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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3대 논쟁

이재호 지음
역사의아침

2008년 11월 06일 출간

종이책 : 2008년 06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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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5.90MB)
ECN 0111-2019-900-000419364
쪽수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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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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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쟁점을 돌아보다
한국사의 통설을 사로잡은『조선사 3대 논쟁』. 60여 년간의 역사연구에 힘써온 노학자의 열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조선시대 3대 논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1970년대 어용학자들이 만든 사육신 조작 작업과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통설, 이순식과 원균 중 누가 구국의 명장인가를 살핀다.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와 어용학자들이 사육신 중 유응부를 김문기로 대체하려는 역사를 날조했고 이후 계속되는 사육신에 대한 논쟁을 각종 실록을 꼼꼼히 고증해 유응부와 김문기 중 누가 진짜 사육신인지 밝힌다. 또한 이이가 주장했다는 십만 양병설에 관련된 사료를 살펴 사실을 고찰하고 십만 양병설을 서애 유성룡이 반대했다는 실록의 기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국민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조선사 3대 논쟁》은 이순인과 원균의 품성, 장수로서의 재간과 전쟁 중 행적과 공적, 사망 당시의 정황 등을 사료를 통해 밝히고 당시 원균을 옹호하던 선조 이하 당국자들의 주장이 이순신을 의도적으로 매몰시키려 했음을 알려준다.
서설序說·4

1부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1. 글을 시작하며·15
2. 단종 복위운동의 배경·22
1_단종 즉위 당시의 정국·22
2_단종 복위의 주동인물·25
3_단종 복위계획의 수립·28
3. 단종 복위의 실패·33
1_『세조실록』의 기사·34
2_『육신전』의 기사·39
3_이론자異論者들의 논리는 무엇인가·50
4. 사육신에 대한 평가의 변천·58
1_왕조 사관의 처지·58
2_사림 절의파節義派의 관점·62
3_사육신 절의가 공인되다·64
5. 글을 마치며·68
6. 사육신 문제에 대한 보론補論·71
1_사육신 외곡 오판의 경위·71
2_사육신 문제의 재연·77

2부 율곡 이이는 실제로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나
1. 글을 시작하며·85
2. 광복 후 국사학계의 풍토·88
3. 이이의 십만양병설의 발단·93
1_십만양병설의 출전·93
2_관계 기록의 작성연대·102
3_십만양병설이 만들어지는 과정·104
4. 『선조수정실록』 기사의 의문점·108
1_『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109
2_십만양병설의 의문점·111
5. 군정개혁론의 추이·124
1_이이의 군정개혁론·124
2_유성룡의 변경방비책·130
6. 십만양병설의 후론·144
7. 글을 마치며·151
1_각종 기록의 모순점·151
2_사실 부회附會의 발단·154

3부 이순신과 원균, 누가 진정한 구국의 명장인가
1. 글을 시작하며·159
2. 이모와 구모의 편견과 외곡·162
1_사실의 억단臆斷 외곡·162
3. 적군의 침입과 해군의 승첩·166
1_이순신과 원균의 출세·166
2_원균의 고급告急과 이순신의 부원赴援·174
4.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와 조정(정계)의 동태·195
1_장재將才의 우열과 쟁공爭功의 단서·195
2_조정(정계)의 동태·203
5. 왜적의 재침과 방위체제의 붕괴·208
1_적賊 간첩의 활동과 수군장水軍將의 교체·208
2_원균의 패몰과 이순신의 재기·222
3_명량해협의 대첩과 전국의 수습·228
6.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사관의 논평·236
7. 글을 마치며·244

주석·253
찾아보기·265

김문기의 후손들이 편찬한 『백촌유사白村遺事』에도 김문기를 사육신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곧 “국문에 임할 때 선생(김문기)이 ‘나와 육신六臣은 모의 역시 같이 했고 의義 역시 같은데 어찌 다시 묻느냐’ 하고는 입을 다물고, 혀를 깨물어 답하지 않았다[臨鞫時 先生對曰 吾與六臣 謀亦同 義亦同 不復何問 因緘口嚼舌]”라고 전한다. 김문기 스스로가 ‘육신’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은 김문기가 사육신에 포함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김문기도 육신이 화를 당한 날에 같이 죽었다[忠毅公 金文起 同死於六臣被禍之日]”는 이유로 정조 시대 「어정배식록」을 정할 때 삼중신三重臣 중 한 사람으로 지정되어 사육신과 함께 배향되었다. 이 「어정배식록」은 정조가 내각과 홍문관에 명하여 국내의 참고할 만한 모든 문서와 사적을 널리 고증하게 하여 신중히 결정한 국가적인 의전儀典이다. (……)
김문기가 사육신에 포함된 적은 없으며, 그런 인식 또한 없었다. 다만 근래 한 권력자(김문기의 후손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의중에 맞추기 위해 일부 어용 사학자들이 문제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에는 사육신 이외의 어떤 특정 인물이 추가 봉안될 수 없다. 김문기를 봉안하려면 삼중신 묘역을 따로 조성해야 한다.
-본문 69~70쪽 중에서

김장생이 찬술한 「율곡행장」은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10년 전에 임진왜란이 발생할 것을 미리 예견했다면서 그 증거로 “일찍이 경연에서 청하기를 10만의 군병을 미리 길러 완급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장차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화禍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10년이 지나지 않아서’라는 뜻의 ‘불출십년不出十年’은 반드시 10년을 단언한 것이 아니라 ‘불원장래不遠將來’나 ‘불원간不遠間’을 지칭한 말이다. 회제 이언적도 「일강십목소」에서 “10년이 지나지 않아서[不出十年]”라고 말했고, 학봉 김성일도 진언進言에서 “10년이 지나지 않아서[不出十年]”라고 말했듯이 ‘10년이 지나지 않아서’는 멀지 않은 장래를 뜻하는 말이지 정확히 10년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율곡 이이도 「만언봉사」에서 “오늘날의 일도 실로 이와 같으니 불원장래(불출십년)에 화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今日之事 實同於此 不出十年 禍亂必與]”라고 말했다. (……)
김장생이 「율곡행장」에서 ‘10만 양병’을 말한 것은 훗날 왜적의 대군을 대적하기 위해 군병 10만이 필요하다는 데 착안한 것이고, 그 시기를 ‘10년’이라고 말한 것도 훗날 발생한 임진란에 맞춰 만든 것이다. 「율곡행장」의 기사는 이이의 난전亂前 건의를 난중 정세에 결부하려는 행장 찬술자의 부회적인 논지에 불과하다.
-본문 153쪽 중에서

정유년(선조 30년, 1597) 8월에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로 기용된 후 무술년(선조 31년, 1598) 12월 노량해전에서 전몰할 때까지 약 1년 4개월 동안은 그가 공전空前의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을 토평討平 종결시킨 최후의 결전시기였다. 정유년 8월의 명량대첩에서는 재침하는 적군의 기세를 꺾어 그들의 야욕을 좌절 말살시켰으며, 무술년 12월 노량해전에서는 퇴거하는 적군을 공격 섬멸하는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인물한국사』의 저자 이모 씨는 이 대목에서 이순신이 통제사가 되었을 적에는 왜적이 물러가고 있었다 하고는, 뒤따라 그는 물러가는 적의 퇴로를 막고 명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승전을 거듭했다고 하며, 결국 이순신은 들어오는 적이 아니라 물러가는 적과 싸우다 죽었다고 말함으로써 이순신의 위적을 은폐하려는 중대한 죄과를 범하고 있다.
-본문 228쪽 중에서

▶ 철저한 사료검증으로 바로잡은 조선사 최대의 쟁점들!

1970년대 말 한 권세가의 작용과 권력에 아부하던 어용학자들의 부화뇌동으로 사육신死六臣 유응부를 삼중신三重臣 김문기로 대체하려 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사육신 조작 작업,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전쟁을 예견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나 서애 유성룡이 반대하여 무산되었으며 이 때문에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초래했다는 잘못된 통설, 원균은 용감한 장수인 반면 이순신은 보신책에만 능한 겁장怯將이라는 몇몇 논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 허위를 벗기고 실상을 구명했다. 철저한 사료검증을 바탕으로 조선사 3대 논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 이 책을 통해 일부 인사들의 과장ㆍ부회ㆍ억측으로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사육신,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사육신’이라는 명칭은 단종 복위운동(세조 2년, 1456년)에 목숨을 바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추강 남효온(1454~1492년)이 쓴 『육신전』에서 비롯되었다. 세조 집권기 이후 오랫동안 금기로 인식되던 사육신의 절의에 대한 평가는 조선시대 정세의 기복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여 중종이 참석한 조강朝講에서 성삼문과 박팽년 등에게 난신亂臣이라는 죄명을 벗기고 충신으로 평정하기를 건의하기도 했으며, 연산군 때는 발간이 금지된 남효온의 시문집도 인출, 반포되었다.
사육신이라는 명칭이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유응부, 이개, 유성원의 순으로 왕조실록에 처음 나타는 것은 『인종실록』에서이며, 숙종 때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을 모두 절의의 표본으로 삼아 국가에서 이를 표창해야 한다는 건의가 일어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아가 정조 때에 이르러서는 절의 숭상의 범위를 더 넓혀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모든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임금의 명에 의해 공신의 신주를 배향하는 것)」을 편정하도록 했는데,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가 ‘사육신’이라는 명칭으로 편정되었고 김문기는 ‘삼중신’ 중 한 명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와 어용학자들이 사육신 중 유응부를 김문기로 대체하려는 역사 날조극을 자행했고 1978년 서울 노량진 사육신 묘역 조성 당시 권세가(김문기의 후손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작용으로 기존 사육신의 묘와 함께 김문기의 허묘와 위패를 추가로 봉안함으로써 사칠신 묘소가 된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95년 사육신 춘계제향에서 사육신 후손의 모임인 사육신선양회와 김문기 후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2008년 5~6월에는 양측의 주장과 반박문이 모일간지의 광고지면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 책은 각종 실록을 꼼꼼히 고증해 유응부와 김문기 중 누가 진짜 사육신인지 밝혀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육신 오판’을 바로잡는 일이 명분과 역사를 바로세우는 중대한 과제임을 역설했다.

▶ 율곡 이이는 실제로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나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한 몇몇 사료를 보면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전쟁을 예견해 ‘십만양병설’을 주장했으나 서애 유성룡이 반대하여 무산되었으며, 이 때문에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초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주로 이이의 전집인 『율곡전서』에 수록된 김장생의「율곡행장」, 이정귀의 「율곡시장」, 이항복의 「율곡신도비명」, 송시열의 「율곡연보」에서 기인한다. 지인이나 제자가 쓰기 마련인 행장이나 연보는 주인공의 사적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철저한 사료검증 후 인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국사학계의 석학이라는 이병도 교수가 『한국사대관』에서 이를 그대로 인용했고 진단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사』에도 이 내용이 그대로 실린 후 아무런 비판 없이 다른 저작물에 옮겨져 현재 통설이 되었다.
그러나 이이는 병조판서로 임명된 후 「시무육조」를 통해 군정개혁을 촉구할 때도 ‘십만양병설’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기사는 『율곡전서』 중의 허다한 상소와 시폐를 진술한 차자箚子는 물론 『서애집』 중의 시폐를 진술한 상소와 차자에서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한 이식이 「율곡행장」, 「율곡시장」, 「율곡신도비명」, 「율곡연보」 등을 인용해 기사를 작성하고 의도적으로 이이의 경장계책에 ‘십만양병설’을 삽입하여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의 정국은 선조 8년(1575)에 동서가 분당된 후 서인들이 동인인 유성룡의 위공을 시기하던 분위기에서 이이의 이른바 ‘십만양병설’을 유성룡이 반대했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초래하여 국사가 낭패되었다는 부회적인 기사로 유성룡의 정치 역량을 폄하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국사학계의 일부 인사들은 이런 내용을 엄밀한 사료검증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과장 부회하여 일반 국민들의 역사인식을 오도하고 있다.
이 책은 국가의 공적 기록인 실록은 물론이고 동시대 제현諸賢들의 문집과 기타 기록 등 ‘십만양병설’과 관련된 모든 사료를 꼼꼼히 고증해 사실 여부를 고찰했으며, 이이가 주장했다는 ‘십만양병설’을 서애 유성룡이 반대했다는 실록의 기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면밀히 분석 구명했다.

▶ 이순신과 원균, 누가 진정한 구국의 명장인가

근래 일부 논자들이 이순신과 원균의 사적을 거론하면서 원균은 용감한 장수인 반면 이순신은 보신책에만 능한 겁장怯將으로 묘사함으로써 국민의 이목을 현혹시키고 역사를 오도했다. 그 대표적인 저작이 『인물한국사』와 『원균 그리고 원균』이다. 이 책들은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한 뒤 별로 공을 세우지 못해 미관말직에 머물러 있다가 40대 중반에 와서 겨우 정읍현감이 되고 뒤에 영의정 유성룡에게 발탁되어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의 높은 관직을 갑작스레 받았으며, 임진왜란 당시 일부 작전에서 원균의 지휘를 받던 이순신이 원균의 공을 가로채어 원균보다 한 등급 높은 계급에 임명되었다고 했다. 또한 일본 간첩 요시라가 적장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 조정에 밀고했는데 이순신이 출동하지 않아 결국 정유재란을 초래했으며,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고 명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승전을 거두었을 때는 왜적이 물러가는 중이었다면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전국戰局을 수습한 이순신의 공을 은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조선사 3대 논쟁』은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한 뒤 오랑캐 토벌에 공을 세웠는데도 도리어 군직을 빼앗기고 백의종군하게 된 정황, 적침 초기에 수많은 병기와 전선을 침몰시키고 군병을 흩어버리고 육지에 올라 도주하려 한 원균과 달리 적정을 세밀히 정찰한 후 침착하게 출동해 옥포해전과 한산도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고 후일 원균이 패전한 후 다시 통제사로 기용되어 노량대첩에서 12척의 전선으로 300척의 적선을 맞아 싸워 승리를 거둔 과정, 이순신을 천거한 유성룡을 견제 방해하는 몇몇 조신들이 원균을 편들고 이순신을 배제하여 결국 무함 하옥하게 한 사건, 원균이 자업자득으로 왜적에게 유인되어 패사敗死하고 이순신이 재기 분전奮戰하여 국가를 멸망의 위기에서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해 두 장수의 진면목을 살펴보았다.
각종 사료를 엄밀히 고증하여 이순신과 원균의 품성, 장수로서의 재간, 전쟁 중에 보여준 행적과 전공, 사망 당시의 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이 책을 통해 『인물한국사』와 『원균 그리고 원균』이 당시 원균을 옹호하던 선조 이하 정부 당국자들의 편향된 주장을 그대로 계승 대변하여 이순신을 의도적으로 매몰말소埋沒抹消시키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한국사의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은 책

서울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에 사칠신 묘소가 있는 이유, 이이가 주장했다는 십만양병설의 진위 여부, 의도적으로 폄하된 이순신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조선사 3대 논쟁』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개인 문집과 기타 사료들을 꼼꼼히 고증했다. 과거 사료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은 역사연구의 기본이자 필수요소인데, 실제로 우리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 이는 역사기록이

작가정보

저자(글) 이재호

1920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사韓國史의 비정批正』, 『조선정치제도연구朝鮮政治制度硏究』, 『한국사의 천명闡明』, 『창주산문집滄洲散文集』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징비록懲毖錄』, 『서애전서西厓全書』,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금오신화金鰲新話』, 『회재전서晦齋全書』, 『반계수록磻溪隨錄』, 『정다산문선丁茶山文選』, 『망우당문집忘憂堂文集』, 『논어정의論語正義』, 『맹자정의孟子正義』 등이 있다.

창주 이재호 선생은 1985년(66세) 정년퇴임 후에도 부산대 대학원에서 후진들에게 국사원전 강독을 지도했으며, 1987년(68세) 정신문화연구원 객원교수로 부임하여 정신문화연구원 부속 한국학대학원에서 후진들에게 『좌전左傳』 등의 원서 강독을 지도하고 『율곡전서』와 『숙종실록』 번역작업을 교열했다. 또 그해 4월에는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연구소의 초청으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임진왜란과 서애 유성룡의 자주국방정책」이라는 논제로 학술발표를 했다.
이후 1990년(71세)부터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특강 『사기열전』을 지도했고, 1995년(76세)에는 『조선정치사제도연구』를 출간했다. 그해 4월 온양아산문화재위원회에서 주최한 ‘충무공 이순신 탄신 450주년 학술대강연회’에서 「멸적구국滅敵救國한 이순신의 위적偉績-특히 원균 관계의 곡필曲筆에 대한 변박辨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81세)에는 서애의 저술인 『징비록懲毖錄』, 『근폭집芹曝集』, 『진사록辰巳錄』, 『군문등록軍門謄錄』, 『잡저雜著』, 『서간書簡』 등 7책을 번역하여 『국역 서애전서國譯 西厓全書』를 발간하는 등 젊은 학자 못지않게 학문에 정진하고 있다.
이재호 선생은 한국사의 잘못된 통설을 바로잡는 책을 집필하고 각종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올곧은 사학자다. 내년이면 구순이 되는 저자가 『조선사 3대 논쟁』 곳곳에서 던지는 정문일침의 경고를 통해 60여 년간 역사연구에 힘써온 노학자의 열정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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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 3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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