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
2014년 08월 28일 출간
국내도서 : 2014년 05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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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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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파니가 방 안에 들어선 순간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었다. 온몸에 불같이 퍼지는 욕망을 삭이기에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고혹적이었다. 자그마한 얼굴, 좁은 이마, 오똑한 코,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입술,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이집트 농부의 옷차림보다 훨씬 화려한 파리 여인다운 옷차림 속에 감추어진 완숙하고 유연한 몸매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26쪽
장은 의자 등받이에 등이 붙어 버린 듯 꼼짝하지 않고 앉아 앞에 놓인 얼음을 띄운 찬 음료수를 빨대로 천천히 들이마시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그 차디찬 음료수가 마치 독약처럼 몸속에 흘러 들어가 심장과 오장육부까지 모조리 녹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는 눈부시게 화창하고 진땀이 손에 밸 정도로 따뜻했는데도 그는 말라리아에 걸린 것처럼 떨었다. ―66쪽
파니의 몸 구석구석엔 그동안 그녀를 거쳐 간 많은 남자들의 다양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그러한 흔적들은 마치 서로 다른 지질층의 생성과 퇴적을 통하여 지구의 변모 과정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녀의 굴곡 심한 생활의 편린들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흔적들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그녀를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여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 확실한 것은 현명함과 관계있는 일이야. 파니는 세상 누구보다 어리석은 여자야. 천박하고 또 나보다 십오 년이나 연상의 여자가 아닌가.’
―91쪽
아버지가 조간신문을 읽으며 뭐라고 열심히 훈계하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장은 카우달의 작품인 사포 상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중략) 파리의 거리를 지나치다가 상가 진열장에 놓인 똑같은 모습의 사포상을 볼 때는 그토록 역겹게만 느껴졌었는데 외따로 있는 그 브론즈를 보자 둥근 어깨를 끌어안고서 입맞추며 ‘당신의 사포예요, 오직 당신만의 사포예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픈 강렬한 사랑의 욕구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와 버렸다.
―145쪽
“더러운 부르주아!”
“화냥년!…… 끝장나서 속이 다 후련해…… 더 이상 너와는 살지 않겠어!”
“가, 썩 꺼져 버려. 나도 지긋지긋하던 참에 잘됐어…….”
조셉은 팔을 걷어붙이고 욕을 퍼부어대며 싸우는 그들의 모습을 잔디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한참 싸움이 무르익어 가는데 난데없이 뚜우 하는 무시무시한 뿔 나팔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고 연못에 부딪쳐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지겹지도 않아요?…… 아직도 싸울 힘이 남았어요?”
―208쪽
그는 실내복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파니의 몸을 품에 안았다. 농익은 여자의 육체가 발산하는 열기와 체취 그리고 자기 입술에 그녀의 눈물이 번져 드는 입맞춤에 그의 감정은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녀는 그윽하게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하룻밤만, 딱 하룻밤만…….”
그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기차!……’
그는 그녀에게서 몸을 빼내고 역까지 단숨에 줄달음질쳤다.
―275쪽
[별], [마지막 수업] 작가 알퐁스 도데의 숨은 대표작!
―이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면 당신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
‘둘’이라는 이름의 질병, 사랑.
거장의 솜씨로 세세히 묘사한 격정적 성애의 大서사시
우리나라에서는 단편 [별]을 비롯해 주로 순수한 아름다움과 따뜻한 시정(詩情)을 담은 작품으로만 알려진 알퐁스 도데의 전혀 다른 작풍의 이색적인 소설로, 원래 평론가들이 도데의 대표 걸작으로 꼽아 온 성애 소설이다.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는 명문가 출신의 스물세 살 장과 열다섯 살 연상의 여자 파니의 열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의 전말을 그렸다.
주정뱅이 마차꾼의 딸로 남의 손에 길러진 파니. 그녀가 거쳐 온 남자들의 숫자는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 파니의 별명인 사포는 비극적인 사랑의 아름다움, 주체할 수 없는 정념, 육신을 시들게 만드는 정욕 등을 탐욕적이면서도 열에 들뜬 문체로 그려내고, 이성애와 동성애를 넘나드는 스캔들을 일으킨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여성 시인으로,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
장은 하나씩 드러나는 파니의 알쏭달쏭한 과거 행적에 질투 섞인 의혹을 보내며 점점 순수한 사랑보다는 욕정에 이끌려 나락에 빠져드는데…….
알퐁스 도데가 유례없이 민감하고 섬세한 에로티시즘 감수성, 신경질적이면서도 세련된 재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남녀관계의 변모에 대한 소름 돋도록 현실적인 묘사와 촘촘하고 직관적인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추천의 글]
《사포》가 만약 라틴어로 씌어졌다면 대리석에 새겨졌을지도 모른다. …… 현실에서 가능한 연민과 공감, 그리고 삶의 불확실성마저도 거장의 솜씨로 세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H. 쉬라드 (『알퐁스 도데 : 전기와 비평』의 저자)
도데는 삶을 투명하게, 그리고 선과 악, 비루함과 고상함, 나약함 등을 모두 가진 전체로서 바라본다. 흐리고 안개에 싸인 타락 가운데서도 선량함은 아름답고 분명하게 빛난다. 타락의 구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할지라도, 이토록 완전하고 순수한 목적을 가졌다는 것을 《사포》는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해리 서스턴 펙
작가정보
저자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는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님시의 프티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부터 글을 썼지만 아버지의 파산으로 대학공부는 못했다. 르누아르, 세잔에서부터 고흐, 피카소까지 예술적 영감의 세례를 받은 프로방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 녹색 짙은 대지, 론 강과 숲이 도데의 삶과 문학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처녀 시집 《연인들》(1858)을 모델 마리 리외에게 헌정하면서 그녀와 오랫동안 복잡다단한 관계를 맺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쓴 작품이 바로 《사포》(1884)다.
같은 작가인 쥘리아 알라르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고, 쥘라아는 도데의 삶과 문학을 풍요롭고 안정되게끔 내조했다.
《사포》 발표 이후부터 척수까지 번진 성병이 악화되어 오래 앓다가 1897년에 영면했다.
장편소설과 소설집, 단편소설로 《꼬마 철학자》, 《풍차방앗간 편지》, 《월요 이야기》, 〈별〉, 〈마지막 수업〉 등이 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았으며, 희곡 《아를의 여인》은 비제가 작곡해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공쿠르, 플로베르, 졸라, 투르게네프 등과 사귀면서 자연주의, 사실주의의 영향을 고루 받았지만, 냉엄하고 무자비한 사실 묘사와 따뜻하고 감성적인 서정이 융합된 개성 뚜렷한 문학 세계를 세웠다. 감상적인 작풍, 〈마지막 수업〉의 민족주의와 파리 코뮌 탈출 등 흐릿한 정치적 성향은 일부 비난받았다.
번역 김종태
역자 김종태는 1954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꼬마 철학자 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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