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스타킹 한 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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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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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삶의 가능성을 문학으로써 증언한 소설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여성 작가의 단편을 선별해 엮은 앤솔러지 『실크 스타킹 한 켤레』를 선보인다. 여성과 자연의 친연성이 남성적 문명에 위협받는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세라 오언 주잇의 대표작으로 첫 장을 열어 시대의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여성의 욕망을 전면적으로 다룬 케이트 쇼팽, 페미니즘 관련 저작을 다수 출간한 여성운동가 샬럿 퍼킨스 길먼,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에 저항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욕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여성의 성적 열망과 주체적 삶을 주창한 이디스 워턴, 변화하는 미국 남부 세계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인간관계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엘런 글래스고, 남성복을 즐겨 입으며 남성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을 주로 썼던 윌라 캐더, 페미니즘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희곡들을 써낸 극작가 수전 글래스펠, 남성 우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 날카로운 관찰력과 심리 묘사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캐서린 맨스필드, 그리고 다층적인 억압 속에 있는 흑인 여성을 조명한 조라 닐 허스턴까지, 총 11명의 작가가 쓴 13편의 소설을 엮었다.
수록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쓰인 작품들로 특정했다. 과학기술과 대도시 중심의 소비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한 이 시기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성애적 관계나 결혼, 가족이라는 제도 역시 뒤흔들리며 특히 여성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격변의 시기였다. 여성성이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획득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전통적인 이상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성을 일컫는 ‘신여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동성애자나 크로스드레서, 논바이너리와 같은 퀴어 관련 논의도 전보다 가시화되기 시작한 때였다. 더불어 결혼과 출산을 여성성의 핵심으로 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의 독자적인 욕망과 자유의지에의 관심도 높아졌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많은 여성 작가가 왕성한 작품활동을 선보이는데, 이 격변의 세기 전환기에 쓰인 작품들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의 여성들이 씨름했던 문제를 담고 있다. 작가 11인이 문학을 통해 증언해 보인 새로운 삶의 가능성, 그 선구적 상상력에 깃든 혜안은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과거에 쓰였음에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니며 현재의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갈등, 고민을 해석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세라 오언 주잇 백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뉴잉글랜드 수녀
샬럿 퍼킨스 길먼 누런 벽지
케이트 쇼팽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속편] 폭풍우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윌라 캐더 감상적이지 않은 토미
이디스 워턴 다른 두 사람
수전 글래스펠 여성 배심원단
버지니아 울프 벽의 자국
캐서린 맨스필드 작고한 대령의 딸들
엘런 글래스고 제3의 그림자 인물
조라 닐 허스턴 땀
부연 안개 속에서도 진실을 꿰뚫어보는 명징한 시선
고요하고 차분하고 광활한 상상력으로 구현해낸 삶의 진경
당시 여성의 글쓰기는 예술성이나 작품의 중요도 면에서 가치가 낮다고 폄하되었다. 글을 쓰는 창조적 행위 자체도 여성에게는 권장되지 않았을뿐더러 글을 통해 욕망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단죄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글쓰기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작가 열한 명은 제각기 다른 삶의 이력과 문학적 감수성, 작품세계를 살려 다채로운 작품들을 완성해냈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반영한 서사에 절망과 분노를 스며들게 하거나 자유롭고 독자적인 삶에 대한 끝없는 열망 또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녹여냈다. 사회의 검열을 피해 고딕소설이나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성 존재를 등장시켜 불안감과 공포감을 유발하고(「제3의 그림자 인물」)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여성들의 이야기(「여성 배심원단」)가 그 예다. 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남성에 대해서는 소설 속에서 인과응보의 방식으로 복수를 했다(「땀」).
『실크 스타킹 한 켤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다양한 입장과 상황에 놓여 있지만 모두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멀리 떠난 약혼자를 기다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독신생활의 즐거움을 깨닫고 비혼의 삶을 살기로 결단을 내리거나(「뉴잉글랜드 수녀」) 이분법적 성별로 정체화되지 않는 인물이 성별에 따라 강요되는 전형적인 성역할을 무화시키며 자주적인 삶을 살아나간다(「감상적이지 않은 토미」). 여성을 옭아맨 억압적인 현실과 세태가 풍자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평생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온 자매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작고한 대령의 딸들」), 아내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여 행동하고 처신해주기를 기대하던 남성이 결국에는 같은 이유로 궁지에 몰리는(「다른 두 사람」) 식이다. 작가들이 이러한 텍스트 아래에 숨겨둔 절망과 분노, 욕망과 희망을 톺아보노라면 당시 사회의 면면과 시대 분위기가 선명하게 읽힌다. 결혼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그 신성함이 옅어지면서 이를 대하는 여성의 태도 역시 달라졌음을 가늠할 수 있고, 변화한 현실에 유리된 위계와 법칙을 고수하는 남성적 사고에 반기를 드는 여성적 인식이 생겨났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창조성과 자유의지를 완전히 억압당해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여성이 극도의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는 내용의 「누런 벽지」는 작가 혹은 예술가였던 여성에게서 나타나곤 했던 신경증적 병증이 실은 표출되지 못한 창조성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실크 스타킹의 감촉을 통해 잠들어 있던 욕망과 섹슈얼리티가 발현되는 여성의 모습(「실크 스타킹 한 켤레」)에서는 상품 소비자로서의 욕망이 단순한 소비 욕구나 허영이 아니라 깨어나는 여성의 욕망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11인의 작가가 명징한 시선과 광활한 상상력을 발휘해 구현해낸 삶의 진경은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받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변화하는 세계를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사고하는 일이 곧 나의 싸움”
내면 깊숙한 열망을 해방시킨 소설이라는 무대
“사고하는 일이 곧 나의 싸움”이라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들은 부당한 관습과 사회적 불평등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저항해왔다. 이 책에 수록된 작가들은 소설을 통해 또다른 삶을 모색해보고자 한 대표적인 여성들이다. 전방위적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이 세기 전환기는 여성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시기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당시 여성들에게 삶의 선택지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 작가들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변화를 예리하게 살피며, 내면의 사그라지지 않는 뜨거운 열망을 소설이라는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소설은 여성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교류에 대해 탐구하고 삶의 여러 선택지를 상상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인 동시에 자신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눈을 돌리게 해주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세라 오언 주잇이 윌라 캐더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처럼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끈질기게 마음을 괴롭히는 통에 결국 종이에 똑바로 써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는 사소하든 거창하든 틀림없이 문학이 된다.”
작가정보
저자 : 케이트 쇼팽 외
케이트 쇼팽 (1850~1904)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미국에 정착한 프랑스계나 스페인계 귀족의 후손인 크레올의 삶을 담은 단편을 주로 썼다. 대표작으로는 『깨어남』 『바유 사람들』 『아카디에서 보낸 하룻밤』 등이 있다.
세라 오언 주잇 (1849~1909)
미국 메인주 사우스버릭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메인주의 풍경과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주로 그리며 ‘지방색 작가’로 알려졌다. 대표작으로 『뾰족한 전나무의 고장』 『시골 의사』 『백로』 등이 있다.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1852~1930)
미국 매사추세츠주 랜돌프에서 태어났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십대 시절부터 아동소설과 시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변변찮은 로맨스』 『뉴잉글랜드 수녀』 『펨브로크』 등이 있다.
샬럿 퍼킨스 길먼 (1860~1935)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작가이자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대표작으로는 『여성과 경제』를 비롯한 페미니즘 관련 저작들과 『여자만의 나라』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이디스 워턴 (1862~1937)
미국 뉴욕의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든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집 장식』을 출간했고, 소설가로서는 뉴욕 상류층의 생활상과 그 변화를 주로 그렸다. 대표작으로 『이선 프롬』 『순수의 시대』 등이 있다. 1921년 여성 최초로 문학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엘런 글래스고 (1873~1945)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평생 버지니아에 살며 변화하는 남부 세계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인간관계를 다룬 소설을 주로 썼다. 대표작으로 『민중의 목소리』 『불모의 땅』 『구원』 『여기 우리 생애에』 등이 있다. 194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윌라 캐더 (1873~1947)
미국 버지니아주 백크릭밸리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에 네브래스카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십 년간은 이후 작품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오, 개척자여』 『나의 앤토니아』 『우리 중의 하나』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192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전 글래스펠 (1876~1948)
미국 아이오와주 대븐포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곧바로 유망한 신인으로 떠올랐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정복당한 자들의 영광』과 희곡 『사소한 것들』 『앨리슨의 집』 등이 있다. 193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버지니아 울프 (1882~1941)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면서 현대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구한 20세기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꼽힌다. 대표작으로 소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산문 『자기만의 방』 『3기니』 등이 있다.
캐서린 맨스필드 (1888~1923)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1908년 런던으로 건너가 평생 유럽에서 거주했다. 섬세한 관찰력과 심리 묘사가 두드러지는 소설로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으로는 『행복』 『가든파티』 등이 있다.
조라 닐 허스턴 (1891~1960)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이턴빌로 이주해, 흑인들 스스로 세운 도시에서 자기긍정의 정신과 독립심, 자긍심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표작으로 『노새와 사람들』 『요나의 박 넝쿨』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등이 있다.
번역 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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