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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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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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저편의 과거를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낸 이 책에서 저자는 인생의 뿌리이자 장애물이며 행복과 불안의 근원이었던 가족과 그들을 잠식해가는 정신적 빈곤, 그리고 인간의 성장에 있어 안정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과 없이 묘사한다. 더불어 예일에서 느꼈던 차별과 메울 수 없는 격차까지도 상세히 그린다.
윤리와 문화의 붕괴, 가정 폭력과 가족 해체, 소외와 가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성장 에세이라는 잔잔한 서사 속에 녹여내 자신이 겪었고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도 겪을 사회문제를 세상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저자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며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인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했을 만큼 생생한 묘사와, 빈틈없는 서사, 마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탁월한 힘을 지닌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제1부 내 인생의 뿌리, 힐빌리에 관하여
1 힐빌리 마을, 잭슨
2 할모와 할보의 결혼
3 실패한 중산층
4 쇠락하는 미들타운
5 길게 줄 선 아버지 후보자들
6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생물학적 아버지
7 할보의 죽음과 엄마의 폭주
8 덫에 걸린 기분
제2부 힐빌리의 이방인,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그늘
9 할모의 품으로
10 독립의 시작, 그리고 할모의 죽음
11 미국에서 가장 비관적인 집단
12 신분 상승의 이면
13 그들만의 세상
14 벽장 속 괴물
15 미들타운에 필요한 것
/ 에필로그
/ 감사의 글
/ 옮긴이의 글
/ 미주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중서부 산업 지대가 쇠퇴하고 백인 노동 계층의 경제 축이 무너지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제조업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데 대학 학위 없이는 중산층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염려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 걱정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 책은 제조업 경제가 무너지면 실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나쁜 상황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회적 부패에 대항하기는커녕 그것을 더욱더 조장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다. (29~30쪽)
진실은 냉혹하다. 그중에서도 산골 사람들에게 가장 냉혹한 진실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잭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냥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약물 중독자도 널려 있고,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잭슨의 경치는 두말할 것 없이 아름답지만, 환경 폐기물과 마을 곳곳에 널린 쓰레기가 그 아름다움을 가린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가 푸드스탬프에 의지한 채 살아가며 땀 흘리는 노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잭슨은 블랜턴가 남자들만큼이나 모순투성이다.(54쪽)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때 내가 내뱉은 어떤 말이 엄마의 화를 돋웠다. 그러자 엄마는 시속 160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속도로 달리며 같이 죽자고 했다. 나는 혹시 안전벨트 두 개를 한꺼번에 매면 사고가 나더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뒷자리로 얼른 뛰어 넘어갔다. 그런 내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엄마는 날 두들겨 팰 작정으로 차를 세웠다. 그때 나는 차에서 뛰쳐나와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차에서 내린 곳은 외딴 시골 마을이었고, 내리자마자 나는 너른 풀밭을 가로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속도를 낼 때마다 키 큰 풀들이 내 발목을 철썩철썩 때렸다. (137쪽)
할모네 집으로 들어가기 전의 내 삶을 돌이켜보자. 3학년을 다니던 도중에 우리 가족은 밥 아저씨가 살던 프레블 카운티로 이사했다. 4학년이 끝나갈 무렵 프레블 카운티를 떠나 미들타운 매킨리가 200번지로 이사했다. 5학년을 마칠 때쯤 매킨리가 300번지로 이사했고, 그 무렵 칩 아저씨가 나타났다. 6학년을 마칠 즈음 칩 아저씨는 스티브 아저씨로 대체됐다. 7학년이 끝날 때는 맷 아저씨가 나타났고, 엄마는 맷 아저씨의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8학년을 마쳤을 때 엄마는 내게 데이턴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친아빠의 집을 잠깐 거친 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9학년을 마치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던 켄 아저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엄마는 마약을 했고, 가정 폭력으로 재판을 받았으며, 할보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 당시 상황을 쓰기 위해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불안이 밀려든다. (250-251)
공부 욕심이 있는 친구들을 사귀었던 건 전부 할모 덕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또래의 동네 아이들 대부분은 이미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모는 내가 그런 부류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대개 어떤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는 어른의 지시를 무시하지만, 그건 지시를 내리는 어른이 보니 밴스 여사 같지 않아서일 거다. 할모는 만약 내가 금지 목록에 있는 친구와 놀고 있는 꼴을 본다면, 그 즉시 친구를 차로 받아버리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고서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할미가 그랬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256쪽)
할모의 보험료를 대신 납부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할모의 수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만족감이 느껴졌다.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에는 누군가를 도울 만한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어떤 격려 연설이나 강연에서도 보살핌을 받기만 하다가 누군가를 보살피게 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 깨우치고 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276-277쪽)
■ 한국 문학계의 거장, 소설가 김훈 강력 추천
■ 빌 게이츠 선정 ‘2017 휴가 필독서’
■ 「뉴욕타임스」 55주 연속 베스트셀러
■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 론 하워드 영화화 확정
■ ‘세계 경제 포럼' 글로벌 리더 62인 선정 필독서
■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타임스」, 「선데이 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커커스리뷰」, 아마존닷컴, NPR 등 주요 매체 ‘올해의 책(2016)’ 선정
“역사의 지금 이 순간,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미국 사회를 뒤흔든 한 젊은이의 고백, 『힐빌리의 노래』 한국 출간
J. D. 밴스는 미국 최고 명문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실리콘밸리의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다. 그리고 지금은 정치계 입문을 권유받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타이틀마저 거머쥐었다. 데뷔작인 『힐빌리의 노래』라는 단 한 권의 책이 가져온 결과다. 현재 이 책에 대한 아마존닷컴의 서평 수는 무려 8400여 개에 육박하고, 독자 평점은 5점 만점에 가깝다. 또 출간 이후 현재까지 55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랭킹 1~3위를 오가고 있다. 수많은 매체가 이 책을 ‘2016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고, 마이크로소프트 고문 빌 게이츠와 데이비드 브룩스(뉴욕타임스), 데이비드 아로노비치(타임스), 이안 비렐(인디펜던트) 등의 유명 칼럼니스트, 페이팔(Paypal) 창업자 피터 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그레고리 맨큐, 예일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 등 미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앞 다퉈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책에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 출신인 저자가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일찍이 양육권을 포기해버린 아빠, 가난과 가정 폭력, 우울과 불안을 딛고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소위 말하는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회고가 담겨 있다. 밴스가 이 책에서 드러낸 것은 ‘성공의 여정’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억 저편의 과거를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책에 담아내고, 무관심 속에 숨겨졌던 사회문제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드러냄으로써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얻었다.
명문 로스쿨 출신에 백인, 남성, 이성애자, 개신교도라는 소위 ‘사회적 특권’과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라는 번듯한 지위까지 갖춘 밴스가 고백한 어린 시절의 정신적 빈곤은 그래서 더욱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자란 러스트벨트 지역은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동부 도시들과 달리, 애팔래치아 산맥에 가로막힌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가난에 갇혀 미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이 가정 폭력과 가족의 해체, 문화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은 지난 선거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졌던 트럼프의 당선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다. 무식하고 난폭한 ‘힐빌리’들은 사회문제이자 복지 제도의 대상이었을 뿐,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밴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을 위해, 그가 겪었고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도 겪을 사회문제를 세상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에 수많은 독자가 공감과 지지를 표현했다. 빌 게이츠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남겼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니라 굉장히 훌륭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는 밴스의 용기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밴스는 외할머니인 할모에게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배신하는 짓이 가장 나쁘다’라고 일찌감치 배웠다. 그러나 밴스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초한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배신자로 불릴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또한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서평에서 이 책에 대해 “고난 가운데서도 자존감을 키울 수 있게 해주는 사회 제도와 문화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평하며, “역사의 지금 이 순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했다.
“나는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누구나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진솔한 서사
32살의 밴스는 이 책에서 경제적으로 쇠락한 러스트벨트 지역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문화적 혼란과 사회문제를 자신의 삶의 궤적에 투영해 전달한다.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외 계층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 희망을 놓아버린 미래에 대한 체념은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숱한 연구에서 부모의 학력과 재력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듯이, 우리 사회는 더 이상의 ‘개천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6년 사회통합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노력에 따른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평균 2.4점(4점 만점)을 줬다. 이는 2015년 실태조사 결과(2.6점)는 물론 행정연구원의 이에 관한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사회적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차단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밴스는 이 책의 서두에서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곳은 일자리와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사라져가는 동네였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좋게 말해 복잡한데, 엄마는 거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키워준 외조부모님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포함해도 우리 집안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통계적으로 나 같은 아이들의 미래는 비참하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 나도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다. (프롤로그 중에서)
또한 밴스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뻔한 여자에게서 버림받은 자식”(42쪽)이다. 약물 중독에 빠져 끊임없이 정신적·신체적 폭력을 휘둘렀던 엄마와 돈 때문에 양육권을 버린 아빠, 엄마 곁을 스쳐간 수많은 아버지 후보자들 때문에 어린 밴스는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려야 했다.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릴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130쪽) 정도로 집은 밴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장소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던 그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할모와 떨어져 새아버지와 살게 된 후 밴스의 학교생활은 엉망이 됐고, 그는 “고등학교 중퇴를 가까스로 면했고, 주변 사람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망가지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22쪽) 그래서 밴스는 훗날 예일에서 만난 아내 우샤의 집안이 평화롭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 아내의 집안에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난폭한 언쟁과 폭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약물 중독과 폭력을 사과하겠다던 엄마가 돌변해 열두 살 어린아이였던 밴스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줬던 일을 고백하는 장면은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책의 후반부에 밴스는 엄마 또한 끊임없는 다툼과 할보의 알코올 중독, 할모의 무관심, 그리고 가정 폭력의 희생자임을 밝힌다. 밴스가 아내 우샤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낸 후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나는 아주 멀쩡할 때조차도 시한폭탄 같다”(369쪽)고 자조하는 장면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폭력의 상흔이 얼마나 지우기 힘든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간판과 직업만 보고서 내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안다. 특출하게 뛰어난 사람만이 지금의 내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전부 헛소리다. 타고난 재능 따위를 운운할 수도 없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구해주기 전까지 나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런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밴스는 할모와 할보의 사랑과 집안의 유일한 참된 어른인(148쪽) 누나의 지지와 보살핌 속에서 ‘개천용’이 되었다. 밴스는 엄마를 포함한 자신의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은 것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382쪽)고 고백한다. 이것이 밴스가 스스로를 가리켜 “더럽게 운이 좋은 개자식임에 틀림없다”(402쪽)고 말하는 이유다.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한 수준의 냉소가 만연했다.”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자본의 부재’가 공존하는 세계의 현실
『힐빌리의 노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부분은 읽다 보면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밴스가 생생하게 묘사한 가족 이야기이고, 다른 한 부분은 밴스가 제기하는 문제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힐빌리들이 겪는 불운한 인생에 이들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가? 밴스는 이 부분에서 작심한 듯 애정에서 비롯된 날 선 비판을 쏟아놓는다.
밴스가 들려주는 개인사 대부분은 그가 ‘힐빌리 문화’로부터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분리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제정신이 아닌 엄마를 떠나 할모의 곁에서 안정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해병대에 자원한 것은 그의 인생을 바꾼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그는 해병대 생활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목표의식을 갖게 됐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능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해병대는 외과 의사가 종양을 도려내듯 내게서 그런 마음을 도려냈다. (10장 ‘독립의 시작, 그리고 할모의 죽음’ 중에서)
반면 미들타운에 남아 있던 밴스의 친구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신분 상승을 평생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해버렸고,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한 수준의 냉소”(309쪽)만을 지니고 있었다. 밴스는 자신의 이모인 로리와 누나인 린지가 엄마와 달리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게 된 것은 힐빌리가 아닌 다른 문화의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밴스 역시 빈곤이 문화가 되어버린 힐빌리들과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여자 친구와 결혼함으로써 마음속에 낙인처럼 찍힌 힐빌리 문화에서 탈출하고자 했다.
힐빌리 문화 속에서 성장한 내부자이자, 새로운 세상에 터를 잡은 이방인으로서 밴스는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혼란을 겪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다닐 때는 면접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어서 군복 바지에 추레한 라임색 셔츠, 운동화를 대신할 유일한 신발이었던 해병대 전투화를 신고 갔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해병대 정신으로 중무장했지만, 의사와 변호사 외에 출세했다고 할 만한 다른 직업을 몰라서 단순히 피를 보며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예일 로스쿨에 들어갔다. 또한 명문 로펌의 채용 담당자들이 모이는 면접 파티에 참석할 만큼 공부를 한 후에도 탄산수를 가리키는 “반짝거리는 물”(341쪽)의 정체를 알지 못해 망신을 당할 뻔했다. 밴스가 얼마만큼 문화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예일 로스쿨에서 에이미 추아 교수를 만나기 전까지 그의 곁에는 삶에 대해 진지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줄 어른, 혹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밴스는 이것을 ‘사회적 자본의 부재’라고 표현하며, 예일 같은 명문대에 인종을 막론하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이 가득한 이유를 설명했다.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자본의 부재는 복지 제도와 장학금으로는 도저히 건너기 어려운 계층 간의 벽을 만들었다.
「허핑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피터 클로시어가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약 당신이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제대로 된 교육 제도 안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이 책이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몰랐던’ 당신의 눈을 뜨게 할 것이다.”
계층 간 문화적, 사회적 단절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계층 간 이동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양극화된 세상은 고립되고 소외된 계층을 현혹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 지식인들이 복지 제도 논쟁에 집중하는 동안 문화적으로 소외된 집단들은 정책과 비전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좌절감과 분노를 배설할 통로로 정치를 소비하고 있다. 가족과 복지, 일자리와 교육, 정치와 문화,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속에서 개인과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힐빌리의 노래』는 질문한다. 이 책이 미국의 지식인 사회를 들끓게 한 이유다.
“충격적이고 애통하고 고통스러운 동시에 너무나도 웃기다.”
눈을 뗄 수 없는 서사, 그 속에 담긴 문학적 재미와 감동
J. D. 밴스는 이 책에서 인생의 뿌리이자 장애물이며 행복과 불안의 근원이었던 가족과, 그들을 잠식해가는 정신적 빈곤, 그리고 인간의 성장에 있어 안정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과 없이 묘사한다. 아울러 밴스가 예일에서 느꼈던 차별(한 교수는 예일 로스쿨은 보충수업을 해주는 곳이 아니므로 아이비리그 출신자만 입학생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327쪽)과 메울 수 없는 격차(밴스는 예일 친구들을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식당에 데려갔으나 그들에게는 “공중위생을 위협하는 지저분한 식당에 불과”했다, 335쪽)까지도 상세히 그린다. 그는 윤리와 문화의 붕괴, 가정 폭력과 가족 해체, 소외와 가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성장 에세이라는 잔잔한 서사 속에 녹여냄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인 론 하워드 감독이 이 책의 영화화를 결정했을 만큼 『힐빌리의 노래』가 지닌 스토리의 힘은 탁월하다. 읽는 순간 빠져들게 하는 생생한 묘사와 빈틈없는 서사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한국 문학계의 거장인 소설가 김훈 선생이 “가난의 한복판에서 가까운 희망을 찾아낸 사람의 이야기”라며 소설이 아닌 외국 에세이에, 그것도 유례없이 긴 서평을 쓴 것도 이 책의 ‘스토리’가 지닌 힘을 방증한다. 예일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의 찬사처럼 “『힐빌리의 노래』는 충격적이고 애통하고 고통스러운 동시에 너무나도 웃기다. 충격적인 진실 속에서 진정한 희망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주목할 만한 책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문학적 재미와 사회적 관점의 환기라는 두 가지 선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읽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된다. 사회문제라는 무거운 관점으로만 이 책에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소설처럼 재미를 좇아 읽어도 좋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는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남게 될 테니 말이다.
[책 속으로 추가]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할 무렵에, 나는 해병대에서 익힌 불요불굴의 의지가 몸에 배어 있었다. 빠듯한 일과였으나, 열여덟 살 때는 무섭기만 했던 독립생활의 모든 면이 이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할모와 함께 학자금 지원 신청서를 훑어보며 ‘부모/후견인’란에 엄마 이름을 써야 할지 할모 이름을 써야 할지 몰라서 골머리를 앓던 나였다. 또 어떻게든 내 법적 아버지인 밥 하멜의 재무 정보를 입수해서 제출하지 않았다가는 사기죄가 되는 게 아니냐며 걱정했던 나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296-297쪽)
내 주변에는 건실한 어른으로 성장한 친구들도 있고, 미들타운에 감도는 끔찍한 유혹의 희생자가 되어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들도 있다. 본인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누구는 성공한 어른이 됐고, 누구는 실패자가 됐다. 그런데도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다’라고 외치는 우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318쪽)
면접이 진행된 일주일 내내 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변호사들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학부를 마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열 군데도 넘는 곳에 지원서를 보냈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예일 법대를 겨우 1년 다녔다는 이유로 동기들과 나는 연방 대법원에서 변론을 하던 사람들에게서 여섯 자리 숫자에 달하는 금액의 연봉을 제안받고 있었다. (343~344쪽)
에이미 추아 교수님이 내게 저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일러준 게 그 무렵이었다. “판사나 교수가 될 거라면 편집위원 경력이 유용해요. 그게 아니면 시간 낭비일 뿐이고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일단 도전해보세요.” 100만 달러짜리 조언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 없었으므로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도전하기로 했다. 1학년 때는 탈락했으나, 2학년 때는 목표를 달성해 권위 있는 간행물의 편집위원이 됐다. 요점은 내 글이 실렸느냐 실리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건 교수님의 도움 덕분에 정보 격차를 해소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349쪽)
힐빌리를 하나같이 군침이나 흘리는 바보 천치들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대해 할모는 늘 분개했다. 그러나 내가 출세하는 데 몹시 무지했다는 게 현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걸 모르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 십상이다. 나는 학부 시절에 면접 복장으로 전혀 적절하지 않은 해병대 전투화와 군복 바지를 입고 일자리를 구하려다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로스쿨에서도 매번 나를 도와준 이들이 없었더라면 학부 때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356-357쪽)
나는 예일 로스쿨 졸업생이고 명성 있는 『예일 로 저널』의 전 편집자이며 변호사 협회의 건실한 회원이었다. 두 달 전 어느 맑은 날에 켄터키 동부에서 우샤와 결혼식도 올렸다. 성을 밴스로 바꾸면서 마침내 나도 가족들과 같은 성을 갖게 됐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청운의 꿈을,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냈다. 최소한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신분 상승은 결코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닐뿐더러, 떠난 세상은 자꾸만 나를 다시 잡아끌려고 하게 마련이다. 엄마가 다시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378-379쪽)
나는 우리 힐빌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머니를 모욕한 사람을 찾아가 전기톱을 들이대는 사람들이다. 또 우리는 여동생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을 모욕한 놈의 입을 벌려 면 속옷을 욱여넣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는 브라이언 같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만큼 강한가? 나 같은 아이들이 세상을 등지기보다 맞서 일어서도록 힘을 실어줄 교회를 세울 만큼 강한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만큼 강한가? 공공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정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404-405쪽)
작가정보
저자 J. D. 밴스(J. D. Vance)는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가난한 애팔래치아 지역인 켄터키주 잭슨을 오가며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서 복무했고, 이후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거쳐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 「내셔널리뷰」의 기고자로 활동하며, 실리콘밸리에서 굴지의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내 우샤,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이다.
역자 김보람은 애팔래치아 산맥에 위치한 웨스트버지니아 산골 마을에서 1년간 지내며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네소타주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국내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대기업 전략기획팀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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