾸던 목성균 수필의 모든 것

2004년에 세상을 떠난 수필가 목성균의 수필 전집.
1995년 등단하여 시적 언어 구사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작고 하찮은 것, 평범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력 있는 수작들을 빚어내어 2003년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하는 등 의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다 이듬해 타계하였다. 그는 삶의 간과할 수 없는 작은 부가가치들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주조로 비록 넉넉하고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인간적 체취가 있었던 지난 삶들을 애정 어린 필치로 아로새겼다. 지금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옹기와 사기, 등잔, 살포, 다랑논을 생생히 불러와 묵묵히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돈독한 삶을 그린 그의 수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만 가는 요즘 세태에 많은 울림을 준다.

죽어서 살아 돌아온 수필가: 우리 산을 지켜 온 이의 절절한 인간 사랑

목성균은 이미 십대에 문학을 꿈꾸었다. 여남은 살에 글쓰기로 세상의 속살을 파헤칠 꿈을 꾸었다. 마치 운명이 응원을 하듯 서라벌예대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너무 쉽게 뜨겁게 달궈졌을 것이다. 세상은 자기편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신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다음 학기에 장학금이 나오지 않았고 그로써 문예창작 공부는 끝이 났다.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자 낙향하여 산림공무원이 되었다. 인적 없는 산이 그의 일터였다. 산에서 산으로 옮겨 다니며 벌목꾼들을 단속하고 산짐승들을 보호하고 이끼와 바위와 들꽃과 나무와 얘기하고 바람과 달빛과 사귀었다. 그러길 25년, 정년퇴직 후 하릴없이 또 2년여 해찰하였다.
황혼길에 서서 그는 불현듯 저 유년의 꿈을 떠올렸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에게 문학은 저 젊은 날에 섣부르게 덤벼들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만 거창한 세계가 아니었다. 인적 없는 산속을 헤매며 그 깊은 자연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흘러 다니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어떤 흐름의 줄기 같은 것. 인간의 삶의 행태들, 그리고 그 속을 흐르는 보이지 않는 진실. 그는 이제야 홀연히 자기 겉껍질을 벗고 속살을 드러낸 채 누군가와 얘기를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뒤늦게 선택한 문학 장르는 수필이었다. 절절했던 만큼 가장 정직하고 직접적인 전달력을 갖는 수필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역시 터무니없이 짧았다. 채 십 년도 되기 전에, 아니 본격적으로는 세상을 뜨기 전 겨우 사오 년 정도였을 뿐이다. 병상에서 눈을 감기 직전까지 가물가물 흐트러지는 정신을 혼신을 다해 일으켜 세우며 글을 썼다. 해서 몇몇 편은 스케치만 했을 뿐 퇴고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펜을 잡은 채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사람들은 참으로 뒤늦게 그의 글을 한 편 한 편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어느 새 수필계에선 가장 탁월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것이 ‘죽은 시인의 사회’인가. 죽어서야 회원의 명단에 오를 수 있는, 살아서는 모든 글이 과정이고 습작에 불과하니, 죽은 후에야 모든 예술 작품은 완성되고 비로소 평가될 수 있는 것인가. 어쨌든 우리에게 그는 죽어서야 살아 돌아온 작가임에 틀림없다.

책속으로 계속


나루터에는 피난민들이 가득 모여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나룻배는 이미 피난민들이 떼거지로 덤벼들어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다가 요절을 내버렸고, 흐린 강을 건널 길은 직접 몸으로 강물을 헤쳐서 건너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계셨다. 이윽고 아버지는 옷을 벗으시고 내게도 옷을 벗도록 이르셨다. 그리고 꼭 필요한 옷가지만 바랑에 담아 머리에 이고 허리띠로 턱에 걸어 붙들어 매셨다. 그런 다음 나를 업으셨다. 강을 건너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신 것이다.
“아버지 목을 꼭 잡고 얼굴을 등에 꼭 붙여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버지 신체의 비밀을 발견하고 나는 당혹감에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대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얼굴을 아비 등에 꼭 붙여라.”
나는 엉겁결에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꼭 댔다. 내 얼굴이 반점에 닿지는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 화난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 같은 반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을 건너기 시작하셨다. 강 한가운데로 한 발 한 발 꿋꿋하고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나가셨다.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들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건너셨다.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부딪치면 같이 쓰러져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謗없는 상황이었다. 강 한복판에 도달하였을 때, 아버지는 강바닥의 모래가 패인 곳을 밟으셨는지 키를 넘는 물에 잠기셨다. 나는 물을 먹고 엉겁결에 얼굴을 들다가 아버지의 불호령이 생각나서 아버지의 목을 더욱 꼭 잡고 얼굴을 등에 댔다. 아버지는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모래 웅덩이에서 헤어 나오셨다. 거기서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면 다시는 바로 서지 못하고, 우리 부자는 흐린 강물에 떠내려갔으리라.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하게 그때가 되살아나서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아버지의 그 초인적인 의지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할 뿐인데, ‘내 힘이니라’는 듯이 눈앞에 아버지의 반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드디어 강을 건넜을 때, 아버지는 모래바닥에 나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으시고 모래바닥에 엎드려서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우셨다. 내가 아버지의 우시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 한번뿐이다. 아버지의 그 울음은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넌 감격 때문이었는지, 가혹한 역사의 순간에 대한 공포의 오열이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그게 6?25의 발발 원인만치나 궁금하다.-169쪽

이제 아버지와 나는 다시 아버지의 강에서 만났다. 중풍에 드신 아버지는 그 흐린 강가에 앉아서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시고 뒤따라오는 자식을 기다리신다. 이제 비로소 내 등에 업혀 강을 건너가시려고 못난 자식에게 기우는 아버지가 가엾고 고맙다. 그 강에서 아버지가 나를 소중히 건사해서 건네주셨듯 이제 내가 아버지의 숨찬 강을 건네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등만큼 완강하지 못한 내 등을 감히 아버지께 돌려대 드린다. 그 빈약한 내 등에 기꺼이 업혀 주시는 아버지가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다.-171쪽

뭍의 발기가 결연한 의지로 바다 깊이 삽입되어 있는 곳이 곶(串)이다. 바다는 궁합이 안 맞는 여편네처럼 곶 끝에서 응얼거린다. 곶은 개의치 않고 정정당당하게 바다의 한녘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아! 수컷다운 기상. 나는 비 오는 곶 끝에 서서 사내의 사기를 진작시켜 본다.
아득하게 우연(雨煙)이 수평선을 가로막고 뿌옇게 흐려 있다. 맑은 날의 거침없는 호형(弧形) 수평선은 참담하게 나의 각성을 촉구하는데 비해서 비 오는 날의 수평선은 쓰고 따뜻한 탕제같이 내 마음을 아늑하게 해준다.
곶 끝에 서 있는 하얀 장기곶 등대가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일관되게 늙은 흰 정복차림의 항해사처럼 당당하다. 그가 내게 뚜벅뚜벅 걸어와서 솥뚜껑같이 넓적한 손을 어깨에 턱 얹어 주며 ‘삶이란 게 관점에 따라 다를 뿐, 다 그렇고 그런 거요’ 할 것만 같아서 가슴을 두근거렸다.
곶의 안쪽이 만(灣)이고, 포구는 만 안에 있다. 곶이 만을 감싸고 포구는 남편 잘 만난 아낙네처럼 얌전하게 만의 품에 폭 안겨 비 맞고 몸부림치는 곶 끝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혼곤(昏困)하게 잠들어 있다.-250쪽

자고 나니까 링거액을 주사한 오른팔 손등이 소복하게 부어 있다. 링거액이 샌 모양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멀겋게 부운 아버지의 손, 중풍이 오신 고통스러운 말년의 손을 내가 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지간의 생명의 바통인가. 나는 아버지의 말년, 그 손을 잡고 병고를 위로해 드리곤 했었다.
아버지의 손은 퍽 크다. 내 손은 아버지의 손에 비하면 너무 병약하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숭배한다. 사랑한다. 어쩌면 지금 내 손이 아버지의 손과 똑같을까? 생명은 닮는다는 뜻일까?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가정실습(家庭實習) 때다. 집에 왔다가 모내기를 돕게 되었다. 뒷골 천수답에 모내기를 했다. 나도 열심히 모를 심었다. 식구들과 일꾼을 몇을 얻어가지고 모를 심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빗물을 잡아서 논을 삶느라고 고삐에 넓적다리가 스쳐서 피가 날 정도였다.
우리 농사 중 파종의 대미는 천수답 모내기를 끝마치는 것이다. 힘들고 의미 있는 과정이다. 그 날 점심때, 우리는 오동나무 그늘에 점심 들밥을 차려놓고 먹었다. 신록이 우거진 그늘에서 뻐꾸기가 낭자하게 울었다. 소들은 모를 심느라고 일으켜 놓은 구정물로 엉덩이에 흙덩이가 엉겨 붙은 채 우리 옆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풀을 어귀적어귀적 씹으며 흘금흘금 오월 강산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우리 점심 차림은 너무 소박했다. 햇보리 반과 묵은쌀이 반씩 섞인 밥에다 상추겉절이, 배추겉절이, 마늘잎을 넣고 조린 꽁치가 전부였다. 그리고 된장, 지금도 눈에 선한 황금색 튀장(토장) 한 탕기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그 날의 점심 맛을 내준 것은 마늘잎 꽁치조림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입맛을 내준 것은 황금색 튀장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상추이파리 서너 장에 밥을 두어 숟갈 푹 떠서 담고 그 황금색 튀장을 반 숟갈 듬뿍 얹어 꾸기꾸기해서 입에 넣으셨다.
아버지가 상추쌈을 입에 넣고 눈

작가정보

저자(글) 목성균

저자 목성균(睦誠均)은 1938년 충북 괴산군 연풍에서 태어나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중퇴했다. 1968년 산림직 국가공무원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25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1993년 퇴직 후 「월간 에세이」에 초회 추천된 뒤, 1995년 월간 「수필문학」에 「속리산기」로 추천 완료됐다. 2003년 수필집 『명태에 관한 추억』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 작품집에 선정되었고, 2004년 3월 제22회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5월 타계했다. 저서로 『명태에 관한 추억』(2003), 『생명』(2004), 선집으로 『행복한 고구마』(2010), 『돼지불알』(현대수필가 100인선,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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