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기생 왕수복

10대 가수 여왕되다

신현규 지음

경덕출판사 2006년 10월 26일 출간 종이책 : 2006년 09월 2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기생 출신 최초의 유행가수 왕수복의 삶을 조명한 평전. 그녀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회고하는 1인칭 고백록의 형식을 빌려 내용을 구성하였다. 평안도 지역 화전민의 막내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험난한 기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왕수복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책은 왕수복이라는 인물이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 한국전쟁, 그리고 북한에서의 최근까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떤 행보를 걸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 구술하는 형식의 평전 뒤쪽에는 '삼천리' '조선예술' 등에 실린 인터뷰와 수기 원문도 덧붙였으며, 상세한 연보와 노래 작품 목록을 함께 실었다.

목차

평전을 시작하며

제1부 왕수복 평전
1. 평양 기생학교 시절
2. 첫 전성기, 10대(大)가수의 여왕
3. 성악가 길에서 만난 두 남자
그에게 보내는 편지-이효석 선생을 그리워하며
내 인생의 두 번째 남자-노천명의 약혼자이던 김광진
4. 두 번째 전성기, 북한 민요가수 여신
5. 체제 선전을 위한 삶의 마무리

제2부 왕수복 관련자료
1. 평양 기생학교 관련 자료
2. 첫 전성기, 10대가수 관련 자료
3. 성악가 길에서 만난 두 남자 관련 자료
4. 두 번째 전성기, 북한 민요가수 여신 자료
5. 체제 선전을 위한 삶의 마무리 관련 자료

제3부 왕수복 연보
1. 왕수복 연보
2. 왕수복 노래 작품 목록

참고문헌

책 속으로

주변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보통 쾌활하고 명랑한 내 성격에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인정이 많다는 말에는 다소 쑥스러워지기도 했지요. 사실 나의 외모는 목이 좀 짧아 그렇지 그래도 상체와 하체가 고루 발달되어 있는 편이라서 볼수록 육감적이라는 말도 많이 듣고 했답니다.
게다가 타고난 청아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은 운 좋게도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이라는 정서에 잘 어울렸고 높은 예술적 경지로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좀 잘난 체 하는 듯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독특한 가창실력을 두고 한 때는 ‘설레는 바다’라는 비유로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으니까요. 시대마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는 사람은 드물어 보입니다.(26쪽)


그 교묘하게 내 인생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기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나는 지성적인 면에서 대중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퀴리부인’이나 ‘좁은 문’, ‘죄와 벌’ 같은 명작을 읽어내는 지성을 갖춘 기생이나 인기가수는 아무래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겠어요? 그건 어찌 생각하면 내가 아무리 동경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를 자부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내 자리를 되돌아보게 되는 일종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었을 겝니다. 그래서 내 꿈은 더 원대해지고 그러면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비록 동경에서 이탈리아 음악체계를 배우고 돌아왔지만 조선의 것이 아니면 진정한 생명력 있는 음악이 생길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민요를 세계적으로 알리겠다는 포부가 바로 그것입니다.(56쪽)

여기서 내가 해명해야할 잘못된 논의가 있답니다. 1938년 7월 20일에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신민요 대중가요 「두만강 푸른물아」는 김용환이 작사?, 작곡을 했지요.
그 노래는 김정구의 친형인 김용환이 내게 준 노래이지만, 광복 후에는 「눈물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로 김정구 선생이 부르게 되었지요. 이 때문에 항간에는 그 노래가 나의 노래인가, 아닌가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76쪽)


나의 영원한 연인 이효석 선생은 현민 유진오 선생과의 동고동락하는 친구였습니다. 현민 선생은 보성전문 법학 교수로 계셨는데 한때 그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있던 김광진 선생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김광진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나보다도 열네 살 연상이었고 고향 평안도에 아내까지 있었지요. 설상가상으로 도도한 노천명 시인과 약혼한 사실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에 현민 유진오 선생의 소설에서 노천명과 김광진의 연애사건을 다뤄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린 건 유명한 사건이지요. 어쨌든 그 분은 이효석 선생처럼 나를 짧은 인연으로 외롭게 두지 않았고 영원한 반려자로 남아주었지요.(86쪽)


내 노래가 끝날 때마다 김 주석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고 제일 먼저 박수도 보내주고 재청도 해주었습니다. 더구나 곁에 앉은 외국손님들에게 “저 동무는 오랜 예술인인데 노래를 잘 부른다고, 저 동무의 노래는 민족적 감정이 풍부해서 좋다”고 말도 해주었습니다.
1959년 1월 ‘1호 행사’ 새해 경축공연 때에는 김 주석이 “조선사람은 조선노래를 들어야 구수하고 듣기가 좋다고, 왕수복 동무의 노래는 우리 인민들이 다 좋아하니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까지 했답니다. 그해 마침내 당원이 되어 공훈배우가 되었습니다.(101쪽)

출판사 서평

안녕하세요? 저, 왕수복(王壽福)입니다.
저는 평양의 기성권번 출신의 기생이었습니다. 흔히들 평양기생이라고 하지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고, 기생 출신으로는 최초의 유행가수가 되었으며 경성방송국(JODK)이 일본 전역으로 최초 유행가 방송을 한 이가 바로 나였지요.
잡지 ‘삼천리’ 주최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에서도 전체 1위를 차지한 나는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지요. 이난영, 선우일선, 채규엽, 고복수 등이 제 아래로 이름을 보였고요.
정오에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경성에 내려가 저녁에는 다시 청중 앞에 설 정도로 대단했지요. 그리고 요즘 CF 등으로 불리는 ‘광고’에도 몸을 쪼개서 나갈 정도였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그 당시의 ‘효리’가 바로 나였던 셈이었지요.
제 나이 스물셋에 동경 성악 유학길에 올라 벨트라메리 요시코라는 선생님께 이탈리아 성악 교습을 받게 됩니다.
동경에서 한 자선 음악?·무용회에서 메조소프라노를 맡아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게 된 걸 아사히신문의 인터뷰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내 나이 스물넷에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유학 중이던 나에게 이효석 선생님은 모든 것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뜨겁고도 여지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나의 행복을 시샘하고 있었던 겁니다. 기구하고 박복한 내 사랑은 두 해를 꼭 채우지도 못하고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제가 지켰습니다. 그분이 없는 하늘 아래 세상은 암흑이었습니다.
캄캄한 세상을 헤매고 있을 때 새벽 같은 밝은 빛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김광진 선생이었습니다. 노천명이라는 유명한 여류시인을 약혼자로 둔 사람이었습니다.
내 인생에 아직 하나의 사랑이 더 남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만나 내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수 있기에 더 애틋하게 사랑합니다.
제 남편 김광진(金洸鎭)은 김일성대학 교수,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경제학자입니다.
휴전이 된 후 저는 북한의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 가수가 됩니다. 그리고 ‘조선해방 10주년 경축예술단’에 참가하여 당시 소비에트연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습니다. 특히 우즈벡 타슈켄트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연으로 조선 가요의 여신(女神)이라는 찬사까지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저는 공훈배우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윤이상음악연구소’ 등에서 활동했으며 북한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인 개인적인 창작으로 독창회를 여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제 환갑에는 김일성 주석이 환갑생일상을 보냈고, 팔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팔순생일상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팔순의 제게 민요독창회도 열게 해 주었습니다. 80세의 고령으로 독창회를 한다는 그 자체가 커다란 이벤트이자 체제 홍보의 다양한 선전이었을까요?
한·일 월드컵이 열린 다음해인 2003년 나는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인 2004년에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혔습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신현규

신현규(申鉉圭)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꽃을 잡고 ; 일제강점기 기생인물·생활사』(경덕, 2005)의 후속 작업을 위해 연구한 그 결과물을 하나씩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고려조문인졸기』, 『조선조문인졸기』, 『문학의 이해』, 『한국문학의 흐름과 이해』, 『우리문화이야기』, 『글쓰는 절차와 방법』, 『중국간체자여행』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