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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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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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보석 같은 순간들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사람이 있다. 한때 상투적인 것처럼 들렸던 ‘학문에의 매진’이 이즈음엔 매우 드문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만큼 더 귀하게 들린다. 독문학자 전영애는 그런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전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여성이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부터 학문을 파고들어 마침내 국내 학계에 독문학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 등 시대를 풍미한 고전들의 빼어난 번역이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지금은 여러 출판사들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되어 독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진 시대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가 번역한 책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권의 책’으로 꼽곤 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책을 번역해왔지만, 전영애에게 학문의 시작이자 종착지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그가 2011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수상한 ‘괴테 금메달Goldene Goethe-Medalle’은 아시아의 학자로서, 여성으로서 이뤄낸 놀라운 업적이다. 2015년 문학동네에서 펴낸 『시인의 집』을 통해 여러 시인들과 작가들을 향해 걷는 마음의 기록을 전한 바 있는 전영애는, 이번 책에서 다시 괴테로 돌아가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동시집』 등 거대한 작품들에 담긴 아름답고 시적인 격언들을 통해 고단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대 선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던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
서둘러 가라, 내 사랑에게로
하지만 저기 외따로 가는 자 누구인가?
더 크게 지을 수야 있겠지만, 더 많은 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인식했으면,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
?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한 사람을 향한 편지를 닮았다.
다시, 책 한 권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일
책이 ‘지식의 보고’로 전해지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시대다. 그러나 전영애는 아직도 부러 무거운 책을 쌓아놓고 한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한다. 괴테가 60년 동안 쓴 『파우스트』를, 그는 45년을 두고 읽었다.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나중에는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두었다. 천천히 번역까지 해가며 읽은 책 한 권 한 권이, 그에게는 매번 하나의 세계였다.
전영애는 “세상 무엇이든 더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의 종말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먼 옛날의 위인으로서의 괴테보다 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열렬히 사랑하며 “해처럼 맑게” 살았던 친숙한 한 사람과 마주앉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괴테가 60년을 쓴 그 작품, 『파우스트』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라면 누구든 서슴없이 택하는 구절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어온 문장이지요. 그러나 이 번역은 ‘노력’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노력한다’는 말에는 땀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여러 해를, 아니 수십 년을 두고 고민했지만 괴테가 말하고자 한 원래의 뜻이 그런 ‘노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굳어진 번역을 부러 바꾸었습니다.(13~14쪽)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어찌나 옳은 소리만 하는지 읽다보면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옳은 말만 하는’ 이성의 인물 메피스토펠레스의 매끄럽고 멋진 대사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19쪽)
어떤 원인으로든, 현재 상태의 자신의 주인은 자기입니다. 그것을 고치든 고수하든 상승시키든 개선시키든 그 모든 것은 원인제공자가, 설령 백 번 개심을 한다 하여도 이제 와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당사자의 자기연민이나 분노가 해결할 일도 아닙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자신을 빚어나가는 일을 할 사람은, 자기밖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달리 없습니다.(25~26쪽)
세상 앞에서 자신을 닫을 수는
작가정보
저자 : 전영애
서울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한국괴테학회장을 역임했으며,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 재단 연구원이다. 2011년 유서 깊은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 『독일의 현대문학: 분단과 통일의 성찰』 『시인의 집』 『맺음의 말』 『인생을 배우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 라이너 쿤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등이 있다. 현재 여백서원을 운영하며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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