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생, 그리고 독백

소란 강옥희 시집

강옥희 지음

다래헌 2019년 06월 25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03월 2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강옥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목차

흑조 9
다시 노트북을 열며 10
해질녘 12
9월 13
강변 연가 14
첫사랑 15
그날 16
단편 소설을 쓰며 18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20
데생, 그리고 독백 22
독백 하나 24
방사능 고등어 26
천국과 지옥의 계단 앞에서 27
블랙커피 28
백두산 30
빈집 32
자명종과 시인 34
애리조나 세도나(미국) 35
해바라기 36
에스프레소 37
기억을 묻으며 38
외출 39
글 쓰는 이유 40
해프닝 1 41
해프닝 2 42
내가 사랑하는 그녀 43
내가 사랑하는 그녀 3 46
이별 2 48
고백 50
나무가 잎새에게 52
자각 54
나의 초상 55
소나기, 황순원 문학관에서 56
여명 58
비, 그리고 별 59
어제를 보내고 60
개망초 61
보내는 마음 2 62
추억 너머로 64
투표를 마치고 66
참이슬 68
눈물 속에 핀 매화 70
사랑, 그 끝에는 72
사랑 하나 74
현실과 이상 앞에서 75
선물 76
시험 77
숨어서도 빛나는 별 78
아침 같은 사랑 카페에서 1 80
아침 같은 사랑 카페에서 2 82
안부 84
우수 87
봄 언덕에 서서 88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89
사랑하는 이여 90
산소 92
간이역에서 94
어느 날 문득 96
황산에서(중국) 97
체념 속으로 98
토담집 100
그대를 바라보면 102
레드와인 속의 별 103
미국 데스밸리에서 104
벼랑 앞에서 106
두만강에서 107
사려니 숲 길 108
상처, 나만큼은 아니구나 109
선물 같은 시간 110
어릿광대들 111
새드엔딩이 싫어서 112
어지러운 세상 114
연가 115
자폐증 116
직립 118
천태산 119
철드는 계절 120
친구 122
태양 123
황금궁전 124
태국 파타야에서 126
정선 아라리촌의 밤 128
악연 130
쓰디쓴 기억을 덮으며 131
별리 132
자아를 찾아 133
봄이 되면 134
친구야 135
어느 늦은 밤 136
바보 같은 하루 138
푸른 소나기 140
사선에서 142

책 속으로

<흑조>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감춰 둔
절개 잃은 더듬이
서둘러 돌아가는 뒷모습조차
가슴 에이던 밤
보호색이 될 수 없음이 스미고 스미어
하얀 숨소리 뱉어내며 스스로 위안했다
슬픈 배역을 맡았을 뿐이다
투명한 생각은 바수어 버리고
몸을 적시는 정갈한 기억조차 베어내며
원시적인 생각이 편하고 좋아서
묵묵히 너의 삶을 닮아 가리라
아픈 나를 스스로 껴안는 일,
어수선한 기억들을 말리는 일,
마약 같은 너를 외면하는 일은
부푸는 꿈 조각을 철저히 떼어내는 일이다
사흘 밤낮을 울고 나면 그뿐,
절망의 분자로 남지 않을 것을
묵묵히 너를 버릴 수 있을 것을
사랑했으므로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저리도록 숨찬 흐느낌을 가슴에 묻고
단절된 웃음의 의미를 되짚으며
극심하게 자신을 내몰고도
더는 어리석지 않다 말했다
무참히 깨진 현실은
고독한 마음을 손상시키고
주술에 걸린 듯, 분명한 의식도 없이
헤어진 그 밤이 아프고 절실해서
사무치게 미쳐본 적이 있는가

인생의 중대한 비극에 맞닿아 휘청거리며
사위어 가는 눈웃음으로
건널 수 없는 악천후의 강을 거슬러
황급히 떠나야 함은 능력 밖의 일이다

내 안에 허물어지고, 부서지며
몸살 같은 통증으로 쓰러져가는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저항의식
또 다른 열정은 분노다, 반란의 함성이다

목적을 위해 뛰는 원시적인 생각이
아프도록 싫지만 버리고, 비웃고, 팽개치며
다시 걷는 이 길
터질듯 한 심장의 무게를 조금씩 달래며
투명한 공기를 만나고 싶다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습기 찬 미소로 돌아오는 어수선한 감정
기억의 수레는 이제 저 멀리로 보내고 싶다.


<데생, 그리고 독백>

흐린 하늘에
그늘진 마음을 담아낼 단서는 없어
어제까지 품었던 한숨이
완벽한 거짓이 되어 날아가겠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겨워
기억의 세포들이 어제의 추억을 접었어

근사한 표정이
무의식의 반경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이미 예감했었어
일인칭 화자로
그려지기 시작한 그리움이란 걸
언제나 나의 시작은 서툴렀어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바다가 얼마나 깊을지
두려움 없이 다가선 그 순간에도
존재의 각인은 싫었어

무게로 따져 아픈 눈물이라면
서두르지 말자
집착하지 않아도 목이 아파
돌아설 때 가슴에 만져지던 체온이
냉랭한 한기였었지
그래도 씩씩하게 이 겨울을 살아낼 거야.

작가정보

저자(글) 강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