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보낸 백 년
2013년 06월 19일 출간
종이책 : 2007년 03월 31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6.42MB)
- ECN 0102-2018-800-00269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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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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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간에서의 경험은 감성을 자극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누구나 여행과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익숙한 공간과의 결별로 반복적인 삶을 변주하고자 하는 욕망은 성찰과 사색을 통해 예술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저자는 낯선 공간에서의 생활을 통해 우리가 그악스럽게 붙드는 일상의 애틋함을 그려내는 것으로,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 책은 문단에 등단한 지 17년째를 맞는 저자의 첫 산문집이다. 저자는 낯선 공간에서 시인 특유의 영적 투시력으로 자연과 자신과의 관계를 탐색하고 소통한다. 그리고 봄이 피우는 향기로운 꽃과 살아있음을 흐름으로 전하는 바람, 그리고 밝음과 어둠을 관찰하면서, 공간이 또 다른 존재의 탄생을 추동하는 원리를 터득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봄이 오기 전
섬에서 보낸 백 년
또 다른 풍경들
넘실거리는 어두운 바다를 덮고 있는 흰 거품들, 저 먼 쪽빛 봄 바다는 더없이 평화로운데 시선을 바로 아래로 두면 아우성이다. 봄의 바다조차 들끓고 있는, 다스릴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꽃잎 한 장에서 괴로움을 읽어내는 것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은 흰빛이다. 저 반짝이는 흰빛 아래 얼마나 커다란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가.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은 밝음이지만 그 밝음을 한 겹만 벗겨 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버티고 있다.
바다는 저 밝은 푸른빛 아래 널름거리는 어두운 혓바닥을 수없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깊고 어두운 내면을 완벽하게 덮어 버리고 있는 흰빛의 밝음이 이 세상의 비밀 아닌 비밀인 것일까. (p19~20)
배가 동굴 쪽으로 천천히 들어가 멈추어 있을 때 물 밑을 보자 멸치 떼가 은빛으로 일렁였다. 멸치가 이렇게도 아름다울 줄이야. 멸치가 물 밑에서 뿜어내는 은빛이 수면에서 햇살과 만나 눈이 시리고 부셨다. 어디서 맑은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 몸이 그 눈부신 풍경을 받아 울리는 소리였다. 바다가 연주하는 교향악을 눈으로, 살갗으로, 냄새로 들으며 섬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바위에 붙은 따개비와 수초와 반짝이는 멸치들이 삶을 너무나 생생하게 되돌려 놓았다. 내일 나는 이 섬을 떠난다. (p76)
꽃 다 지고 초록이 높아간다. 영산홍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5월이다. 오동나무 아래를 가슴을 움켜쥐고 가만히 지나가야 하는 5월이다. (p123)
육체와 정신의 거리를 좁혀 간 치유의 기록 … 조용미 시인의 첫 산문집
이 책은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의 뛰어난 시집을 낸 조용미 시인이 약 3개월 동안 남해안의 작은 섬 소매물도에 머무르며, 특유의 정갈한 사유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한 첫 산문집이다. 시인의 일기는 단순한 생활의 감상이나 기록이 아니라, 시인의 섬세한 관점으로 일상 너머의 선경을 바라보고, 풍경의 내면까지 투시하여 기록한다. 그에게 자연은 심상한 풍경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시인 특유의 영적인 투시력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탐색하며 온몸으로 소통하고 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낯선 공간에서의 경험은 감성을 자극하고 전혀 색다른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누구나 여행과 일탈을 꿈꾼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반복적이고 지리멸렬한 삶을 변주하고자 하는 욕망은 성찰과 사색을 통해, 예술적 품위를 획득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여행지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 사유의 기록을 남겼다. 깊은 성찰과 사색으로 얻어낸 그 기록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의 외연을 확장시키면서 독자들에게 꿈과 전율을 선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 그렇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그렇다. 릴케도, 박지원도, 에머슨도 모두 낯선 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독특한 사유의 기록을 남긴 작가들이다. 조용미의 섬에서 보낸 3개월간의 기록, 〈섬에서 보낸 백 년〉 역시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희덕 시인은 “이 일기는 그녀가 육체와 정신의 거리를 좁혀 간 치유의 기록이다. 그래서 섬의 아름다운 풍경들 사이에 묵직한 전언이나 질문들이 군데군데 흰 뼈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하며 시인의 내면일기를 추천한다. 또 그의 말처럼 조용미 시인은 ‘피 흘리는 나무처럼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시인의 내면, 이것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또 그 언어는 장 그르니에의 글이 그렇듯 이렇다 할 수사나 과장 없이도 조용히 가슴에 스며드는 감동을 지니고 있다. 일상을 그악스럽게 붙들지 않고 조금만 떨어져 보면 얼마나 애틋한 것인지를 가만히 노래하는 것이다. 또한 봄꽃들의 향기와 살아 있음을 흐름으로 전하는 바람, 명멸하는 빛과 어둠을 관찰하면서 그는 김지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공간이 또 다른 존재의 탄생을 추동하는 원리를 터득해가는 과정을 묘사하기도 한다.
조용미 시인은 올해로 등단 17년째를 맞는 중견 시인이다. 지난 2004년 세 번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을 발표했으며, 지금도 다음 작품을 위해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언젠가 시인의 말에서 '삼천 개의 뼈가 움직여/ 춤이 되듯/ 나는 삼천 개의 뼈를 움직여/ 시를 쓰겠다'고 했을 때는 문학적 각오를 새삼 밝힌 것이다. 오직 시 문학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용미 시인의 첫 산문집 〈섬에서 보낸 백 년〉은 비록 그의 문학 세계관에는 큰 흔들림이 없더라도, 또 다른 방법적 모색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첫 산문집을 내는 작가로서 시인의 참신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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