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토끼 차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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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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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어쩐 일인지 독한 양잿물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새빨간 핏덩이와 함께 옥문 밖으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머리도 발도 아닌 귀였다. 게다가 그 귀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산파조차 처음 보는 아주 긴 귀였다. 억조창생 중에 토끼가 아니라면 그런 귀가 없을 텐데, 세상에, 진짜 토끼였다. 경악을 거듭하면서도 산파는 자신이 지닌 기술을 총동원하여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다. 엄마 뱃속을 빠져나온 직후라 새파랗게 질려 있던 아기를 따뜻한 물로 씻겨주자 과연 갓 쪄낸 백설기처럼 새하얀 토끼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p18쪽 중에서
십오 년에 걸쳐 완성된 김남일의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
소설가 김남일, 그가 실로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펴낸다.『천재토끼 차상문』, 2010년 최고의 기대작이라 감히 단언하는 이번 소설로 그가 참 오랜만에 손을 풀었다. 1987년『청년일기』, 1993년에서 1996년에 걸쳐 『국경』을 출간했으니 장편소설로는 햇수로 약 십오 년만이다. 1983년 데뷔 이후 그는 길 위에서 늘 바빴다. 삶이든 문학이든 그는 말보다는 몸을 앞서 부리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 앞에 참으로 오랫동안 ‘실천’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제 나는 이를 ‘몸씀’이라는 단어로 감히 대체해본다. 몸을 쓴다는 일, 이는 그의 소설이 그의 피와 살에 스며있다는 말일 터, 그렇게 우리 몸속에 새겨지고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되어왔던 그의 소설이 2010년형으로 버전 업 되어 지금 여기 이렇게 놓였다. 『천재토끼 차상문』얘기다.
차상문, 그는 인간이나 토끼로 태어났다. 차상문, 그는 토끼이나 진정 ‘인간’이길 원했다.
차상문, 그는 과연 누구이며 그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한국 소설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 하나를 탄생시켰다. 이름은 차상문, 그는 천재이며 토끼다.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일명 유나바머. 열일곱 살에 하버드에 입학한 수학의 천재. 3년 만에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에서 최연소 종신교수직을 획득했으나 스스로 교수직을 사임한 뒤 몬태나의 깊은 숲속으로 잠적. 운둔자의 길을 걷다가 홀로 산업 문명 전체를 상대로 한 ‘전쟁’을 전개한다.”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접한 이후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홀로 산업 문명 전체를 상대로 벌인 그의 ‘장엄한 전쟁’기는 해방 전후로부터 시작하여 IT 강국으로 거듭난 한국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동기 한국의 현대사와 그 맥을 함께하고 있다.
소설이 역사를 끌어안고 갈 때의 그 선 굵은 스케일은 그러나 진중한 울림에만 그치지 않는다. 간결한 문장 덕분이다. 곳곳에 배치된 상징의 딱 들어맞음도 한몫했다. 그래서 이 두툼한 한 권의 책이 순식간에 읽힌다. 혹여 어떻게 토끼인간이…… 라며 허구성에 문제를 제기할 자 있다면 나는 그만의 독특한 유머를 무기로 내세우겠다. 적당히 무겁고 또한 적당히 가벼운데 모두와 함께 있을 때 는 웃다가 뒤로 와 혼자 울게 되는 식의 코드라고나 할까.
생은 엄중한 것이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더욱.
우리는 아주 쉽게 말한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그러나 말처럼 우리가 따르고 사는가, 이를 생각해보면 아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이런 고민이 퍽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요?”
우리는 아주 쉽게 땅 위를 걷는다. 그런데 난데없이 토끼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이렇게 말한다. “걸을 때 쿵쿵거리지 좀 말아주세요, 제발!” “왜요?” “땅이 놀라잖아요.” 자,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 삶의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작가는 기꺼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없다. 제발, 무엇이든 하려고 좀 하지 마시라!” 무엇을 하든 지구별은 그만큼 무너지게 마련이다.
『천재토끼 차상문』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책 한 권을 새로이 받아든 심정이다. 그건 바로 ‘인간’이라는 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바로 ‘우리’라는 책, 나아가 우리 너머를 헤아려보라는 역지사지의 책!
추천글
박범신(소설가)_기발하고 재미있고 슬프고 무섭다. 좌(左), 우(右)의 폭력적 결합을 통해 태어난 ‘토끼’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그 발상에서 협소한 우리 서사문학의 지평을 넓혔고,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상상력 때문에 흥미진진하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 부정과 반역을 드러내 슬프기 한정 없고, 그 모든 것이 강력하게 오늘날 우리 삶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섭다. 이제 우리는 인간주의에 기댄 전근대적 인물이 아니라 병적 세계 구조에 의해 생긴 새로운 변종(變種)의 출현으로 우리의 보편적 존재 방식을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김남일의 ‘토끼’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장엄한’ 선전포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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