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파파

최지영 지음

대명종 2008년 11월 09일 출간 종이책 : 2007년 08월 23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유부녀 로망 1위. 미녀 킬러. 주인 없는 남자 '닥터 리'. 어느 날, 우리 집 꼬마가 데리고 온 요구르트 처녀. 싱글파파 닥터 리는 미모의 요구르트 아가씨와 만 5년 묵은 큐피드의 화살에 맞는다!

최지영 로맨스 장편소설 『싱글파파』.

목차

프롤로그

1. 요구르트 모자 속의 진실
2. 파파의 기술, 그녀의 이름은?
3. 생쥐 돈가스와 작렬의 뺨따귀
4. 8시 20분, 울타리 골목
5. 금요일의 포크댄스
6. 파파와 아가씨의 저녁식탁
7. 싱글파파를 아세요?
8. 별빛 고깔모자와 kiss
9. 파파는 괴로워
10. 포장마차에서
11. 춤추는 사람들
12. 파란을 몰고 오는 찰리 엄마
13. 진실의 파도
14. 파파, 나의 파파

에필로그

책 속으로

사람들은 그를 ‘싱글파파’라 불렀다. 그는 여섯 살배기 아이가 있다는 것만 빼놓곤 완벽했고, 사람들은 그 여섯 살배기 아이만 없다면 그가 벌써 돈 많은 과부에게 ‘시집’을 가도 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싱글을 사랑했고, 그의 조숙한 아이 역시 그를 잘 따랐다.
그들의 집은 넓고, 크고 훌륭했다. 고급아파트에 고급승용차, 화려한 샹들리에는 언제나 점등되어 있고, 매끈한 대리석 바닥 위를 사뿐하게 걸어 다니곤 했다. 그는 매주 두 번씩 가사도우미를 불렀으며, 그 때마다 자신과 아이의 잠자리 청결을 최우선으로 지시했다. 아이는 언제나 조용했다. 말썽을 피우거나 특별히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다. 하얀 피부와 커다란 눈망울 때문에 동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아이는 크게 동요하진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관심사 밖의 일엔 신경 쓰지 않는 메마른 성정을 닮았던 것이다.
성형외과 의사인 파파 덕분에 아이에겐 부족한 것이 없었다. 아이스크림도 과자도 빵도 언제나 그곳에는 넘쳐났다.
아이는 여느 때처럼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면서, 컴퓨터에 열중 중인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는 도저히 파파가 아니었다.’ 그는 TV에서 나오는 고운 아저씨들과 아주 흡사하게 생겨 먹었다. 불룩한 배도 나오지 않고, 늘어진 러닝셔츠도 입지 않았으며 펑퍼짐한 줄무늬 파자마 같은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불쑥 물었다.
“파파는 우리 파파 맞아?”
“뭐?”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남의 파파일까.”
그래도 영 의심스런 표정이자 그는 집요하게 두드리고 있던 자판에서 손을 떼고 아이를 향해 의자를 돌렸다.
“그럼 넌 내 아들이 아니라는 거냐?”
“맞지. 이연우는 이소혁 아들 맞아. 왜 의심해?”
“인마, 네가 먼저 의심하니까 묻는 것 아니야.”
이소혁 씨는 아들 이연우보다 더욱 불쾌한 듯이 따지더니 다시 컴퓨터에 열중했다.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그의 파란색 스포츠카가 절벽 코너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맹렬한 속도로 추격해왔지만 그는 지지 않았다. 그것은 요즘 유행 중인 3D게임의 일종이었다. 모 유명 게임회사에서 한정판으로 내놓은 자동차경주게임이었는데, 휴일이나 오늘처럼 학회에 갔다가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그는 그것을 자주 애용했다.
“요즘, 유치원은 어때. 말썽피우는 건 아니겠지.”
“별로야. 게다가 또 새로 애들이 들어와서 나도 이제 늙었어.”
연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렸다. 멜빵바지를 입은 터라 아이 특유의 올챙이배가 도드라져보였다. 소혁은 코웃음을 팍 날리며 운전 중인 캐릭터를 따라 왼쪽으로 상반신을 심하게 기울였다.
“자식아. 그런 건 늙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짬밥이 늘었다고 해야지.”
파파는 다시금 올바르게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이다. 게임에 혼이 팔린 그는 패배할 때까지 자신 따위 신경도 써주지 않을 것 같았고, 불행하게도 그 때의 연우는 무척이나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웬만하면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가 자신을 쳐다봐주길 기다렸지만, 짜증스럽게도 파파는 게임의 유단자. 열혈유저라 통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 별명도 ‘지존 혁 왕자’이다.
가끔 가다 게임 안에서 파파는 연애도 하는 것 같았다. 한 판만 져도 개발에 소발, 닭발까지 튀어나오는 파파의 표정이 어느 순간 솜사탕에 녹아내리면, 분명 그런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안다. 파파는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않는단 것을. 연우에게 아리따운 누나가 돈가스를 사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누나는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우리아빠는 바람둥이다.’ 연우는 동네 형들에게서 주워들은 그 칭호를 그에게 친히 선사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실제 입 밖에 꺼냈다간 족히 한 시간의 설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연우는 몹시 피곤했다. 말하지 않는 게 능사다.
누나라고 하니까, 연우는 묻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게임 삼매경이었고 오늘은 약속도 없는지 아마 종일 저러고 있을 듯했다. 연우의 입술이 불만스럽게 모아졌다.
“파파.”
소혁은 차마 혈전 중인 모니터에서 눈은 떼지 못하고, 고개만 돌려 반응했다.
“저번에 나 데리고 갔던 아이스크림가게 말인데.”
“아이스크림가게라니, 내가 널 언제 그런 곳에 데리고 갔더라.”
그렇게 말해놓고 은근히 찔리는 눈치였다. 늘 바쁜 그는 요즘 들어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갈 시간이 좀체 없었던 것이다.
“저번에 연우를 억지로 아이스크림 주는 식당에 데리고 갔을 때 봤던 누나 말이야! 사마귀 누나.”
그 별명을 듣는 순간 그는 2주 전 뱁새처럼 눈이 쫙 찢어진데다가 튀어나오기까지 한 사마귀를 닮은 맞선녀?연우의 감상이자 그의 감상이었다?를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