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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김인숙 소설
김인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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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18년 06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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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1.72MB)
ISBN 9788954652254
쪽수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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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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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히 일렁이는 잔물결 같은 문장들이 일으키는 아득한 착란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기꺼이 끌어안는 작가, 김인숙 단편의 정수

한국일보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0), 이상문학상(2003), 이수문학상(2005), 대산문학상(2006), 동인문학상(2010), 황순원문학상(2012)…… 소설가 김인숙이 걸어온 이 화려한 이력 앞에서 누군가는 그가 작가로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느낄까.
그렇지만 한국문학에서 김인숙이라는 작가가 지닌 특별함은, 그가 누구보다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일구어내었음에도 누구보다 왕성하게 그 세계의 경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등단 이후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자유에 대한 희구를 그렸던 그는 이후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으로,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응시하는 작품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해왔다.
그런 김인숙의 신작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은 삶의 매서운 진실을 묘파해내는 김인숙 소설의 매력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작가가 새롭게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통쾌함과 뜻밖의 스릴러적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최근 김인숙 소설의 특별한 변화”라고 간명하게 짚어냈듯, 이제 김인숙은 잠잠하던 일상 위로 돌출되곤 하는 뜻밖의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점점 더 거세지다가 아홉번째에 이르면 사람을 삼켜버릴 정도로 대단해”(「아홉번째 파도」)지는 파도처럼 언젠가는 삶을 삼켜버릴지도 모를 낯선 기미들에 대해.
델마와 루이스 _007
아홉번째 파도 _057
토기박물관 _081
넝쿨 _111
단 하루의 영원한 밤 _141
빈집 _169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 _197
내 이럴 줄 알았지 _227

해설│양경언
레츠 킵 고잉 _259

작가의 말 _281

델마는 바다만 생각했다. 바다가 이렇게 좋으니 다른 건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지탱해왔던 마지막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충만되는 것이었다. _「델마와 루이스」

그들은 낡고 늙은 연인들이었다. ‘오래된’ 정도가 아니라 ‘낡고, 늙은’. 남자와 함께한 낡거나 오래된 시간들 동안 그들은 수도 없이 헤어졌다가 만났고, 그사이에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었고, 아이를 낳았었고, 바람을 피웠었고, 이혼을 했었고, 또다른 연인을 만나 변변하거나 변변치 않은 연애를 했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몇 번이나 아홉번째 파도를 만났을까. 아홉 번의 아홉 번쯤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늘 여덟번째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_「아홉번째 파도」

아직 제니는 모를 것이다. 어떤 존재가 디테일을 갖기 위해서는 상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뒤에야 오히려 생생하고 너무나 세세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_「토기박물관」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광화문 한복판의 커피숍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용서를 애걸하고 선처를 구하지도 않았다. 용서를 받아야 할 자도, 용서를 빌어야 할 자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눈을 먼저 피하는 쪽이 거짓을 인정하는 게임을 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 그러니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겠는가. 그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형오도 아니고, 지금 감옥에 있다는 그 개같은 진범도 아니라면, 하느님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제발 하느님, 눈을 감으세요. _「넝쿨」

여자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_「단 하루의 영원한 밤」

사랑이 별것이겠는가. 누군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안타깝고 애절하지 않다고 해도, 이십칠 년의 그날들은 사랑이었다. _「빈집」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러나 그는 이제 특별한 쓸쓸함이 뭔지는 알 것도 같았다. 적어도 그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_「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

나는 끝내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송민호라는 사람이 이 태풍 속에서 나를 끌어안아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마치 소설처럼, 아주 다정하게 내게 이런 말을 하기 위해.
네가 올 줄 알았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_「내 이럴 줄 알았지」

기억의 갈라진 실금 아래서 생이 마련해둔 함정 속에서 비밀을 가둔 채 영원히 반복되는 단 하루의 밤

김인숙 소설의 새로운 색채는 「델마와 루이스」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델마와 루이스」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의 두 자매가 가출을 감행하여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제목에서 보듯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소설은 영화와 달리 두 주인공을 노인으로 설정함으로써 노년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델마와 루이스가 중년의 식당 여자와 그 여자의 딸을 만나 이뤄내는 여러 세대 여성들 간의 유쾌한 연대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델마와 루이스의 자식들은 노년의 일탈을 황당해하기만 할 뿐 이들이 왜 가출했는지는 영영 알지 못하고, 소중한 비밀을 간직한 자매의 마지막 여행은 우리에게 뭉클한 여운으로 남는다.
삶이 함정처럼 감춰둔 비밀은 때로 스릴러의 문법을 통해 선연하게 폭로된다. 「빈집」은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남편에게 증오심을 느끼곤 하는 한 여자가 그럼에도 삶을 그러안기로 결심하는 결말 뒤에 남편의 충격적인 비밀을 덧붙인다.
여자가 본 남편의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남편이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사랑만은 아니라는 것. 소설은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비밀의 무한성을 독특한 공간으로 형상화하면서 비밀에 의해 일상이 유지되는 역설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토기박물관」은 영어학원에 같이 다니는 나이든 여성 ‘미라’와 ‘제니’가 어느 오후 우연히 토기박물관의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는 단순한 줄거리로 요약되지만, 읽다보면 곧 정밀하게 계산된 구성임을 체감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노년 여성의 가벼운 히스테리처럼 읽고 지나온 문장들이 어느새 사랑과 고독의 증세로 다시 읽히면서, 문장 하나하나가 결말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단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별다를 것 없던 일상이 일순 긴장으로 조여지는 순간을 작가는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때로는 ‘기억의 착란’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겉으로는 명확한 기록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그 내면에서는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런데 기록과 기억이 상충하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인간은 얼마나 처참히 무너지게 되는가. 「넝쿨」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성폭행 생존자 ‘형윤’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불러온다. 형윤에게 그날의 기억은 착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증거와 기록은 그녀가 범인을 잘못 지목했다고 말한다.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며 기억 속 범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 눈을 홉뜨는 형윤의 표정은 삶을 견디는 일의 그악스러움에 대한 절절한 비유다.

너무나 사소한, 그래서 비루하기까지 한,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쓸쓸함에 대하여

『단 하루의 영원한 밤』에서 김인숙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비일상의 조짐에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의 이러한 시도들이 일상에서 비롯되어 결국에는 보통의 삶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표제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에는 노쇠하여 정신이 점차 혼미해져가는 노교수가 등장한다. 삼십 년 전 어느 하루의 일탈로 제자에게 사생아를 낳게 한 뒤, 제자가 아니라 자신이 받아야 했던 모욕과 평생을 싸워온 그에게 남은 기억은 이제 삼십 년 전 그날 하루뿐이다.
“최후의 생존을 위해 남겨놓을 수 있는 만큼만 남겨놓은” 그 기억을 붙든 채 노교수는 희미한 숨을 쉬고 있다. 하필 그 하루를 남겨놓게 만든 것은 그리움일까, 죄책감일까, 아니면 창피함일까. 삶을 감내하다가 결국 스러져가는 노교수를 지켜보는 또다른 제자 ‘그’의 삶에도 창피하고 모욕적인 순간들이 얼룩처럼 묻어 있다. 어느 밤, ‘그’는 자신의 삶과 노교수의 삶을 겹쳐 보기 시작한다. 생의 통증을 느낀 그 밤이 노교수의 마지막 기억처럼 사는 동안 영원히 반복될 것이고, 자신은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하지만 이런 쓸쓸한 깨달음은 창피와 모욕과 삶이 내리는 온갖 형벌을 감내하며 주어진 생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문득 찾아오곤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만의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만큼은 특별한, 비밀스러운 깨달음.
그러니 디테일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김인숙이 쓰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비루하고 구차할지라도, 모든 인생은 특별한 비밀 하나쯤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들.
그건 숱한 인간사를 응시해온 작가가 이 무심한 듯 다정한 소설들로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이 아닐까.

작가정보

저자(글) 김인숙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먼길』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단편소설 「개교기념일」로 현대문학상을, 단편소설 「바다와 나비」로 이상문학상을, 단편소설 「감옥의 뜰」로 이수문학상을,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으로 대산문학상을, 소설집 『안녕, 엘레나』로 동인문학상을, 단편소설 「빈집」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 『꽃의 기억』 『봉지』 『소현』 『미칠 수 있겠니』 『모든 빛깔들의 밤』, 소설집 『칼날과 사랑』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등이 있다.

작가의 말

내게 이 소설들은 시간이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 거기, 멈춰 있는 것. 조용한 문장을 쓰고 싶었으나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혼자 쓰는 글보다 혼자 하는 말이 더 많아졌다. 질문들. 부당한 것에 대해. 여기, 나, 사람들.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사소한 히어로. 세상을 구원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구원할 필요가 없는. 빈집의 쓸쓸한 사람. 찢어진 플래카드 아래에 서 있는 할머니. 기억이 찢겨나간 여자. 그 모든 것이 흔들리는 영원한 밤……
그래도 그렇지, 더 재밌는 얘기도 있겠지 하며 내 책의 표지를 들여다보는 한 사람. 나의 이야기들이다.

첫 소설집의 소설을 쓰던 아주 오래전에, 시위 현장에 있었던 적이 있다. 구호를 선창하던 사람이 너무 절박한 나머지 자기 고향 사투리를 써서 구호를 외쳤었다. ‘……뭐땀새…… 그러는지…… 대답하라.’ 뭐땀새의 앞뒤는 다 잊어버렸다.
그 구호를 따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고요가 내려앉았던 시위 현장, 그리고 뒤늦게 터져나오던 웃음소리가 기억날 뿐이다. 땡볕이 내리쪼이던 한낮, 그 절박한 시위 현장의 조용한 웃음소리. 그러니까, 뭐땀새…… 왜…… 무엇 때문에…… 지난 시간들 속 나의 혼잣말들.

감사드린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그들도 모르게 문득 거리에 멈춰 서 있던 그 모든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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