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의 규칙서
2016년 08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11년 08월 1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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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6037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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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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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독교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록 목적과 규칙의 유연성이 중심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규칙’을 뜻하는 라틴어 ‘레귤라'(Regula)는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길의 울타리,’ 또는 ‘행동과 삶의 잣대’를 의미한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수도사들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딱딱한 규범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수한 영성생활을 통해 천국을 향한 수도사들의 영적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이정표와 지침이다.
제 1장 수도사의 종류
제 2장 수도원장의 자질
제 3장 조언을 얻기 위한 형제들의 소집
제 4장 선한 일을 위한 도구들
제 5장 순종
제 6장 금언禁言
제 7장 겸손
제 8장 야간 성무일도聖務日禱
제 9장 [겨울철] 야간 성무일도에 바칠 시편송의 수
제10장 여름철 야간 성무일도의 순서
제11장 주일 야간기도Vigils의 집전
제12장 주일 새벽기도Lauds의 집전
제13장 평일 새벽기도Lauds의 집전
제14장 성인들의 축일에의 야간기도Vigils 집전
제15장 알렐루야Alleluia를 암송하는 때
제16장 주간 성무일도의 집전
제17장 각 시간 전례에 낭송해야 하는 시편송의 수
제18장 찬송의 순서
제19장 찬송 훈련
제20장 기도할 때의 경외심
제21장 수도원의 주임들Deans
제22장 수도사들의 취침 배열
제23장 죄로 인한 파문破門
제24장 파문의 방식
제25장 중대한 죄
제26장 파문을 당한 자들과의 허가 받지 않은 교제
제27장 파문을 당한 자들에 대한 수도원장의 돌봄
제28장 잦은 책벌에도 불구하고 교정을 거부한 자들
제29장 수도원을 떠난 형제들의 재입회
제30장 소년들을 책벌하는 방식
제31장 수도원 살림책임자Cellararius(당가當家)의 자격
제32장 수도원의 도구들과 물품들
제33장 수도사의 사적 소유권
제34장 필요에 따른 물품의 분배
제35장 주간의 주방봉사자들
제36장 병든 형제들
제37장 연장자와 연소자
제38장 주간 독서자
제39장 음식의 적절한 양
제40장 음료의 적절한 양
제41장 형제들의 식사 시간
제42장 마지막기도Compline(종도終禱)후의 침묵
제43장 ‘하나님의 일’Opus Dei이나 식사에 늦음
제44장 파문에 의한 보속
제45장 예배실에서의 실수들
제46장 다른 일로 인한 잘못들
제47장 ‘하나님의 일’을 위한 시각의 공표
제48장 매일의 육체노동
제49장 사순절Lent의 준수
제50장 먼 곳에서 일하거나 여행 중에 있는 형제들
제51장 짧은 여행 중에 있는 형제들
제52장 수도원의 예배실
제53장 손님의 영접
제54장 수도사를 위한 편지나 선물
제55장 형제들의 옷과 신발
제56장 수도원장의 식탁
제57장 수도원의 장인匠人들
제58장 형제들의 입회절차入會節次
제59장 귀족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아들을 봉헌함
제60장 사제Priest의 수도원 입회
제61장 방문한 수도사들의 영접
제62장 수도원의 사제들
제63장 공동체 서열
제64장 수도원장의 선출
제65장 수도원의 부원장
제66장 수도원의 문지기
제67장 여행 중에 있는 형제들
제68장 형제에게 부과된 불가능한 직무
제69장 수도원에서 다른 사람을 변호하는 주제넘음
제70장 자기 마음대로 다른 수도사를 체벌하는 주제넘음
제71장 상호 순종
제72장 수도사들의 선한 열정
제73장 이 규칙은 온전함을 향해 가는 시작에 불과함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생명의 길을 보아라! 선한 일을 행하고 믿음으로써 옷을 입고 복음의 안내를 받으며 이 길을 떠나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부르시는 하나님”(살전 2:12)을 보기에 합당해질 것이다. - p.15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라”(마 16:24), “너의 몸을 훈련하라”(고전 9:27), 편안한 삶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금식하기를 좋아하라. 가난한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어야 한다.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병든 자를 찾아가며”(마 25:36), 죽은 자를 장사하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찾아가서 도와주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여라.
네가 행동하는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달라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다른 것들보다 앞서야 한다. 너는 분노한 채 행동하지 않아야만 하고, 원한을 품어서도 안 된다. 네 마음에서 모든 거짓을 제하여 버리라. 결단코 마음 없이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지 말고, 또한 네 사랑을 필요하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서도 안 된다. 거짓 맹세가 되지 않도록 어떤 맹세도 하지 말고, 마음과 입술로 진실을 말하라. - p.31-32
이와 같은 겸손의 모든 단계를 거친 후에 수도사는 재빠르게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요일 4:18)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만 이제 그는 자신이 한때 두려움으로 행했던 모든 것을 아무 노력 없이, 즉 자연적으로, 습관인 것처럼 준수하기 시작할 것이다. 곧, 더 이상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선한 습관과 덕을 즐거워함으로 인해 그것들을 준수할 것이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이제 죄와 악으로부터 정결하게 된 그분의 일꾼 안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롭게 나타내실 것이다. - p.47
이 책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렇게 나태하고, 그렇게 부주의하고, 또한 그렇게 소홀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한다. 당신은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열심을 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도우심과 함께 우리가 초보자들을 위해 기록한 이 조그마한 규칙들을 지켜라. 그 후에 당신은 우리가 앞서 말한 가르침과 덕목의 보다 고결한 정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서 그곳에 다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멘. - p.128
수도원주의의 발달과 베네딕트의 규칙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서방기독교 수도원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4세기 초 이집트의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Diocletianus) 치하에서는 많은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the Great)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순교’를 찾아서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으로 나아갔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에 따르면 4-5세기에는 “사막에 도시”를 이룰 정도로 많은 수도사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은둔형 혹은 공동체형 수도원을 만들어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렇다고 당시 사막의 수도사들이 세속 도시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박해시대의 순교자들처럼 교회에서 ‘영웅’으로 인식되며, 로마제국의 종교적 관용으로 인해 신앙이 느슨해진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와 수도원 이야기는 아타나시우스의 《안토니의 생애Vita Anthonii》와 요한 카시아누스(Johnnes Cassianus)의 《제도집Institutes》,《담화집Conferences》과 같은 글과 종교-문화적 접촉을 통해 서방교회의 수도원 발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갈리아(Gaul)와 팔레스타인, 로마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원 전통의 유산들이 축적되어 6세기《베네딕트의 규칙서》로 꽃피어 났다. 실제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금언집(Apothegmata),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암브로시우스(Ambrosius of Milan),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바실리우스(Basilius of Cappadocia)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네딕트의 규칙서》보다 조금 앞서 쓰여진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베네딕트는 자신의 규칙을 토대로 서구 수도원 제도의 기초를 놓으려 하거나 자신만의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규칙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융통성과 온건한 금욕적 수행, 그리고 균형 있는 생활규율 등으로 인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후 8세기 후반과 9세기 초에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자신의 카롤링거 제국에 속한 수도원의 공식적인 규범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0세기에는 베네딕트의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원들이 연합하여 베네딕트 수도회(Benedictine Order)를 창설하였다. 이후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중세에 수도원이 타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물론 수많은 수도원개혁의 과정에서 신앙적 활력과 기준을 제공해주었다. 20세기에 들어서 베네딕트 수도원들은 영국성공회와 스웨덴 루터교 안에도 세워졌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약 3만 여명의 수사와 수녀가 베네딕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생애
베네딕트의 생애에 관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그의 사후 약 50년 경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the Great)가 자신의《대화집Dialogues》제2권에 남겨둔 “베네딕트의 생애(Vita Benedicti)”가 전부이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성인전(聖人傳)이 오늘날의 전기(Biography)의 개념으로 베네딕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사람” 베네딕트의 거룩한 성품과 영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의도한 교훈을 교회와 이탈리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기록에 따르면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 1년은 엔피데(Enfide)에서 다른 금욕주의자들과 같이, 이후에는 수비아코(Subiaco)의 산 위에 있는 동굴에서 약 3년 간 홀로 기도와 금욕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악마의 유혹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기 위해 심지어 쐐기풀과 들장미 덤불 속에 들어가 그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그의 종교적 생활이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엄격한 삶의 방식은 평이한 삶을 원하는 그곳 수도사들의 기대와 상충했고,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인 거룩함에 대한 평판과 기적에 대한 소문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비아코에서 약 19년 동안 열두 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곧 지역 사제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이를 피해 베네딕트는 529년경에 로마와 나폴리(Naples) 사이에 있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적용하여 이방신을 섬겨오던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지도하였다. 《베네딕트의 규칙서》가 기록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는 수도사들의 삶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뭄이 극심할 때는 수도원의 식량을 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등 수도원 밖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자비를 베풀었다.
베네딕트의 죽음은 그의 기도하는 삶의 아름다운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있다. 그레고리우스 1세는 베네딕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의 규칙서는 자신이 살았던 삶의 방법과 양식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대화[가르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베네딕트의 규칙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과 훈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거룩한 사람[베네딕트]은 그가 가르친 것을 모두 삶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다"(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제2권 제36장).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내용과 주요 주제
《베네딕트의 규칙서》는 규칙을 제정한 의의를 설명하는 서문과 수도원에서의 각종 제도와 생활규율 등을 설명하는 7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 제7장까지는 《스승의 규칙서》와 아주 많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수도사의 종류(제1장)와 수도원장(제2-3장), 그리고 영적성장을 위한 훈련방법(제4-7장)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글 전체의 도입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전 도입부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규칙을 다루고 있다. 전체를 간략히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례규칙과 자세(제8-20장), 직책과 역할(21, 31-32, 38, 47, 57, 62-66장), 입회, 책벌, 파문(23-30, 42-46, 58-61장), 노동과 각종 생활규칙(22, 33-37, 39-42, 48-56, 67-72장), 끝맺는 말(제73장)로 이루어져 있다.
상호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순종
“들으라, 나의 아들아”라는 권고로 시작하는 서문은 이 글이 법률적 문서보다 구약성서의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 잠언 1:8, 4:1 참조)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베네딕트는 규칙서에 기록된 가르침들을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교훈에 비유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이 가르침들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서문 1절).
이러한 지혜문학으로서의 글의 성격은 베네딕트회의 3대 서약 중의 하나인 ‘순종’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와준다. 즉 베네딕트에게서 ‘순종’은 권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상호적인 사랑과 신뢰에서 자라나는 미덕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렇게 형성된 순종은 나아가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다. 베네딕트는 그의 규칙서 끝부분에서 수도원장과 수도사 사이뿐만 아니라,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상호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71.1, 72.5). 이와 같이 순종은 겸손과 더불어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처음과 마지막을 꿰뚫으며 모든 규칙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점에서 베네딕트의 순종은 효(孝)를 모든 행위의 근본으로 삼는 동양의 유학(儒學)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유학에서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녀의 사랑의 반응이 효라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효가 형제자매와 친구와의 수평적인 관계로 확장된 것이 우정이다.
또한 순종은 발전시켜야 하는 미덕인 동시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성훈련의 효과적인 방법이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 ‘오보에디레(oboedire)’는 어원적으로 ‘듣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순종은 수도원장이나 다른 형제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베네딕트는 수도사는 상급자의 명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기고 실행해야 하며, 상급자에게 보여준 순종은 곧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고 말한다(5.4,15). 이처럼 순종의 훈련을 통해서 수도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열어놓게 되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겸손, 환대, 그리고 자비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순종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의 기초를 이루는 미덕이며 동시에 영성훈련 방법이다. 제7장에는 겸손의 열두 단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네딕트는 겸손을 인간이 몸과 영혼, 즉 전인적으로 성장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의 죄에 관한 욕망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 단계를 거치면서는 수도사는 자신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며, 죄를 고백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여덟 번째부터 마지막 단계는 겸손을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충실하게 나타내는 과정이다. 겸손의 단계를 모두 거치면 수도사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랑은 또한 수도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을 연합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것처럼 즐거이 준행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수도사를 금욕적인 삶 또는 능동적 삶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사랑 깊은 연합이 곧 베네틱트가 추구한 수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은 또한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특징인 ‘다른 이들에 대한 환대’와 ‘자비’로 표현되어야 한다. 수도사들은 방문한 모든 손님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겸손히 영접하고 진심으로 대접해야 한다. 손님대접을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담당자는 중요한 금욕훈련 중의 하나인 금식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서는 공동체의 병들거나 약한 이들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손님과 병든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돌봄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환대를 통해 나그네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경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36, 53). 이처럼 겸손과 환대, 그리고 자비는 금욕수행 보다도 더 우선되는 미덕이자 훈련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분과 연합하는 삶의 길이다.
삶의 균형과 리듬
베네딕트 영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균형과 리듬이다. 먼저 베네딕트는 하루 중 기도와 노동이, 그리고 공동체의 예배와 개인의 영성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친다. 물론 우선순위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또는 ‘하나님의 일’(Opus Dei)에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과 개인적인 독서(Lectio Divina) 역시 매일의 수도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베네딕트는 제8장부터 제20장에 걸쳐 매일 혹은 매주 드릴 성무일도의 시간과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이 추구한 “마음의 순수함과 참회의 눈물”이다(20.3). 기도는 짧고 단순해야 하며(20.4), 찬송은 마음과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19.7).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임재하시며, 모든 곳에서 주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19.1) 성무일도를 비롯한 모든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가운데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에도 베네딕트는 사순절을 지키는 방법(49)과 취침과 식사 등 일상생활에 대한 지침(22), 41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례규칙과 일상생활의 규칙은 함께 어우러져 짧게는 매일의 생활, 길게는 연간 생활의 리듬을 형성한다. 즉 《베네딕트의 규칙서》에 심겨져 있는 수도원의 이상은 단조로운 매일의 의무들로 채워져 있는 삶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리듬 있는 삶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은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집”을 향해 오르는 영적인 여정이며, 공동체가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규칙이라는 리듬에 맞춰 내딛는 공동의 발걸음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베네딕트
저자 베네딕트는 480년 이탈리아 중부의 누르시아Nursia 라는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당대 사회의 방탕함과 무의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13세가 되던 493년에 로마를 떠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형제들의 부축을 받아 서서 기도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번역 권혁일
역자 권혁일은 부산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동 대학원,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교(Santa Clara University)에서 공부했다.
역자 김재현은 서울대 및 동 대학원, 총신신학대학원, 하버드와 프린스턴신학대학(철학박사)에서 중세수도원과 영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호남신학대학교와 두레장학재단, 한중장학재단, 분당중앙교회 인재양성원에서 가르치고 섬기며 차세대 기독교 인물 양성에 듯을 세우고 땀을 흘렸다. 현재 한국기독교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한국기독교 유산을 집대성 하여 한글, 영어, 중국어로 편찬하고 있다. (제46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부분 수상)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한국교회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50인』,『한반도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한국에 생명을 전한 위대한 선교사 50인』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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