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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즐거움

정민나 시집
정민나 지음
문학세계사

2018년 05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16년 10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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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6.22MB)
ISBN 978897075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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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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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 시인의 세 번째 시집『협상의 즐거움』. 이 시집의 중요한 코드는 '상실'이다. 시인이 상실한 것은 고향이지만 이는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상실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는 상실이다. 개발로 인한 상실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만 가져오면 치유가 가능한 상실로, 상실의 배후와 과정, 상실의 결과로 인한 파괴를 저주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복원의 의미로써 과거 지향적인 인식을 갖는 생태학적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다만, 상실은 주관적 경험 맥락에 의해 형성된 심리 상태이기에 그저 무덤덤하게 상실 속에서 또는 상실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 속에서 시를 통해 증언한다.
1. 유리섬
유리섬─판정 _______ 10
유리섬─크린 _______ 12
눈송이 통신 _______ 13
유리섬─소독차가 지나간 자리 _______ 14
유리섬─살구나무 7층 _______ 16
유리섬─초대 _______ 18
유리섬─공룡을 조립하는 아이 _______ 20
유리섬─인공 누액 _______ 21
꽃 핀 연안부두 _______ 23
유리섬─어떤 소요 _______ 24
유리섬─내비게이션 _______ 26
유리섬─모노레일 _______ 28
유리섬─우박 _______ 29
유리섬─타샤의 정원에서 _______ 31
유리섬─단절 _______ 32
유리섬─일출 _______ 34
유리섬─입춘 _______ 36

2. 생명의 거미줄
유리섬─拮抗 _______ 46
유리섬─아랫말 고인돌군을 지나다 _______ 48
장수풍뎅이 _______ 50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 _______ 52
유리섬─구제역 _______ 54
유리섬─SNS _______ 55
유리섬─대기실에서_______ 57
유리섬─무녀도 _______ 58
유리섬─엘리뇨 침식 _______ 59
유리섬─유빙이 떠내려오는 시간 _______ 60
유리섬─이방인 놀이 _______ 61
카오스 고양이 _______ 62
유리섬─만국기 다는 사람 _______ 64
유리섬─그녀의 오락 _______ 66
유리섬─구름 인터렉티브 _______ 68
유리섬─태풍이 지나가는 자리 _______ 70
유리섬─폭죽 _______ 71

3. 사람들
유리섬─협상의 즐거움 _______ 74
유리섬─모래내 시장 _______ 76
단양 _______ 78
장수천 엘리베이터 _______ 79
유리섬─링거 _______ 81
유리섬─분실 _______ 82
유리섬─천칭자리 _______ 83
유리섬─한파 몸살 _______ 85
유리섬─명료한 진창 _______ 86
월풀, 투모로우 랜드 _______ 87
유리섬─야영 _______ 89
오각선반 그 여자 _______ 90
개심사 가는 길 _______ 92
계명誡命 공원 _______ 94
유리섬─그 먹물버섯 _______ 96
모래 준설 파이프, 그 사내 _______ 97
심천으로 가는 길 _______ 99
유리섬─유동 갯마을_______ 101
사려니 숲 _______ 103
유리섬─포옹_______ 105

□해설
상실의 민낯과 민낯이 가진 섬세한 감각|하린(시인) _______ 108

상실의 민낯과 민낯이 가진 섬세한 감각
차별화된 개성으로 형성된 독특한 언어적 무늬!
정민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협상의 즐거움』을 읽는 중요한 코드는 바로 상실이다. 상실은 잃어버리는 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을 뜻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무엇을이란 질문을 갖게 된다. 무엇을 상실했는가? 시인이 상실한 것은 고향이다. 그런데 그 상실은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상실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는 상실이다. 분단 지역처럼 갈 수 없거나 수몰 지역처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절대적 상실이 아닌, 개발로 인한 상실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만 가져오면 치유가 가능한 상실이다. 바다가 메워지고 마을엔 유리 박물관이 이방인처럼 들어와 있지만 그곳도 또 다른 옷을 입고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향일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상실의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 상실의 배후, 상실의 과정, 상실의 결과로 인한 파괴를 저주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복원의 의미로써 과거 지향적인 인식을 갖는 생태학적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군하고 상실 자체를 인정하는 허무주의적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상실은 모두 주관적 경험 맥락에 의해 형성된 심리 상태이기에 시인은 그저 무덤덤하게 상실 속에서, 또는 상실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존재들 속에서 지금 - 여기를 생생하게 시를 통해 증언하려 한다.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담백하다. 시적 의도를 최대한 자제한 채 정서적 무늬를 살짝 배면에 깔아 놓을 뿐이다. 현존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태에서 시적 국면에 서린 풍경들을 다큐의 정신으로 그려 놓고 있는 방식이다. 자칫 소홀히 하여 깨지기 쉬운 유리도 조심스럽게 다루면 새롭게 변신하는 것처럼(시인의 말), 개발로 인한 상처도 세심하게 다루면 상실의 의미를 뛰어넘는 실존의 의미로 감각화 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1. 상실의 민낯을 예리하게 드러낸 시편

시인은 유리섬 연작시를 통해 상징화된 코드인 유리를 집요하게 강조한다. 왜 유리인가? 유리는 투명성, 순질성, 차단성, 경계성 등을 갖는다. 이 중에서 시인은 투명성과 순질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유리를 배척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가 가진 고유적 특성을 필터로 사용하여 인식의 투명성을 낳고 있다. 유리를 통해서 세계를 보니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게 되고, 그 이상으로 수식하는 행위나 그 이하로 혐오하는 행위를 자제하게 된다.

새단장 쇼파 전문 매장에서 엔틱 모던 가구 인테리어 소품점에서 토종 순대국 만석이네 집에서 생기 약국에서 신태양 안경점에서 과외 혁명 원플라스 학원에서 김포 꽃 화원에서 씨를 받아 왔다

난蘭생처음 자생란 가게에 낚시 플라자에 클릭 사랑 보드게임 제이제이에 아이미즈 산부인과에 활어회 직판장에 21세기 미소 치과에 쓰고 남은 씨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발꿈치를 높이 든 전기공 어깨 위에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절뚝이며 뛰어오는 할아버지의 발등에 파출부 쓰실 분 전단지를 붙이는 여자의 몸 위에 줄기는 왕성하게 피어오른다


바퀴들 쌩쌩 굴러가는 시내 한복판 목화* 피었다고 이 마을 사람들도 틀어 보니 새하얀 무명 꽃이더라고

인견 피그먼트 이불과 극세사 차렵이불 아사 원단 침구류 소매상을 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목화솜 이불 덮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요즘 신新도시 사람들의 감촉이 많이 달라졌다고

*요즘 목화씨를 일정량 배급하는 도시가 있다

「유리섬―초대」를 통해 시인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갖는 기록의 의미를 최대한 담고 있다. 감독이 생생함을 카메라에 담아 내는 것을 우선하고 의도를 전체 영상의 배면에 깔아 놓는 것처럼 시인은 신도시의 풍광을 실감나게 증언하고 그 풍광 뒤에 의미를 그림자처럼 덧붙여 놓는다. 시의 앞부분에서 씨를 무료로 받아 간 장소인 새단장 쇼파 전문 매장, 엔틱 모던 가구 인테리어 소품점, 토종 순대국 만석이네, 생기 약국, 신태양 안경점, 과외 혁명 원플라스 학원, 김포 꽃 화원, 蘭생처음 자생란, 가게 낚시 플라자, 클릭 사랑 보드게임, 제이제이, 아이미즈 산부인과, 활어회 직판장, 21세기 미소 치과 등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를 밝힌 점이 그것을 단적으로 반증한다.
사람을 언급할 때도 발꿈치를 높이 든 전기공 어깨 위에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절뚝이며 뛰어오는 할아버지의 발등이라고 한다거나 인견 피그먼트 이불과 극세사 차렵이불 아사 원단 침구류 소매상을 하는 친구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다큐적인 태도 안쪽에 시인은 의도가 살짝 가미된 상징물을 배치한다. 그것은 바로 목화씨다. 목화씨는 이 시에서 단순한 생물이 아니다. 다양한 욕망을 각자의 방식으로 분출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유대감을 심어 주는 일종의 바이러스적인 코드若 新도시 사람들의 감촉이 많이 달라지게 만드는 촉매제가 바로 목화씨다. 어차피 옛날식 고향은 사라지고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것을 절대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니 신도시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자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시인은 목화씨가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그런 역할을 할 거라 확언하고 있다.

2. 일상에서 길어 올린 민낯의 섬세한 감각

다큐의 정신이 시인의 근본 기질이라면 그 근본 기질에 뿌리를 두고 점점 영역을 확장하려는 세계나 섬세함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정민나 시인은 실체적 현상이 갖는 민낯에서 기화를 시작하여 점점 더 민낯의 너머나 경계 지점으로 섬세하게 이동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형상을 한 번 더 세밀하게 그려 낸 다음 세목들이 갖는 즉물적인 속성을 직관하여 이미지로써 감각화시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창문을 열면

관 같은 통로를 따라 데굴데굴 굴러온다

파랑새의 지면이 얇은 꽃잎처럼 주름진다

꽃대를 움켜진 바람

마른 들국화의 심장으로 번개가 지나간다

놀이터의 그네와 시소는 휴일을 잠근다

얼룩말과 향나무 사이 괄호를 치고

청단풍의 골목이 후두둑 떨어진다

쿨럭쿨럭 기침을 한다 나뭇잎들이

새파랗게 휘어진다 학교 담장 너머에서

입김이 후우! 구름의 종소리에 좌정한다

참새가 텀블링하듯 이파리와 하늘 공간 사이에서

날아온다…… 잔디의 지면에 닿아 평등해진다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행에 있다. 잔디의 지면에 닿아 평등해진다라는 구절이다. 원래 잔디의 지면은 평평한 상태이다. 그런데 시인은 평등이란 단어를 일부러 써서 모든 존재가 우박 속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평등을 보여 줬음을 강조한다. 정밀하게 경계 너머까지 읽었을 때에만 가능한 시적 내공이 이 하나의 단어로 암시된다.

업데이트 하지 못한 계절은

배꽃을 떨어뜨린 우박을 밟고 서 있다

자기 견해를 뺀 줄거리로 오늘이라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라는

아버지의 당부는

오류가 날 수 없다는 표정이지만

눈 녹지 않은 비닐하우스를 하얗게 켜고

사람들의 농로 한가운데 멈춰 있다

시는 상실에서 온다. 온전한 것들, 다 채워진 것들로부터 시는 발현되지 않는다. 상실은 시인의 시선이 머무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상실을 어떤 태도로 어떻게 담아 내느냐는 온전히 시인의 몫이다. 심연을 응시하면서 심각한 태도로 강렬하게 다룰 것인지, 아니면 솔직담백한 태도로 현상을 직시하면서 척을 배제한 채 다큐의 방식으로 담을 것인지……. 이것은 오직 시인의 가치관과 시적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상실의 국면과 시인의 정서적 아우라가 만나 개별화된 파장을 일으킨다. 그 파장은 확산되고 와해되거나 융합되면서 독특한 언어적 무늬를 형성한다. 그 무늬가 바로 시인의 차별화된 개성이다. 정민나 시인은 후자의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솔직담백한 상태에서 현상을 감각화시키려는 태도로 인해 꾸밈없는 이미지즘 시를 낳고 있다. 이미지즘 시는 보통 수사라는 옷을 입고 탄생하는데, 정민나의 시는 의도적인 꾸밈이 없이, 감정적인 척도 없이 이미지즘이 갖는 최상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

작가의 말

오랜만에 고향 섬을 갔는데 바다는 메워지고 마을엔 유리 박물관이 들어섰다. 자칫 소홀히 하여 깨지기 쉬운 유리도 조심스럽게 다루면 새롭게 변신하는 것처럼, 변화하는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본성적인 행동을 대면하고, 그들의 놀람과 기쁨, 슬픔과 갈등을 여실히 표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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