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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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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9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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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23MB)
ISBN 9788960518094
쪽수 6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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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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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베스트셀러 《인간의 품격》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
고통의 시대에 ‘함께 살기’의 가치를 일깨우다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두 번째 산』. 《인간의 품격》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우리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정립한다고 말한다. 삶의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익히려면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개인의 행복, 독립성,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가치를 넘어 도덕적 기쁨, 상호 의존성, 관계성을 회복할 때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자아의 욕구를 채우고 주류 문화를 따랐다면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와 문화에 반기를 든다. 이들은 자기 욕구의 수준을 한층 높여 진정으로 바랄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바라기 시작한다. 세상은 이들에게 독립(independence), 개인적 자유, 세속적 성공을 바랄 것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상호 의존(interdependence), 이타적 헌신, 정신적 기쁨으로 시선을 돌린다(16~17쪽). 고통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자신의 동기 부여를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타인중심적인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28쪽)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회가 오로지 이기적인 관심사로만 지탱될 때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분리되고 고립된다. 바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줄곧 벌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33쪽) . 인생의 여러 문제, 즉 고독과 소외, 가치와 의미의 상실, 공동체의 부재 등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외롭게 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으로 이른바 부족주의(tribalism)가 창궐하여 각각의 정치적 부족들 사이에서 타협 없는 생존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560쪽). 삶이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임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개인주의 세계관으로 자아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면, 두 번째 산은 관계주의 세계관으로 인간관계와 헌신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 즉 우리는 인간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인간관계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또 인간관계를 동경한다는 진실을 명료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생은 “외로운 여정”이 아닌 “함께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애착에 의해 형성되며 또 거꾸로 애착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또한 “인생은 후손에게 선물을 물려주는 세대 간의 위대한 사슬이다.
추천의 말
서문 인생의 두 번째 산을 오른다는 것

PART 1 두 개의 산
CHAPTER 1 가장 바람직한 삶은 어떤 삶인가
CHAPTER 2 인생은 단지 경험의 연속이 아니다
CHAPTER 3 경쟁은 영혼의 나태함을 부추긴다
CHAPTER 4 고통은 때로 지혜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CHAPTER 5 자기 인생에 귀 기울인다는 것
CHAPTER 6 새로운 인생은 행복한 추락 뒤에 온다
CHAPTER 7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깊은 헌신
CHAPTER 8 인생의 계곡을 지나 두 번째 산으로

네 가지 헌신의 결단

PART 2 직업에 대하여
CHAPTER 9 소명으로서 직업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CHAPTER 10 아름답고 경이로운 깨달음의 순간
CHAPTER 11 멘토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CHAPTER 12 심장을 깨우고 영혼을 자극하는 일
CHAPTER 13 천직을 찾아 통달의 경지로 나아가라

PART 3 결혼에 대하여
CHAPTER 14 두 사람이 함께 수행하는 희망의 혁명
CHAPTER 15 친밀함이 꽃피는 여러 단계들
CHAPTER 16 친밀함이 무르익는 여러 단계들
CHAPTER 17 결혼 전에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들
CHAPTER 18 결혼은 함께 만들어 가는 학교이다

PART 4 철학과 신앙에 대하여
CHAPTER 19 최고의 교육은 최상의 욕구를 가르친다
CHAPTER 20 한 줄기 빛처럼 스며드는 신비로운 경험
CHAPTER 21 나는 어떻게 신앙에 이르게 되었는가
CHAPTER 22 겸손함과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PART 5 공동체에 대하여
CHAPTER 23 공동체의 회복은 매우 느리고 복잡하다
CHAPTER 24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공생하는 것

결론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로
감사의 말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은 언제 드러나는가?
계곡에 떨어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시기는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이 사실은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이 노출되고 만다. 자기가 겉으로 내걸고 다니던 여러 모습들이 실제 자신이 아님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고통에 맞닥뜨리면 움츠러든다. 이들은 평균 이상으로 더 두려워하고 분개하는 듯이 보인다. 이들은 겁에 질려 자신의 깊은 내면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인생이 갈수록 더 쪼그라들고 더 외로워진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노인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이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한 채, 오래전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잘못된 일을 놓고 끊임없이 화를 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계곡이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가 된다. 고통의 시절은 일상이 피상적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방해해서, 자신의 좀 더 깊은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기질 깊숙한 곳에 보살핌의 본질적인 어떤 능력, 즉 자아를 초월해서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어떤 열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열망에 맞닥뜨릴 때 이 사람들은 전인적인 인간(whole person)이 될 준비가 완료된 상태이다. 이들은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현실 속 실천으로. 사람들의 인생은 가장 큰 역경의 순간에 자기가 대응한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규정된다.(15~16쪽)

지금 몇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려면
자신이 지금 첫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아니면 두 번째 산을 오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소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 내면에 있는 자아인가, 아니면 당신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인가?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은 첫 번째 산을 오르는 방식과 전혀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정복한다. ‘나’가 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다. 정상이 어디인지 멀리서 확인하고는 그곳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간다. 그런데 두 번째 산은 다르다. 두 번째 산이 ‘나’를 정복한다. 나는 어떤 소명에 굴복한다. 그리고 그 소명에 응답해, 내 앞에 놓여 있는 어떤 부당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야심을 품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며 독립심을 발휘하지만, 두 번째 산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친밀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21~22쪽)

경험을 쌓는다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가?
심미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 하루하루가 즐겁긴 하겠지만, 무언가가 의미 있게 축적되지는 않는다. 이런 삶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사람은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일련의 연속적인 모험으로만 살아간다면,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과 쉽게 바뀌는 열정이라는 불확정성 속에서 정처 없이 배회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럴 경우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떤 성취를 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일시적인 순간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가 가진 힘을 무작위로 온 사방에다 흩뿌리며 낭비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소중한 무언가를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휩싸인다. 이 사람의 가능성은 끝이 없을지 몰라도, 의사 결정 풍경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밋밋하다. (…)
인간이 가지고 있는 천성적인 열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킨다. 그렇지만 당신이 어떤 것에도 영원히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 어떤 것에도 깊이 빠져들지 못할 것이다. 헌신하는 인생은 소수의 소중한 “예”를 위해 수천 번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
스마트폰 시대에는 어떤 거래나 인간관계를 맺거나 깨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 마찰 비용이 0에 가까워진다. 인터넷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클릭해서 시험적으로 사용해 보라고 권한다. 온라인에서 산다는 것은 흔히 전환 상태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실질적으로 어떤 것에도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 온라인 인생은 헌신의 결단과 몰두를 가로막는 온갖 장치들과 기기들로 가득 차 있다. 만일 당신이 30초 동안만이라도 주의를 집중할 수 없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인생을 위해 무언가를 수행하고 헌신할 수 있겠는가?(83~84쪽)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
텔로스telos(목적) 위기에 빠진 사람은 자기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을 살아갈 ‘이유(why)’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how)’이든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여정에서 만나는 온갖 고난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기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작은 고난에도 쓰러져 버린다. (…)
내 경험으로 볼 때 텔로스 위기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걷는 형태, 하나는 잠자는 형태이다. 걷는 형태에서는 고통당하는 사람이 그저 계속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충격을 받거나 깊은 권태감에 시달리는 상태이지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야 옳은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자기가 하고 있던 것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똑같은 일거리,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상, 똑같은 인생…. 이 사람은 자기가 안주하고 있다는 심리적 자각과 함께 살아간다. (…)
텔로스 위기의 두 번째 유형은 잠자는 것이다. 이 경우에 고통받는 사람은 그냥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며 넷플릭스 드라마만 본다. 이 사람의 자신감은 바닥이 났다. 이 사람은 자동 초점 설정에 의해 마비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 버렸고 자기 인생이 자기를 이미 스쳐 지나가 버렸다는 전혀 입증되지 않은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거둔 성취가 그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남들의 빠른(정확하게는 빨라 보이는) 출세와 자신의 무기력한 처지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그 고통은 더욱 깊어진다.(102~103쪽)

신은 믿지 않아도 영혼의 존재는 믿어라
의식의 또 다른 부분은 영혼이다. 당신에게 신을 믿거나 믿지 말라고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작가이지 선교사가 아니다. 선교는 내 전공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도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믿으라는 말은 분명히 하고 싶다. (…)
영혼은 도덕적 가치를 품고 있으며 도덕적 의무를 감당하는 당신 의식의 한 부분이다. 어떤 강이 있다. 이 강은 자기가 흘러가는 것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 호랑이도 자기가 잡아먹는 다른 동물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가 하는 행위 또는 하지 않는 행위에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
영혼은 도덕 의식과 윤리 감각의 못자리이다. C. S. 루이스가 말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나라에서건 전투 현장에서 달아난 탈영병이나 고마운 사람을 배신한 사람이 칭송받은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어떤 동물이 자기장에 의지해 방향을 잡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이런 도덕 감각들에 의지해 자기 행위의 방향을 잡는다. (…)
영혼이 주로 하는 것은 동경(yearn)이다. 심장이 다른 사람 또는 어떤 대의와 하나로 녹아들기를 갈망한다면, 영혼은 올바름을 동경하고 선한 것과 하나로 녹아들기를 동경한다. 소크라테스는 인생의 목적은 자기 영혼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 즉 영혼이 동경하는 선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선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했다. 자기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목적과 의미를 경험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낀다. 심지어 범죄자나 소시오패스조차 자기가 저지른 악행이 실은 알고 보면 선한 행위라거나 적어도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라는 변명을 만들어 낸다. 자기가 철저하게 악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131~133쪽)

두 번째 산에서는 어떤 인생을 추구하는가?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힘쓰라고 말하지만,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와 도덕적 기쁨을 추구하는 데 힘을 더 쓴다. 개인주의는 독립성을 찬양하라고 말하지만,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상호 의존성을 찬양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 있는 기회를 찬양하고 그들이 자기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을 찬양한다. 개인주의는 자율성을 찬양하지만, 두 번째 산은 관계성을 찬양한다. 개인주의는 적극적인 목소리로 말하며(설교하기, 주장하기) 결코 수동적인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의 반란은 귀 기울여 듣고 응답하고자 한다. 주고받는 친밀한 목소리로 소통한다.
개인주의는 세속적인 세상, 즉 커리어 선택과 세속적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번성한다. 두 번째 산의 정신은, 세속적인 세상은 마법에 걸린 세상이자 도덕적, 감정적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한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용인하고 표방하지만, 두 번째 산의 정신은 사리사욕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관은 인간의 모든 진폭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개인적인 이기심으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또 이기심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행동도 할 수 있다. 개인주의는 인생의 주된 행위는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인생의 주된 행동은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 수준의 인간은 선물을 주는 사람이다.
개인주의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의 정신은 사랑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하며, 또 자기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적극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에서는 각자가 개인적인 선택을 하고 또 여러 선택지들을 계솔 열어둔다. 두 번째 산은 약속이 넘쳐 나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헌신하고,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는 것이다.(141~142쪽)

파편화된 삶에서 통합된 삶으로 나아가려면
힐레숨처럼 완벽하게 개인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동체 활동가들처럼 자기를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하나의 모범이 된다. 그들이 모범이 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인생의 한 가지 과제는 통합이다’라는 핵심을 그들이 입증한다는 점이다. 통합이란 단일한 어떤 전망을 향해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파편 난 조각들을 모두 모아서 온전한 하나로 엮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파편화된 삶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낮은 수준에서만 통합을 이룬다. 그런데 힐레숨은 매우 높은 수준에서 통합을 이루었다. 인생의 외부 조건들이 극단적으로 참혹하게 바뀌어 갔지만 그녀의 내면 상태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평온해졌다.
그녀가 통합을 획득한 방식은 자기 천착이라는 끊임없는 내적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온전하게 내려놓고 또 내어 주는 외적 과정을 통해서였다.(192~193쪽)

인생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다. 프랑클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는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해야 할까?” “나를 행복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같은 커리어 관점의 질문은 적절한 질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가 깨달은 진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생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클은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정신과 의사에게는 고통을 연구하고 또 그것을 누그러뜨릴 의무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인생에서 기대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출 필요가 있었다. 대신에 스스로를 매일 매시간 인생으로부터 질문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답은 대화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이어야 한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인생이 던지는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찾고 인생이 각 개인에게 끊임없이 부여하는 과제들을 수행하는 의무를 지는 것이다.”
소명 의식은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프랑클은 강제 수용소에서 심리 치료사 일을 수행하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세상이 여전히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상기시켰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추구할 목적과 의무가 있었다.(205~206쪽)

멘토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들
멘토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과 높은 기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 채 자신이 진지하게 바라보는 무언가를 위해서는 가차 없는 요구를 해댄다. 우리는 자신이 쉽고 편한 것을 바란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그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어떤 소명을 갈망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
멘토는 탁월한 어떤 것을 멘티 앞에 제시함으로써 멘티에게서 겸손함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멘토는 과업에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멘티에게 가르친다. 자연스러운 방법은 어떤 행위의 한가운데로 스스로를 던져 넣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는 질문은 딱 한 번만 하면 좋다. 이 질문을 늘 입에 달고 다닌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야구 경기에서 어떻게 하면 공을 잘 던질지를 놓고 골몰하는 투수는 공을 잘 던질 수 없다. 공을 던져야 한다는 과업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
멘토는 또한 실수를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경험을 많이 할수록 자기 실수를 한층 더 잘 인식하게 되고 또 이 실수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멘토는 두 번, 네 번, 열 번 원고를 고쳐 쓰는 것에 대한 감각을 멘티에게 제공한다.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 어떤 실수든 나중에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과 그런 실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신감을 가지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준다.(227~228쪽)

무엇이 나의 가장 깊은 욕구를 건드리는가?
그는 여전히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 욕구들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고 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귀감이다. 내 주변에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내 인생이 나에게 준비시킨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나란히 손잡고 갈 수 있을까? (…)
이것은 커리어 개발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이 나의 가장 깊은 욕구를 건드리는가?” 그리고 “어떤 활동이 나에게 가장 깊은 만족을 안겨 주는가?”라고 묻는다. 둘째, 이것은 딱 들어맞는 어떤 것을 찾는 문제이다. 직업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크거나 가장 화려한 문제를 찾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기분 좋은 활동과 사회적 필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내면의 여행과 같은 것이다. 내면으로는 추락하고 바깥으로는 확장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어떤 장소를 찾는 것, 작가이자 신학자인 프레더릭 비크너가 한 유명한 말처럼, 자신의 깊은 기쁨이 이 세상의 깊은 갈망과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을 찾는 것이다.(259~260쪽)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이 보기에 오늘날 결혼은 토대로 사용되는 쐐기돌보다는 장식물 기능을 가진 갓돌로 인식되고 있다. 예전에는 먼저 결혼부터 해야 좋은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자제력과 건실함을 갖춘 사람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자기부터 먼저 자리를 잡은 다음에 결혼을 하겠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늘 그렇듯이 개인주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한 가지는 개인이 ‘자기’라는 작은 감옥에 갇혀 버린다는 점이다. 자아실현을 좇아서 결혼한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결혼 생활 그리고 특히 자녀 양육은 이 사람이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는 길로 온전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벗어나도록 끝까지 방해할 테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관점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이 가장 깊은 갈망들을 충족할 명쾌한 답안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장(heart)은 다른 사람들과 합쳐져서 하나로 녹아들길 갈망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서로의 자율성을 합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가 자기를 버릴 때만 해결된다. 영혼(soul)은 어떤 이상을 좇고 기쁨을 추구하길 갈망한다. 이것은 자아를 초월해서 결혼 생활에 봉사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295~296쪽)

배우지 않으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시카고대학교 교수들은 우리에게 대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현실의 실체를 보는 것이 간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냥 고개를 들고 세상을 둘러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치권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파성이라는 왜곡된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공포와 불안과 자아도취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지 모른다.
대상을 잘 보는 건 자연적으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겸손함의 어떤 행위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즉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나 자기가 바라는 것에서 온전하게 빠져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보고자 하는 대상을 자기 관심사의 반영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잘 보는 것은 실체를 선명하게 바라볼 줄 아는 다른 사람들(예컨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지 엘리엇, 조지 오웰, 제인 제이콥스, 제임스 볼드윈, 레프 톨스토이 등)에게서 배워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다.
19세기 영국의 예술평론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이렇게 썼다. “인간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어떤 것을 ‘보고’ 또 이렇게 ‘본’ 것을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수백 명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며,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수천 명이라면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다.”(385~386쪽)

공동체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때
고통의 시기에는 누구나 자기 인생이 나아가는 방향을 어떻게든 바로잡아 보려고 핸들을 잡은 손에 과도하게 힘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핸들을 놓아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헨리 나우웬도 다음과 같이 썼다.
“자기가 받는 고통의 특수한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쉽게 화를 내고 적개심을 품고 복수심에 사로잡힌다. (…) 그러나 진정한 치유는 자기의 특수한 고통이 사실은 인간 전체가 겪는 고통의 일부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 자신의 고통을 유발한 외부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하고 자기가 참여하는 공동체의 고통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을 때 자기가 받는 고통을 견디기가 한결 쉬워진다.”
고통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은 분명하게 표현될 수 있지만, 고통의 경로를 견뎌 내지 않은 사람은 그 지식을 결코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내가 그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빈손이 아니었다. 인생이 나를 가혹하게 두들겨 팼기에 비로소 나는 무언가에 감동받기 충분할 정도로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고통은 나 자신의 가장 깊은 원천들을 열어젖혔고, 덕분에 새로운 성장이 이루어질 신선하고 건강한 토양이 드러났다.(444~445쪽)

신앙인이라면 겸손함과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라
신앙인은 겸손한 존경심을 가지고 신에게 다가가며, 공부와 기도와 영적인 훈련을 통해 티끌만 할지라도 신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은 신의 사랑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며 사는 법을 서서히 배운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의지로 채워진 어떤 시도가 아니며, 또한 완전한 항복과 자기 파괴도 아니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열정적인 반응이다. 그것은 참여, 신의 더 큰 의지에 자기의 의지를 보태는 복잡한 참여이다.
피터슨이 말하듯이, 그것은 능동적인 목소리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것이 지배이다)도 아니고 수동적인 목소리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것은 굴복이다)도 아니다. 그것은 중간의 목소리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즉 대화와 반응이다. (…)
신앙과 은총은 주체성을 버리는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신앙과 은총은 주체성을 강화하고 그것에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은총이 넘칠 때, 은총은 우리가 바랄 더 좋은 대상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또 그런 것들을 바랄 수 있는 더 많은 힘을 우리에게 준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예전에 가지고 있던 욕구들을 버리고서 새롭고 더 나은 일련의 욕구들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487~488쪽)

공동체의 미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진영의 전쟁
미국 사회의 토대, 즉 국가와 시장을 비롯해 모든 것이 의존하는 신뢰와 인간관계 그리고 헌신의 망이 무너지고 있다. 이에 따른 결과는 그 어떤 전쟁 못지않게 유혈이 낭자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어쩌면 지금이 이런 현상을 하나의 전쟁으로 보기 시작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한쪽 진영에는 분리와 불화와 고립을 조장하는 힘들이 있고, 다른 쪽 진영에는 애착과 연결과 연대를 강화하는 사회의 모든 힘들이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사회적 얼개를 찢으려는 진영과 이 얼개를 강화하려는 진영 사이의 마지막 대결전을 목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전쟁에는 특별히 까다로운 점이 있다. 이것은 선량한 사람들의 집단과 사악한 사람들의 집단이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전쟁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 진영에 동시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
관심과 보살핌이 부족할 때 이웃이라는 집단은 쉽게 깨지고 그 구성원들 역시 파편화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이웃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신뢰의 물길은 바짝 말라 버린다.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가깝게 의지할 사람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다들 소속감을 갈망한다. 그러나 이 소속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분명하지 않다. (…) 관심과 보살핌은 소원함과 불신으로 이미 대체되고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두 번째 산에 사는 사람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동체는 복원된다.(510~512쪽)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또 다른 길
지금 세상은 전환의 순간을 통과하고 있다. 개인주의 도덕 생태계가 우리 주변에서 무너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외롭게 떨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본능적인 반응은 “부족으로 돌아가자(Revert to Tribe)”라는 진화론적 반응이다. 만일 우리가 사회 차원에서 “나는 자유다”의 과잉에 대해 “부족으로 돌아가자”의 시대로 대응한다면, 21세기는 유아적인 갈등과 폭력의 시대가 될 것이다.
소속감을 찾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의미와 목적을 찾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건강한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전망이 있다. 바로 관계주의를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은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나 아닌 타인을 돌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찾아내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쪽으로 자기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선언문에서 나는 현시점의 초개인주의에 반대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인 관계주의를 주장하고자 한다.(560쪽)

ㆍ “나는 브룩스를 읽고 삶의 균형을 찾았다.” _빌 게이츠
ㆍ 《인간의 품격》 《소셜 애니멀》 《보보스》 데이비드 브룩스 신작
ㆍ 아마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ㆍ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퍼블리셔스위클리》 강력 추천
ㆍ 허지웅, 이다혜, 남궁인, 신기율 강력 추천

누구에게나 고통의 시기는 찾아온다. 삶의 위기가 닥쳤을 때 인생은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부와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위안과 회복이 되어 주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에 맞닥뜨리면 과도하게 움츠러든다. 이들은 겁에 질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하여 인생이 갈수록 더 쪼그라들고 더 외로워진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용기를 내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 고통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사람들의 인생은 가장 큰 역경의 순간에 자기가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규정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에서 우리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정립한다고 말한다. 삶의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익히려면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개인의 행복, 독립성,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가치를 넘어 도덕적 기쁨, 상호 의존성, 관계성을 회복할 때라고 주장한다. 지난 60년간 앞의 가치들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결과,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끊어지며 외로움은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삶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발견과 성장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훨씬 더 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의 무게 중심이 개인주의라는 첫 번째 산에서 관계주의라는 두 번째 산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
누구에게나 고통의 시기는 찾아온다. 고통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고 기약 없는 구직자 신세로 내몰린다. 어떤 사람은 심장마비, 암, 뇌졸중 등으로 쓰러진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극심한 슬픔을 겪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고통이 극적인 위기가 아니라 무기력, 우울증, 번아웃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위기로 다가온다. 삶의 위기가 닥쳤을 때 인생은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부와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위안과 회복이 되어 주진 않는다(99~100쪽).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에 맞닥뜨리면 과도하게 움츠러든다. 이들은 겁에 질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슬픔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리하여 인생이 갈수록 더 쪼그라들고 더 외로워진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용기를 내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이 고통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로 삼는다. “사람들의 인생은 가장 큰 역경의 순간에 자기가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규정된다.”(16쪽)
세계적 베스트셀러 《인간의 품격》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에서 우리는 고통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의 태도를 다시 정립한다고 말한다. 삶의 고통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익히려면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혼의 고통 때문에 “외로웠고 굴욕감에 시달렸으며 목표를 잃고 떠돌았다”(444쪽)고 고백한다. 또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개인주의라는 덫에 걸려 “사람보다는 시간을, 인간관계보다는 생산성을 중시”(30쪽)하며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토로한다.
저자는 이제 우리가 개인의 행복, 독립성,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가치를 넘어 도덕적 기쁨, 상호 의존성, 관계성을 회복할 때라고 주장한다. 지난 60년간 앞의 가치들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결과,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끊어지며 외로움은 확산되었다”(74쪽)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으로 부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삶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자기 발견과 성장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훨씬 더 큰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적 패러다임의 무게 중심이 개인주의라는 첫 번째 산에서 관계주의라는 두 번째 산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29쪽).

두 번째 산을 오른다는 것
저자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첫 번째 산에서 우리 모두는 특정한 인생 과업을 수행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 등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평판 관리에 신경 쓰며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이라고 여긴다. 또한 좋은 집, 화목한 가정, 멋진 휴가, 맛있는 음식, 좋은 친구들처럼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규정하는 통상적인 목표를 추종한다(14쪽).
그러다가 문득 무슨 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라 성공을 맛보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이게 내가 바라던 전부인가?’ 또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호된 실패의 시련을 겪으며 나가떨어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 예기치 않게 옆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알고 보니 인생은 다른 모습, 한층 더 실망스러운 모습을 감추고 있음을 깨닫는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 사람들은 더는 산 위에 있지 않다. “이들은 모두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맨다.”(15쪽)
두 번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 계곡을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계기”(16쪽)로 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계곡은 고통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통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똑똑히 바라볼 때, 그렇게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성공이 아닌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고뇌의 계곡에서 사막의 정화를 거쳐 통찰의 산봉우리에 이르는 것이다(117쪽).
첫 번째 산에서는 자아의 욕구를 채우고 주류 문화를 따랐다면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와 문화에 반기를 든다. 이들은 자기 욕구의 수준을 한층 높여 진정으로 바랄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바라기 시작한다. 세상은 이들에게 독립(independence), 개인적 자유, 세속적 성공을 바랄 것을 요구하지만, 이들은 상호 의존(interdependence), 이타적 헌신, 정신적 기쁨으로 시선을 돌린다(16~17쪽). 고통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자신의 동기 부여를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타인중심적인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좋은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의 부산물”(28쪽)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21쪽)

어떤 사회가 오로지 이기적인 관심사로만 지탱될 때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분리되고 고립된다. 바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줄곧 벌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33쪽) . 인생의 여러 문제, 즉 고독과 소외, 가치와 의미의 상실, 공동체의 부재 등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외롭게 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으로 이른바 부족주의(tribalism)가 창궐하여 각각의 정치적 부족들 사이에서 타협 없는 생존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560쪽). 삶이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임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빈 상자뿐인 인생의 교훈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자유, 가능성, 진정성, 자율성이라는 아주 커다란 빈 상자를 건네준다. 한마디로 “너희 바깥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기준에도 얽매이지 말고 너희 스스로 그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확실성’이라는 형체 없는 사막에서 버둥대며 몸부림친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나침반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양동이에 모래를 퍼 담아서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붓기까지 한다.”(78쪽)

“‘나는 자유다’라는 문화 속에서 개인들은 외로우며 서로에게서 느끼는 애착은 느슨하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의 결속은 끊어지며 외로움은 확산된다. 이 상황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사랑과 연결을 바라는 깊은 인간적 갈망을 채우는 것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모든 연령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청년들은 더 그렇다. 이들은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불확실하기만 한 세상에 던져진다. 믿고 의지할 권위나 방호책도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 인생 여정에 올려놓는 일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74쪽)

이것은 일종의 텔로스(telos) 즉 목적의 위기이다. 텔로스 위기에 빠진 사람은 자기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철학자 니체가 말했듯이 인생을 살아갈 ‘이유(why)’가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how)’이든 견딜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주 작은 고난에도 쓰러져 버린다. 저자가 보기에 텔로스 위기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깊은 권태감에 시달리는 삶이며, 하나는 패배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 삶이다(102~103쪽). 그 결과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점점 더 소원한 관계로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된다(105쪽).
인생의 목적과 공동체적 유대감이 사라진 사회에서 만연하는 것은 외로움과 불신, 무의미와 혐오 감정 등이다. 예컨대, 45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 35퍼센트는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106쪽). 또한 1940년대 미국인의 약 60퍼센트는 자기 이웃을 신뢰한다고 응답했지만, 지금은 32퍼센트이며 밀레니얼 세대만 떼어 놓고 보면 겨우 1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108쪽). 그뿐만이 아니다. 스탠퍼드대 교육학 교수 윌리엄 데이먼은 저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서 젊은이들 가운데 오로지 20퍼센트만이 인생의 목적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109쪽). 또한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인 광신도들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전선을 긋고 ‘죽느냐 죽이느냐’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112쪽).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당파성은 어떤 정당이 더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과 저주받아야 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인종, 지역, 종교, 집단, 가족 같은 다른 애착 요소들이 시들어 버리고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당파성으로 자기의 공허함을 채운다. 이것은 정치가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정치에 요구한다. 정치가 인종적, 도덕적 정체성이 되고 나면 타협이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타협은 불명예가 되기 때문이다. (…) 이러한 부족주의는 애착 관계에서 분리된 개인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112쪽)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사회 전체도 고통의 계곡에 떨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도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좋은 사회’로 올라가거나 ‘나쁜 사회’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인생’과 ‘좋은 사회’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579쪽). 우리는 홀로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으며 ‘좋은 사회’ 역시 나 홀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바로 ‘인간관계’이다(505쪽). 개인과 사회 전체가 인간관계를 두텁게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회복의 첫걸음은?
우리는 대부분 인생을 살면서 네 가지 커다란 헌신의 결단을 한다. 직업에 대해, 배우자와 가족에 대해, 철학과 신앙에 대해. 그리고 공동체에 대해. 우리는 이 헌신의 결단들이 제각기 다르다고 여기지만,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헌신을 실천하는 과정은 모두 비슷하다. “맹세를 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선택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또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경사면을 따라서 두려움 없이 직하강하는 스키 선수처럼 질주하는 것이 그렇다.”(143쪽)
헌신의 결단은 ‘계약’과 다르다.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현재 관심사나 이해관계에 맞춰서 계약 내용을 조정할 뿐이다. 이에 비해 헌신은 우리를 예전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거나 완전히 새로운 인간관계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이다. 그냥 어른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고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이다. 헌신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의 미래 자아를 특정한 의무에 묶어 둔다(147쪽).

“계약은 ‘거래’이다. 약속은 ‘관계’이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계약은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고 약속은 정체성이 걸린 것이다. 너와 내가 합쳐져서 ‘우리’가 되는 문제이다. 거래가 ‘이득’을 가져다주고 약속이 ‘변화’를 가져다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147쪽)

헌신은 비록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정신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헌신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준다. 저자에 따르면 정체성과 목적의식은 혼자서는 형성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는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150~151쪽)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의 관심을 더 나은 욕구로 돌려놓을 수 있을 때만 나쁜 욕구들을 억누를 수 있다. “깊은 헌신의 삶을 살아갈 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구분이 사라지기 시작”(153쪽)한다.
공동체 회복은 이런 헌신에서 시작된다. 관심과 보살핌이 부족할 때 이웃이라는 집단은 쉽게 깨지고 구성원들 역시 파편화된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신뢰의 물길은 바짝 말라 버린다(513쪽).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며 살기로 결단할 때,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두 번째 산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 이 공동체는 회복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느리고 복잡”하지만,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의 전환만이 “건강한 공동체”, 즉 “인간관계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하나의 체계(시스템)”(505쪽)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로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주장의 핵심은 우리는 지금까지 개인주의 세계관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강조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라고 생각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를 갈가리 찢어 버렸고, 사회에 분열과 부족주의가 팽배하게 만들었으며, 개인적인 지위와 자족의 원리를 숭배하게 되었고, 또 각 개인의 심장과 영혼 속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559쪽)

첫 번째 산이 개인주의 세계관으로 자아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면, 두 번째 산은 관계주의 세계관으로 인간관계와 헌신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 즉 우리는 인간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인간관계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또 인간관계를 동경한다는 진실을 명료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생은 “외로운 여정”이 아닌 “함께 집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애착에 의해 형성되며 또 거꾸로 애착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또한 “인생은 후손에게 선물을 물려주는 세대 간의 위대한 사슬이다.”(565쪽)

“어른으로서 사는 최고의 인생은 직업에, 가족에, 철학이나 신앙에, 공동체에 헌신하고 또 그 헌신을 계속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어른으로 사는 인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고 또 그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은 서로에게 조건 없는 선물을 주는 데 있다.”(566쪽)

저자에 따르면 “관계주의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중간 방식”이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모든 연대와 결속에서 분리하고, 집단주의는 개인을 집단 속에 묻어서 지워 버린다. 그러나 관계주의는 “각 개인을 따뜻한 헌신의 두텁고 매혹적인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연결점으로 본다.”(566쪽) 또한 관계주의는 순전히 의지력만으로 인생을 지배하려고 들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핸들을 꽉 움켜쥐고서 자기 인생을 빈틈없이 계획하려고 한다면, 관계주의는 자기 자신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자기 자신을 활짝 열어 놓았기 때문에 어떤 소명을 듣고 거기에 응답할 수 있다.”(571쪽) 마지막으로 관계주의는 ‘좋은 인생’과 ‘좋은 사회’를 잇는 유일한 연결점이다.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난다. 당신이 손을 뻗어서 공동체 건설에 힘을 보탤 때 이 행동은 당신을 풍요롭게 만든다.”(578쪽)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풍자적인 문체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온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뉴스위크》와 《애틀랜틱먼슬리》의 객원편집자이자 NPR의 시사 프로그램 〈올 싱스 컨시더드All Things Considered〉와 PBS의 〈짐 레러의 뉴스아워The NewsHour with Jim Lehrer〉에서 시사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시카고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시티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9년 동안 근무하며 유럽 특파원과 수석 기자를 지냈고,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장을 역임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뉴리퍼블릭》 《코멘터리》 등 유수의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해 왔다. 대표 저작으로 내면의 결함을 딛고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탐구한 《인간의 품격》을 비롯해 《소셜 애니멀》 《보보스》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과 경희대학교 대학원(국문과)을 졸업했다. 《구글의 종말》 《포사이트》 《태평양 전쟁》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플랫폼 제국의 미래》 《에고라는 적》 《소셜 애니멀》 《협력의 진화》 《신호와 소음》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에세이집 《1960년생 이경식》 《미쳐서 살고 정신 들어 죽다》 《대한민국 깡통경제학》 《청춘아 세상을 욕해라》와 소설 《상인의 전쟁》 등을 출간했고, 시나리오 〈개 같은 날의 오후〉 〈나에게 오라〉, 오페라 〈가락국기〉 등의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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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두 번째 산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저자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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