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급행열차
2018년 01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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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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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럽게 성공한 두 젊은 변호사가 유럽을 여행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들의 뒤틀린 욕망과 젊은 날의 치기를 읽는 이가 아연실색할 정도의 냉혹한 문장으로 묘사하며 저자가 이번 단편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표제작 《아메리칸 급행열차》, 사고를 당해 죽음을 앞둔 20분 동안 자신을 때려눕힌 삶을 반추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 애쓰는 제인 베어의 이야기를 담은 《20분》, 스러져가는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어느 중년 부인의 심리를 놀랍도록 정확하고 쓸쓸하게 그린 《황혼》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탕헤르 해변에서 19
20분 41
아메리칸 급행열차 55
이국의 해변 91
영화 121
잃어버린 아들들 147
애크닐로 165
황혼 179
부정의 방식 191
괴테아눔의 파괴 209
흙 233
옮긴이의 말 246
길은 어둡다. 그들은 밤으로 통하는 차의 지붕을 열었다. 밤하늘에 별이 빼곡하다. 그 별들이 차 안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뒷좌석에 앉은 니코는 겁이 난다. 잉게가 얘기를 한다. 그녀는 손을 뻗어 너무 느리게 가는 차들을 향해 경적을 울린다. 맬컴이 그걸 보고 웃는다. 바르셀로나에는 잉게가 남자 친구와 함께 타닥거리며 타는 따뜻한 불 앞에서 겨울 오후를 보내곤 하던 사적인 방들이 있다. 모피 담요 위에서 사랑을 나누곤 하던 집들이 있다. 물론 그때는 남자 친구가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잉게는 폴로 클럽에 대해서, 최고급 저택에서 열리는 디너파티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
-39쪽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옷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우스운 것은 그녀랑 계속 함께할 생각이었다는 점이었다.
“택시 잡아줄게요.” 그가 말했다.
“당신은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반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진이 빠진 상태로 전화번호를 찾았다. “택시 필요 없어요. 걸어서 갈래요.”
-70쪽
3년 내에 그의 경력은 끝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깜박거리는 텔레비전에서 보게 될 것이다. 마치 어떤 이상한 꿈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아파트 건물에 투자했고 스페인에 있는 땅을 소유했다. 그는 질투 많고 용서를 잘 안 하는 여자처럼 될 것이다. 어쩌면 어느 날 한 식당에서 아일스가 젊은 배우와 함께 앉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떤 생각에 대해 광적으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귀비는 서른일곱이었다. 그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을 영화 속의 한 순간이 있었다. 옅은 색조의 그의 포스터들은 점점 더 외진 건물의 벽면으로 밀려나고, 그를 닮은 모습은 흐릿해지고 그의 이름은 진부해진 채로 벽면에서 벗겨질 것이다. 그는 골목 저편의 시큼한 어둠을 향해 미소 지을 것이다. 멀리서 개들이 짖고 있었다. 거리에서 가난뱅이의 냄새가 났다.
-140쪽
키트 워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림츠마는 생각했다. 경험상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 부인들이 말하곤 했다. “그럼요. 남편에게서 당신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저는 당신 남편을 모르는데요.” 림츠마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불안한 순간.
“아니에요. 알 거예요. 같은 반이었지 않아요?”
-163쪽
그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별로 없다. 그에게는 뭔가 억압된 것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모종의 재능이 있는 청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항해를 시작해본 적이 없었다. 해안 근처에만 머물렀을 뿐이다. 키가 크고 근시인 아내는 코네티컷 출신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은행가였다. [오브 그리니치 앤 아바나Of Greenwich and Havana] 신문의 소식란에는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뉴욕의 한 은행의 지점장이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아바나가 전설적인 도시였고 백만장자들이 마지막 시가를 피운 후 자살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168~169쪽
처음 만났을 때 나일은 그녀를 정중한 사람으로 보았고 그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좀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일은 그것이 심하게 거리감을 두는 태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그런 태도가 여전히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진면목은 시골 소년처럼 옷을 벗는 모습 같은, 예기치 않은 단순한 행동에서 드러났다. 소파에 앉은 그녀의 한쪽 팔이 눈에 들어왔다. 짙게 드러난 긴 동맥이 팔오금에서 손목 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 도드라져 보이는 핏줄이 뛰지 않고 가만히 드러나 있었다.
-201쪽
제임스 설터의 두 번째 단편집, 펜/포크너 수상작
“정확한 문장”으로 쓴 열한 편의 소설
제임스 설터는 다른 작가에 비해 유난히도 글을 쓰는 속도가 느렸다. 장편과 단편소설을 포함하여 평생에 걸쳐 단 8권의 소설밖에 쓰지 않은 그는 글을 쓰는 데에는 “완전한 고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쟁을 겪고 사고로 딸을 잃은 그가 고독 속에서 응시해야만 했던 삶을 문장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설터를 일컬어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가슴을 깨뜨릴 수 있는” 작가라 평했는데, 이는 그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는 데도 얼마나 세심하게 공을 들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초대에 응하기 전에, 시체처럼 얼굴에 화장을 하고 설터의 식탁으로 가 앉기 전에, 우리는 먼저 각오해야 한다. 우리가 실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인지 인정할 각오,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들이 한낱 달리는 기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각오, 욕망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의 육체가 실은 일 초 일 초 무참히 늙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각오, 현재가 실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받아들일 각오.
-김숨(소설가)
제임스 설터의 세련되고 정교한 문장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학상 수상작
설터는 [파리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단편이란 어떠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첫 줄, 첫 문장, 첫 문단. 모든 게 우리를 끌어들여야 하고 기억할 만해야 하고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메리칸 급행열차』에는 표제작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포함하여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설터 특유의 건조하고 조금은 가혹한 문장으로 사랑하고 욕망하거나, 다가오는 죽음에 속수무책인 순간들을 그린다.
이를테면 「20분」에서 제인 베어는 사고를 당해 죽음을 앞둔 20분 동안 자신을 ‘때려눕힌’ 삶을 반추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 애쓰며, 「흙」의 노인 해리는 ‘끝내 누워 죽지 않으려는 동물’처럼 죽음에 성큼성큼 다가선다. 「부정의 방식」과 「괴테아눔의 파괴」에는 작가라는 삶에 시달리는 중압감과 함께 유명세와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표제작이자 설터 본인이 이번 단편집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밝힌 「아메리칸 급행열차」는 급작스럽게 성공한 두 젊은 변호사가 유럽을 여행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이들의 뒤틀린 욕망과 젊은 날의 치기를 읽는 이가 아연실색할 정도의 냉혹한 문장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또한 「황혼」에서는 스러져가는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어느 중년 부인의 심리를 놀랍도록 정확하고 쓸쓸하게 그린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왔을 때 프랭크가 에다에게 그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그녀는 즉시 이해했다. 싫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앨런은 바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달착지근한 리큐어를 마셨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웠다. 머리 위에 있는 호텔, 호텔의 복도, 조용한 방들, 이것들이 그거 말고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하겠는가?
-87~88쪽, 「아메리칸 급행열차」
『아메리칸 급행열차』의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층위의 인간상을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의 일관된 구성과 흐름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인류가 공유하는 삶에 짙게 밴 어떤 상투성,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낯섦을 설터가 예리하게 간파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시간이었다. 때때로 그녀는 바다 쪽을 바라보며 아들 생각을 했다. 그 일은 오래전에 그 소리와 더불어 일어났다. 이제 그녀는 날마다 그 생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뇌리에서 아주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그들의 말이 옳았다.
-187쪽, 「황혼」
빈번히 훼손되는 소설 속의 인물들
영웅적 행위란 삶을 똑바로 보는 일
그러나 그런 낯선 기분, 낯섦이 바로 설터 문학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의 소설은 우리가 기대하는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기 일쑤여서 우리의 관습적인 독서를 끊임없이 방해한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와 플롯과 문장은 그거 말고 이걸 보라고, 그렇게 보지 말고 이런 식으로 보라고, 그 생각은 허위일지 모르니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자꾸 딴지를 거는 것만 같다.
-248쪽, 「옮긴이의 말」
설터는 섬뜩하게 빛나는 정교한 문장들로 우리가 ‘꾸며낸’ 삶의 거짓과 허위를 기어이 벗겨내고 만다. 그는 우리가 눈감고 외면했던, 고개를 돌리며 괜찮은 척하려 했던 순간들을 끝내 똑바로 보게 만든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자꾸 어딘가로 숨고만 싶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숨지 못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작가이자 편집자인 필립 구레비치는 “설터는 부단히 단편소설의 형식을 새롭게 한다”라고 말하고 “그의 작중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사는 세상은 빈번히 훼손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영웅적 행위를 믿는 작가다”라며 우리가 결국 설터의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설터가 믿은 영웅적 행위는 결국 자신의 삶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사는 게 무서워 뒤로 숨지 않는 일, 허리를 꼿꼿이 펴고 훼손된 삶을, 부서지는 시간을 견뎌내는 일. 그것이 설터가 본 영웅적 행위이자 곧 우리네의 모습이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도와줘요,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누군가 올 것이다. 와야 했다. 그녀는 겁을 집어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삶은 우릴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 아버지는 단 하나의 좋은 점만을 인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버지가 듣는다면, 당신의 딸은 단지 거기 누워 있을 뿐이라는 말만 들을 것이다. 그녀는 집에 가려고 노력해야 했다. 아주 조금밖에 가지 못하더라도. 몇 야드밖에 가지 못하더라도.
-50쪽, 「20분
작가정보
저자 제임스 설터는 미국 소설가. 1925년 뉴저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수많은 전투에 참전, 비행 중대장까지 지냈다. 한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집필한 『사냥꾼들』(1956)을 출간하면서 전역, 전업 작가로 데뷔했다. 1967년 『스포츠와 여가』로 “사실적 에로티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한동안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해 영화 [다운힐 레이서Downhill Racer](1969)와 [약속The Appointment](1969)의 시나리오를 썼고, [세 타인들Three](1969)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1975년 『가벼운 나날』을 발표해 큰 호평을 받았다. 리처드 포드는 서문에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오늘날 미국 최고의 문장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다”라고 썼고, 줌파 라히리는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라고 말했다. 1988년 펴낸 단편집 『아메리칸 급행열차Dusk and Other Stories』로 이듬해 펜/포크너상을 받았으며, 시집 『스틸 서치Still Such』(1988), 회고록 『불타는 시절Burning the Days』(1997)을 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단편집 『어젯밤』(2005)을 발표해 “삶이라는 터질 듯한 혼돈을 누구도 설터처럼 그려내지 못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밖의 작품으로 소설 『암 오브 플레시The Arm of Flesh』(1961, 2000년 개정판은 『캐사다Cassada』), 『솔로 페이스Solo Faces』(1979), 여행기 『그때 그곳에서』(2005), 부부가 함께 쓴 에세이 『위대한 한 스푼Life is Meals』(2006) 등이 있다. 2013년 장편소설 『올 댓 이즈』를 발표해 “더없을 위업” “설터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등 수많은 극찬을 받았다.
2012년 펜/포크너 재단이 뛰어난 단편 작가에게 수여하는 펜/맬러머드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예일대에서 제정한 윈덤캠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2015년 6월, 뉴욕 주 새그하버에서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서창렬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보르헤스의 말』 『축복받은 집』 『저지대』 『밤에 들린 목소리들』 『그레이엄 그린』 『에브리데이』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토미노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제3의 바이러스』 『암스테르담』 『촘스키』 『벡터』 『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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