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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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14.02MB)
- ISBN 9788954671798
- 쪽수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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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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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
일명 ‘보라색 치마’는 ‘나’가 사는 동네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인이다. 언제나 같은 옷차림에 며칠씩 감지 않은 듯 푸석푸석한 머리를 하고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에 나타나 빵집과 공원을 들른다. 상점가 사람들 사이에는 보라색 치마를 하루에 한 번 보면 운이 좋고 두 번 이상 보면 운이 나쁘다는 징크스가 돌고, 동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몰래 다가가 그녀의 등을 때리고 도망치는 놀이를 한다. 평소 스쳐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뚜렷한 직업 없이 오래된 빌라에 혼자 사는 보라색 치마는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뒤를 밟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공원에서 늘 앉는 벤치에 구인정보지를 가져다놓는 물밑작업 끝에 ‘나’가 객실 청소원으로 일하는 시내 호텔에 보라색 치마를 취직시키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염원대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도 말 한번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일터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건대, 어째 보라색 치마는 생각보다 사회성이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나’보다도.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궁리하는 사이 점점 시간만 흘러간다.
느닷없이 말을 거는 건 이상하다. 아마 보라색 치마는 지금껏 한 번도 “저랑 친구 하실래요?”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지 않을까. 그런 식의 만남은 부자연스럽다. 헌팅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 어쩔 것이냐. 나는 우선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싶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15~16쪽)
어른이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거늘, 그게 안 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이 직장은 일 년 내내 일손 부족이다. 인사할 줄 모르는 신입을 선배 스태프들이 괴롭혀서 그만두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당연히 괴롭히는 쪽이 나쁘지만, 나이깨나 먹고 “좋은 아침입니다” 한마디 못하는 인간도 좀 그렇다. 나도 절대 남 말 할 입장은 아니지만. (33~34쪽)
그러므로 다시 한번 쥐어보겠다. 이번에는 더 확실히, 손톱이 콧등을 파고들어 피가 날 만큼.
보라색 치마는 격분해서 나를 버스에서 끌어내릴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정식으로 이름을 밝히고, 보라색 치마에게 사과하고, 용서받고, 그러고는 둘이 친구가 될 테니까. (65쪽)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주의를 기울이면, 보인다. 보라색 치마의 본심이. 보라색 치마는 진심으로 그 자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입은 웃어도 눈이 웃지 않는다. 다른 스태프들의 생생한 표정에 비해 보라색 치마는 어딘가 애처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선배들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장단을 맞출 뿐이다. (79쪽)
“요컨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소설 초반에 ‘보라색 치마’는 마치 도시전설의 주인공처럼 불온한 존재로 그려진다. 빈곤한 생활환경이 엿보이는 겉모습에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도 갖추지 못한 듯한 그녀를 묘사하는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다보면, 누구나 현실에서 한 번쯤 목격했을 법한 거리의 기인이나 사회 부적응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정기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사회에 편입된 ‘보라색 치마’가 점점 정상성을 찾아가면서, 오히려 읽는 이를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건 화자인 ‘나’ 쪽이다. ‘나’는 어떤 목적으로 ‘보라색 치마’에게 접근하고 싶어하는가? 스토킹에 가까운 ‘나’의 행동 역시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정상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보라색 치마’와 ‘나’는 알고 보면 거울의 양쪽처럼 꼭 닮은 모습이 아닌가? 아니면 ‘보라색 치마’는 혹시 ‘나’의 망상 속 존재일까? 꼬리를 무는 의문은 두 사람이 마침내 일대일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하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폭주하듯 이어진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상대의 일상을 염탐하고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엿보는 소설 속 화자의 시선은 때로 지나치게 진지해서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실은 SNS 등에서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면서 현실에서는 아무런 접점도 가지지 못하는 현대사회 속 파편화된 인간관계의 일면처럼 보인다. 이마무라 나쓰코는 일인칭 시점의 한계와 함정을 신선한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매력적인 모순을 지닌 주인공을 만들어낸다. 관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로 정상과 광기를 오가는 주인공의 심리는 책을 읽는 한 명 한 명의 ‘나’에게도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양면성의 우화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일본 문단을 사로잡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마무라 나쓰코는 대학 졸업 후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갑작스럽게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을 계기로 스물아홉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호텔 청소 스태프로 오래 일했던 실제 경력이 이번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다소 짧은 습작기를 거쳤음에도 초기부터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 그녀의 작품들은 누구나 읽기 쉬운 담담한 문체가 특징이지만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난 인물을 화자로 삼음으로써 언뜻 불안정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자이 오사무 상과 미시마 유키오 상을 함께 수상한 데뷔작 『여기는 아미코』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해 소외되어가는 초등학생, 아역 출신의 스타 배우 아시다 마나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2020년 개봉 예정인 『별의 아이』는 사이비종교 신도인 부모님의 영향 아래 자란 중학생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역시 독자가 주인공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의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다면적인 소설로, “읽을 때마다 장르가 바뀌는 이야기”(사사키 준, 문학평론가), “정체불명의 인물을 거울삼아 화자의 본성을 파고드는 구조가 매우 성공적이다”(오가와 요코, 소설가), “알고 싶지 않지만 건드려보고 싶은 인간 심리의 일면을 파헤쳐준다”(『다 빈치』)라는 평을 받았다. 데뷔 때부터 적지 않은 주목과 인정을 받았지만 활동을 서두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 후에 쓴 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었을 뿐 아니라 야마다 에이미, 오가와 요코, 가네하라 히토미 등 독보적인 문체와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여성 작가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이마무라 나쓰코. 세 살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매일 새벽 두시부터 다섯 시간씩 글을 쓴다는 작가의 성실성이 앞으로의 활약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 아쿠타가와상 심사평
묘하게 비뚤어진 사람을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은데, ‘보라색 치마’라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화자가 지닌 음영이 순식간에 깊이를 더한다. 상식에서 벗어난 인간의 매력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이마무라 나쓰코의 재능이다. _오가와 요코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독보적인 언어로, 이렇다 할 이유 없는 공포와 비현실성이 점재하는 세계로 화자를 밀어넣는 필력에 혀를 내둘렀다. _야마다 에이미
평이한 문장에 우화적이고 치밀한 스토리, 명쾌한 캐릭터 설정, 뚜렷한 비평점 등 입문자부터 평론가까지 폭넓게 어필할 만한 작품. _시마다 마사히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여성 묘사에 끌렸다. 지금까지 불결하면서 매력적인 남성은 소설에서 많이 접해왔지만, 여성은 처음인 것 같다. _요시다 슈이치
정상과 비정상의 애매한 경계가 그대로 인간성에 대한 미궁으로 이어진다. 예전 후보작들에서도 독특한 재능이 엿보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진가를 발휘했다고 본다. _미야모토 테루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198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29세에 직장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고를 받은 뒤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에서 감흥을 받아 쓴 첫 소설 『여기는 아미코』로 2010년 다자이 오사무 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미시마 유키오 상까지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동안 작품활동을 쉬다가 2014년 단편 「지즈 씨」를 발표하고, 2016년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른 동명의 단편을 포함한 소설집 『오리』로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을 수상했다. 2017년 장편소설 『별의 아이』로 다시 한번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으며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했다. 2019년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로 16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그외 작품으로 소설집 『아버지와 나의 사쿠라오 거리 상점가』가 있으며, 2020년 『별의 아이』가 아시다 마나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학과와 같은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일본에 거주하며 프랑스어와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기사단장 죽이기』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미크로코스모스』 『녹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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