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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 최재혁 옮김
반비

2018년 02월 12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01월 12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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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pdf (5.27MB)
ISBN 9788983717535
쪽수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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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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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생각한 인간을 향한 마음의 기록!
이탈리아의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하는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온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여행 에세이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그동안 저자의 전작에서 다루어진 바 있는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프리모 레미,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외에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 마리노 마리니, 주세페 스칼라리니, 오기와라 로쿠잔, 사에키 유조, 마리오 시로니 등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곳곳을 수차례 여행하면서 겪은 여러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을 함께 담아 생생한 이탈리아 여행기로도 읽을 수 있다.
이제 60대가 된 저자가 다시 유럽, 이탈리아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난 소회를 기록한 이 책에는 20~30년 사이 달라진 세계에 대한 기록과 함께 저자가 ‘늙음’에 대해 사유하는 인상적인 글들이 담겨 있다. 또 예술, 예술작품을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역사 속에 기어코 남기는 흔적으로서 읽어내고, 저자가 언젠가 꼭 기록하고 싶다고 반복해서 언급하는 인간에 대한 더 어둡고 더 솔직한 진실을 담아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프롤로그

1장 로마 1
2장 로마 2
3장 페라라
4장 볼로냐·밀라노
5장 토리노 1
6장 토리노 2
7장 밀라노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1943년 10월 16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유대인 일제 체포가 시작됐다. 이때 구속된 사람의 수는 1022명. 그중에는 비유대인 여성 한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돌보던, 몸이 자유롭지 못한 유대인 고아와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이틀 후 포로들은 가축 운반용 수레 열여덟 대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압송됐다. 물도 음식도 허용되지 않았던 가혹한 이송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체는 이송 도중 정차장에 차례차례 버려졌다. 1022명 가운데 전쟁이 끝난 후 살아서 돌아온 자는 열다섯 명이었다고 한다. 고대도 중세도 아닌, 그리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옛 유대인 거리에서 달콤한 과자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내 머릿속은 처참한 이미지로 가득 찼다. 카라바조가 그렸던 세계와 겹쳐진다. ‘로마의 참극’은 유럽의 유대인이 경험했던 수난 전체에서 본다면 아주 작은 하나의 삽화에 불과하다. 로마라는 장소에 몸을 두고 있으면, 이조차도 고대부터 거듭되어온 수많은 참극 가운데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각에 휩싸인다.(61)

‘시대정신’이라고 할까. 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20년대 ‘에콜 드 파리’의 공기를 전해주는 모딜리아니와 수틴의 작품은 확실히 어딘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0~1960년대 일본 사회의 공기와 공명하고 있었다. 빈곤과 질병으로 스러져간 천재들의 작품이 전후 일본에서 동경의 대상이 된 까닭은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현세적이고 실리적인 성공을 넘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던 바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40대 이하의 많은 일본인들은 모딜리아니와 수틴에게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 과거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석권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마음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랬기에 로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모딜리아니와 재회했던 나는 마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젊은 시절의 나 자신과 다시 만난 듯한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73~75)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두 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 사람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그렸다. 참수에 매혹된 화가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리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자화상이다. 두 눈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왼쪽 눈에는 생명의 잔광이 느껴지지만 오른쪽 눈은 이미 흐릿해져버렸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자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 점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얼마나 혹독하며 무참한가……. 카라바조라는 인물이 잔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타협 없는 그의 묘사가 인간의 잔혹함, 현실 바로 그대로의 잔혹함과 길항하고 있는 것이다.(47)

미로 같은 좁은 통로를 더듬어 나아가보니 앞에 지하 감옥이 있었다. 천장도, 바닥도, 사방의 벽도 모두 돌로 만들어졌다. 해자 수면보다 위치가 낮아서인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에스테 가문의 당주 니콜로 3세(1383~1441)는 명문 말라테스타 가문 출신의 파리시나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녀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다. 어린 아내는 그의 사생아였던 우고와 불륜에 빠졌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이었던 두 사람은 이 지하 감옥에 유폐되어, 이후 참수에 처해졌다. 니콜로 3세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결혼을 페라라의 에스텐세 성. 하지만 새로 맞은 아내도 파리시나의 망령에 시달리다 목을 매어 자살해버렸다고 한다.(119)

알폰소 1세는 친동생과 배다른 동생을 각각 수십 년이나 차갑고 습한 지하 감옥에 가두었던 셈이다. 게다가 같은 성 안에서 궁정의 의전은 물론, 연회 같은 일상이 계속 벌어졌다. 맛있는 음식에도 질렸을 때, 알폰소 1세는 잠깐이라도 지하 감옥에서 신음하는 동생들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분명 상상했을 것이다. 오히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떠올려보고, 그런 상상이 냉혹한 기쁨을 증식시켜, 맛 좋은 술로 도취된 기분을 더더욱 북돋웠으리라.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렇지 않은가?(121)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다시 찾은 인문학의 고향 이탈리아!

“‘기행’인 이상 단순히 인문적인 사실과 현상에 대한 고찰에 머물지 않고, 설령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직접 찾아가 그 지역의 풍토를 온몸으로 느끼며 과거와 미래로 상상을 펼쳐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라는 인간이 몇 번씩 찾아갔던 ‘이탈리아’라는 장소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았던 인간을 향한 마음의 기록이다. 당연히 ‘나’의 주관적인 프리즘을 통해서 본 이미지이며, ‘이탈리아’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나’를 말하는 것에 다름없다.
아아, 이탈리아. 항상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갈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이탈리아. 그렇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잊기 어려운 추억이 되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이탈리아. 이런 생각은 인간 그 자체를 향한 애증과도 어딘가 닮았다.”
_저자의 말 중에서

미켈란젤로에서 마리노 마리니, 단테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까지,
이탈리아에서 인문주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탐색하다

1. 이탈리아에서 다시 인문학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다

이 책은 저자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여행 에세이이다. 저자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렬한 관심은 전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미 알 만한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한 바 있고, 카라바조, 단테, 미켈란젤로, 나탈리 긴츠부르그,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다.
하지만 이 책에 엮인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이탈리아 유대인의 역사, 1,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 저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 연결되지만 주된 관심은 ‘근대 인문학의 황혼’이라고 할 법한 시대적 변화로 한 발 옮겨져 있다. 60대의 저자가 찾은 이탈리아는 어딘가 조금 달라졌다.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전쟁으로부터의 교훈,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망각하고 이전보다 더욱 더 천박해져간다. 인간은 애초부터 잔혹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지만 간혹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어떤 근대적인 시도가,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가 반짝 하고 빛났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은 계속해서 희미해져가지만,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2. 『나의 서양 미술 순례』 이후 30년, 노교수가 된 저자가 기록하는 시간의 힘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저자로서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덕분이다. 지금은 ‘미술 기행’이라는 말이 흔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인문학적인 에세이면서 여행기이면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가 섞인 이런 형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고, 많은 독자들이 『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통해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인 그림 읽기의 방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저자는 그 책에 기록한 바 있다. 예술이 역사와 현실과 삶과 독특하게 뒤섞이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확장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그 책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 이어 이제 60대가 된 저자가 다시 유럽, 이탈리아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난 소회를 기록했다.
20~30년 사이 달라진 세계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지만, 그에 못지않게 저자가 ‘늙음’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고통의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30년 전 비관적인 청년의 관점은, 인간의 역사 전체가 그와 비슷한 고통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는 노장의 관점으로 확장된다. 한편 예술, 예술작품을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역사 속에 기어코 남기는 흔적으로서 읽어내는 것도 인상 깊다. 특히 저자가 언젠가 꼭 기록하고 싶다고 반복해서 언급하는 인간에 대한 더 어둡고 더 솔직한 진실이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진다.

3.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이탈리아 예술의 매력, 이탈리아의 매력

이 책에서는 그동안 저자의 전작에서 다루어진 바 있는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프리모 레미,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외에 모딜리아니, 샤임 수틴,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 마리노 마리니, 주세페 스칼라리니, 오기와라 로쿠잔, 사에키 유조, 마리오 시로니 등의 작가와 작품이 소개된다.
각각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지만 각자의 시대 각자의 장소에서 치열하게 고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종교개혁의 시대 종교적으로는 정통파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혁명가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본성을 가차 없이 그려낸다거나(카라바조), 파시즘의 시대에 고전성, 고요함, 조화라는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반파시즘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든가(모란디), 2차대전 이후에도 계속 인간의 승리가 아닌 패배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든가(마리니), 예술적인 완성 이후의 완성을 추구하며 탈진해버린다든가(미켈란젤로).
또 이탈리아 곳곳을 수차례 여행하면서 겪은 여러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이 더해져 생생한 이탈리아 여행기로도 손색이 없다.

[책속으로 추가]

넓은 거리에 서서 살짝 고개를 들어 보면 하얗게 빛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험한 산길을 반파시즘의 투사나 망명자들이 넘나들었을 것이다.
“인간성의 이상으로 하얗게 빛나는 봉우리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 토리노를 방문했을 때 주위를 둘러싼 험준한 산들을 가리켜 나는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산들은 변함없이 거기에 있지만 이상의 광휘는 위협받고 있다. 반파시즘 투쟁의 사명을 짊어지고서 전후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지적 문화를 형성한 세대는 세상에서 거의 퇴장했다. 이제는 거칠고 천박한 포퓰리스트의 사나운 목소리가 사회를 휘어잡고 있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일본이야말로 한층 더 심각하다. 아우슈비츠의 해방 이후 40년도 더 지난 지금, ‘인간성’의 재건을 위해 힘겨운 증언자의 역할을 맡았던 프리모 레비가 살아 있었다면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했을까.(231)

내가 아는 토리노, 그을린 듯 우울한 토리노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그저 여행자의 감상일까. 모든 장소에서, 온갖 것들이 급속도로 천박해지고 가벼워지고 있다. 훌륭한 사람들, 선한 자들은 이제 가고 없다. 말하자면 다 지나가버린 게다.
이 도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그람시에서 긴츠부르그, 파베세를 거쳐 프리모 레비에 이르는 지식인들을 배출하면서 풍요로운 문화적 자원을 전 세계로 공급해왔다. 고문, 학살, 추방, 망명, 배신……. 그런 경험들 속에서 토리노의 지식인들이 비춘 문화의 빛, 그리고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와 프리모 레비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놀랄 만한 유머! 지적 휴머니즘의 극치라는 의미에서의 유머! 극동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디아스포라인 나 역시 그 빛으로부터 자극과 은혜를 입었던 한 사람이다. 그것도 한순간의 빛줄기에 불과했던 걸까.(279)

슈트케이스가 또 망가졌다.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독일 뒤셀도르프에 머물던 때 구입했던 가방이다. 2016년 3월 코스타리카와 미국을 한 달 가까이 여행하면서 그 부담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계기가 되었던 1983년 유럽 여행 이후, 나는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돌아다녔으니 슈트케이스처럼 나 역시 슬슬 사용기한이 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행지에서 보았던 미술 작품과 들었던 음악, 읽은 책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흥미는 수그러들지 않고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 역시 잦아들지 않는 듯하다.(4)

그 이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이탈리아에 왔지만 로마에만은 들르지 않았다. 로마는 거의 27년만이었다. 27년 전이라면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던 해였다. 물론 ‘마지막’이라는 말은 지금에야 할 수 있을 뿐, 당시에는 그 암울한 나날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15)

처음 로마를 방문하고 2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땐 예상을 못했지만 두 형은 살아서 출소했고 나는 글쟁이가 되어 대학에 직장도 얻었다. 전에는 언제나 혼자서 여행을 떠났지만 15년 정도 전부터는 F라는 동행도 생겼다. 나 개인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1990년대 이후로는 점점 불만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안을 찾지 못한다. 내가 이런 안정을 얻은 것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의 덕이라는 의식, 과거 언젠가의 시점에 가혹하고 무참한 운명 속으로 떠밀렸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 레비식으로 말하자면, 좀 더 어울리는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실제 내가 아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혹한 운명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러 우연이 겹쳐진 결과로 나 자신은 30년가량의 세월을 이렇게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과 인간은 조금도 나아진 바 없다는 생각이 늦가을의 그림자처럼 하루하루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19)

트리에스테에도 가보고 싶다. 아니, 가봐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작가정보

저자(글) 서경식

저자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며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받았고 2000년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민주주의 실현과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제6회 후광김대중학술상을 받았다. 저자는 1970년대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알려진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형들(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의 사색과 문필 활동, 강연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에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 미술 순례』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 밖에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나의 조선미술 순례』, 『시의 힘』, 『내 서재 속 고전』,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등의 책이 소개되어 있다.

역자 최재혁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 및 동아시아 근대 미술을 전공했다. 근대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전개되었던 시각 문화의 경합과 교차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아트, 도쿄』(공저)가 있으며, 『무서운 그림 2』, 『나의 조선미술 순례』,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재일의 연인』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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