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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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정보 ePUB (29.01MB)
- ISBN 9788954644211
- 쪽수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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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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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사람들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일들이 벌어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호기심과 설렘을 가져다주는 존재, 일상화된 풍경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그 속에서 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기억 속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순간들을 끄집어내 정체된 일상의 공기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사랑’ 등 다양한 소재로 한 ‘타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강아지 × 조지 손더스 _011
로다 × 조너선 사프란 포어 _027
주디스 캐슬 × 데이비드 미첼 _035
J. 존슨 × 닉 혼비 × 포지 시먼즈 _063
솔레유 × 벤델라 비다 _071
괴물 × 토비 리트 _097
로이 스피비 × 미란다 줄라이 _105
퍼쿠스 투스 × 조너선 레섬 _121
핸웰 시니어 × 제이디 스미스 _155
프랭크 × A. L. 케네디 _171
신디 스투벤스톡 × A. M. 홈스 _199
글래디스 파크스슐츠 판사 × 하이디 줄라비츠 _211
허풍선이 × 알렉산다르 헤몬 _227
렐레 × 에드위지 당티카 _235
테오 × 데이브 에거스 _257
도널 웹스터 × 콜럼 토빈 _271
기디언 × ZZ 패커 _293
고든 × 앤드루 오헤이건 _303
니고라 × 애덤 설웰 _313
마그다 만델라 × 하리 쿤즈루 _337
뉴턴 윅스 × 앤드루 숀 그리어 _351
저스틴 M. 다미아노 × 대니얼 클로즈 _363
조던 웰링턴 린트 × 크리스 웨어 _369
참여 작가 _389
감사의 말 _395
“지금 당신이 원하는 인물을 마음껏 만들 것!”
데이비드 미첼, 조너선 사프란 포어, 미란다 줄라이, 닉 혼비……
‘21세기의 천재 혹은 신동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가장 자유롭고 독창적인 프로젝트
23인의 작가가 만들어낸 23인의 ‘타인’들, 그들의 삶이 불러일으키는 데자뷰!
23개의 이름 × 23편의 소설
무한 자유 아래 탄생한 다채로운 발상과 예상 밖의 스토리
우리 시대 대표적인 영미 작가 23인이 한데 모여 획기적인 단편집 프로젝트를 벌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데이비드 미첼, 영국 최고의 이야기꾼 닉 혼비,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이자 전방위 예술가인 미란다 줄라이, 『브루클린』의 콜럼 토빈, 독창적 문예지 〈맥스위니스〉를 이끄는 문제적 작가 데이브 에거스 등이 개성 넘치는 단편을 썼고, 미국을 대표하는 두 만화가 대니얼 클로즈와 크리스 웨어가 그래픽 노블을 선보였다. 그리고 데뷔작 『하얀 이빨』로 전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 제이디 스미스가 이 책의 편집자로 나섰다.
프로젝트의 지시사항은 간단했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을 만들 것.” “단, 그렇게 탄생한 인물의 이름을 작품의 제목으로 할 것.” 이러한 ‘무한 자유’는 작가들을 매혹시켰고, 성별·인종·생물종 등 그 어느 것에도 제한을 두지 않은 창작 환경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자유롭게 쓰였기에 더욱 기발하고 강렬했으며, 짧은 분량 안에서도 서사들은 다채롭게 팽창했다. 여기에 참여한 작가의 수만큼이나 ‘인물’을 창조하는, 또는 ‘인물’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방법 역시 다양했다.
23인의 작가들이 탄생시킨 23인의 ‘타인’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자극하면서도 묘한 데자뷰를 불러일으킨다. 그 어떤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이 23인의 작가들에게 ‘해방’을 선사했다면, 이제 독자들이 그 자유를 맛볼 차례다.
“나의 헛된 소망은,
친밀함을 갈망한다는 죄로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타인보다 못한 가족들, 온갖 가족 군상에게 닥치는 기막힌 반전
_「주디스 캐슬」 「글래디스 파크스슐츠 판사」 「핸웰 시니어」
‘가족’이라는 말은 전형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을 풍기지만, 그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많든 적든 가족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작가들이 현상 이면의 모순을 드러내고 기발한 반전을 펼치는 데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였다.
‘데이비드 미첼’이 탄생시킨 인물 ‘주디스 캐슬’은 애인과 결혼해 더 큰 가족의 일원이 되어 친밀하게 정을 주고받는 삶을 꿈꾸는 여인이다. 애인 ‘올리’의 가족들을 처음 만나기로 한 며칠 전, 그가 뺑소니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이 여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상대로 결혼을 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것이. 올리와 그의 누이들과 여기 있는 리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들, 그리고 아기들까지 주말마다 부모의 집에 모일 것이다. 나는 평화 중재자, 비포장 갓길, 막역한 친구, 해결사가 될 것이다. 정말이지, 주디스, 당신이 없었다면 우린 어떻게 살았을까요. (본문 60쪽)
이 와중에 전남편과 딸애는 둘이서 여행을 떠났고, 아버지는 예비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에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어찌된 일인지 올리의 가족들은 벌써 그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오직 전 직장동료와 연극 동호회의 앙숙만이 주디스에게 동정을 표한다. 그녀는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는’ 가족을 꿈꿨지만 ‘각자의 인생을 서로에게 보고만 하는’ 가족과 살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주디스는 죽은 애인의 흔적을 찾으러 그의 가족을 만나기로 한다. 올리의 남동생이 운영하는 사진관을 찾은 그녀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들을 보며 혹시나 남동생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을까 내심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 여인의 여정은 올리의 남동생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기막힌 상황을 맞이한다. 가족의 정을 갈구한 여자가 맞을 반전은 대체 무엇일까?
리오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특유의 남자다운 방식으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바닥 계단에 앉아 케겔 운동을 조금 했다. “짐보!” 리오가 이번에는 목소리를 죽이더니 낮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올리는 여기 없어, 아니……” 아직 그 끔찍한 소식을 듣지 못한 지인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형은 하루이틀 전화를 못 받아.” 리오는 작게 말했지만 내 청력은 완벽했다. (본문 61쪽)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 ‘하이디 줄라비츠’는 인간적 정황에 무정한 판사이자 채식주의자 딸에게 햄 요리를 내놓는 무심한 엄마인 ‘글래디스 파크스슐츠’의 크리스마스 비극을 그린다.
크리스마스 햄 때문에 일어난 말다툼으로 (…) 글래드 파크스슐츠는 이미 익숙한 오그라든 기분, ‘엉망이 된 휴일’의 상태에 빠져버렸다. (…) 막상 이들이(자식들과 그들의 일시적인 연인들) 눈앞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소외감이 들어 그다지 편치가 않다. 중요한 휴일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미움을 받고 살아 있다고 느끼는 편이 낫다. (본문 214쪽)
혼자 남은 그녀는 생전에 자신의 엄마가 좋아했던 초록색 안락의자에 앉아 어린 자신에게 지나치게 무심했던 엄마를 생각한다. 옆집에서 폭발이 일어나 죽을 뻔했던 자신에게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으라고 했던 그날의 기억은, 외출금지당해 몰래 집을 나갔다가 어두워진 길이 무서워 커다란 돌을 쥐고 귀가한 어느 날 밤으로 뻗어나갔다. 어린 딸이 사라졌는데도 안락의자에 앉아 잠든 엄마의 모습에 그녀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돌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갔었다. 글래디스는 어린 날 엄마에 대한 기억을 이리저리 헤집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딸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술이나 약에 취했을 거라고, 살인을 하기에 완벽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디 줄라비츠는 이 세 모녀 사이에 존재하는 팽팽한 긴장의 끈을 통해 모녀간의 애틋한 정만큼이나 자명하게 타오르는 비극의 불씨를 보여준다.
난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를 안 지 이십 년이나 됐는데 말이에요. 난 왜 엄마가 엄마 같은 사람인지 모른다고요.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것에 이유가 필요하니? 글래드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것은 실비아가 그녀를 향해 던지는 모든 사소한 트라우마를 막아내는, 침착하고 법관다운 그녀의 방식이다. 그래. (본문 217쪽)
그리고 여기, 이 책을 엮은 ‘제이디 스미스’가 탄생시킨 아버지 ‘핸웰 시니어’가 있다.
무책임하고 무모한 사람은 잔인한 사람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나쁘다. 그런 사람들을 겪어본 이들은 이해할 것이다. 잔인함은 정당하게 대항하여 마침내 퇴치할 수 있지만, 걱정거리에 대한 자유분방한 무심함은 얘기가 전혀 다르다. 그런 아버지를 둔 사람은 분명히 배우게 된다. 슬픈 자립심과 잔혹할 정도로 침묵하는 마음.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망설임을. (본문 157쪽)
핸웰 시니어에게 말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았고 어떤 닻으로도 쓸 수 없었으며 세상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 같은 경향이 더 어두워지고 심해지면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본문 159쪽)
아들 핸웰은 가족을 버리고 평생 방황하며 무책임하게 산 아버지 핸웰 시니어를 ‘사이코패스’라 여기면서도 그가 자기 앞에서 참회하기를 갈망하는, ‘가족의 피’라는 이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다. 얼핏 보기에 낯설지 않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부자의 모습이다. 이 부자는 12년 만에 상봉해 어떤 말을 주고받을까? 제이디 스미스는 이 핸웰 부자의 이야기를 ‘여자 핸웰’의 입을 빌려 말하며 마치 운명처럼 불변하는 인간의 본성, 그보다 더 지독하게 인간을 옭아매는 혈연이라는 끈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자비심은 정확히 제 집 문에서 멀어지는 만큼 커진다는 오래된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 그들은 열렬하게 고인과 곧 고인이 될 사람의 삶과 생각을 재구성하고 싶어하지만, 자기 어머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자주 차단할지 모른다. 나는 그런 세대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들과 만나는 것만 빼고. (본문 163쪽)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마치 단 하나의 잠에서, 평생을 꿔온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본 낯선 이와의 로맨스
_「로이 스피비」 「테오」
‘타인’은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호기심과 셀렘을 가져다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16세에 희곡을 써서 데뷔한 이래 소설가, 영화감독, 행위예술가 등으로 활동하는 ‘미란다 줄라이’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낯선 이와의 로맨스에 현실의 삶을 탁월하게 녹여냈다.
가끔 먹거나, 나가거나, 청소를 하거나, 잠을 잘 정도의 의욕도 내지 못해서 몇 시간씩 마냥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곤 하는 ‘나’는 뜻하지 않게 비행기 일등석 좌석을 얻게 된다. 항상 만만한 사람 취급당하며 지루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그녀의 옆자리에는 할리우드 스타 ‘로이 스피비’가 앉아 있다. 이 날아다니는 작은 마을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두 사람은 비행하는 내내 속삭이듯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벨트를 매고 테이블을 접어올렸다. 그 순간 로이 스피비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안녕.”
“안녕.” 나도 말했다.
“내가 번호를 하나 적어줄 건데, 평생 비밀로 해주었으면 해요.”
“알았어요.”
“이 전화번호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 나는 사람을 시켜서 번호를 바꿔야 하고, 그건 정말이지 골치 아픈 일이에요.”
“번호가 하나 빠졌어요.”
“알아요. 마지막 번호는 그냥 외워줬으면 해요. 괜찮죠?”
“알았어요.”
“4예요.” (본문 112쪽)
그녀는 평생 이런 번호를 기다려왔다. 미란다 줄라이는 이 사랑 이야기가 마냥 아름다운 소설처럼 흘러가게 놔두지 않는다. 할리우드 스타의 전화번호는 특별한 사건이지만, 또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일상도 계속될 터였다. 언제고 다시 쳇바퀴 안으로 들어오고야 마는 우리들의 일상처럼 말이다. 과연 그녀는 용기를 내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을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와 관계를 하는 동안 나는 “사”라고 속삭이곤 했다.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 거기에 나를 확장해주는 작은 효력이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사”라고 속삭였다. 딸이 멕시코시티에서 오직 신만이 알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전화로 그애에게 내 신용카드 번호를 불러주면서 나는 속으로 ‘사’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 행운의 숫자를 두고 농담을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로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본문 117쪽)
『비틀거리는 천재의 가슴 아픈 이야기』의 ‘데이브 에거스’가 그려내는 ‘타인’은 사람이 아닌 산맥이다. 산맥 ‘테오’를 통해 그는 맑고 싱그러운 사랑 이야기를 한 편 탄생시켰다. 오랜 세월 시인들은 마을을 둘러싼 낮은 산들이 마치 자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닮았다고 노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땅이 흔들리고 동물이 앞다퉈 달아나더니 두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소렌’과 여자 ‘마그델레나’였다. 세번째로 작은 산맥 ‘테오’가 조용히 일어났다.
깨어난 지 아흐레째 되던 날 테오는 소렌과 마그델레나가 그들의 정강이까지 오는, 마을 사람들이 고래와 바다사자를 꾀는 피오르드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선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얘기하고 있었다. 그날은 빛바랜 양모 같은 안개가 낮게 깔려서 그들의 허리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감싼 흰 안개의 파도 아래로 테오는 그들의 맞닿은 손을 볼 수 있었다. (본문 264쪽)
마그델레나가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테오는 소렌과 마그델레나의 사이를 눈치채고 깊은 우울에 잠기지만, 그는 싸우기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사랑의 완전한 관심’을 원했던 테오는 새로운 연인을 찾아 떠나고, 그러다가 마주친 외떨어진 작은 산맥에 매력을 느낀다. 테오는 옆에서 기웃거리고 누워보고 말을 걸어보다가 그 잠자고 있는 산맥을 제멋대로 ‘아마란스’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는 시로, 노래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궁금해했고, 짐작했고, 그녀를 위해 구름들에 이름을 붙였다. 그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곰을 제대로 먹는 방법과 마그델레나와 소렌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난 뒤 테오는 소렌과 마그델레나에게 돌아가야 할지 생각했다. 자신이 어디에 갔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를 그들에게 말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하려고 일어섰을 때, 그는 그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마그델레나의 경계를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란스에게서 몇 발자국 이상 멀어지면 현기증이 났다. (본문 268쪽)
한 편의 우화 같은 이야기는 테오를 아마란스 옆에 머물게 한, 가늘디 가느다란 비처럼 쏟아지다 끝없이 깊어지는 잠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서서히 적신다.
이 책에 실린 낯선 사랑 이야기들은 일상화된 사랑의 풍경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그 속에서 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보여줌으로써 우리 기억 속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사랑의 순간들을 끄집어내 정체된 일상의 공기에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
“괴물은 괴물의 본질에 대해 철학하지 않았다.
벗어날 기준이 없으니 모두가 괴물일 수 있었다.”
‘무한 자유’ 아래서 탄생한 독특한 캐릭터, 우리를 닮은 ‘타인 아닌’ 타인들
_「괴물」 「퍼쿠스 투스」 「마그다 만델라」
인종·성별·생물종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창작 조건에서 작가 ‘조지 손더스’의 ‘괴물’이 탄생했다.
괴물은 자신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떤 괴물인지, 가끔씩은 괴물이기는 한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괴물은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기간 동안 거울이나 물웅덩이를 보지 않고 살아왔다. 거울은 없었고 물웅덩이는 본능적으로 피했다. (본문 99쪽)
괴물은 그 탁하고 둥글고 냄새나는 것들을 향해 누운 채 굴러가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탁하고 냄새나는 것에는 그런 노력을 할 가치가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둥근 물체에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일은 아주 좋아했다. 때때로 희망적일 때 괴물은 자신의 배를 크고 둥근 과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자주, 절망적일 때 자신의 둥근 배는 똥 같았다. (본문 103쪽)
괴물에게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은 고통이었다. 나무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 온몸으로 퍼져나간 통증은 괴물의 몸 곳곳을 연결지어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은 ‘존재’와 ‘선’에 관한 고뇌로 이어졌다. 조지 손더스는 괴물의 추악함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드러내는 흔한 방식에서 벗어나, 조용하게 고통받고 고뇌하는 괴물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성찰하지 않는 인간의 부끄러움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킨다. 여섯 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에 담긴 이 놀라운 통찰과 빛나는 서사는 읽는 이에게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장르의 파괴자라 불리는 독창적인 작가 ‘조너선 레섬’은 독특한 취향의 문화평론가 ‘퍼쿠스 투스’의 아파트로 우리를 초대한다. 은퇴한 배우인 ‘나’는 구식 양복 차림에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아 보이는 퍼쿠스 투스를 우연히 알게 된다. 하지만 박학다식한 퍼쿠스 투스가 쏟아내는 이야기, 보헤미안의 작은 동굴 같은 그의 공간, 그와 함께 보내는 오후 속에서 ‘나’는 그와의 공통성을 발견해나가고, 이는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퍼쿠스 투스의 흥미로운 강렬함과 소강상태, 미끄러지는 오른쪽 눈의 시선이 궁금했던 것일까? 전부 다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이것이 유일한 답이다. 그때 나는 이미 퍼쿠스 투스를 흠모하고 있었고, 나라는 존재의 낯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우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들어간 기이한 소용돌이로부터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첫 만남 이후 나는 너무도 빨리 그를 흠모하고 필요로 하게 되었기에… (본문 130쪽)
제니스가 떠난 그 서글픈 해에 퍼쿠스 투스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 같다. 퍼쿠스는 진기한 것이었고 나는 진기한 것을 찾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도 분명 나를 자신의 수집품에 추가했을 것이다. (본문 143쪽)
하지만 새롭고 강렬한 즐거움이 오래가지 못하듯 어느 날 이들의 만남도 무산되고, 텅 비어버린 오후 시간에 ‘나’는 혼자 남게 된다.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에게서 발견하는 동질감, 새로 사귄 사람과 보내는 흥미진진한 시간들, 필연적으로 맞게 되는 위기 속에서 재정비되는 관계… 작가는 타인이 우리 삶에 발을 들여놓고 서서히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낯설게 보여주면서도 이러한 경험이 주는 보편적 감정을 능숙하게 버무려냈다.
상실감에 빠져 한가한 시간 속으로 풀려난 내가 낯설었다. 퍼쿠스와 보내는 오후들에, 그리고 그 오후가 밤으로 바뀌는 방식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밖이 환한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이런 건 내 기억에 없었다. (본문 150쪽)
여기, 자신을 넬슨 만델라의 딸이라 주장하는 여인이 있다.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마그다 만델라’는 밤마다 술에 취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빅토리아 시크릿 카탈로그의 섬뜩한 조합처럼 집앞 계단 위에 서서 이웃들을 향해 외친다.
오늘밤 난 당신들을 사랑해. 사랑해, 이웃님들. 난 사랑으로 가득찼어. 하지만 당신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이 말을 해야겠어. 난 눈곱만큼도 당신들을 신경쓰지 않아. (본문 345쪽)
그저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마그다는 주정뱅이 여인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마그다의 눈에 그들은 사랑에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는 인간 족속인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우쭐해하는 도둑놈 같은 이웃들’이 모르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어느 날 우리는 이것이 사실임을 깨닫고 미안해할 것이다. 때때로 나는 우리가 마그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우리가 믿어주면 그녀는 우리에게 위대한 일들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멍청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절대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 348쪽)
23인의 작가가 만들어낸 23인의 ‘타인들’
조지 손더스 × 강아지
『12월 10일』의 저자 ‘조지 손더스’, 유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날 위기에 처해버린 흰둥이 ‘강아지’의 이야기를 쓰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 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늙은 여인 ‘로다’, 어느 날 방문한 손자에게 그녀가 듣게 될 소식은 무엇일까?
데이비드 미첼 × 주디스 캐슬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데이비드 미첼’,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뺑소니 사고로 잃은 여인 ‘주디스 캐슬’에게 기막힌 반전을 숨겨놓다.
닉 혼비 × J. 존슨
축구광이자 각본가이자 소설가인 ‘닉 혼비’, 작가 ‘J. 존슨’들의 일생을 놀랍도록 재치 있게 압축하다.
벤델라 비다 × 솔레유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그리는 작가 ‘벤델라 비다’가 이번에는 떠돌이 프랑스 여인 ‘솔레유’의 나날을 따라간다.
토비 리트 × 괴물
동시대의 문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내는 ‘토비 리트’, 그가 그린 ‘괴물’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정녕 괴물일까?
미란다 줄라이 × 로이 스피비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 ‘미란다 줄라이’, 매력적인 전방위 예술가인 그녀가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남자 ‘로이 스피비’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가슴 설레는 로맨스를 그리다.
조너선 레섬 × 퍼쿠스 투스
장르의 파괴자라 불리는 독창적인 작가 ‘조너선 레섬’이 독특한 취향의 문화평론가 ‘퍼쿠스 투스’의 아파트로 당신을 초대한다.
제이디 스미스 × 핸웰 시니어
첫 장편 『하얀 이빨』로 전 세계 문단의 관심을 받은 작가 제이디 스미스, ‘핸웰 시니어’라는 영국 남자의 일대기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A. L. 케네디 × 프랭크
깊이 있는 단편소설 작가 ‘A. L. 케네디’가 만들어낸 캐릭터 ‘프랭크’. 아내를 위해 수프를 끓이다 주방을 피바다로 만들어버린 그에게 어떤 비극이 일어났던 것일까?
A. M. 홈스 × 신디 스투벤스톡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의 ‘A. M. 홈스’가 그림 경매를 즐기는 최상류층 여인 ‘신디 스투벤스톡’과 친구들의 하루를 그리다.
하이디 줄라비츠 × 글래디스 파크스슐츠 판사
풍부한 언어를 구사하는 ‘하이디 줄라비츠’, 판사 ‘글래디스 파크스슐츠’의 삶을 통해 엄마와 딸의 비극을 반전 있게 그려내다.
알렉산다르 헤몬 × 허풍선이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 ‘알렉산다르 헤몬’이 심판대에 선 어느 ‘허풍선이’의 인생을 짧고 강렬하게 보여준다. ‘허풍선이’ 그는 누구였을까?
에드위지 당티카 × 렐레
섬세한 통찰력을 지닌 작가 ‘에드위지 당티카’, 개구리가 떼죽음을 당한 어느 여름을 배경으로 뱃속에 아이를 가진 여인 ‘렐레’의 숨겨진 슬픔을 그리다.
데이브 에거스 × 테오
독창적인 문예 계간지 〈맥스위니스〉의 편집장이자 문제적 작가 ‘데이브 에거스’, 사람이 아닌 작은 산맥 ‘테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다.
콜럼 토빈 × 도널 웹스터
『브루클린』을 쓴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 ‘콜럼 토빈’, 정제된 문체와 독특한 방식으로 의문의 주인공 ‘도널 웹스터’의 고백을 들려주다.
ZZ 패커 × 기디언
주로 흑인 소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ZZ 패커’가 이번에는 흑인 여자를 좋아하는 유대인 남자 ‘기디언’의 이야기를 쓰다.
앤드루 오헤이건 × 고든
발표하는 작품마다 각종 문학상의 주목을 받는 ‘앤드루 오헤이건’,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고든’의 성장기를 그리다.
애덤 설웰 × 니고라
강렬한 데뷔작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작가 ‘애덤 설웰’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유부녀 ‘니고라’의 딜레마를 이야기하다.
하리 쿤즈루 × 마그다 만델라
주목받는 인도계 영국 작가 ‘하리 쿤즈루’, 스스로를 넬슨 만델라의 딸이라 주장하는 주정뱅이 여인 ‘마그다’의 요란스러운 삶을 그리다.
앤드루 숀 그리어 × 뉴턴 윅스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 어린 소년 ‘뉴턴 윅스’와 그 친구의 비범한 우정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다.
대니얼 클로즈 × 저스틴 M. 다미아노
미국의 대표 만화가 ‘대니얼 클로즈’가 영화평론가 ‘저스틴 M. 다미아노’를 통해 비평가들의 번민을 보여주다.
크리스 웨어 × 조던 웰링턴 린트
천재적 만화가 ‘크리스 웨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받고 방황하는 ‘조던 웰링턴 린트’의 성장기를 개성 있는 그래픽 노블로 완성해내다.
작가정보
저자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장편 『하얀 이빨』은 완성 전에 이미 계약 경쟁이 뜨거웠고, 〈가디언〉 신인작가상, 휫브레드 신인상, 영연방 신인작가상을 휩쓸었다. 2010년에 뉴욕 대학교 문예창작과 종신교수로 임명됐다.
저자(글) 조지 손더스
저자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 작가’로 불리는 미국 문단의 귀재. 첫 단편집 『악화일로를 걷는 내전의 땅』으로 펜/헤밍웨이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단편집 『12월 10일』로 미국 스토리상, 영국 폴리오 문학상을 받았다.
저자(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는 프린스턴 대학 4년간 매년 교내 문예상을 받았고, 첫 장편 『모든 것이 밝혀졌다』로 〈가디언〉 신인작가상과 전미유대인도서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가 있다.
저자(글) 데이비드 미첼
저자 데이비드 미첼David Mitchell는 첫 장편 『유령이 쓴 책』으로 35세 이하 영국 작가의 최고 작품에 주어지는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을 받았다. 문학적 야심과 깊이를 지녔다고 평가받으며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7)에 올랐다.
저자(글) 닉 혼비
저자 닉 혼비Nick Hornby는 영국 최고의 이야기꾼. E. M. 포스터 상과 WH 스미스 상을 받았고, 작품 대부분이 영화화되었다. 대표작으로 『하이 피델리티』 『어바웃 어 보이』 『하우 투 비 굿』 『피버 피치』가 있다.
저자: 벤델라 비다Vendela Vida
풍부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여성의 삶을 그리는 작가로서 조지 손더스, 조이스 캐롤 오츠 등이 극찬했다. 대표작으로 『이제 가도 좋아』 『북쪽의 빛들이 당신의 이름을 지우게 하라』가 있다.
저자: 토비 리트Toby Litt
동시대의 문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늘 새로운 글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자본주의 모험』 『나를 찾아서』 『라이프라이크』가 있다.
저자: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
16세에 희곡 「종신형 재소자들」로 데뷔한 이래 작가, 영화감독, 행위예술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 발표해온 단편을 엮은 『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로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을 받았다.
저자: 조너선 레섬Jonathan Lethem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장르의 파괴자’라 불리며, 〈뉴스위크〉 선정 ‘21세기를 이끌 100인’에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첫 단편집 『하늘의 벽, 눈의 벽』으로 세계 판타지상을 받았고, 대표작으로 『머더리스 브루클린』 『고독의 요새』가 있다.
저자: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장편 『하얀 이빨』은 완성 전에 이미 계약 경쟁이 뜨거웠고, 〈가디언〉 신인작가상, 휫브레드 신인상, 영연방 신인작가상을 휩쓸었다. 2010년에 뉴욕 대학교 문예창작과 종신교수로 임명됐다.
저자: A. L. 케네디A. L. Kennedy
첫 단편집 『밤의 기하학과 가스카딘 열차』로 존 루엘린 라이스 상을 받았다. 깊이 있는 단편 작가로 평가받으며 2007년에 『데이』로 코스타상을 받았다.
저자(글) 토비 리트
저자(글) 미란다 줄라이
저자(글) 조너선 레섬
저자(글) 제이디 스미스
저자(글) A.L.케네디
역자 강선재는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나를 찾아줘』 『세 길이 만나는 곳』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로마의 일인자』 『포르투나의 선택』 등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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