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위어도 천하는 살찌리라
2008년 04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06년 07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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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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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수록된 문장들은 직필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려 했던 시대정신의 결정체이다. 그들은 상소문, 격문, 윤음, 묘지문, 조서, 포고문 등의 형식으로 문장을 만들었으며 시대와의 조화를 갈망하였다. 저자는 이처럼 선조들의 도도한 정신이 살아 있는 글을 최고의 문장으로 제시한다. 역사적 사건과 문장의 탄생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과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난신적자가 나의 시를 보면 춘추의 일필에 비교할 수 있으리
무임무숙삭과_ 권필
숙영의 임금이 된 자는 괴롭다
정묘노난_ 중전 유씨
천하의 대의를 잃을 것입니다
작시여세창왈_ 조광조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믿는 것은 임금의 마음뿐입니다
왕세자하령정원_ 사도세자
나의 불초하고 불민함을 깨달았다
문체바정_ 정조
이 시는 한 달도 안 되어 천하에 두루 퍼지게 될 것이다
상재상서_ 정하상
피눈물이 도랑을 이루고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신원금폭소_ 최시형
유유한 푸른 하늘아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전가추석_ 이건창
앞산 기슭에 가신 님 묻었다오
애통조서_ 고종
오호라 짐은 통곡한다
시일야방성대곡_ 장지연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삼국사기의 김부식과 학사 정지상
버들잎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정조(正祖)의 〈문녀토죄윤음〉
오호라! 이달, 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목이 메여 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오호라! 오늘의 심정으로 어찌 차마 호령을 내리고 시행하겠는가. 하늘에 이르고 땅에 극하는 문성국(文聖國)의 죄악은, 내가 마음을 썩이고 뼈에 새기며 분을 품고 애통을 씹게 하는 것이다. 만일 오늘날에 있어서 밝게 유시하지 않는다면 백관과 만민들이 어떻게 이 역적의 실상을 알고서, 하늘에 닿고 땅에 이르는 죄악을 함께 분개하고 통탄할 수 있겠는가?
너희 높고 낮은 신하들과 백성들은 나의 비통하고 고통스러운 말을 분명하게 들으라. 문성국의 죄악은 열이나 백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으로서, 천 가지 죄와 만 가지 악이 헤아릴 수 없고, 이치에 어그러지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차마 제기할 수도 없고 차마 말할 수도 없는 흉악한 의도와 역절이다. 무릇 저 문성국은 천한 복예(僕隷)로서 살무사 같은 성질을 가지고, 안으로는 요망한 누이를 끼고 밖으로 반역한 재상과 결탁하여, 무릇 낮이나 밤이나 주무(綢繆)하는 것은 찬탈하려는 흉계가 아니면 곧 시역하려는 음모였다. 계유년 이래로는 그의 뜻이 더욱 방자해지고 그의 음모가 더욱 다급해져, 후정(後庭)의 깊은 곳에 난여(鑾輿)가 행차하게 되면, 문성국이 그의 누이와 함께 우리 양궁(兩宮)을 참소하여 이간하였는데, 하는 말이 망극하여 더러는 ‘아무 날에는 아무 일을 하게 되고 아무 시에는 아무 일을 시행한다.’고 참소하여, 이간하지 않는 때가 없었고 참소하여 이간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아! 그때를 당하여 덕을 육성해 가는 춘궁(春宮 : 동궁)이 날로 어진 소문이 나타나게 되었었는데, 문성국은 이에 ‘문침(問寢)도 제때에 하지 않고 친선(親膳)도 제때에 하지 않고, 심하게는 인명을 살해하고 여색을 낚아채기까지 한다.’는 말들을 하며, 생판으로 꾸며대어 천청(天廳)을 현혹하는 흉계를 부리려고 했었으니, 이는 다만 날조한 짓의 한 가지 단서이고 근거 없이 수군거리는 짓의 첫 단계일 뿐이었다. 무릇 이 몇 가지의 일도 이미 천지 사이에 용납될 수 없는 바인데, 하물며 또한 낙선재(樂善齋)의 화재도 문성국에게서 빌미한 것이고 금정(禁井 : 사도세자가 우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 사건)의 변도 문성국에게서 연유한 것이었으니, 통탄스럽고도 통탄스럽다. 이는 어찌 내가 차마 제기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단지 단서만 열어 놓고 문성국이 시역하려 한 음모를 밝혀 놓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신서(臣庶)들이 우리 대행 대왕의 천지와 같은 인자하심과 일월과 같은 총명하심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우리 대행 대왕께서 앞질러 간사한 싹을 꺾어 버리고 여리(閭里)로 내쫓아 궁금(宮禁)에 발을 붙일 수 없게 하지 않았다면, 종사가 위태해지고 국본이 끊어지는 것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대행 대왕의 인자하기만 한 은덕과 간계를 통촉하시는 성총에 힘입어, 거의 위태로워졌던 종사가 다시 안정되고 거의 끊어지게 되었던 국본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으니, 이는 단지 나 소자만 은덕을 새기면서 칭송하기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장차 천하 만세에 빛이 날 일이다.
아! 은덕을 보답하려고 해도 하늘처럼 한이 없다. 아! 황천이 우리 얼어붙은 땅을 돌아보지 않아서인가. 대행 대왕께서 인자하게 덮어 주시는 덕이 그처럼 진지하고도 간절하셨기 때문에 선친의 지난날의 질병이 어쩌면 이로 말미암아 정상으로 회복될 수도 있었는데, 흉계를 빚어 온 지가 이미 오래고, 의구심을 쌓아 온 것이 점차 고치기가 어려웠으니, 그때에는 단지 문침만 제때에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시선도 제때에 하지 못하였다. 우리 대행 대왕께서는 또한 일찍이 자주 좌우 사람을 보내어 기거(起居)의 안부를 묻게 하고 음식의 다소를 살피게 하셨으니, 이는 곧 양궁께서 자애하시고 효도하시게 될 수 있는 하나의 크고 좋은 기회였는데, 환후가 갈수록 더욱 깊어져서 평복(平復)하게 될 수 없었으니 어찌하겠는가.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도 잔인한
조선시대의 명문
-직언과 직필로 목숨을 건 시대정신의 결정체, 문장
이 책은 발표 당시 조선 사회를 들끓게 했던 문장을 통해서 조선의 역사를 되읽고 있다. 그동안 지난 역사를 통사적으로 기술하거나,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발행한 역사서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특징은 당대를 격랑하게 했던 문장을 통해서 그 문장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그 문장으로 인해 파생된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형식의 글쓰기가 있었고 오늘날 문집의 형태로 전해지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도 많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문장’이라는 화두에 골몰하며 이 책에서 저자가 선보이는 문장은 단지 수사가 뛰어나거나 문체가 아름다운 문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글쓰기 중 가장 대표적인 형식은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이다. 선비들은 상소를 통해 임금의 정책과 당파를 비판했고, 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로 인해 귀양을 가거나 참형에 처해지는 일도 잦았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과거 군사정권에 의한 문인들의 필화사건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직언과 직필로 인한 수난은 오늘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의제문’을 남긴 김종직은 그 문장으로 인해 죽은 후에 다시 파헤쳐져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의 제자들과 지인들이 모두 죽거나 귀향을 가야할 만큼 참혹했다. 때론 삼대(三代)가 멸족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문장들이 돋보이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붓을 들었던 글쓴이의 정신이 응집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문장들은 직필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려 했던 시대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상소문․격문․윤음․묘지문․조서․포고문 등의 형식으로 피와 눈물이 배인 문장을 만들었고 시대와의 조화를 갈망했다. 이처럼 선조들의 도도한 정신이 살아 있는 글을, 저자는 곧 최고의 문장으로 보았다. 어떤 문장에는 준엄한 질책과 탄식을 담겨 있고, 어떤 문장에는 애끓는 울분과 호소가 담겨 있다.
날이 갈수록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사라져가며 서사적 글쓰기도 힘을 잃어가는 오늘날, 역사적 사건과 문장의 탄생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과 글을 쓰는 이의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문장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의 문장을 읽는 것은 조선의 역사를 읽는 것이다
사림의 피바람을 몰고 온 김종직의 조의제문
김종직은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했던 사림의 거목이다. 그는 세조에게 폐위됐다가 사사된 단종의 운명을 비통해 하며 재야시절 ‘조의제문’을 지었다. 당시의 식자층들도 문장이 너무 난해하여 이해하지 못했다고 알려진 이 제문은,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하면서 연산군시대 무오사화의 참변을 불러온다. 그 유려한 문장은 연산군의 폭정과 간신 유자광의 정치 탄압에 맞물리며 이미 죽어 땅에 묻힌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숱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그러나 김종직의 올곧은 정신은, 그의 제자 김굉필이 사화로 귀양을 갔다가 어린 조광조와 운명적으로 조우하며 사림의 도도한 물줄기를 만들게 된다.
임금을 비웃었던 권필의 풍자시
임숙영이 과거시험의 대책문(책문에 답한 글)에서 “전하를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라고 광해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대책문의 합격 여부를 두고 임금과 조정 신하들이 3개월 동안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를 지켜본 권필이 〈임숙영의 삭과 소식을 듣고〉라는 시로 광해군과 중전의 외척들이 권력을 농단하는 것을 풍자했다. 그의 시는 사대부들의 갈채를 받았지만 광해군이 친히 국문을 할 만큼 노여움을 샀고, 그 일로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조정과 사대부들은 일제히 권필을 변호하지만 결국 그는 심한 고문과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귀양길에서 장독으로 죽고 만다.
임금에게 올린 왕비의 상소문
광해군 14년, 중전 유씨가 임금인 남편에게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내용은 당시 광해군이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등거리 외교)를 전개하는 것을 두고, 나름대로의 확고한 논리로써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사기》와 《춘추》를 거론하고,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대한 도리를 설파했던 중전은, 천하의 대의를 역설하고 있다.
이 상소를 올리고 1년 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중전 역시 강화도에 유배를 가서 병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 책의 저자는, 유씨의 상소가 당시 조선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친명파들의 역심을 염려하여 이 같은 상소를 올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너무 올곧아서 꺾인 젊은 개혁주의자 조광조의 옥중상소
중종의 총애와 시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조광조. 그는 공신들의 위훈삭제를 놓고 임금과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중종에게 차갑게 버림을 받는다. 하루아침에 옥에 갇혀 피 끓는 옥중상소를 올렸던 그는,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믿는 것은 오직 임금의 마음뿐”이라고 호소하지만 변심한 중종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다.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줄기차게 개혁을 주장했던 그의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선비의 기개는, 또 다시 사림의 가혹한 탄압을 불러오게 된다.
승정원에 내린 왕세자의 반성문
사도세자는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는 글을 승정원에 내린다. 아버지의 자상함보단 엄격한 군왕의 위엄으로 아들을 대했던 영조. 그는 승정원에서 올린 아들의 반성문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는 문장이 아름답다고 손뼉을 치며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려고 신하들을 불러들였다가 갑자기 안색이 돌변한다.
밤 깊어 영조는 최복(허름한 옷)을 입고 숭화문 밖 맨땅에 엎드려 곡을 하고, 이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세자도 그 뒤에 엎드려 곡을 한다. 임금과 세자, 아버지와 아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허름한 옷을 입은 채 맨땅에서 곡을 하자, 당황한 대신들이 엎드려 울면서 그 연유를 물었다. “전하, 전하께서 어이하여 그런 거조(擧措)를 하십니까?”
“소설을 읽지 말라”고 일갈했던 정조의 문체반정
정조는 학문이 깊은 임금이다. 그 학문의 근간은 할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교육에서 비롯되었는데, 문장과 문체를 논하는 자리에서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당대의 석학들도 정조 앞에서는 곤욕을 당했다. 문장에 대한 정조의 신념은, 경학을 멀리 하고 잡학에 빠져드는 신하들을 서슴없이 질타했다. 문체가 난잡한 신하들을 불러 재시험을 치르게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고, 때론 과거시험에서 엉터리 문장을 뽑았다고 시험관까지 문책했던 정조의 깐깐함은, 학문을 중시했던 준엄한 군왕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주교의 정당성과 유교의 허위를 질타했던 정하상의 상재상서
1839년 포도청에 끌려간 정하상이 옥에 갇혀서 상서(上書)를 올린다. 당시 박해를 주도했던 우의정 이지연에게 올린 것이라 하여 ‘상제상서’라 한다. 천주교의 정당성과 종교탄압의 부당함을 간곡하게 호소하는 정하상의 문장은 당시의 천주교도들을 모두 울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형님이 처형된데 이어 정하상 역시 기해박해로 서소문 밖에서 참수 당한다.
동학농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최시형의 신원금폭소
신원금폭소는 동학 교주 최시형이 보은집회 이후에 동학인들이 나라에 지은 죄도 없고 도적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탄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처절하게 항의하는 글이다. 동학은 신원금폭소를 올린 뒤에 전봉준이 호남창의문을 띄워 봉기하게 된다.
근대시의 탄생을 알렸던 이건창의 전가추석
이건창은 불과 15세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한 귀재였다. 그는 유림이 1백 년 이래 가장 깐깐한 상소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다. 이 책에서 선보이는 그의 시 〈전가추석〉은 가난한 시골 추석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 장시는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탄탄한 구성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시골 아낙의 신산한 삶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시의 매력은 세곡을 받으러 온 아전을 등장시켜 과부의 슬픔을 극대화시킨 후반부의 반전에 있다.
작가정보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며 등단한 이래, 1984년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부문 중편 〈저 문밖에 어둠이〉 수상, 198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황야의 시》 당선, 1994년 제10회 한국추리문학 《사지의 얼굴》 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방위적 글쓰기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을 뒤흔든 우리 선조 이야기》, 《신의 이제마》, 《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나는 조선의 국모다》 《한국 역사의 미인》 《책사 한명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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