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교육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4.61MB)
- ISBN 9788937458637
- 쪽수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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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아름다운 가능성의 황무지
내 영혼을 먼저 끌어내 줘요 13
내가 없는 세계 14
액자소설 16
나 아닌 모든 18
일각수 20
램프 21
대관람차 22
기계적 평화 24
기념관 26
사랑과 교육 28
반쯤 인간인 동상 30
커대버 32
램프 33
사람 그리는 노래 34
죽음 기계 36
분쇄기 38
문틈에서 문틈으로 40
죽고 싶다는 타령 42
별들이 퍼붓고 난 이후 44
상황의 끝 46
커대버 48
구어 49
천변만화 50
사후적 관점 52
인챈트 54
고기잡이 노래 56
먼저 본 일에 대해 변명함 57
끝없는 삶 58
- 59
뿔이 부러진 말 60
재의 연대기 61
pt.2
회랑 67
오지브웨이 유령 사냥 68
활력 징후 70
기계 장례 72
이후에 73
아치 77
아스모데우스 78
납골당 80
빠찡코 82
시계 83
비실감 84
천막에서
축사로 85
제설제 88
유니즌 90
이야기 않기 91
몇 년 전, 장례식 있었던 무렵쯤 92
- 93
유리세계 94
빛의 모험 97
구원이 끝나는 밤 98
들 100
인챈트 101
학예사 103
모닥불의 꿈 104
- 105
역행시 106
추천의 글 108
우리들의 마음속에 잿더미가 쌓여 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생각을 헤쳐 나간다. 램프를 들고. 흔들리는 램프 안에 불이 흔들린다. 이것이 너의 표정이다. 너의 표정은 죽어 가는 사람의 숨결처럼 아득하게 퍼져 나간다. 램프를 들고 복도의 잿더미를 헤쳐 나가면 잿더미의 복도에서 램프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 그는 나에게 비어 있는 한 손을 내민다. 악수할 수 없는 손을.
-「램프」
아무도 없는 거리
모두 사라진 거리를 산책하며 쏟아지는
이상한 빛을 바라본다는 것
빛의 좋음 때문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휘감기고 있다면
그것은 신의 사랑일 것이다
불타는 이 도시의 꼴이 신의 교육이듯이
-「사랑과 교육」
살아 있는 책을 출간해야 했다
읽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책으로 가득 찬 서가의 운명이
소방대의 가치관에 전적으로 내맡겨질 때
모국어의 운명을 아는 책들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책이 스스로 경험을 쌓고
더 쓸모없는 장르로 진화하는 가운데
책의 분신을 지켜보는 와중에
우리가 마지막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
아니, 우리의 깨어남이 마지막일 때
영원한 꿈으로 돌아가는 초입에
우리가 보았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의 연대기」에서
햇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속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잠시 교환하는 눈빛 속에서 영원해질 때
걸어가면서
아직도 살아 있어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느낄 때
우리는 조금 더 자라나고 조금 더 슬픔 모르게 되고
커튼의 무늬 헤아리며
없을 혁명을 연습했죠
-「빛의 모험」에서
■ 정신과 물질을 태우는 모닥불
인간을 만들었다 여겨지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인간의 운명으로는 감당치 못한
기계장치의 세계
-「내가 없는 세계」에서
송승언의 첫 시집이 의미와 세계를 무한히 확장했다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런 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세상이 불타 없어졌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걷고 있구나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듯 송승언이 내미는 손은 쉬이 악수할 수 없는 손이다. 다른 손은 일종의 기계장치라 할 수 있는 ‘램프’를 들고 있는데, 우리는 그 램프에 의지하여 사물과 세계를 봐야만 한다. 우리는 손을 맞잡기를 포기하고 불타는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모닥불에 인간의 영혼과 진짜라고 믿었던 세계가 불타 없어지는 상황을. 원래 없었던 것이 되는 기이한 장면을. 못 견디어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 시(詩)라는 형식의 램프를 든 시인이 있다. 이 건조한 낭만주의자가 이끄는 곳으로 더 멀리 가고만 싶어진다. 설령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 최대치로 아름다운 황무지
누군가 유리의 숲이라고 명명한 곳에는 그것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들이 모여 없는 것들이 되는 사이를 잘 살펴 주십시오.
-「유리세계」에서
그 길 끝에 모종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많은 인간은 아름다움의 기원에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송승언은 영혼을 분쇄하고 삶의 의지를 배반하며 한국 시에 기억될 만한 황무지를 건설한다. 불에 타 텅 빈 공간에서 시인은 재배치를 시도한다. 대관람차와 납골당, 시인 두엇 앉아 있는 빠찡코와 폐가뿐인 마을…… 앞서 모닥불에 세계가 불타 없어지는 장면을 목도한 우리는 시인이 마련한 새로운 공간에 입장하여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유리의 숲에 당도하여 조각조각 깨진 유리를 본다. 조각의 숫자만큼 갈라진 진실에 맞닥뜨린다. 쏟아지는 빛이 각각의 조각을 투과한다. 송승언이 만든 황무지는 이토록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는 찰나에 시인의 만듦은 중지되고, 그는 만듦의 중지가 곧 만듦이었음을 담담하게 밝힌다. 돌아보니 또다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독자는 서 있을 것이다. 멀리에 잉걸불이 보인다면, 이 독서는 조금이나마 성공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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