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위한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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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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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만나는 우리 곁의 페미니즘
『소녀를 위한 페미니즘』에는 가부장제, 차별, 혐오, 성범죄 등에 맞서 각자의 방식으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여성, 특히 소녀에게 가해지는 일상의 폭력에 의구심을 가진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폭력에 맞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지금 이 상황이 옳은 건지’, ‘잘못된 일이 왜 반복되는지’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그리고 연대를 통해 잘못을 짚어 내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누가 뭐라든 쫄지 마.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멋지니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분명 소설이지만 현실에서도 마주칠 법한 일들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어디에 화를 내야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사건들이 소설/현실 속 소녀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탓이다. 소녀는 폭력에 괴로워하고 잘못된 일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그 누구도 시원스러운 답변을 내 주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덮어두어야 할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스쿨 미투 운동을 비롯해 소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비정상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 또한 잘못된 일에 질문을 던지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다섯 편의 이야기는 소녀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함께 목소리를 내어 줄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박하령 - 숏컷
이꽃님 - 이제 소녀 같은 건 때려치우기로 했다
이 진 - 햄스터와 나
탁경은 - 스스로 반짝이는 별먼지
아버지는 평생 부지런했다. 택시 기사였으며 건강식품 대리점도 했다. 침대 매트리스 영업 사원이었다가 작은 봉제 공장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버는 것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았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날랐고 부품을 사러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시장에서 가장 싼 음식을 먹어 가며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그래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빚은 점점 많아졌다. 아버지가 버는 건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는 데만도 숨이 찼다. 그런 아버지가 수백억 원을 횡령해서 미로 속에 숨겼다고 한다. 우리 중 누구도 그 돈을 보지 못했다. 다만 어느 날부터 쫓기듯 초조한 얼굴로 정신없이 미로를 만드는 아버지를 보았을 뿐이다.
-17쪽, 「아버지의 미로」 중에서
“너 이제부터 머리 길러.”
“응?”
“탈코르셋인지 뭔지 그딴 거 땜에 머리 쳐 냈단 오해 받기 싫으니까. 너 그래서 머리 자른 거 아니잖아? 재수 없이 페미랍시고 남자도 아니면서 남자인 척하느라 머리 자르고 나대는 거 진짜 꼴사납거든.”
“엥? 페미가 남자인 척한다고? 왜?”
아니, 뭣 때문에 남자인 척을……. 이수의 말에 기가 차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건만 이수는 내가 몰라서 묻는다고 생각해서인지 설명이랍시고 더 기막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그건 못생긴 애들이 어차피 외모로 승부를 못 보니까 똑똑한 척하느라, 남자인 척하느라 그런 거지.”
더 압권은 다소 황당해하는 내 등을 밀면서 “자자, 예쁜 애는 들어가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복도 반대편에서 담임 쌤이 걸어오는 게 보여 할 수 없이 얼른 자리로 들어와 앉았지만 대차게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66쪽, 「숏컷」 중에서
“근데 김아린은 왜 가만있지? 나 같으면 가만 안 있을 텐데.”
“김성율 말이 맞으니까 가만있겠지.”
“하긴 SNS에 쫙 퍼졌다며? 김아린 진짜 쪽팔리겠다. 학교 어떻게 다니냐.”
몇몇 아이들은 성율을 비난했지만 거의 모든 아이가 아린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 입에서 ‘걸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쉬는 시간마다 아린은 고개를 파묻으며 책상에 엎드렸고 성율은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솔지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여자는 더러운 사람이 되고 남자는 승리자가 되는 걸까. 왜 그런 것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누구도 답해 주지 않았다.-93쪽, 「이제 소녀 같은 건 때려치우기로 했다」 중에서
“너는 이제부터 네 몸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해.”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에 첫 생리를 시작한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속옷에 묻은 검붉은 핏자국을 내려다보며 나는 내 몸이 무척 낯설었다. 그런 와중에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엄마의 당부는 별 설득력이 없었다. 아기를 만들 수 있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라지만 나는 딱히 ‘아기가 생길 일을 한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는데 왜?’ 라는 의문만 들었다.
그건 나 자신이 침해당하는 기분이었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축복의 말이 오히려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모순이었다. 정말로 소중한 건 여자의 몸일까, 여자의 몸속에 있는 아기일까? 아기를 원하지 않거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여자의 몸은 소중하게 여길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걸까?
-160쪽, 「햄스터와 나」 중에서
“무서웠어. 길거리를 걷는데 누가 평범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을 때, 밤길을 걷는데 누가 날 따라올 때, 갑자기 밤에 택시를 타야 할 때, 부모님이 외출 나간 사이 누가 실수로 현관 번호 키를 누를 때, 엘리베이터를 낯선 남자와 함께 타야 할 때, 그리고 아이들이 내 피부를 보면서 비웃거나 미간을 찡그릴 때. 그런데 예령이 네가 곁에 있으면 무섭지 않았어. 그 어떤 시선도 견딜 만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를 바라보는 은주의 눈빛이 따뜻했다.
“여전히 무서운 거 투성이지만 더는 숨지 말자, 우리.”
-204쪽, 「스스로 반짝이는 별먼지」 중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소녀를 위한 소설집
“이제 소녀 같은 건 때려치우기로 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가진 다섯 작가가 모였다. 『소녀를 위한 페미니즘』은 청소년문학을 이끄는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문화 권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페미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십대에게 들려줄지 고민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진나의 「아버지의 비로」는 아버지가 설계한 공간(미로) 때문에 온 가족이 혼란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알레고리를 활용해 청소년문학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시선을 보여 준다. 박하령의 「숏컷」은 짧은 머리에 담긴 편견에 때문에 한 사건에 휘말리는 소녀의 이야기다. 평범한 소녀였던 주인공이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세상에 맞서 싸우고자 다짐한다.
이꽃님의 「이제 소녀 같은 건 때려치우기로 했다」는 몰카 피해자인 언니와 잘못된 정보로 한순간에 ‘걸레’가 되어버린 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소녀(들)의 당찬 외침이 눈에 띈다. 이진의 「햄스터와 나」는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로 임신과 낙태를 걱정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그 걱정을 주인공의 반려동물인 햄스터를 둘러싼 사건과 잘 엮어 내 이야기가 몰입도 있게 다가온다.
탁경은의 「스스로 반짝이는 별먼지」는 소녀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깨우치고 알아가는 이야기다. 사회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나다움’을 생각하며 잘못된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고자 연대한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다섯 편의 이야기와 함께, 소녀에게 당부와 위로를 전하는 작가의 따뜻한 목소리가 각 소설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빈틈없이 구성된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녀에게 힘과 위로가,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발판이 될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하령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이 땅의 오늘을 사는 아이와 청소년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 KBS 미니시리즈 공모전에 「난 삐뚤어질 테다!」가 당선됐고, 『의자 뺏기』로 제5회 살림 청소년문학상을,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로 제10회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기필코 서바이벌!』 『발버둥치다』 『1인분의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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