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2018년 01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1월 19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14.18MB)
- ISBN 9788960516199
- 쪽수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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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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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야 하는 검사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지만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꿰매주어야 할 때가 많기에 다시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건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을 만나며, 범죄 자체가 내뿜는 악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로 인해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저자는 자신이 비록 죄를 다루는 검사라 하더라도 세상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파열들이 직선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들여다볼수록 다양하고 모순적이기에, 세상의 일들을 직선적으로 추정하지 않고 이야기의 뒷면과 진짜 사연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법, 그리고 두렵고 원시적인 존엄함에 대한 생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추천사 _ 나는 어떤 물음, 어떤 눈빛을 가지고 살아가는가_ 김민섭
1. 사기 공화국 풍경
사기꾼은 목숨 걸고 뛴다
어쩌면 울버린, 초인적 능력을 지닌 그들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무전유죄, 약자들의 거리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국가대표 영민 씨의 슬픈 웃음
지옥이 된 수민 씨의 꿈
착한 사마리아인의 거짓말
2. 사람들, 이야기들
검찰이 보지 못한 그의 진심
이야기의 뒷면, 진짜 사연을 이해한다는 것
그들이 고소 왕이 된 까닭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3. 검사의 사생활
당청꼴찌 ‘또라이’ 검사의 어느 오후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라서
검사 생활은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과 다르다
‘컬러학습대백과’가 가장 큰 자양분이 되었다면?
귀인의 기억,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4. 법의 본질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
엄정함을 잃은 법은 지도적 기제가 될 수 없다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들에게는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한다
에필로그 _ 아침을 여는 청소부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수사가 끝나면 늘 쓸쓸하다. 수사 과정에서 직면해야 하는 인간의 비열함과 추함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구속된 한 통공장 사장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기름밥으로 먹고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청을 한 것인데 그게 그리 죽일 죄냐고, 결국 부자들인 보험회사를 위해서 하는 청탁수사 아니냐면서 검찰은 왜 늘 있는 사람들 편만 드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부유했다. 바이에른 주의 상징인 파란색과 하얀색이 교차하는 엠블럼을 단 자동차를 두 대씩이나 굴리고 있었고, 나는 꿈도 못 꾸는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반면 그 공장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진짜 서민들이었다. 그들의 차량에 들어간 재생 고무 패킹 사이로 브레이크 오일이 샜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페달이 쑥 들어가기만 하고 제동은 되지 않아 죽음의 질주를 하다 차체가 함석처럼 구겨져 누군가의 아빠와 엄마, 누군가의 남편과 아내가 다시는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장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한 자신이 구속되는 것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할 뿐이었다.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진 김 씨나 엉덩이에 정맥이 있는 플래시도 돌연변이였지만,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공감과 책임감을 완전히 벗어버린 그야말로 진정한 돌연변이였다.
_ 「어쩌면 울버린, 초인적 능력을 지닌 그들」 중에서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 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배운 논리와 이성을 조금만 사용하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_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장님」 중에서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우리 또래 중년남자들이 친구들을 만나면 입에 달고 사는 소리이다. 이놈의 회사에 꽃다운 청춘을 바친 것이 억울하다며, 회사 때려치우고 목 좋은 곳에 커피숍이나 차려 여유롭게 살겠단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가소로웠다. 일단 우리에게 꽃다운 청춘이란 것은 없었다. 꽃다운 청춘이란 드라마 주인공이나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젊었을 때도 지금처럼 구질구질했고 늘 허덕거렸다. 게다가 목 좋은 곳의 카페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노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서울의 건물 같은 것이다. 지천으로 깔렸는데 우리 몫은 없다. 그런 망상에 가까운 희망은 망하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친구 같은 호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_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중에서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알려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게 있다해도 절대 당신의 순번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_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중에서
‘20년 가까이 현직 검사로 살아온 그의 속마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교대역에서 곱창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출판사 편집자가 중년남의 속사정이 궁금해서 내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겠는가.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검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검사만큼 애증의 대상이 되는 직업도 없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지겹도록 자주 검사가 등장한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검사는 거악의 근원이기도 하고, 모든 불의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영화나 드라마 속의 검사들은 현실의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책이 검사라는 직업의 이면이나 실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실상이란 본래 그다지 재미없는 법이다. 검사보다 멋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고가 난 곳이면 어디든 번개처럼 달려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구조대원도 있고, 자신의 굽은 허리보다 더 가파른 남해 섬 비탈에서 고사리를 꺾어 데치고 말리는 촌로도 있으며, 가족들을 위해 천대와 열악한 노동 조건에도 불구하고 프레스 기계 앞에서 졸음을 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그에 비하면 검사가 하는 일이란 온실 속의 화초 가꾸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새벽마다 새 아침을 열어주는 청소부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이 있긴 하다.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무거운 현재와 어두운 미래에 쫓기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이 정도가 수달 제사처럼 정리되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인 것 같다.
_ 「에필로그」 중에서
김웅 검사에 따르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여러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더불어 김웅 검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나는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_ 김민섭,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저자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검사’로 살아간다는 것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본문 383쪽)
저자 김웅은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래 18년간 검사 일을 해왔다. 그런데 굳이 스스로를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한다. 검사란 이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대목이다. 그저 직업으로서 밥벌이하며 살아가려고 고시 공부해 검사가 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겹도록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거기서 검사는 보통 ‘거악의 근원’이거나 반대로 불의를 일거에 해소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설정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극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검사들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드라마와 달리 검찰도 일반 회사와 거의 같고, 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보통의 직장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각광을 챙겨 정치에 입문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스스로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저자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인물 군상은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생활로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것이고, 검사들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으로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 검사에게서, 소위 잘나간다는 그 어떤 선배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존경’라는 감정을 느끼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첫 책 『검사내전』은 바로 그렇게 ‘생활형 검사’로 열심히 살아온 저자가 검찰 ‘안’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자, 검사라는 ‘직업’ 덕분에 알게 된 세상살이, 사람살이를 둘러싼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당청꼴찌 ‘또라이’ 검사
그 남자의 직장생활
흔히들 ‘검사’ 하면 권력 지향적이고 야망에 가득 찬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소위 있는 집 자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검사만 되면 잘나가는 집안과 결혼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 김웅은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단다. 어려서부터 검사를 꿈꿔본 적 단 한 번도 없었고 엉겁결에 검사가 됐다는 것이다. 행간을 읽어보자면, 어떤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까 생각하다가 그저 직업으로서 검사가 되기로 선택하고 고시 공부를 했다는 얘기다. 무딘 각오조차 없이 시작해서일까? 저자의 초임 검사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각종 사건 처리 통계가 좋지 않아 ‘당청꼴찌’, 그러니까 ‘우리 청에서 꼴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검찰 조직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폭탄주’ 마시는 일도 너무 힘들어했다. 덕분에 조직에서 눈총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초임 시절 날 가장 괴롭힌 것은 당청꼴찌라는 평가나 폭우처럼 쏟아지는 업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술과 회식이었다. (…) 얼마나 폭탄주가 싫었던지, 회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당직을 서기도 했다. 내가 검사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부장은 회식 때 폭탄주를 돌리다가 내 순서가 되면 왜 아직도 사표를 쓰지 않고 조직에 남아 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폭탄주는 검사만 마셔야 한다면서 나를 건너뛰고 다른 검사에게 폭탄주를 넘기기도 했다. _ 본문 238쪽
그런 까닭에 저자 스스로 자기 신세가 ‘토방에 사는 생쥐 꼴’이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어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직업적 야망이 없어서인지, 그는 상대가 검사장이든 차장검사든 가리지 않고 ‘욱’ 하는 성미에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또라이’였다. 예를 들어 그는 어느 봄날, 검사장이 굳이 자기 고향에서 체육행사를 연 것을 두고 비꼬다가 행사장에서 쫓겨난다.
“다만, 기왕 이런 행사를 할 거면 우리 관할 지역에서 개최해 갈비탕 한 그릇이라도 팔아줬으면 불황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이 좋아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 벌써 20년이 되어가지만 난 그때 검사장이 외쳤던 말을 기억한다. “이래서 검사들은 안 돼. 여기는 대한민국 아니야.” (…) 선배들이 나에게 얼른 나가라고 했고 (…) 서커스 난장을 벗어나는데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더라. 사람들의 눈빛만으로 나는 그들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모지리’, ‘부적응자’, 대강 그런 단어들이 생생하게 들렸으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_ 본문 234~235쪽
저자는 자신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은 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일 뿐이라는 미명하에 간부들이 벌이는 변덕스럽고 무지몽매한 행태에 불편함을 내비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조직의 단합’이라는 이름 아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평소처럼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검사가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한 모양인데, 2차로 간 술집에서 흥이 과했던지 (…) 그 자리에서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것이다.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 그것도 아키타나 진돗개, 허스키처럼 충성심 강한 개를 기르면 되는데 왜 그런 짓으로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 각 부의 총무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 나는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다. 차장이 나에게 나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또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다. _ 본문 238~239쪽
결국 내기에서 진 차장검사가 다음 날 부장검사들을 불러 화룰 냈고, 저자는 아침부터 부장에게 불려가 욕을 먹는다. 부장이 충무공 이순신을 거론하며 조직의 단합을 운운하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 주나요?”(본문 240쪽) 덕분에 두고두고 ‘또라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래도 그는 ‘검사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반인의 막연한 선입견과 달리 그 당시 검찰의 문화가 유연했다’는 데서 찾는다. 의견 대립이 있어도 평검사의 의견을 함부로 배척하지 못했고 검사들도 자신의 명예와 기개를 위해 직을 걸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면 조직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검사라는 직분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비록 특별한 소명의식이나 야망은 없었지만, 유연한 조직 문화 덕분에 ‘나 같은 놈도 검찰에 빌붙어 있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검사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만나고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좀 더 깊이 알아 나가는 일이 된다.
사기 공화국에서 만난
인간의 삶과 욕망
검사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형사부에서 보내며 사기 사건을 많이 다룬 저자는 지금 이 나라가 ‘사기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 전체에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악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해에 24만 건에 달하는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피해액도 3조 원이 넘는단다. 그는 이렇듯 사기 사건이 넘쳐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기가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사기꾼은 어지간해서는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고, 그런 까닭에 재범률이 77%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기꾼 10명 중 8명은 한 번 잡혔다가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사건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을 만나며, 범죄 자체가 내뿜는 악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로 인해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들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가 보기에 사기 사건의 대부분은 범죄자의 욕망과 피해자의 욕망이 결합해 만들어낸 화학작용이다.
목사님이 허술한 사기에 속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치밀한 수에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 당한 것이다. (…)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전한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섭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_ 본문 70~71쪽
문제는 그 ‘마음속의 장님’으로 인해 생긴 범죄 피해의 결과가 어렵게 지탱하고 있던 삶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설령 범인을 잡는다 해도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고 삶을 원상복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기꾼들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 그러니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라고 말한다.(본문 69쪽) 게다가 대개 사기 범죄의 피해자들은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이다. 그래서 그는 사기꾼 할머니가 선의를 빙자해 힘겹게 살아가는 식당 아주머니를 등친 사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 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할머니가 설마 자기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등칠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그러나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_ 본문 86쪽
저자는 이렇듯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야 하는 검사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다시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꿰매주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란다. 물론 더러는 서툰 솜씨로 찢어진 상처를 더 헤집기도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늘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검사 생활을 계속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악질 전세 사기꾼에게 당한 한 건실한 청년과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에게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 어쩌면 개처럼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의 선의와 신실함이 이 사기의 가장 화려한 기술로 악용되었을지 모른다. (…) 횡설수설을 다 들어주던 영민 씨는 가방에서 팩우유를 꺼내 우리 방에 있던 믹스커피 두 봉을 탔다. 팩우유를 흔들던 영민 씨는 더블 샷이라고 말하며 내게 웃어 보였다. 청년의 웃음이 그리 무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구르고 채여도, 그래도 영민 씨는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이다. 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검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가끔 이런 국가대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이다. _ 본문 109~110쪽
검사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검사의 연관 검색어가 ‘떡검’, ‘검새’인 판국에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말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했듯 세상의 ‘선악과 미추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댓글처럼 그리 쉽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파열들이 직선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들여다볼수록 다양하고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검사실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나기 같은 소란들이 늘 새로운 여행 같았고, 그래서 계속 검사실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본문 138쪽) 검사라는 직업의 양면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저자가 검사실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현실들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저자가 보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곡선이고 움직이며’, 직선으로 흐르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상적으로 범죄를 다루어야 하는 검사는 더더욱 세상의 일들을 직선적으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신묘한 추측과 귀신같은 추리는 대개 독이다. 그런 추측과 망상을 댓글로 쓰는 거야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가 그런 추리소설을 써나간다면 무척이나 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공명심과 대중의 환호는 양심을 마취시키고 사람들이 바라는 결말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을 만든다. 대개 언론 플레이를 잘하고 거물 행세하는 검사들에게 그런 면이 있다. 빈약한 상상력 대신 후흑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 정의의 사도로 각광 받는다. 정의의 사도가 각광을 챙기고 떠나면 다음 세대는 그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는다. 물론 꼭 공명심이나 각광을 탐해서 직선적인 추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인 추정은 편리할 뿐 아니라 피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떻게 인천공항 활주로처럼 직선이겠는가.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곡선이고 움직인다. 사람이 경직되는 것은 오직 죽었을 때뿐이다. 그래서 직선적인 추측은 죽음을 상징한다. _ 본문 253쪽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직선적인 추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 함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검찰청 앞에서 수개월간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공기청정기가 유해함을 알리는 피켓 시위를 하던 한 남자를 그저 ‘조직 부적응자’나 ‘블랙 컨슈머’ 정도로 치부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야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를 소비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그 많은 시간 동안 피케팅을 할 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검찰에서는 구속까지 했다. 검찰은 그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그건 검사실에서 이타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한여름에 눈을 보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동 원인을 찾을 때 공익이나 이타적인 목적 따위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길 위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을 해석하면서 나도 그렇고 다른 검사들도 그렇고 결코 이타심이라는 가설을 세워본 적이 없다. 서민 아파트 아이들이 등교하다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아파트에 울타리를 치는 사람들, 장애인 학교를 막기 위해 삭발하는 사람들,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삭발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어두워졌다. _ 본문 150쪽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감정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직선적인 추정을 선호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뒷면과 진짜 사연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산도박’에 연루된 일당을 검거한 뒤, 출소 후 24시간 만에 다시 잡혀온 한 아주머니의 딸을 불러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보려 한 것도, 이후 아주머니를 비교적 처벌이 약한 죄목으로 기소했던 것도 어쩌면 자신이 비록 죄를 다루는 검사라 하더라도 세상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는지 모른다.
꺼이꺼이 우는 엄마를 가슴에 품은 딸은 “괴않다, 괴않다, 울지 마라”라고 기도하듯 읊조린다. 엄마는 딸에게 차마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었다고, 내가 죽일 년이라고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 파드득 홰를 치듯 죽어가는 형광등과 소리 없는 눈물과 어깨가 들먹거려지는 통곡 속에서 어쩐지 나는 평생을 살아도 세상의 절반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박 여사를 도박개장죄가 아니라 도박방조죄로 기소했다. 지청장이 날 부르더니 왜 도박방조냐고 물었다. 집에도 못 가보고 구속되었다고 하자 아무 말도 않고 결재 도장을 찍어주었다. (…) 나 때문에 딸아이의 힘든 무게를 나눠 질 수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산도박의 엑스트라에 불과한 박 여사 하나 교도소에 가둬놓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딸도 용서한 엄마인데 내가 뭐라고 죗값을 묻겠는가. _ 본문 219~220쪽
저자는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산도박 아주머니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법에 대한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보통의 사람들과 사연들을 접하면서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 ‘검사실’이란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그곳에서 그가 만난 법은 결코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이 말은 결국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인데, 저자가 보기에 이는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도발로 ‘널 반드시 박멸시키겠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재판이란 실제로 옳은 것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며, 원칙과 규범을 따르기보다 대중의 욕구와 분노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잔 다르크의 재판도 그랬으며, 이후 많은 재판들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복수심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9세기 이후 대중들은 복수심과 분노에 가득 차 멜레토스의 법으로 공포의 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법이란 이름으로 일도양단의 보복적인 처단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정의를 빙자해 자신의 복수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 한순간의 분노가 가라앉으면 후회, 그리고 그 칼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까닭은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런 흉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욱 키우고 검찰권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에 대한 피 튀기는 싸움만 낳게 만드는 것이다. _ 본문 276쪽
분명한 것은, 법과 처벌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입법 만능주의’와 ‘형사처벌 편의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검찰과 수사기관이 국민과 기업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간섭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는 것, 승선 인원을 제대로 적지 않는 것, 영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것 등 검사인 자신이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법규 위반까지 죄다 범죄로 만들어놓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형사처벌이란 진통제와 같아서 자꾸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점점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너무 많은 형사처벌로 인해 범죄 간의 경중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기 쉽고,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하고 강력한 범죄, 계획적인 재산 범죄, 대규모 경제 범죄 등에 대해서 터무니없이 온정적인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처벌 대상은 줄이고 정작 본질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공평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형사처벌 조항이 이런 것들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검찰과 수사기관이 모든 분야에 개입할 수 있게 된 데는 민사재판의 형해화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나 형사처벌 조항이 범람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면서, 형사처벌 조항을 줄이고 민사 분쟁을 형사 사건으로 변질시키는 고소·고발 제도를 개선한다면 검찰권과 수사기관의 전횡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검찰권과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이나 인물 갈아치우기만 한다면 결국 이름만 달리한 수많은 수사기관들의 전횡으로 국민들의 자유만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미국의 법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사회는 명백히 원하는 범죄의 양을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양이 많아지면 범죄에 둔감해지고 법을 경시하게 된다. 또한 범죄를 지나치게 많이 원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힘이 거대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검사들은 엄청난 업무 강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둬라. 검사 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다”라거나 “왕관을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 왕관을 써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게 헌법 제1조가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다. _ 본문 378쪽
저자에게 ‘법’이란 결국 ‘인간’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함이 법의 중심에 있을 때, 결국 법에 의한 정의든 뭐든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따라서 그에게 존엄한 것이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지만, 준비 없이 시작했다고 해서 꼭 오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주변이나 데울 수 있는 검사가 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 이 책을 쓰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그 ‘온기’가 바로 ‘인간’과 ‘법’, 그리고 두렵고 원시적인 ‘존엄함’에 대한 그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가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이 단지 복지부동한 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욕심내기보다 ‘검사라는 직분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 치열함의 기록이라고 생각할 때, 한번 일독해 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가끔 집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며 맥주 한잔 마실 때가 있다. 야구가 끝나고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 때면 마술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떠들썩하게 웃고 마시던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항하사처럼 넘쳐흐르던 거품 속에서의 다짐들도 아쉬움 속에 지나간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아쉬움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_ 본문 6쪽
[책 속으로 추가]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이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위기란 대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게다가 막 걸음을 떼는 영민 씨 같은 청년들에게 닥치는 위기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_ 「국가대표 영민 씨의 슬픈 웃음」 중에서
판사나 검사들은 자신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반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험 성적 좋은 것 외에 그다지 특출할 것 없는 판사나 검사 앞에서 갑자기 개과천선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장 앞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엄중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다. 만에 하나 후회 같은 걸 한다면 그건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잡힌 상황에 대한 후회일 가능성이 높다. 파렴치범들은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들을 개과천선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백면서생이 꿈꾸는 상황극일 뿐이다.
수민 씨 등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산도 부족하고 인원도 부족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죄 지은 자들의 갱생과 재활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고 짜증났다. 그녀들은 주변의 도움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정신과 치료와 법률적 조언이 시급했으며, 따뜻한 위로가 절실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정의를 외치는 그 많은 단체와 변호사들 중에서 수민 씨 같은 피해자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것이 명예나 정치적인 입지를 주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_ 「지옥이 된 수민 씨의 꿈」 중에서
전두엽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추하지는 않다. 검찰청에 쳐들어와 패악을 부리는 사람들 중에 정말 추악한 이들은 따로 있다. 초임지에서 근무할 때 자신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검사장실까지 쫓아간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을 동원해 국정감사에서 문제 삼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술에 취해 아무런 이유 없이 길 가던 여대생을 폭행했다. 성폭행을 시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사실이 자신의 시의원 출마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생각되자 수사를 한 경찰관과 피해자를 고발했다. 경찰관과 여대생이 수상한 관계로 보이니 수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다. 극악한 패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야심가인 변호사와 탐욕스러운 프로듀서를 만나 마치 무고한 죄를 뒤집어쓴 것처럼 세상을 호도하는 사람도 봤다. 티켓 다방에서 가출 여고생들을 고용하여 처벌받게 되자 그 아이들이 선불금 사기를 친 것이라며 구속수사해달라고 악을 쓰고, 부모들에게는 탄원서를 써주지 않으면 아이들의 학교에 그 사실을 알리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도 만났다.
_ 「검찰이 보지 못한 그의 진심」 중에서
검찰에서 비리나 추문이 터지면 대개 비교적 억울한 형사부 검사에게 불똥이 떨어진다. 개선책이란 게 대부분 형사부 검사들을 독려하는 것이다. 고소인에게 불기소 처분을 하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라고 하기도 하고, 더 친절하게 행동하라고 하기도 한다. 분야별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더러는 검사로서 자긍심과 꿈을 가지라고도 한다.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형사부 검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 잠이다. 잠을 자야 꿈이든 뭐든 꾸지 않겠는가. 그리고 자긍심이나 명예 같은 것은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곰이 막걸리 거르던 때 이야기다. 검사의 연관 검색어가 ‘떡검’, ‘검새’인 판국에 무슨 자긍심인가. 문제는 예전부터 있었던 것인데 늘 새로운 개선책만 나온다. 하지만 옛말에 새 도랑 낼 생각 말고 옛 도랑 메우지 말라고 했다.
_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예전에 학교폭력 관련 회의에서 겪었던 일이다. 소년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는 판사가 갑자기 ‘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이 있느냐’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은 재판을 하고 나서 소년범들을 꼭 안아준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꽤나 감동적인 연설이었고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아이들에게 좀 더 정성과 사랑을 기울이자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회의는 끝났다. 추악했고 황량했다.
설마 그 아이들을 안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혹 누군가 안아주었다면 그렇게 잔혹한 가해가 없었을까? 불행인지 모르나 내가 만난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에 프리 허그로 교화될 수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검찰청이나 법원까지 오는 길은 우연히 잘못 들르게 되는 길이 아니다. 특히 소년 법원까지 가는 아이들에게는 대개 많은 기회와 관심이 부여된다. 저 멀리 높은 법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판사도 느꼈던 측은지심을 바로 옆에서 직접 수사했던 경찰관들은 느끼지 않았을까? 인간적인 면모는 판사나 검사보다 경찰들이 더 깊다. 자신도 했던 그런 포옹과 위로를, 어떤 경찰관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경험의 깊이 차이에서 기인한다.
_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인권 의식은 자신이 귀중하다는 인식이 아니다. 자기가 소중하다는 것은 굳이 안 가르쳐도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목숨처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주관적인 자기 환상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인지편향과 우월환상을 통해 자신은 옳고 소중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자기에 대한 사랑이니 힐링이니 하는 것은 적당히 해도 된다. 지나치면 ‘나는 오늘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했다’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허세가 되어 버린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이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장래에 불이익이 되는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폭력을 쓰면 친구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고, 가해를 한 아이들은 아무런 불이익 없이 살아도 되는가.
_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중에서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꾸짖듯이 물어보면 박 여사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내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이구나라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었다. 검사실은, 학구적인 분위기도 없고 과거에만 천착하지만,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자리이다. 뭐랄까,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사회 현실과 요청에 기초한 법철학을 시작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입법 절차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요구와 감정, 정상배들의 불온하고 무책임한 책동들, 그 사이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중용을 지키려는 노력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점철되어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형식적인 법률들, 그것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_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 중에서
차장이 더욱 화가 났던 것은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또 자신의 전화를 받기까지 한 내가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부장은 날 보며 이것은 검찰의 단결심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술자리에서 차장이 부르면 달려가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했다. 그럴 때 달려가주는 것이 단합이고 팀스피릿이라고 했다. 그 정도로 그쳤으면 나는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원래 나는 소심하다. 그런데 부장이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취해서, 이순신 장군이 어찌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그것은 격군들이 이순신 장군의 지시를 잘 따랐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기함할 만한 소리를 했다.
일단, 그 말은 두 가지가 틀리다. 먼저 이순신 장군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해군이니까 이순신 제독이다. 우리가 넬슨 제독이라고 하지 넬슨 장군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리고 『난중일기』에서 그 어디를 봐도 충무공이 술을 드시다 부하장수나 격군들을 불러들이는 내기를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격군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노를 저은 것은 충무공이 그런 짓거리는 일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야기만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마치 차장이 충무공에 비견되는 것 같아 아주 기분이 나빠졌다. 그 결과 순간의 격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도 한마디 했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나요?”
_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라서」 중에서
도로를 넓히면 그만큼 차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법률가가 늘어나면 법적 분쟁과 소송도 늘어난다. 늘어난 변호사들이 갈등과 분쟁을 유발하고 소송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률가는 자동차 회사와 달리 자신들의 상품을 강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동차 회사가 차를 사게 하려면 ‘럭셔리’니 ‘프레스티지’니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범벅이 된 광고를 하는 수밖에 없지만, 법률가는 그렇지 않다. 법률가는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별다른 비용 없이 그를 싸움터로 끌어들일 수 있다. 소장을 날리고 고소장을 접수시키기만 하면 누구든지 법적 분쟁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이 원하지 않는 싸움이나 법률가들이 마음먹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거절할 수 없는 초대인 셈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도로가 지역공동체의 환경을 파괴하고 공해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변호사가 늘어나면 누구나 손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서비스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수익으로 질시의 대상이 되었던 일부 변호사들은 변호사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약 오르겠지만 오히려 가격이 더 오른다. 수해가 나면 가장 귀한 것이 먹는 물이다.
_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 중에서
법률가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강화되면서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명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를 정당화함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에 대한 불균형을 낳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이 비판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 이것은 도로에 담을 쌓아 그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후 도로를 탓하는 것과 같다. 도로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도로는 잘못이 없다. 비유하자면 법조인들은 도로에 담을 쌓는 일을 한다. 인류가 누려야 할 발견 혹은 발명을 소수가 독점하도록 특허권과 소유권을 부여한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법률가들이었다.
_ 「엄정함을 잃은 법은 지도적 기제가 될 수 없다」 중에서
따라서 범죄 수사는 범죄자와 국가 간의 대결이다. 그러다 보니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 강력한 국가와 나약한 개인의 대결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국가가 강력한 공권력을 악용하기만 한다면 개인에게 얼마든지 불공정한 수사 결과를 강요할 수 있다. 그러한 불공정을 막기 위해 생겨난 것이 형사 사법 제도이다. 각종 형사소송 절차를 적용해 국가에 핸디캡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 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약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적법절차이다. 그 일을 하라고 월급 주면서 공무원으로 만들어준 것이 검사 제도이다. 검사가 바로 세워야 할 정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이다. 처벌이란 이렇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밝혀진 범죄자에 대해 일련의 고통을 부과하는 것이다.
_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중에서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공권력 기관이 아니라 시민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물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우리나라 헌정 체제상의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그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시민 스스로 자신의 힘을 국가권력에 갖다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어리석은 행태를 가장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고소인의 권한 확대이다. 늘어나는 고소를 당장 줄일 수 없다면 최소한 시민들 스스로 직접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_ 「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 중에서
청탁을 궁극적으로 막는 방법은 청탁이 생기는 구조를 고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청탁행위만 처벌하다 보면 결국 경찰국가가 될 것이다. 권력자는 경찰과 검찰을 동원하여 정적을 처리하는 데 사용할 것이고, 감시와 권력이 겨울 폭풍처럼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마 청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개 위험수당까지 붙어 청탁의 대가는 더 커질 것이고, 청탁 방법은 더 교묘해질 것이다. 기업들이 외국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낸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유학 경비를 건네줄 수도 있고, 장학재단을 세워 그들의 자녀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할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자녀들을 자신의 회사에 취업시킨 다음 미국이나 유럽 지사에 장기 발령을 내줄 수도 있고, 그들의 친인척 명의로 청소용역회사나 인테리어업체나 홍보대행회사를 세우게 한 다음 일감 나눠주기를 할 수도 있다. 권력자들은 재단법인을 만들 것이고, 기업들은 기부나 출연이라는 합법적 형식으로 뇌물을 줄 것이다. 권력자들은 그 재단법인에 처와 자식들을 이사로 등재시킬 것이고, 상속세 한 푼 내지 않은 채 뇌물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서화전, 출판기념회를 막는다고 해도 빠져나갈 방법은 한도 끝도 없다.
_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중에서
만약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적인 관료제, 암 덩어리처럼 공생을 거부하는 재벌 체제,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관치금융, 붕괴된 공교육, 연고주의와 서열문화,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수주의, 정치인 상비군에 불과한 시민단체 등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래서 관료주의와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청탁 행위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맑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현상만 잡는 대책은 자칫 금주법처럼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사회 구조가 청탁을 발생시키는 것인데, 구조를 도외시한 채 대증요법만 실행할 경우 대중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킬지는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원인을 잡지 않고 증상만 해결하는 것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붙들어 맨 후 바람이 멈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_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중에서
다산 정약용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다면 『목민심서』를 쓰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수립, 재벌 해체, 권력구조 개편, 관료제 혁파, 교육 개혁 등을 주장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다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백성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할 수 있겠는가? 관각(홍문관, 예문관, 교서관, 규장각)과 대간(사헌부, 사간원)을 없애면 백성이 편안해질 것이다. 관각과 대간을 없애면 임금의 덕이 바로 서고, 모든 관리가 제 할 일을 다 하게 되
고, 기강이 바로잡히고 또 풍속이 두터워질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관료, 재벌, 권력기관의 선의만을 바라고 살아야 할까. 그것들이 없어진다고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본질적인 개혁은 버려둔 채 새로운 『목민심서』를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그들의 권력을 더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버나드 맨더빌은 말했다. “나라 전체로서는 정직함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필연성에 기대야 한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그들의 법질서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것이다.”
_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 중에서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1970년 전라남도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과 법무부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장을 거쳐, 현재는 첫 경력을 시작한 인천지검에서 자신과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한 것처럼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는 조직 문화 덕분이었다. 그에게 검사라는 직분은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거악의 근원도, 불의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나사못’처럼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생활인으로서 검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첫 책이 세상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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