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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긴 한국인

장훈 지음 | 성일만 옮김
평단

2008년 03월 21일 출간

종이책 : 2007년 09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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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5.11MB)
ECN 0102-2018-800-0025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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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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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으로 살아야 한 울분과 분노, 그리고 3,000안타의 신화, 『일본을 이긴 한국인』. 1980년 5월 28일, 재일한국인으로서, 일본프로야구사의 불멸의 기록인 3,000안타를 달성한 저자의 자서전이다. 노력과 인내의 연속이었던 저자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재일한국인으로서 받은 고통을 되새긴다.

저자는 재일한국인으로서 받아야 한 울분과 분노를 말없이 품고 있다가 안타와 홈런을 때리게 되면 "내가 치는 홈런과 안타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 동포를 차별하는 비열한 일본인들에 대한 시원한 복수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고, 재일한국인으로 살아왔다.

이 책은 이처럼 당당하게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온 저자의 야구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오른손에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의지와 노력으로 일본프로야구사에 3,000안타라는 전무후무한 불멸의 기록을 세우기까지의 여정이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곳곳에는 저자의 선수 시절의 사진을 담아냈다.
1회 타격왕이 되기까지
붙어버린 손가락 008 | 왕짱을 만나다 010 | ‘마음의 공’을 품다 014 | 어머니의 조국 017

2회 야구 소년의 꿈과 현실
외야울타리의 개구쟁이들 021 | 주먹 때문에 거절당한 고등학교 024 | 고시엔 구장을 꿈꾸다 026 | 오사카 행 열차를 타다 030

3회 절망의 나날들
‘장훈용 도시락’ 033 | 해프닝으로 끝난 거인 입단 036 |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다 039 | 뜻밖의 명령 041 | 야마모토의 우정 044 | 난생 처음 밟아본 고국 땅 047 |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051

4회 신인왕과 수위타자
첫 안타와 홈런을 때리다 054 | ‘꽃의 1959년 선수들’ 058 | 스기우라 징크스 060 | “내 탓이야, 가난 탓이야” 065 | 상품으로 받은 오토바이 067 | 역도산을 만나다 071 | 중절모를 눌러쓴 야구감독 075 | 좌익수 교대! 078 | 첫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다 081 | 불타는 복수심 085

5회 우승에서 MVP까지
우승을 향한 전주곡 088 | 첫 스승, 마쓰키 코치의 조언 091 | 누가 MVP인가? 096 | 고마자와의 망나니, 우승을 거머쥐다 100

6회 수렁에서 탈출하다
끝없는 추락 105 | 감독은 외로워 108 | ‘장훈 시프트’ 110 | 브라질에 두고온 슬럼프 113 | ‘감동 거사’ 오스기 116

7회 4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다
배트에 날개를 달다 120 | “도에이 벤치에는 감독이 두 명 있다” 124 | 브룸필드의 비밀 병기 128 | ‘10+51=3관왕=우승’ 132 | 사라져버린 투지 138 | 꼬마 야구팬이 준 충격 141

8회 다시 혼미 속으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143 | 5타자 연속 홈런 147 | 도에이 플라이어즈 시대가 끝나다 151 | 프로 입단 후 첫 번째 번트 154 | ‘타격의 신’에 오르다 156

9회 명문 자이언츠에 가다
17시즌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다 161 | 정말 거인 유니폼을 입을 수 있습니까? 165 | 왕정치와 명콤비를 이루다 168 | 어둠 속에서 300번 스윙을 하다 174 | ‘승리를 부르는 OH포’ 177 | 시바타의 스포츠맨십 180 | 거인이 우승하다 184 | 젊음에 도박을 걸다 185 | “3번 왕정치, 4번 장훈” 189 | 구단이 내민 백지수표 193

10회 3,000안타를 향해
시력을 잃다 196 | 한ㆍ일 야구를 잇는 다리 199 | 롯데 오리온즈에 입단하다 204 | 3,000안타 고지를 정복하다 207

11회 나의 인생 나의 야구
23년이라는 긴장의 나날 213 | 아시아적인 야구를 위해 215 | 꼴찌에게 박수를 219

12회 내가 본 장훈 221

- 옮긴이의 말 239

나는 스스로 절규했다. 이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남들보다 배트를 더 많이 휘두르지 않으면 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쿄에 있을 때나 원정 때나 경기를 끝낸 후 숙소에 돌아오면 항상 300개 스윙을 하기로 결심했다. 두 시간이 걸렸다. 경기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진짜 승부는 그 다음부터다. 남들이 쉴 때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전력으로 배트를 휘두르고 나면 10~20분 만에 녹초가 된다. 휘두를수록 잘 칠 수 있다며 나 자신을 달래 300개를 채운다.
― <1회 타격왕이 되기까지>, 12쪽

특히 불고기를 좋아했는데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만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위경련이 다 났을까.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면 “다 내 탓이야, 가난 탓이야”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음 날 아침 우유 한 잔만 먹고 거뜬히 경기에 출전했다. 첫 시즌을 마친 후 처음으로 열린 동서東西 대항전에 올스타로 뽑혀 참가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선배들뿐이었다. 어느새 그들 틈에 나도 당당히 어깨를 내민 것이다.
― <4회 신인왕과 수위타자>, 66쪽

매스컴에서 나와 오스기의 등번호를 합쳐 ‘10+51=3관왕=우승’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그 당시 감독은 나의 첫 타격 스승인 마쓰키였다. 나는 9월 25일 난카이와 벌어진 더블헤더에서 8타수 5안타를 때려 3할9푼8리로 4할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드디어 4할 타자가 탄생한다’라며 매스컴이 먼저 난리를 쳤다. 나도 덩달아 흥분되었다. 그러나 배팅이란 미묘한 것이어서 숫자를 의식하게 되면 그때부터 제동이 걸리게 마련이다.
― <7회 4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다>, 133쪽

나는 오른손의 이상으로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배트를 잡을 수 없다. 글러브를 끼기에도 불편했다. 그런 가운데도 3,000안타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연속되는 긴장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긴장을 술로 쉽게 풀려고 했으면 평범한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경기를 끝내고 집으로 와서 내 어깨를 다시 짓누르기 시작한 긴장을 스윙으로 풀었다.
― <11회 나의 인생 나의 야구>, 214쪽

● 가난, 장애, 조센진, 그리고 ‘야구’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23년 동안 선수생활을 했다. 장애를 가진 재일한국인이었지만,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난’ 때문이다. 오직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 때문”에 힘든 프로 무대에서 지난한 세월을 보낸 것이다. 장훈의 부모님은 고향이 한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장훈을 나았다. 당시 일본은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이 많았고, 장훈 역시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가난으로 채워져 있”을 정도였다. 가족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매일매일 가난과 싸워나갔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얼룩진 장훈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조센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는가! 가난과 싸워야 했고, 장애와 싸워야 했고, 일본인 친구들에게 조센진이라는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한때 일본인 양자 제의를 받았지만, 유달리 민족의식이 강한 어머니는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야구를 그만두”라면서 불호령을 내렸다. 장훈은 이후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조국은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한편으로는 당시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야구’는 희망이자, 이 모든 분노와 울분을 날려버릴 수 있는 해방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처음으로 야구를 만났고, 이후 야구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 선수들 숙소가 있는 곳이라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쫓아다녔다. 그러나 그가 마주친 것은 또다시 가난이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냄비에서 고기를 집어 먹거나 계란을 3~4개씩 툭툭 깨어먹는 것을 지켜보던 우리는 그 호화로운 식탁에 넋을 잃었다. …… 일본 전체가 굶주림에 허덕이던 당시 울타리 밖에서 바라보던 우리들에게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정말 굉장한데!’ 어린 내 마음에는 선수들 얼굴보다 그들의 음식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장훈은 야구의 마력에 흠뻑 빨려들어 갔다.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렇게 바라던 히로시마 상고를 포기해야 했다. 결국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에서 먼 나니와 상고 야구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1959년 4월 10일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하면서 3,000안타라는 신화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 장훈의 멘토Mentor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한 장훈은 도에이 팀에서 마쓰키 코치를 만난다. 장훈과 마쓰키 코치의 만남은 어쩌면 예정된 우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타격 스승인 마쓰키 코치는 비가 오는 날에도 장훈을 훈련시키기 위해 공을 던져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쓰키 코치의 열정과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장훈의 결의가 함께 만난 것”이다. 장훈은 마쓰키 코치에게 오른손에 장애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코치는 그에게 오른손이 약하다며 지적했다.
그가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하루도 빠짐없이 300개씩 스윙을 하면서 마쓰키 코치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한 ‘송곳 타구’”를 연마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끼는 ‘마음의 스윙’을 하기 위해 밤이면 밤마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배트를 휘둘렀다. 장애를 가졌지만, 그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넘어야 할 단순한 장애물이었다. 그렇게 마쓰키 코치는 장훈에게 없어서는 안될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였다.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함께 한 백인천의 말을 들어보자.

“장훈 형이 프로 입단 초 마쓰키 타격코치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두 사람은 성격상 서로 죽이 맞았고 마쓰키는 장훈 형과 같은 좌타자인데다 고집스러운 점까지 닮아 코치와 선수로 황금콤비를 이루었다.”

마쓰키 코치가 있었기에 장훈은 척박한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야구에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을 보니 설리반 선생과 헬렌 켈러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된다. 장훈은 일본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장훈에게 “좀더 힘을 붙여야 한다”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권유하면서 “어떤 운동이든 체력이 우선이다”라며 격려했다. 장훈은 타율 3할과 수위타자를 목표로 강인한 체력을 길러나갔다. 재일한국인이라는 같은 아픔을 간직한 이들은 울분과 분노를 가슴속으로 삭이며, 일본인의 콧대를 꺾기 위해 남모를 노력을 한 것이다.
장훈은 자신보다 여덟 살 위인 세열 형님을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폭력 사건으로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나니와 상고에 들어가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형은 택시를 몰아 버는 돈의 거의 절반을 매달 꼬박꼬박 부쳐주었다. 장훈은 “가난한 살림에 형님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3,000안타 장훈’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이언츠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야구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학교는 다녀야 한다”며 장훈에게 학업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장훈은 그런 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형님의 나이는 23세였다. 한창 놀기 좋아할 때에 월급에서 1만 엔을 떼고 어머니와 누나 등 세 식구가 살아갈 결심을 한 것은 아버지를 대신한 형님의 넓은 가슴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신인왕, 수위타자, 안타 제조기 그리고 우승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훈은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첫해 신인왕을 거머쥐면서, 일본 야구계의 ‘슈퍼 루키’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300개 이상의 스윙으로 자신을 단련시켰고, ‘타율 3할’이라는 목표를 향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럴수록 야구에 대한 장훈의 열정과 집념은 더욱더 커져갔다.
안타수가 늘어나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싹텄다. ‘손의 반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선수들이 흔히 하는 말로 ‘공 놓고 공 치기’라는 생각으로 때린 타구는 나의 예상을 넘어 빠른 속도로 야수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유격수와 2루수의 키를 넘어 좌·우 중간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장훈은 프로 첫해부터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울분과 분노가 모두 공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도에이는 최하위를 전전하는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미즈하라 감독이 취임하면서 도에이는 날개를 단듯 연승을 거듭하고 우승이라는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결국 ‘고마자와의 망나니’들은 우승을 거머쥔다. 장훈은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그 이후 장훈은 ‘4년 연속 수위타자’, ‘9년 연속 3할 타자’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했다.
장훈은 프로 입단 4년 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자, 날개를 잃은 것처럼 슬럼프에 빠졌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던 스윙도 그때부터 시들해졌고, 스윙을 하더라도 혼魂이 빠져버린 듯 공허했다. 그런 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났다. 바로 왕정치의 부활이다. 사실 고시엔의 스타선수 출신인 왕정치는 장훈과 함께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처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장훈이 슬럼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왕정치는 일명 ‘외다리 타법’을 개발하면서 홈런을 쳐대고 있었다. 장훈은 왕정치에게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 마음을 되잡고 다시 배트를 들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타격 자세는 좀처럼 되찾기 어려웠다. 이후 다시 타격감을 잡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해 시즌이 종료되었을 때 나의 타율은 2할8푼이었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나는 2주 동안이나 식욕을 잃고 술만 마시고 지냈다.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잡기 시작한 배트는 날개를 단 듯 홈런과 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1970년 일본 프로야구 최고타율인 3할8푼3리를 기록한다. 그리고 17시즌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며,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도에이는 팀 명칭이 바뀌고, 팀 전력도 예전처럼 추락하게 되었다. 결국 장훈은 꿈에 그리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

작가정보

저자(글) 장훈

저자 장훈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 오즈마치大洲町 현縣에서 아버지 장상정張相禎과 어머니 박순분朴順分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이지만, 아버지가 먼저 도일度日하고 그 후에 어머니는 가족들을 이끌고 현해탄을 건넜다. 이때부터 장훈은 재일한국인이라는 멍에를 쓰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단바라段原 중학교 때에는 ‘조센진’이라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단바라의 깡패’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장훈은 야쿠자들과 어울리며 불안하고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어렵게 오사카의 나니와 상고浪華商에 들어가고 난 후 야구에 재미를 붙이면서 배트를 휘두르며 울분과 분노를 토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59년에 도에이東映 플라이어즈에 입단한다. 그리고 그해 4월 10일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 데뷔한다. 그리고 23시즌 동안 일본 프로야구사에 숱한 기록을 남기고, 1980년 롯데 오리온즈에서 3,000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1981년에 은퇴했다.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도에이 플라이어즈(1959~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즈(1973), 일본햄 파이터즈(1974~1975), 요미우리 자이언츠(1976~1979), 롯데 오리온즈(1980~1981) 등 23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출장 2,752경기, 타율 3할1푼9리1모, 안타 3,085개, 홈런 504개, 타점 1,676점, 득점 1,523점, 도루 319개, 2루타 420개, 3루타 72개, 끝내기 홈런 6개, 희생플라이 90개, 고의사구 228개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또한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고, 최고 출루율 9회(1962, 1964, 1967~1970, 1972~1974), 수위타자 7회(1961, 1967~1970, 1972, 1974)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프로 입단 첫해에 2루타로 안타 행진을 시작해서 1972년에 2,000안타, 1980년에 3,000안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특히 1970년의 타율 3할8푼3리는 당시 일본 프로야구 최고 기록이었다. 1959년 퍼시픽리그 신인왕과 1962년 퍼시픽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에는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상했으며, 1990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역자 성일만

195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대륜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를 거쳐 1985년부터는 일간스포츠 야구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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