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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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54647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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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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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숙녀라고 묘사하는 세대의 본질적 곤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한 단계 계단을 오르긴 했으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아이와 어른 사이, 소외 계층도 특권 계층도 아닌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안락과 혼란 사이에서 숙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굴욕 플레이 속에 담긴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좀 아는 사이’, ‘쉽게 질리는 스타일’, ‘장미십자회 중창단의 여름’, ‘빛이 우리를 인도할까요’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1부
교생, 실습
기숙사 커플
좀 아는 사이
24시간 열람실
파트타임
학생식당
팀플레이
월급날
로맨티시즘
소울 메이트
걸 토크
2부
낙관주의적 학풍
파트타임
나의 여학생부
조별 과제
쉽게 질리는 스타일
사춘기
잘 아는 사이
합격 수기
장미십자회 중창단의 여름
나의 첫번째 남자친구
청춘
3부
호러
시상식 모드
편입생
애원
구직 활동을 하러 교회에 갔어요
오픈 테스트
6인실
기대
절교 선언
닌나난나
여름의 에테르
4부
정반합
빛이 우리를 인도할까요
교환 일기
보험
친자 확인 검사
자신
진실게임
같이 놀아요
숙녀의 기분
해설
숙녀라는 이름의 굴욕 플레이어
함돈균(문학평론가)
실패한 숙녀들의 기분을 달래는 주문, “큐티 큐티 큐트 샤라랑!”
우리 시대의 ‘쌩얼’ 앞에서 벌어지는 숙녀들의 굴욕 플레이!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에서 씁쓸한 캔디를 빨던 박상수의 그 아이들은
어언 7년 만에 ‘숙녀’가 되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굴욕’의 런웨이(runway)를 걷고 있다.
-함돈균, 해설 「숙녀라는 이름의 굴욕 플레이어」 중에서
시인이자 비평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박상수 시인이 두번째 시집 『숙녀의 기분』을 펴냈다. 전작 『후르츠 캔디 버스』 이후 7년 만에 찾아온 이번 시집은 그 제목부터가 읽는 이의 마음을 잡아끈다.
먼저 ‘숙녀’. 1)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 2) 보통 여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 3) 성년이 된 여자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 그러나 굳이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밝히지 않더라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은 호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터. 그리하여 이 시집을 이끌어가는 화자는 7년 전 사탕을 빨던 아이도,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중년도 아니다. 또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한 단계 계단을 오르긴 했으나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툰 아이와 어른 사이, 소외 계층도 특권 계층도 아닌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안락과 혼란 사이, 거기에 ‘숙녀’가 있다.
그렇다면 ‘기분’은 무엇일까. 1) 대상ㆍ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이처럼 ‘기분’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기분’을 파악하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대상과 환경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던져져 있는 삶의 정황에서 생겨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숙녀의 기분’을 들여다보는 것은 특수하고 극단적인 소수의 삶이 아닌 우리 시대의 현상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과 같을지도 모른다.
가지 마세요 우릴 구해주세요
만국기가 펄럭이는 계주에서 흰색 바통을 놓쳐버린 것처럼
진한 당밀차가 캐러멜 색으로 마룻바닥 위를 흠뻑 적셔나갈 때
운동장 스무 바퀴를 뛴 다음의
사향 냄새 감도는
가슴을 두 개나 가지고서.
-「교생, 실습」 부분
서시에서 우리는 숙녀로 진입하려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운동장 스무 바퀴를 뛴 다음의/ 사향 냄새 감도는/ 가슴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숙녀 직전의 그들은 메이크업이나 향수 따위로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교생 선생님’의 경험만으로도 인생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여린 감수성을 지닌 그들은 “만국기가 펄럭이는 계주에서 흰색 바통을 놓쳐버린 것” 같은 곤경과 상실감 속에서 비로소 숙녀의 세계로 진입한다.
좀 가, 냄새나니까 좀 가
내 침대에 들어가서는 자는 척하고 있구나 그렇게도 입지 말라는 늘어난 면 티를 입고서, 굴욕 플레이가 더는 싫어서 너를 만났지 스쿨버스에서 캐리어 올려줄 사람이 없어서 너를 만났어 일주일 전부터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기어이 마구 해버렸다 넌 이불 밑에서 번민광처럼 중얼거렸지
내가 시험 떨어졌다고 이러는 거니?
한 번 더 떨어져서 다섯 번 채워, 그다음엔 어디 국토대장정 같은 데라도 갔다 와 거기 가면 울면서 어른이 된대
그러지 말랬지 그런 마이너스 사고방식
-「기숙사 커플」 부분
선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약속에 한 시간이나 늦었는데 너는 오늘 스타일이 좋구나 너의 그 토트백이 맘에 들어 머리 뒤에서 빛이 난다는 너희 교수님에게 물어보지 그러니 말해주고 싶지만 찻잔 받침대에 조금씩 밀크티를 따라 마시며, 어른 흉내를 내는 중이니까
넌 조금 더 제멋대로 걸어도 되는 거야
우린 얕보이는 게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닐까, 너는 갈수록 허리가 반듯하게 펴져서 나는 너에게 푸들 가발을 씌워주고 홈베이킹용 장갑으로 어루만져주고 싶어
(중략)
고마워요 선배, 라니, 감정이 너무 많아서 져버린다 도대체 왜 나 같은 선배에게! 이젠 제발 그만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야 다시 하면 될 테고 나만의 비밀 블로그엔 후배는 그렇게 아프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라고 써놓으면 될 테고
하지만 고개라도 끄덕이지 않으면
당장 나는 할 게 없어진다.
-「좀 아는 사이」 부분
일부러 한 여자애만 노려봤지 걔가 언제 화장실에 가는지 알고 싶었어 내가 세 번이나 갔다 올 동안 걔는…… 비범했다 나보다 세 살은 어려 보였고, 말도 안 돼, 스타크래프트 밴에서 갓 내려선 스타일이라면
나한테는 답이 없는 거지
-「24시간 열람실」 부분
그러나 숙녀의 세계로 진입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굴욕 플레이가 더는 싫어서” 애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취업시험에서 떨어지는 애인을 봐야 하는 심정은 더하다. 오히려 “그렇게도 입지 말라는 면 티”와 가까이 가기도 싫은 ‘냄새’가 비참한 현실을 더욱 확인시켜줄 뿐이다. 게다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험에 다시 한번 더 떨어지고 “국토대장정 같은 데라도 갔다 와”야 한다. 실패로 얼룩진 굴욕을 극복하고 눈물을 흘리는 성장통을 겪어야 어른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찻잔 받침대에 조금씩 밀크티를 따라 마시며, 어른 흉내를 내”보기도 하지만, “얕보이기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이내 “고개라고 끄덕이지 않으면// 당장 나는 할 게 없어”지는 현실을 자조할 수밖에 없는 숙녀들. 아니, 그들은 어쩌면 숙녀가 되고자 하는, 숙녀를 선망하는 자들에 가까울지 모른다. 화장실도 안 가고 공부하면서, 어려 보이는 외모에, “스타크래프트 밴에서 내려선 스타일”을 한 진짜 숙녀를 그저 바라보며 “나한테는 답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숙녀들은 ‘실패한 숙녀들’이다. 이들은 여성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보그 걸(Vogue Girl)’이 되는 것은 턱도 없고, 잡지의 우아한 독자들이자 소비자들인 ‘레이디’가 되는 일에조차 실패했으니 말이다. 설령 그녀들이 조금 먼 장래가 된다고 한들, ‘청담동 며느리’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간에 이 희극적 풍경에는 우리 시대의 진실이라고 할 만한 우스꽝스러운 면이 내재해 있다. 하지만 만일 여기에 진정한 희극성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것은 숙녀들의 ‘기분’ 때문이 아니라(사실 이 기분은 우울하고 착잡하다), 이 기분이 환기하는 풍경의 이면 때문일 것이다.
-함돈균, 해설 「숙녀라는 이름의 굴욜 플레이어」 중에서
이 시집에서는 숙녀가 되고자 하는 그들의 굴욕 플레이는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 않고 희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독자들은 마치 <개그콘서트>의 우스꽝스러운 한 장면을 이 시집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들의 이야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숙녀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굴욕 플레이에 대한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이건 그냥 우리 시대의 ‘쌩얼’이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장을 넘기며 앙큼 발랄한 숙녀들의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좌절의 순간들을 확인하며 웃다보면, 어느덧 씁쓸한 현실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그러나 기분은 언제나 사라지고 바뀌는 것. 굴욕의 나날이지만 그럼에도 숙녀들은 주문을 외운다. “큐티 큐티 큐트 샤라랑!”
시인의 말
가시엉겅퀴즙
머리카락
바비 립 에센스
죽은 토끼
코코넛 파우더
샤라랑
샤라랑
2013년 5월
박상
작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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