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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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29.80MB)
- ISBN 9788954671002
- 쪽수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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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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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네번째 산문집인 이 책에는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계절감이 도드라지는 글이 많으며, 그 계절에만 포착되는 풍경과 소리, 맛과 감정들이 읽는 이의 감각을 활짝 열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이 소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가만한 통찰과 그것을 감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절묘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겨울 고양이
밤이 하도 깊어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그의 머플러는 여전히 이상하지만
김밥 예찬
얼지 않은 동태 있나요?
옷, 내가 머무는 작은 공간
밤과 고양이
개의 마음
스무 살 때 만난 택시 기사
어른 여자를 보면-김언희 시인께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들
*하루치 봄
사월
맹추라는 말
하루치 봄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
진딧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작은 그릇
G의 얼굴이 좋았다
카페에서 〈로망스〉 듣기
봄바람도 구설수에 오를 때가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청춘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지 않기
호두 세 알, 초코쿠키 한 개
*여름비
목숨 걸고 구경하지 않을 자유
비 오는 날 발레하기
여름엔 감자, 여름엔 옥수수
선생님도 모른단다
그때 내가 낭독한 여름
아는 것 말고 알아주는 것
당신의 귀를 믿어요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여름비
하하하, 오해입니다
웃고 웃고 또 웃네
살 수 없는 것들의 목록
식탁 위에 놓이는 것
시간이 내게 주는 것
*오래된 가을
날마다 카페에 간다
책 읽는 자가 누리는 산책
몽당이라는 말
찬란하고 소소한 취미인생
피로가 뭐냐고 묻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자라서 노인이 된다
엄살쟁이를 위한 변명
보통과 특별 사이
오래된 것이 도착했다
내 앞에는 당신의 등이 있다
눈 감고 지나는 가을밤
파주의 기러기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은 작고 가볍고 공평하다. 해와 달이 하나씩 있고, 내가 나로 오롯이 서 있는 하루.
이 산문집은 평범한 날을 기리며 썼다.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를 관찰했다. 삶이 일 퍼센트의 찬란과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구십구 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했다.
_8쪽, 「서문-모월모일, 모과」에서
그러나 알다시피, 어른 여자는 흔하지 않다. 어른 남자가 드문 것처럼. 어른이 못 된 여자, 여자라기보다 늙은 어른, 어른이 되기엔 상처가 많은 여자, 여자 따위는 되고 싶지 않은 어른…… 어른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나는 모르는 게 많아 어른 여자가 못 된 사람. 언제나 될 수 있을까, 진짜 어른 여자는.
_51쪽, 「어른 여자를 보면-김언희 시인께」에서
보이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 오해는 나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 생각이 가는 대로 가보자고 떠나는 이기적인 산책이다. 실체를 보지 못하고, 테두리만 볼 때 일어나는 ‘작은 비극’이다.
_146쪽, 「하하하, 오해입니다」에서
그때 우리는 우리가 청춘의 한복판에 있음을 몰랐다. 우리는 얼마나 뾰족하고 빛났던가.
청춘은 별안간 끝난다. (…) 그게 누구의 봄이든 봄날은 간다. 그리고 이따금 노래에 실려, 돌아온다.
_96~97쪽, 「조용필과 위대한 청춘」에서
이건 정말 못 당한다. 좋아서 하는 일. 가끔이지만 이런 수강생을 보면 티내지 않으려 해도 심장이 뛴다. 태어나려나봐, 저 사람, 태어나려는 것 같아. 어쩌지, 태어나면 저 사람 빛날 텐데, 빛나다 어두워지기도 할 텐데, 괴로울 텐데, 행복에 겨울 텐데, 도망치고도 싶을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 반 기대 반.
_55쪽,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말들」에서
제 존재를 다 쓰이고 오도카니 누워 있는 몽당연필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 역시 ‘몽당이’로 태어나 ‘몽당이’로 죽는 게 아닐까. 나 역시 날마다 몽당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이들면서 키가 조금씩 줄어드니까.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몽당사람’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 그게 뭐든 조금씩은 닳고 있다. 시간도 몸도 즐거움의 한계치도. 사랑도 그런 게 있을지 몰라. 흘리고 퍼주고 부비고 쏟아내다 ‘몽당사랑’이 되는 일. 몽당사랑이라니. 왠지 싫다. ‘몽땅 사랑’이라 바꿔 말할까. 나쁘지 않네.
_173쪽, 「몽당이라는 말」에서
“삶이 1퍼센트의 찬란과 99퍼센트의 평범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나는 99퍼센트의 평범을 사랑하기로 했다.”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날들
박연준 시인이 발견한 모월모일의 특별한 평범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으로 탄탄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박연준 시인. 그의 네번째 산문집 『모월모일』은 지금껏 그가 써온 작품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친근한 일상을 소재 삼았다. ‘겨울 고양이’ ‘하루치 봄’ ‘여름비’ ‘오래된 가을’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계절감이 도드라지는 글이 많으며, 그 계절에만 포착되는 풍경과 소리, 맛과 감정들이 읽는 이의 감각을 활짝 열게 한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이 소환하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가만한 통찰과 그것을 감싼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절묘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은 작고 가볍고 공평하다. 해와 달이 하나씩 있고, 내가 나로 오롯이 서 있는 하루”가 있다. 거기서 모든 특별함이 시작된다. “매일 뜨는 달이 밤의 특별함이듯.”(‘서문’에서)
서문을 지나 만나는 첫번째 글에서 우리는 겨울밤, 얼려놓은 곶감을 종지에 담아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나’를 만난다. 가만히 앉아 고요한 그 시간을 그대로 누리며 낮에 ‘당신’과 나눈 짧은 대화를 떠올린다. 겨울에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회초리처럼 서 있는 게 나무들로선 겨울을 지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일 거라던 당신의 말. 나무의 태만이라 섣불리 여기고 말았던 것이 최대한 고요해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일일 수 있다니, 곰곰 생각에 잠기는 겨울밤. 가만히 그 옆에 앉아 함께 골몰하고 싶어진다.
겨울밤은 야박하지 않다. 길고 길다. 먼 데서 오는 손님처럼 아침은 아직 소식이 없을 것 같으니, 느릿느릿 딴생각을 불러오기에 알맞다. 곶감이 녹으려면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감을 말릴 생각을 했을까? 말린 감은 웅크린 감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웅크릴 시간이 필요하다. 병든 자의 병도 잠든 자의 잠도 자라는 자의 성장도 비밀이 많은 자의 비밀도 겨울밤을 빌어 웅크리다가, 더 깊어질 것이다.
_14쪽, 「밤이 하도 깊어」에서
어느 날은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일곱 살의 나’를 내 앞에 앉혀두는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일곱 살의 나는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것이 아직도 붉고 싱싱하다고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페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우는 것. “잠잠해지도록, 슬픔을 달래”기 위해.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기에.(「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불시에 습격하는 건 음악도 못지않다. 대학 시절 친구와 반지하방에 앉아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창작시를 비평하며 자주 다투고 치열했던 기억을 불러온 건 조용필의 노래 〈Q〉이다.
그 작은 방에서, 우리는 스물셋이었다. 벽에 기대앉아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가 〈Q〉다. (…) 그때 우리는 우리가 청춘의 한복판에 있음을 몰랐다. 우리는 얼마나 뾰족하고 빛났던가. 청춘은 별안간 끝난다. (…) 그게 누구의 봄이든 봄날은 간다. 그리고 이따금 노래에 실려, 돌아온다.
_95~97쪽, 「조용필과 위대한 청춘」에서
읽는 이의 마음을 특히 충만하게 하는 것은 ‘난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어!’ 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아끼는 대목들일 것이다. 남편과 다툰 뒤 감정에 휘말려 일상을 내팽개치지 않고 할 일을 잘 마친 뒤 짐을 싸 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 낯선 도시를 혼자 걷고 현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줄 알게 된 나에 대한 긍정. 그 여유가 나와 타인의 관계 또한 건강하게 하리라.
둘이 되지 못해 안달인 시간이 있는가 하면 혼자이지 못해 누추해지는 시간도 있다. 인간에겐 햇빛, 음식, 타인의 사랑만큼이나 ‘혼자인 시간’ 역시 필요한 법. 지금 당신도 멀리서, 나처럼 혼자일 거라 생각하니 그조차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좋아도 오래 붙어 있다보면 종종 상대의 빛을 보지 못한다. 혼자일 때 빛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둘이 될 때, 내 빛남으로 당신을 돌볼 수 있도록. 그 반대가 되어선 곤란하다.
_73쪽,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에서
‘안마기’를 ‘당나귀’로 알아듣고, 생선가게에서 ‘얼지 않은 동태’를 찾기도 하고, 벚꽃 흩날리는 풍경 앞에서 ‘장관’ 대신 ‘가관’을 외치기도 하지만 그런 스스로가 재미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그는 “이제 겨우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이걸 깨닫는 데 사십 년이나 걸리다니! 당신이 나보다는 좀더 빨리, 자신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 딴청을 피우는 시간,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을 멀리 내다버렸으면 좋겠다”(‘서문’에서)며 자신의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산문집을 엮는 동안 내내 ‘모과’를 생각했다고 한다. 딱히 예쁘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울퉁불퉁한 과일. 향을 맡고, 손에 쥐어보고, 무게도 가늠해보고, 모과 한 알로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도 있을 테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고 보기만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 모과 한 알이 평범한 하루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모월모일의 모과’ 같은 오십 편의 글이 쉽지 않은 매일을 보내고 있을 독자들에게 기분좋은 위로가 되리라 기대한다.
??표지에 쓴 사진은 구본창 사진작가의 ‘비누’ 연작 가운데 하나, 〈Soap 20〉(2004)이다. 작가가 매일 세수하고 손 씻으며 쓰다 남은 비누를 수집, 촬영한 작품으로 마치 어여쁜 자갈 혹은 근사한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가고 손길이 닿은 만큼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닳고 작아진 비누를, 박연준 시인이 고른 모과 한 알과 함께 독자에게 보내고 싶다
작가정보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으로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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