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
2017년 01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16년 12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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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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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랑스러운 싸이보그 영군 캐릭터는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은 제40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찬욱 복수 3부작’ 이후 밝고 따뜻한 세계를 그려낸 감독의 새로운 시도이자, 독특한 화면 연출과 세계관을 펼쳐낸 영화인 만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각본과 영화를 견주는 시간은 독자를 영화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영화를 새로이 발견하게 도울 것이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자신을 살갑게 키워준 외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간 후부터 자신을 싸이보그라 믿게 된 영군을 통해, 거대한 상실감과 슬픔과 분노를 이겨내는 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작가의 말_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
싸이보그 칠거지악인 ‘동정심, 슬픔에 잠기는 것, 죄책감,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설레임, 감사하는 마음’의 금지는 사실상 감독님의 시나리오 창작 원리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유머 없이는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인간의 취약한 감정에 쉽게 사로잡히기를 거부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감독님의 싸이보그적인 면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영화를 모든 이가 좋아할 수는 없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이런 점이 감독님 영화를 품위 있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움 속에 감독님한테 이런 깨달음을 당장 말해주려고 했지만....막상 감독님은 “그걸 인제 알았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할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 ‘작가의 말_정서경’ 중에서
마침 그즈음, 손가락 끝이 기관총구로 변해 발작적으로 탄환을 퍼부으면서 입으로는 토하듯이 탄피를 뱉는 소녀의 꿈도 꾸었겠다, 신이 나서 서경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서경은 정신과 의사 베프를 톡톡히 잘 써먹어가며 초고를 써 내놓았고, 나는 늘 하는 대로 서경과 마주 앉아 함께 거듭 고쳐 썼다. (…) 나는 서경 작가 말마따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날 때 그다지 감사해 하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속으로 이렇게 뇔 뿐이다. ‘정의는 살아 있다!’
- ‘작가의 말_박찬욱’ 중에서
눈물범벅이 된 영군, 한참 이야기하지만 하도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대는 바람에 알아듣기 어렵다.
일순
(영군의 어깨를 붙잡고 주의 깊게 입 모양을 보며)
“훔쳐....주세요....도저히....못하겠어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울면서 말하는 영군)
“하얀맨....들을 죽여야 되는데....할머니가....위촉”?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하는 영군)
“위독하세요....하얀맨들은 할머니가 물을....”
(고개를 흔드는 영군)
아, “무를....먹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틀니를 못 주게....막는 거예요.
우리 할머니....무를....얼마나 좋아하는데....
몽땅....죽여야 돼요....육실헐 놈들....
제발 동정심 좀....훔쳐가주세요....일순님”?
(맞게 전달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울음을 정리하는 영군을 빤히 보며)
나 못 훔쳐.
(다시 떼를 쓰며 울기 시작하는 영군)
사실은 잠깐 최면 거는 거야, 그냥 그런 기분만 들게.
(울면서 웅얼거리는 영군)
“원하는 건 뭐든지 드릴게요.
화요일도 토요일도 다 드릴게요”
난감한 표정의 일순.
잠시 후 -
눈을 감은 영군. 얼굴에 붓으로 녹색 물감을 칠하는 일순. 영군, 가끔 훌쩍여서 눈물이 난다.
- 59. 보일러실 (밤) 중에서
창가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종이컵을 입에 댄 영군.
영군
(일순과 거의 동시에 말하며)
안 다쳤어요?
일순의 얼굴이 밀려들어오면서 분할화면. 두 사람, 종이컵을 귀에 댄 채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린다. 컵 속의 바람 소리.
일순
(종이컵을 입에 대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저기, 손 좀 내밀어 봐요.
(창살 너머로 초록과 파랑 양말을 주고받는 일순과 영군)
그거 신고....
(양말을 신는 영군)
팔 벌리고 엎드려서 발을 마주 비비는 거야.
(침대에 엎드려 양팔을 벌리고 발을 마주 비비는 영군)
이게 정전기적 긴장을 만들어내서 몸을 부양시켜 주거든.
....닭고기 안 먹었죠?
....내가 이제 노래를 불러줄게, 떠오르면 몸을 아주 작게 만들어.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하는 일순. 영군과 침대, 떠오르면서 작아진다.
영군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웃으며)
이야....
거대한 창살로 빠져나가는 영군과 침대.
- 92. 영군과 일순의 안정실 (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그려낸 따뜻하고 순수한 세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각본을 책으로 엮었다. 정서경 작가와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2005)〉 각본을 시작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2009)〉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2016년 〈아가씨〉에 이르러 수많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아가씨’라는 하나의 현상을 이끌었다. 하나의 하드에 두 대의 모니터, 두 대의 키보드를 두고 함께 썼다는 각본들에서 긴 시간 동안 공동작업을 펼쳐온 정서경 작가와 박찬욱 감독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은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친절한 금자씨 각본』, 『박쥐 각본』과 동시 출간된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스스로를 싸이보그라 믿는 영군(임수정 분)이 신세계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펼쳐지는 일들을 그린다.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인 일순(정지훈 분)은 형광등과 자판기에 말을 걸고 식사를 거부하는 영군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를 위로하고, 밥을 먹이기 위해 분투한다. 엄마보다도 자신을 더 살갑게 키워준 외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간 후부터 자신을 싸이보그라 믿게 된 영군을 통해, 거대한 상실감과 슬픔, 분노를 이겨내는 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영군 앞에 이따금 등장하는 외할머니의 이미지는 영군에게 ‘존재의 목적’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사라지는데, 관객 역시 영군과 일순을 지켜보는 내내 그 화두에 집중하고 되묻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저마다 존재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목적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 쌀 한 톨 넘길 수 없을 만큼 슬픔에 잠식됐던 영군이 외할머니와 추억이 담긴 동치미를 씹어 삼키고서야, 그런 희망 따위 버리고 밥 잘 먹고 또 오늘을 살아보자는 듯 저 멀리 무지개가 떠오른다.
개봉 당시 영화는 74만여 관객을 동원(영화진흥위원회)하여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흥행 성적은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각본은 제40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빼어난 작품인 만큼, 각본 자체에 주목할 만하다. 또한 ‘박찬욱 복수 3부작’ 이후 일종의 로맨틱코미디라는 밝고 따뜻한 세계를 그린 감독의 새로운 시도이자, 독특한 화면 연출과 세계관을 펼쳐낸 영화인 만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이 다시금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영군, 마음을 잃고 사는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다
영화감독 봉준호가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세 편을 ‘정서경 삼부작’이라고 일컬었을 만큼, 세 편의 영화는 박찬욱 감독뿐 아니라 정서경 작가의 세계관까지 흡수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함께하는 동안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고 〈올드보이〉 이후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꾀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욱 확장시켜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영군, 〈박쥐〉의 태주를 거치며 ‘여성’은 이야기 속 비중을 늘리며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한다. 특히 그 정점에 선 〈아가씨〉는 페미니즘 이슈가 가득했던 최근 몇 년 새 가장 필요했던 서사였다. 이에 앞서 그 바탕을 다져온 세 편의 각본 역시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영군은 비쩍 마른 작은 여자애에 불과하지만, 전기 충전이 완료되면 손끝에서 따발총을 쏠 수 있는 싸이보그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영군의 망상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마음을 잊고 쉽게 거짓을 말하는 이들(신세계 정신병원에서는 대부분 의사로 치환된다)에게 총구를 겨눈다. 몸에서 총알이 쏟아져 나와 눈앞의 사람들을 죽여버릴 것 같을 만큼, 외할머니를 잃은 슬픔과 분노는 영군에게 너무나 크고 압도적이다. 그 감정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소녀는 이것을 발화하기까지 너무 복잡한 과정을 겪는다. 영군은 싸이보그의 칠거지악이기도 한 ‘동정심, 슬픔에 잠기는 것, 죄책감, 망설임, 쓸데없는 공상, 설레임, 감사하는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리고 영군은 끝내 그 마음들을 온전히 겪어내며, 자신의 모든 슬픔과 분노를 받아들이고 감내해낸다. 작고 깡마른 싸이보그 영군에게 뜨거운 심장이 있다.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 ‘각본 읽기’의 즐거움
‘각본 읽기’는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즐기는 한 방법이다. 『아가씨 각본』 출간 이후 독자들의 후기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했던 점은, 영화와 각본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흥미로움이었다. 실제로 각본에 있는 장면이 영화에서는 편집되기도 하고, 각본에 없던 장면이 영화에는 새로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로써 독자는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영화 촬영의 현장성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편집되었던 장면을 보며, 이전까지는 상상하거나 추측해야 했던 감독의 구체적인 의도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어떤 장면이 더해지고 빠지게 되었는지를 견주어 보는 시간은 독자를 영화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는다. 독자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을 발견하고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된다.
각본을 읽으며 독자는 저마다의 속도로 영화를 다시 읽고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사실 아직까지 시나리오라는 장르는 보통의 독자에게 다소 낯설지만, 각본집을 통해 비로소 ‘소설 읽기’ 못지않은 쾌감을 전하는 ‘각본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시문과 해설, 대사로 이루어진 구성, 신(Scene)과 신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까지 저마다의 호흡이 부과되는 과정, 문자와 여백을 읽으며 이미지를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좀 더 느린 속도로 영화를 새로이 이해하게 된다.
『아가씨 각본』을 시작으로 『친절한 금자씨 각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각본』, 『박쥐 각본』이 동시 출간되고, 이후로도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 각본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각본집이 출판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시나리오’의 영역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갈 수 있기를, 영화계에 종사하고자 준비하는 예비 영화인과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자료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본다
작가정보
저자 정서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했으며, 〈모두들, 괜찮아요?〉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집필해왔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제40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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