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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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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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1부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에선 서구의 정치철학과 아시아의 사상 지형까지 포괄하여 철학자들을 만나기 전 사유의 지형도를 그린다. 2부에선 이택광과 9명의 철학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엮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 위기 상황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것을 요구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주문하며 역사적인 현상으로 소비주의에 주목 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2012년 현상’을 강조하며 예측 할 수 없는 미래를 쉽게 종언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등 지금 세계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담고 있다.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
포스트구조주의 이후 … 17
왜 프랑스 철학인가? … 25
‘정치적인 것’의 계보학 … 33
영국의 신좌파 … 39
이탈리아적인 차이 … 46
철학과 아시아 … 53
철학자들을 만나다
슬라보예 지젝: 사유를 시작하라! … 63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자들의 몫으로 … 91
지그문트 바우만: ‘2012년 현상’을 기억하라! … 135
가야트리 스피박: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교육 … 155
피터 싱어: 다윈주의와 윤리적 삶 … 171
사이먼 크리츨리: 실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181
그렉 렘버트: 누가 ‘영구평화’를 두려워하랴? … 199
알베르토 토스카노: ‘평범한’ 마르크스주의 … 211
제이슨 바커: 진리는 훨씬 더 도전적이다 … 223
철학자 소개 … 234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경제학자들과 다른 점을 여기서 짚어낼 수 있다.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철학은 새로운 체제를 사유한다. 위기의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본질이자 사명이라는 것이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 사이에 합의되어 있는 명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비로소 사유의 혁명은 시작된다.(10쪽, 이택광)
비록 생산력은 높지만 자본주의는 내재적인 적대를 보유하고 있는 체제다. 또한 이 체제는 점점 위기가 깊어지고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지만 그 오래된 마르크스주의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공통적인 것의 문제다. 협의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공통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83쪽, 슬라보예 지젝)
단지 자신들의 집에 머물면서 자신들의 일상적 업무에 매여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내려와 그곳에 자리 잡을 때,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권력과 맞서기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을 때,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기존 권력의 권위는 발가벗겨진다.(101~102쪽, 자크 랑시에르)
당신이 지금 대량실업과 희망 없는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박탈당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눈앞에 ‘잘나가는’ 소비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화려한 쇼핑몰이 있다는 상상을 해봐라. 이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몇 개씩이나 가졌고 우대계좌를 보유한 이들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 쇼핑몰에 들어갈 수도 없고, 얼쩡거리다가 안전요원에 발각이라도 되면 대번에 쫓겨날 신세다. 런던 폭동 가담자들은 소비의 맛을 보고 싶어 했지만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소비주의의 즐거움은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140쪽, 지그문트 바우만)
정치적 행위자라는 것은 아주 오랜 교육과정을 통해 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아주 심도 깊고 지속적인 교육과정을 수립해서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것이다.(159~160쪽, 가야트리 스피박)
마르크스는 많은 문제에 대해 실수를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수백만 년 동안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본성을 가볍게 보았다. 그는 인간 본성이 사회의 경제구조를 바꾸면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다.(175쪽, 피터 싱어)
종교적 실망과 정치적 실망에서 철학에 대한 요청이 나온다고 했다. 실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상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경험에서 실망이 기인한다. 실망은 끝이라기보다 시작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철학에 대한 요청이다.(187쪽, 사이먼 크리츨리)
조선노동당사라는 역사적인 건물은 거기에 없다. 오직 폭력의 기억으로서, 부재한 영구평화를 증명하는 기념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냉전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는 민족주의적 기획은 이 지점에서 붕괴한다. 언제나 그 목적을 빠져나가는 영구평화에 대한 염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통일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평화에 대한 갈구라는 점에서 언제나 이미 민족주의적이지 않다. 국가의 안전은 영구평화와 다르다.(205쪽, 그렉 램버트)
대안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옆’에 다른 사회 체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생각은 ‘다른 세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이 안에서 내재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추상적 부정이 아니라 결정적인 부정이다. 문제는 대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이행의 개념이다.(216쪽, 알베르토 토스카노)
자본주의는 도처에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붕괴에 직면한다면 붕괴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 지구적 경제가 균형을 유지하는 한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붕괴 위기를 맞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위기 상태다. 오늘날 그 차이는 규모이지 질적인 문제가 아니다.(228쪽, 제이슨 바커)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택광이 묻고 철학자들이 답하다
너도나도 이런저런 ‘종언’을 고하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택광과 세계 철학자들의 대화를 엮었다. 민주주의는 죽었고 공산주의도 이데올로기도 역사도 운동도 끝났고 심지어 자본주의마저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위기와 관련한 주장들, 논의들, 운동들, 행동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에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즐겨 사용했던 방법을 차용해 철학자 9명을 직접 대담장으로 소환해 일대일로 인터뷰한다. 때는 2012년이며 장소는 이택광이 직접 밝히듯이 그들이 면대면한 곳이거나 이메일을 통한 웹상이다.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지그문트 바우만, 가야트리 스피박, 피터 싱어, 사이먼 크리츨리, 그렉 램버트, 알베르토 토스카노, 제이슨 바커 등 학계에서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주목받는 철학자 아홉 명은 이렇게 해서 한 권의 책에 모였다.
이택광은 각 철학자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질문은 물론 지금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특히 2012년 세계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해, 대중 운동에서 SNS 매체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논하고 여러 가지 ‘종언’ 담론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으며 위기로 인식되는 지금의 세계 상황에서 철학의 역할과 철학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들어본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로 아홉 명을 만나기에 앞서 이택광이 그리는 사유의 지형도 격이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의 정치철학뿐 아니라 가라타니 고진과 왕후이에 주목해서 본 아시아의 사상 지형까지 포괄한다. 철학자들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으로 뜻하는 바와 영국 신좌파의 출현, 이탈리아의 예외주의, 아시아에서 사상 전개가 부상하는 상황 등을 개괄하며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이론의 콜로세움”으로 안내한다.
2부는 이택광이 철학자 아홉 명과 각기 나눈 인터뷰 내용이 엮여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 위기 상황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것,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보잘것없는 익명의 대중이 권력에 대해 행사하는 위반으로서 민주주의와 데모스를 다시 사유하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정상적인 질서를 전도하는 혁명을 요청한다. 역사적인 현상으로서 소비주의에 주목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 세계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2012년 현상’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 너무 쉽게 ‘종언’을 고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문화를 읽는 이론가’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가야트리 스피박은 중요한 화두로 학생들 교육을 꼽는데,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일은 아주 오랜 교육 과정을 요하며 이렇게 지속되는 교육으로써 억압을 제거하고 욕망을 재배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오고 있는 피터 싱어는 마르크스가 간과한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본성에 주목하며 호혜적인 관계를 위해 협동하는 체제를 만들 것을 요청한다. 아나키스트 정치철학자이자 활동가인 사이먼 크리츨리는 철학의 본령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해 마르크스주의가 빠지기 쉬운 경제 환원주의를 정치적인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주제로 평화에 관한 생각을 나누는 ‘영구평화프로젝트’의 행사 차 2012년 봄에 한국을 방문한 그렉 램버트는 조선노동당사를 방문하며 받은 인상과 사유를 공유하며 전쟁과 평화의 측면에서 철학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 사이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한 램버트는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을 둘러싼 미국적 환원주의 해석의 풍토를 비판하는 자신의 주요 저서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광신’에 관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으며 제이슨 바커의 다큐멘터리 《마르크스 재장전》에도 등장하는 알베르토 토스카노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를 과다하게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적 기획을 지적하며 대안을 찾으려 하기보다 이 체제 안에 내재한 것을 바꾸는 이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마르크스 재장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이자 바디우 연구자인 제이슨 바커는 지금 위기를 말하기에 신자유주의는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경제에 미치는 정치의 작용에 주목하는 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며 월스트리트를 점령 시위가 내포하는 한계를 적시한다.
이택광의 서설과 잇따라 그가 철학자들과 진행하는 대담은 우리 세계가 처한 위기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지금이 끝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은다는 사실이다. 실패하고 실망하고 게임은 끝났으며 졌다고 생각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낫게 실패해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라는 이택광의 말처럼 독자로 하여금 문제를 고민해보도록 만드는 데 여기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메시지가, 그리고 이 책의 목적이 놓여 있다
작가정보
저자 이택광은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 영국 워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셰필드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문화이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 영화, 대중문화에 대해 글을 쓰며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마녀 프레임』 『무례한 복음』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99% 정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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