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존 밀턴 지음 |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2007년 03월 29일 출간 종이책 : 2006년 04월 0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새로운 고전읽기를 시도하는『서해클래식』제7권. 17세기의 인문 정신을 구현한 고전 <실낙원>을 살펴보는 책이다. <실낙원>은 영국의 시인 밀턴이 구약 성서의 '낙원상실 모티프'를 토대로 만든 장편 서사시로, 웅장한 구성과 장엄한 문체, 종교적 통찰을 보여주는 고전이다. 밀턴은 근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하여, 17세기 정신세계와 인문적 교양을 집약하였다.

이 책에서는 성경에서 보여지는 고어적 표현을 지양하고 산문체로 번역하였으며, 대화를 풍성하게 살리고 원문을 축약하여 읽기 쉽게 구성하였다. 또한 <실낙원>에 깊이 감동받은 두 화가 도레와 블레이크가 그린 매혹적인 그림을 함께 실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본문에 실린 그림 중 유화들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블레이크의 작품들이고, 판화들은 프랑스 화가 도레가 1866년에 <실낙원>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들이다.

목차

존 밀턴의 생애

시의 운율
1편 사탄, 타락 천사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다
* 『실낙원』의 주요 등장인물

2편 사탄, 천국을 뺏기 위해 고난을 자처하다
3편 하느님, 인간이 타락할 것을 예언하다
4편 사탄,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기로 결심하다
* 밀턴이 『실낙원』을 쓰던 시대의 영국 ― 청교도 학원

제5편 라파엘, 사탄의 유혹을 경고하다
제6편 라파엘, 사탄과 싸운 이야기를 들려주다
제7편 라파엘, 세계 장초의 과정을 들려주다
제8편 아담, 에덴에서의 일을 들려주다
* 인류는 자유롭게 창조된 것일까 ― 자유 의지

제9편 사탄, 이브를 유혹해 지혜의 열매를 먹게 하다
제10편 아담과 이브, 타락을 슬퍼하다
제11편 미카엘, 아담에게 인류의 미래를 보여 주다
* 『실낙원』에 대한 평가

제12편 미카엘, 아담과 이브를 낙원 밖으로 인도하다

존 밀턴 연보

책 속으로

그때는 비밀스럽고 성스러운 부분들도 감추지 않았고 자연이 한 일에 대한 불순한 수치심도 없었다. 두 사람은 알몸으로 하느님의 눈도 천사의 눈도 피하지 않고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갔다. 아들로 태어난 남자들 중 제일 훌륭한 남자인 아담과 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브. 충분히 일하여 서늘한 미풍이 그립고 건강한 갈증과 시장기가 반가울 때, 그늘진 나무숲 샘가에 앉아 승도복숭아를 먹었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한 쌍답게 다정한 대화와 애정 어린 미소를 나누었다. 그들 주위엔 지상의 모든 짐승들이 껑충껑충 뛰놀았다. 사자는 앞발로 서서 새끼 양을 어르고 곰, 호랑이, 스라소니, 표범은 그들의 앞에서 깡충거리고 거대한 코끼리는 그들을 즐겁게 하려고 유연하게 코를 말았다. 가까운 곳에선 교활한 뱀이 몸을 둥글게 꼬아 치명적인 간계를 드러냈다. 태양은 대서양의 섬들에게로 서둘러 가라앉고 하늘 저편으로는 저녁 별들이 솟아올랐다. 처음부터 서서 응시하던 사탄이 마침내 끝내지 못한 말을 슬프게 이었다. - p.68~69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포옹하고 기쁨에 흐느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위해 하느님의 분노나 죽음을 선택하려는 것에 감동하여 그 보답으로 그 유혹적인 열매를 아낌없이 따서 그에게 주었고 그는 어리석게도 여성적 매력에 도취하여 기꺼이 먹어 댔다. 땅이 고통스럽게 흔들리고 자연이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하늘은 험악해지고 뇌성이 울며 비탄의 눈물을 흘려 원죄가 이루어졌음을 슬퍼했지만 아담은 아무 생각 없이 배를 채웠다. 두 사람은 새 술에 취한 것처럼 환락에 빠져 자신들 속에서 신성의 날개가 돋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거짓 열매는 제일 먼저 전혀 다른 작용을 하여 그들의 육욕을 불러 일으켰다. 아담이 이브에게 음란한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브 또한 마찬가지로 응대하니 그들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아담이 이렇게 말하며 이브를 유혹했다. - pp.174 죄는 먼저 지었으나 머뭇거리는 이브를 데리고 아담이 나왔다. 두 사람 다 불안하고 무안한 얼굴이다. 서로를 볼 때나 하느님을 향할 때나 그들의 표정엔 사랑이 없었다. 오직 분명한 죄의식과 수치심, 불안, 절망, 분노, 고집과 증오, 교활함이 있을 뿐. 한참 망설이던 아담이 짧게 대답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알몸이라 두려워 숨었습니다.” 은혜로운 심판자가 말씀하셨다. “그대는 가끔 내 목소리를 들었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즐거워하더니 왜 이제는 두려워하게 되었느냐? 누가 너에게 벌거벗었다고 하더냐? 내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 pp.182 영과 진리를 경배하는 사람들은 심하게 박해받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적인 형식으로 종교가 충족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선한 자에게는 악의적이고 악한 자에게는 너그러워 스스로 짐 아래 눌려 신음하다가 그대를 구해 주기로 약속한 여인의 씨가 다시 올 때 마침내 의인에겐 숨 쉴 수 있는 날이, 사악한 자에겐 보복의 날이 온다. 이제 그대의 구원자로 충분히 알려진 그분이 천부의 영광 속에 나타나 사탄을 파멸시키면 불타는 덩어리에서 새로운 하늘과 땅, 끝없는 정의의 나날, 기쁨과 영원한 축복을 가져오는 평화와 사랑이 나오리라.” 그가 말을 끝내자 아담이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 pp.234

출판사 서평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통찰 하느님은 지상의 만물을 다스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지만, 사탄의 꼬임에 빠져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는 타락하게 되어 에덴에서 쫓겨난다. 이는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에게도 친숙한 성경 이야기다. 으레 《실낙원》은 성경의 동어반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곤 한다. 그러나 《실낙원》은 성경 창세기에 언급된 간단한 이야기를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통찰로 가득 채운, 종교를 뛰어넘어 보편적 문학 가치를 지닌 고전이다. 재해석된 사탄, 사탄의 내면적 절망과 심리 밀턴은 총 열두 편의 이야기 가운데 네 편을 사탄이 어떻게 하느님에게 복수를 감행하는지를 묘사하는 데 할애하며 사탄이 왜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대목은 《실낙원》의 전체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밀턴은 악의 화신인 사탄이 야심을 품었다는 이유로 지옥으로 내쫓은 하느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난을 자처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사탄에게 부여하였다. 더불어 에덴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열등감에 휩싸인 사탄의 내면적 절망과 심리를 묘사하면서 사탄의 성격에 깊이와 다층적 차원을 제공했다. 결국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의 근원들, 의혹, 공포, 질투, 실망, 열등감을 사탄을 통해 대신 드러낸 것이다. 밀턴, 절대고독 속에서 구원과 희망을 쓰다 사탄에게 속아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를 기다리는 건 과연 무엇일까. 영원한 절망, 근거 없는 희망뿐일까? 《실낙원》은 11, 12편에서 아담에게 인류의 미래를 보여 주면서 예수의 등장과 회개와 속죄로 인류의 낙원을 건설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노래한다. 정치인의 성추행 사건이나 아동 성폭행 살인 사건, 연쇄 살인범 사건으로 악이 흘러넘치는 듯 뒤숭숭한 요즘이다. 악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으며 이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이 바로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역할이다. 이를 밀턴은 “복종이 최선이며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자비로우신 그분에게만 의존하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며, 작은 일로 큰 일을 이루고, 약해 보이는 것들로 세속적으로 강한 것들을 전복시키며, 진리를 위해 고통받는 것이 최고의 승리로 가는 극기(234쪽)”라고 말한다. 밀턴은 오랫동안 서사시 집필을 준비해온 탓에 호머 등의 위대한 서사시인의 장점을 고스란히 소화해 전편에 걸쳐 남성적인 힘뿐 아니라 서정성마저 녹아 있어 간혹 서정시를 읽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저자가 절대고독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실명 상태와 정치적으로 참여하며 지지하던 공화정의 몰락과 왕정의 복구로 인해 인생의 훗날을 정치적 고립과 박탈감 속에서 지내야 했던 시기에 《실낙원》을 집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레와 블레이크의 매혹적인 그림과 더 읽기 쉬운 문장으로 찾아온 서해클래식 일곱 번째 책 《실낙원》의 장르는 서사시이나 이 책에서는 성경에서 보이는 고어적 표현을 지양하고 산문체로 번역을 하였고, 대화를 풍성하게 살리고 원문을 축약하여 더 읽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실낙원》에 깊이 감동받은 두 화가 도레와 블레이크가 그린 매혹적인 그림을 실어 보는 맛을 더했다. 본문에 실린 그림 중 유화들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이고, 판화들은 프랑스 화가 구스타프 도레가 1866년에 《실낙원》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들이다. 사뭇 다른 두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 도레와 블레이크의 그림을 비교하며 《실낙원》의 내용을 음미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존 밀턴

<지은이>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1608년 영국 런던의 브레드 가에서 태어나,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청교도 작가인 동시에 위대한 서사시인이다. 그는 청교도로 개종한 아버지의 정열적인 기질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예술 분야에 큰 소질을 보였다. 일곱 살에 성 바울 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젊은 나이에 이미 고상한 라틴 어 시 작가로 입지를 세웠는데, 그 작품이 바로 1626년에 쓴 〈11월 5일〉이다. 라틴 어 시 외에도 그는 영시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1629)를 쓰기 시작하면서 세계적 작가로서의 싹을 보였다. 그 이후 시 작가로서의 입지를 세우고, 많은 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내적 양식을 풍성히 채웠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영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곧장 귀국해 청교도 혁명과 크롬웰의 공화제를 옹호하는 글 여러 편을 썼다. 20여 년 동안 정치적 논란에 휩쓸려 지내면서 정치계에도 뛰어들어 외국어 담당 비서관을 역임했다. 정치적인 글 외에도 그는 영국 국교회나 성서의 권위를 부정하는 글 등을 써서 여러 종교가들의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또 언론의 자유를 주장한 글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1644)는 현대 언론학의 근간이 되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그는 1652년에 시력을 잃게 된다. 1660년 크롬웰의 공화제가 무너지고 왕정이 복고되어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 속에서 《실낙원》, 《복낙원Paradise Regained》, 《투사 삼손Samson Agonistes》과 같은 3대 거작을 집필하였다. <옮긴이> 김흥숙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코리아 타임즈〉와 〈연합통신〉 국제국에서 1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발행하는 영문 주간지 〈뉴스리뷰〉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칼럼을 썼고 미국 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코리아 타임즈〉 칼럼니스트로 ‘Random Walk’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산문집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최후의 연금술사》, 《소피의 달빛 담요》, 《천재 돼지 프란시스 베이컨》, 《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등이 있다. 또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작업에도 힘을 써서 김태길의 《소설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1, 2)》과 정한숙의

번역 김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