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34.22MB)
- ISBN 9788954672870
- 쪽수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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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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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부의 어떤 나눔 없이 총 45편의 시가 연이어 펼쳐지고 있는 이번 시집은 ‘유고(遺稿)’라는 제목을 힌트로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 다소 접근하기가 수월한 듯도 하다. 머리글로 올려둔 “사람은 본지 영혼이 깡마르고…… 그리하여 시체는 참으로 짙은 빵이리라” 이 구절만 보더라도 우리를 사로잡는 시의 분위기는 감은 눈 가운데 더욱 예민해지는 냄새라 한참 킁킁거리게 된다. 시는 알게 만드는 것일까, 시는 알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조연호의 시는 후자에 가까우리라. ‘절로’를 타고 가는 그 무한한 휨의 곡선 주자로 특히나 능한 이가 조연호 시인이라 감히 자부하는데, 그만의 리듬을 좇으니 부러지거나 부서지는 뼈일 리 없다 싶고 그만의 사유를 따르니 일리에 무리가 앞설 수 없다 싶다. 우리가 시를 왜 읽고 쓰는가, 그 질문에 가장 정직한 예로 왜 조연호의 시를 들이미는가 하면 바로 이 타이밍의 서성거림, 그 어른거림의 아름다움을 봐버려서일 거다. 목적을 놔버린 시, 목적에 영영 눈이 먼 시,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더욱이 슬픈 시. 눈으로 먼저 읽어온 조연호의 시라면 이번 시집은 입으로 먼저 읽어봄이 어떨는지. 그 입술 사이에 무엇이 맺히는지 그 맺힘 속 나를 한번 비춰봄이 어떨는지.
채색 묘비 앞에서 / 술래잡기 후의 고독 /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무 / 나 역시 아르카디아에서 쓸모없음을 줍다 / 긴 피리의 남근을 불어주오, 가련한 가수의 코를 물어주오 / 호양나무의 고요를 따라 / 주홍 책 읽기 / 3계명 / 나는 나의 음부에 들어간 신만을 의지하노라 / 겨울 대육각형 / 겨울 대육각형 / 우주 에세이 / 나의 개는 포도나무였으므로 / 성야(星夜) 사진을 찍다 / 시인의 성좌는 별자리 뒤편의 고요한 뒤따름 / 수대권(獸帶?)으로 가는 사람들 / 포도 닫기의 날 / 시체는 참으로 짙은 빵 / 포도 닫기 / 부탁의 나무 / 묘갈(墓碣) A / 여름 산과학(産科學) / 짐(?)이라는 이름의 술 / 영도(零度)의 술 / 야소교흥망약전(耶蘇敎興亡略傳) / 포도 닫기 주변 / 나는 자기 꼬리를 공격하는 개처럼 풍물시(風物詩)의 자기 위협을 근심하지 않으리 / 칸트의 밤꾀꼬리 구절 / 만찬중 떠올린 의무 / 문학가의 연문(戀文) / 친밀성과 밑바닥 / 케르베로스의 정 많은 하루 / 추수 후 쌀겨 고르기 / 귀신이 있다 / 여름 노장(露場) 에세이 / 히페르보레이오스의 나라 / 프네우마와 함께 계절이 오고 /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 천(千)의 모습의 첫 문자 / 좋은 가부장의 시 /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 슬(蝨)처럼 취하다 / 령(?) / 꽃 / 야좌도(夜坐圖)에서 길을 잃다
해설|그리하여 다시 한번 더!
|김정현(문학평론가)
어쨌거나 세상은 나와 같은 악인은 감히 쓸 수 없는 맑은 시일 것이므로,
─「칸트의 밤꾀꼬리 구절」부분
선생은 위급한 자연이었다. 계절이 희박한 곳을 향해 쇄빙선 한 척이 깊이 부수며 가로지르는 일은 꼭 시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슬픔의 재능이 아니라 재능의 슬픔입니다. 오늘은 잘 삶은 강낭콩을 가져왔습니다. 만유(萬有)를 걸어둘 모서리를 다듬기 전에, 함께 한 줌씩 가볍게 집어먹기 위해.
─「묘갈(墓碣) A」부분
작가정보
작가의 말
1994년부터 2018년까지 나는 시인이었다. 글쓰기가 실천이며 글쓰기를 감행한 모든 자가 용기 있는 자라고 믿었던 한때나마 나의 도덕은 충동적인 것이었다. ‘직접적인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회상할 수 없다는 물질과 정신의 유일하게 합의된 원칙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그 자신에게도 있을 수 있는가’를 묻는 정신 외엔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았던 얕고 묘한 술을 추모한다.
2020년 5월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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