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백조

제인 페더 지음 | 나채성 옮김

큰나무 2006년 04월 19일 출간 종이책 : 2001년 04월 10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1500년대 후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제인 페더의 로맨스 소설. 신·구교의 대립으로 인해 피로 물든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 폭도들의 손에 의해 가족들을 잃고 후견인의 무관심 속에 자라야 했던 모드 드 알바르. 그런 그녀의 후견인 가레스 하코트 백작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고자 그녀를 프랑스 왕과 결혼시키려 하지만 모드는 좀처럼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를 궁지에 빠뜨린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가레스의 앞에 고집스런 피후견인 모드를 꼭 닮은 미란다가 나타나는데...

출판사 서평

제인 페더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영국 남부 뉴 포레스트에서 자랐으며 워싱턴 D.C.로 옮겨간 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양한 삶의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써내는 그녀의 글은 신비롭고 열정적인 감성을 지닌 로맨스이다.

국내에는 <달빛 소네트>와 <바이올렛>, <청혼>이 출간되었고 <다이아몬드 슬리퍼>에 이어 보석 시리즈 3부작인 <은빛 장미>, <에메랄드 백조>와 V로 시작되는 , , 등과 세 여인의 우정과 결혼 이야기 <신부 시리즈 3부작> 등이 계속해서 출간될 예정이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구성력에 진정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의 로맨스가 독자 여러분들을 새롭게 사로잡을 것이다.

작품 소개
1572년 8월 24일 파리,
프랜시스 드 알바르 공작은 신·구교의 대립으로 인해 피로 물든 성 바르톨로뮤 축일에 사랑하는 아내와 쌍둥이 중의 하나를 폭도들의 손에 의해 잃고 만다.

그로부터 19년 후,
영국의 백작 가레스는 큰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는 누이의 부추김에 따라 자신의 피후견인인 모드 드 알바르와 위그노 파의 권력자 로이시 공작의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하지만 혼담의 당사자 로이시 공작이 아닌 나바르의 앙리 왕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이혼까지 감행하며 그녀와 결혼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힌다. 그 결혼이 성사되면 가레스는 프랑스와 영국 내에서 든든한 정치적인 입지를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드의 성격을 잘 아는 가레스는 그녀를 설득할 일을 놓고 머리를 싸맨다.

그러던 차에 가레스는 도버에서 공연 중인 곡예단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촌인 모드를 꼭 닮았지만 의무와 관습에 억눌린 지위나 명예, 사회적인 야심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소녀, 미란다를 만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난 당신을 잘 알아가기 시작하는 느낌이라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

본문 일부
교회 종소리가 자정을 알리는 순간, 조용하고 텅 빈 거리에 소리 없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칼이나 화승총을 손에 들고 모자에 하얀 십자가를 그려넣은 사람들. 그들이 루브르 성채 주위의 좁은 거리로 움직여갔다.

일주일 전, 바로 그 성에서 프랑스 왕의 누이동생 마르그리트 공주와 나바르(프랑스 남서부에서 스페인 북부에 걸쳐 있었던 옛 왕국)의 앙리 와의 결혼식이 열려 화려한 불빛과 음악 속에서 술잔치가 벌어졌었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분쟁을 종결시킬 목적으로 거행된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인 오늘밤, 그 결혼은 젊은 왕을 보필하여 파리에 도착한 수천 명의 위그노 파를 파멸시키는 미끼로 변질되었다.

교회 종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남자들은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이동했다.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합류하면서 무리는 점점 커졌고, 그 커다란 물결은 개신교도들이 사는 저택을 향하여 떼지어 행군해갔다.

첫번째 총성, 진홍빛으로 폭발하는 불길, 길게 이어지는 비명소리, 그것이 바로 대학살의 신호탄이었다. 죽여도죽여도 다시 생겨나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폭도들의 행렬이 비좁은 도시의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하얀 십자가가 그려지지 않은 집들의 문을 깨부수고 침입하여 그 안의 사람들을 창문과 발코니 밖으로 내던졌다.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은 거리에서 기다리던 다른 폭도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갔다.

피냄새와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불타는 집과 횃불들의 빨간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달아나는 사람들을 짓밟는 폭도들의 고함소리는 흡사 지옥에서 들려오는 악마들의 소리였다.

한 여자가 강으로 이어진 좁은 골목에서 헐떡이며 몸을 떨고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미친 듯이 두근대는 심장 때문에 가슴이 터질 듯했다. 맨발은 돌바닥에 찢겨 피가 흐르고, 등에 걸린 망토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양쪽 팔에 안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그 작은 얼굴들을 어깨에 힘껏 파묻었다.

골목에서 폭도의 횃불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외침소리가 드높게 울려퍼졌다. 그녀는 고통스레 흐느끼며 아기들을 꼭 끌어안고 강을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아기들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의 뒤에서 묵직한 부츠소리들이 가까워졌다. 마침내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절망감이 찾아들었다. 도망칠 수 없다. 아기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이보다 더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이 잔악한 만행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내들이 그녀의 뒤로 밀려들었다.

그녀는 발을 멈추고 아기를 꼭 안은 채로 돌아섰다. 갓난아기 하나가 꿈틀거리며 머리를 들어올리려 했다. 다른 아기는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얌전했다. 태어난 지 열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쌍둥이는 너무나 달랐다.

광기에 휩싸인 폭도들이 주위로 밀려드는 동안 그녀는 궁지에 몰린 사슴처럼 헐떡이며 서 있었다. 눈앞의 얼굴 모두가 증오로 가득한 것 같았다. 잔인한 늑대처럼 드러난 이와 충혈된 눈동자들. 그들의 칼과 손과 옷에는 온통 피가 배었다. 그들이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하자 그 땀냄새와 시큼한 입냄새, 그리고 증오의 냄새가 맡아지는 듯했다.

"개종하라……. 개종하라……."
그 단조로운 중얼거림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녀를 조여왔다. 개종에는 관심 없이 그녀의 피에만 관심 있는 자들이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
"개종하라……. 개종하라……."
"할게요."
그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기들만은 해치지 말아 주세요……. 개종할게요, 기도문을 외울게요."
그녀는 증오로 가득찬 얼굴들을 바라보지 않으려 하늘을 우러러보며, 라틴어로 가톨릭의 기도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작가정보

저자(글) 제인 페더

번역 나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