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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1

윤흥길 장편소설
윤흥길 지음
문학동네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19년 03월 14일 출간

종이책 : 2018년 12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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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9.07MB)
ISBN 9788954655392
쪽수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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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전체 5
문신 5(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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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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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3
11,600
문신 2
11,600
문신 1
11,600

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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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빛낼 새로운 고전
집필에서 탈고까지 25년, 거장 윤흥길 필생의 역작
작가 인생 55년, 윤흥길 필생의 역작 『문신』이 완간되었다. 『문신』은 자그마치 원고지 6500매, 출간 도서 기준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대작으로, 집필부터 탈고까지 25년간의 대장정 끝에 2024년 비로소 완간되었다. 『장마』 『완장』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으로 이미 한국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윤흥길이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써내려간 『문신』은 한 작가의 대표작을 넘어 21세기를 빛낼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우리말의 무한한 보고이자 시대상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풍자와 해학으로 통렬하게 그려낸 『문신』은 이례적으로 완간도 되기 전에 윤흥길 작가에게 박경리문학상을 선사하기도 했다. 박경리문학상은 국내 최고 수준의 상금을 수여하는 세계문학상으로 이스마일 카다레, 리처드 포드, 응구기 와 티옹오, 아모스 오즈, 최인훈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언제나 큰 문제에 대해 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남은 생에 다시 이런 작품은 쓰지 못할 것이다.” _작가 인터뷰 중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 징용이 한창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그리고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혼돈으로 가득한 시대,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나가는 다종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도출해낸다.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누군가는 사상을 위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또 누군가는 보신을 위해 “덴노헤이까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시대. 작가 윤흥길은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손에 만져질 듯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등단 후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낸 거장만이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 통찰을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장대한 서사로 그려내는 것 또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 제목인 ‘문신’은 전쟁에 나갈 때 반드시 살아서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묻히고 싶다는 비원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왔다.
1권
제1장 더디 오는 봄
제2장 낮마다 일식 밤마다 월식
제3장 화적패가 들다
제4장 알나리깔나리

2권
제5장 다가드는 운명의 발소리
제6장 피난처 있으니
제7장 잡는 손 뿌리치는 손
제8장 가을이면 가을 노래

3권
제9장 겨울이면 겨울 노래
제10장 고개 너머 또 고개
제11장 봄은 봄이로되
제12장 아이고, 내 새끼

4권
제13장 초록저고리 얼룽지고
제14장 이제 고난은 장차 영광
제15장 옹이에 마디
제16장 가는 세월 오는 인연

5권
제17장 청사등롱에 불 밝혀도
제18장 부병자자 새기는 뜻은
제19장 감격의 양달과 응달
제20장 밟아도 아리랑
작가의 말

야마니시는 독립운동에 암냥해서 치부 활동까지 일거양득 도모했던 지난날 행적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마저 알뜰히 챙겨 복장 안에 담고 있었다. 다름아닌 총독부 토지 조사 사업 얘기였다. 하마터면 게도 놓치고 구럭마저 잃을 뻔했던 그 위중한 시기에 야마니시 아끼라, 아니, 당시 최명배였던 그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돌볼 겨를 없이 이 논, 저 밭, 그 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더금더금 걸터들였다. 남달리 약삭빠르게 타고난데다 일찍이 세상 물정에 눈뜬 인물이 있어 그 무렵 산서 일대 땅들을 확실하게 챙겨놓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시방 산서 사람들 거개가 동척 농장 머슴 신세로 전락해 애면글면 목숨 겨우 부지하고 지냈을 게 아닌가. 독립운동이란 게 뭐 별것이더냐.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대일본 제국에 손해 끼치는 일이라면 좌우지간 뭐든지 다 독립운동이 틀림없지 않은가.
_1권, 268쪽

“낙철이 너…… 그걸 시방 말이라고……”
하려던 말 못다 마친 채 부용은 부르르 진저리쳤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 해괴망측한 이야기가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포장된 채 낙철의 입에서 예사로이 뱉어진 뒤부터 부용은 숨조차 임의롭게 쉴 수 없었다.
“강도단이 목적을 달성헐 수 있도록 야마니시 영감 맏아드님이 집안에서 내응을 보내준다면 고맙겄어.”
“낙철이 너, 시방 날 으떻게 보고 그따우 수작질이냐? 지아모리 반쪽바리 악덕 모리배라 헐지라도 그 냥반은 엄연허니 내 아버지고 느그 이모부다! 그런디 너는 시방 그 냥반 아들한티 느그 이모부 털러 나선 강도단 끄나풀 노릇을 떠맽길 작정이냐?”
부용은 요란한 소리로 두근 반 서근 반 방망이질하는 심장 동계를 애써 억누르며 목청 드높여 힐문했다.
“이 세상 어떤 거사든 간에 반다시 거사에는 활동자금이 필요헌 법이지.”
“철부지들 헤이떼이고꼬(병정놀이)에도 진짜배기 빠르찌산맨치로 군자금이 필요허단 말이냐?”
“조선팔도 못난이들이 죄다 비웃어도 형만은 우리를 비웃을 자격이 없지. 물론 반동지주를 인민의 이름으로 징치헌다는 목적 하나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허지. 그런디 우리가 당면헌 위기국면을 돌파허자면 야마니시 영감 재물이 반다시 필요허다, 그런 말이지.”
“니가 시방 뭣인가를 잘못 아는 것 같은디, 나는 철부지들 헤이떼이고꼬 따우는 도통 관심이 없는 어른이다. 어엿헌 성년이란 말이다!”
“야마니시 영감 목숨만은 절대로 해허지 않겄다고 약조허지. 그러니깨 형은 염려 말고 우리한티 협조허란 말이여. 형이 잠깐만 수고를 보태면 뒷감당은 우리가 다 알어서 탈나지 않게끔 헐 모냥이니깨.”
_1권, 240~241쪽

이 환란에서 저 환란으로 계속 이어지는, 참으로 끔찍스럽고 징글징글한 세월이었다. 환란으로 날이 밝고 환란으로 날이 저물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 그대로, 그 환란들끼리 생면부지 사이처럼 서로 내외하면서 하나씩 따로 오는 게 아니라 여럿이 작당해 겹치고 포개지며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옴치고 뛸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사망 권세 물리치고 죄악 세상 이기신 구주 예수 권능 힘입어 환란으로 점철되는 현실에서 평안함을 얻을 그날은 대관절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이렇듯 곤고한 처지일 때 사모 쪽지에 예고된 대로 구원의 복음 같은 예배당 종소리가 뎅그렁뎅그렁 온누리에 가득 울려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제나저제나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사모가 예고했던 그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분명코 그랬다. 구원의 종소리는 끝내 울리지 않은 채 먹빛으로 캄캄한 지옥의 나날만이 아무런 작정도 없이 그저 도도히 흘러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_2권, 68쪽

방금 전까지 사촌형이 앉아 있던 문지방을 부용은 한동안 무연히 건너다보았다. 병정으로 뽑혀 사지로 향하게 된 젊은 남정들이 모여 품앗이로 상대방 신체 어느 부위에 부병자자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왜란과 호란 거쳐 동학란에 이르기까지 내우외환으로 뒤발한 역사가 연대순으로 달려와 문지방 위에 엉덩이 걸치고 일렬로 늘어앉는 광경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불행과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의 험준한 고빗사위들이 고향과 가족들 두고 멀리 떠날 수밖에 없는 젊은 남정들 신체에 입묵된 부병자자 하나하나에 돋을새김으로 강조되어 있는 듯싶었다. 산서 땅 조선인들 위에 군림하는 천석꾼마저도 결국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부터 복심 중 복심인 장조카 하나 지켜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결과일까. 그래서 진용이 형님은 끌려갈 경우에 대비하느라 그처럼 왼쪽 어깨 아래 상박 부위에 부병자자를 새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굵다란 대바늘로 살을 쪼고 그 생채기에 먹물 넣어, 반드시 살아서 고향집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비원이 담긴 ‘生歸’를 자자하던 그때, 죽음을 전제한 그 입묵 행위에 임할 당시 진용이 형님은 기분이 어떠했을까.
_2권, 84~85쪽

난데없는 울부짖음에 놀란 행인들 예서 제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웬 굿판인가 하고 삽시에 몰려든 구경꾼들이 야마니시 영감 뒷전에 울타리 둘러치고 겹겹이 에워싼 채 끼리끼리 쑤군덕거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자기 신변 싸고도는 시끌시끌한 기척에도 그는 짐짓 오불관언에 가까운 태도를 취했다. 마지막 순서로 또다시 덤턱스럽게 땅바닥에 엎드러지면서 인심 한번 더 쓰고 사배를 올렸다. 아마데라스 오오미까미에게 드리는 치성 절차 마치자마자 뒤로 홱 돌아섰다. 얼핏 보니 구경꾼들 틈바구니에는 순사복과 국민복 차림도 더러 섞여 있는 듯했다. 뭇 시선 끌어당겨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그는 자못 엄숙한 표정마저 지어 보였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야마니시 영감은 느닷없이 허공중으로 두 팔 힘차게 치켜들었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야마니시 영감은 목젖 덜컥 내려앉도록 냅다 고함을 뽑았다. 불시에 터져나온 만세 소리에 기급한 나머지 구경꾼이건 관헌이건 내남없이 모두 부동자세 취하느라 몹시 분주해졌다. 대일본 제국 신민치고 천황폐하 만세 소리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목석처럼 가만히 버틸 강심장이 어디 있겠는가.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 선창에 따라 느닷없는 만세 물결이 사면팔방으로 일렁일렁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_3권, 322~323쪽

“뭣이여? 진주만이란 놈이 으찌 되얐다고?”
놀랍고도 또 놀라운 그 소식 접하는 순간,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은 은행알 크기 두 눈 한껏 치떠 간장종지 규모로 단박에 키워놓았다.
“아, 아니, 그렇다 허이면, 그 서양 귀축 한 구텡이가 잠시잠간에 뭉청 떨어져나가뿌렀다, 요따우 말뽄새냐?”
“그렇습니다요, 어르신! 대일본제국이 시방 미합중국을 상대로 선전을 포고허고는 시방 진주만 태평양함대한티 궤멸적 타격을 입혀뿌렀다고 면소 앞 게시판에 대문짝만허게 붙여놓은 방문을 시방 요 두 눈구녁으로 똑똑허니 읽고 오는 질입니다요, 시방!”
장조카 진용은 면소재지부터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온 흥분을 내처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볼일 생겨 소재지 나간 길에 면사무소 앞 게시판에 나붙은 전황 속보를 접했노라 떠벌렸다. 승전보 방문(榜文) 앞에 구물구물 모여 목통 터지도록 천황폐하 만세, 황군 만세 연창하는 관헌들과 면민들 똑똑히 목격했노라고도 했다. 사랑채 당도하기 무섭게 진용이 들입다 상곡 어르신 안전에 쏟뜨려놓은 말들의 폭포수였다.
“따른 만도 아니고 그 이름도 영롱헌 진주만이란 놈을 잠시잠간에 쑥대밭으로 맨들어뿔다니! 허어, 그것참!”
야마니시 영감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본 군대가 소홀찮이 강력한 줄이야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동서양 막론하고 세계 만국 힘꼴깨나 쓴다는 나라들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는 그 천하막적 영미귀축(英米鬼畜)의 급소 겨냥해 그처럼 단방에 치명상 입히고도 남으리만큼 막막강병인 것까지는 미처 몰라본 실력이었다.
_4권, 93~95쪽

모임에 참여한 어떤 일본인 통해 산업도시이자 군사도시인 히로시마에서 인류 역사 이래 미증유의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날 아침 미군 폭격기가 어마어마한 초대형급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고, 정체불명의 그 폭탄에 의해 한꺼번에 수십만 명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시가지를 비롯한 그 주변 일대가 일순간에 초토화하는 전대미문의 대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파천황의 대사건인지라 여느 전황과 달리 히로시마 피폭 소식은 산서 같은 두메산골에도 발밭게 전해졌다. 일본인들 입에서 시나브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히로시마 참상은 사정리 주민들 거쳐 입소문 타고 삽시간에 전체 면민들 사이로 왁자하게 퍼져나갔다.
단 한 발로 대도시 하나를 쑥대밭 만든 폭탄의 정체가 밝혀진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자폭탄이라는 것이었다. 히로시마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린 그 가공할 신무기에 관한 소문이 산서 전역을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 면내 식자층뿐만 아니라 무지렁이 산골내기들도 그 이름조차 생소한 원자폭탄이란 말을 뻔질나게 입길에 올릴 정도였다. 더군다나 원자폭탄에 희생된 수십만 명 사상자 안에는 현지 산업시설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수만 명 조선인까지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끔찍한 예측이 으레 따라붙곤 했다. 대다수 면민은 이런 비상시국에 과연 어떤 자세 취하고 어떤 반응 보여야 좋을지 실로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대한 독립 만세 섣불리 외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막바지 국면에 몰린 나머지 눈에 핏발 선 일본 관헌들한테 책잡혀 무슨 험한 꼴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판국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제 패망의 날이 이제는 상상 아닌 현실 속 가시거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면서 내남없이 일본인들 앞에서 자기 속내 드러내지 않으려 되도록 몸을 사리는 분위기였다.
_5권, 329~330쪽

제국주의 시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일본 식민통치하에 놓인 대한제국. 산서(山西)의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는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수탈할 때 기회를 잡아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전통과 조상신위를 끔찍이 여기면서도 앞장서서 친일 행보를 이어간다.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야마니시 아끼라’로 개명하고, 읍내에 나가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하기도 하는 그는,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계기로 자신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자식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의 시대를 마주한다. 폐결핵에 걸려 죽어가길 기다리며 세상 모든 것에 냉소를 품는 부용, 흔들림 없는 기독 신앙으로 강건히 마음을 다스리며 아버지에 맞서 집안을 지탱하는 순금, 산서 제일의 수재이자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꿈꾸며 자신의 아버지를 ‘악덕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라고 부르는 귀용 등이 그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귀용은 과격 사회주의 단체를 이끄는 사촌형 배낙철과 함께 최명배의 사랑채에 침입해 아버지에게 비수를 겨누고 재산을 강탈해 사라진다. 일제의 강제 징용이라는 서슬 퍼런 바람이 산서를 휩쓸고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이 화적패 사건을 시작으로, 최명배 일가는 물론 산서 전체에 거센 소용돌이가 밀어닥친다.

“이 환란에서 저 환란으로 계속 이어지는, 참으로 끔찍스럽고 징글징글한 세월이었다. 환란으로 날이 밝고 환란으로 날이 저물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 그대로, 그 환란들끼리 생면부지 사이처럼 서로 내외하면서 하나씩 따로 오는 게 아니라 여럿이 작당해 겹치고 포개지며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옴치고 뛸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_2권, 68쪽

화적패 사건 이후 배낙철과 귀용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고, 거사의 활동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천석꾼의 집에 침입해 강도 행각을 벌인 사회주의자들이 다름 아닌 최명배의 아들 귀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최씨 집안에는 거대한 균열이 일게 된다. 그러는 한편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이 연합군에 합류하며 전황이 급격하게 반전되자 일제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결사 항전하자는 ‘본토 결전’을 준비하며 조선인의 징집 범위를 확대하고, 강제 징병과 징용의 서슬이 산서를 조여오기 시작한다.

우리말의 무한한 보고
21세기에 탄생한 고전

『문신』을 읽다보면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생생히 살아 숨쉬는 인물들과 제국시대의 생활상을 선명히 되살려낸 묘사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무엇보다 마치 판소리를 듣는 듯 리듬감 있고 풍성한 언어의 향연에 탄복하게 된다. 작품의 배경인 전라도 지방의 맛깔스러운 방언은 물론이고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즐거움을 주는 감각적인 문장들은 우리말이 이렇게나 풍요로웠던가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준다. 낯설면서도 친숙한, 아름다우면서도 해학적인 언어로 가득한 이 장대한 장편소설은 그야말로 무한한 우리말의 보고라 할 만하다. 이미 우리에게 문학사에 깊이 각인된 걸작들을 남겨준 윤흥길이 문자 그대로 혼신을 다해 써내려간 『문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고전이 탄생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 주요 인물

 최명배(야마니시 아끼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요놈들아? 곧 죽어도 나는 야마니시 아끼라, 그러니까 최하고도 명 자, 배 자 어른이시다! 혹간 길바닥에 나자빠지더라도 그냥 맨손으로는 안 일어나는 독종이다, 요놈들아! 하다못해 차돌멩이 한 개라도 손에 쥐어야 일어나는 상곡 어르신이란 말이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산서의 천석꾼 대지주.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당시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조상신위를 끔찍이 여기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창씨개명을 하고, 읍내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자식들의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을 이용해 더 위로 올라갈 야망을 품고 있다.

 최부용

“철부지들 혁명 놀음에는 반다시 값비싼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요.”

최명배의 장남. 산서의 소문난 수재로,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지만 폐결핵에 걸려 죽어간다. 친일 행보를 이어가는 아버지, 기독교를 믿는 누나 순금, 사회주의운동을 하는 동생 귀용 모두에게 거리를 둔 채 냉소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력함을 부끄러워하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열망을 품고 있다.

 최귀용

“모든 인간이 골고루 다 잘사는 세상 만들자는 주장이 어째서 틀린 생각입니까?”

최명배의 둘째아들. 얼굴이 곱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으나 경성의 명문학교에서 유학을 하던 중 사촌형인 배낙철과 함께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한다.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화적패가 되어 자신이 ‘악덕지주 야마니시 아끼라’라 부르는 아버지의 사랑채를 털고 자취를 감춘다.

 최순금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일 같으다.”

최명배의 첫째딸. 광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다. 학업을 마치고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약혼자의 죽음으로 본가로 돌아온다. 기독교를 믿으며 강건한 마음을 가진 여성으로,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으로 흔들리는 집안을 통솔하는 실질적인 가장으로 성장해나간다.

 배낙철

“잘 들어, 형. 오늘 자정에서 내일 새벽 사이에 반쪽바리 악덕 모리배 야마니시 아끼라 영감 사랑채에 강도단이 들 예정이여.”

최부용의 사촌동생이자 최귀용의 사촌형. 두 학년을 월반해 수재로 소문난 최부용을 이기고 교내 수석을 차지한 천재. 경성 유학중 과격 사회주의운동 단체를 결성했다. 야마니시 아끼라 최명배의 집을 터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화적패 사건 이후로 최귀용과 함께 종적을 감춘다.

 관촌댁

“발바닥 밑맨치로 깜깜허고 꽉 맥힌 에미 쇠견 구녁으로 내 새깽이가 도모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당최 분간헐 재간이 없다. 설령 옳고 그른 이치를 빠삭허니 분간허는 예펜네라 허드래도, 명색이 에미 처지에 으짤 것이냐. 옳아도 내 새깽이, 영판 글러먹어도 내 새깽이인 것을!”

최명배의 아내. 최명배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 전부터 함께해왔으며 속정이 깊어 주변에 인망이 두텁다. 늘 남편에게 기죽어 있지만 강한 모성으로 자식들이 연관된 문제에서는 누구보다 거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들인 귀용을 위험한 길로 이끈 사회주의와 배낙철을 미워한다.

 최진용

“만약에 시방 상곡 어르신 같은 분이 산서에 안 기셨드라면 시방 우리 신세가 어찌될 뻔혔는가?”

최명배의 조카. 소작농들을 관리하는 마름 역할을 하고 있다. 유능하고 우직한 인물로, 최명배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북 트레일러

작가정보

저자(글) 윤흥길

1942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장마』 『완장』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창작문학상, 현대문학상, 21세기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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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문신 1
    윤흥길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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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글)
    낭독자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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