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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일본의 사상

포스트 제국과 동아시아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김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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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19일 출간

종이책 : 2015년 04월 0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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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0.60MB)
ISBN 9788936404406
쪽수 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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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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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일본의 사상』은 제국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콘크리트 공사'에 비유한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도래하자마자 동아시아 각국들이 과거 제국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는 일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제국일본은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가만히 잠들지 못했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자' 며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헌 움직임에 대해 과거 식민지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은 요동쳤고 콘크리트에 균열을 냈다. 이 책은 이제 과거를 콘크리트로 덮는 일을 멈추고, 제국일본이라는 지층 탐사에 나서자고 주장한다.
책머리에

제1부 제국의 히스테리와 주권의 미스터리
1장 주권의 번역, 혹은 정치사상의 멜랑콜리아
2장 예외적 예외로서의 천황
3장 주권의 표상 혹은 공백의 터부

제2부 제국의 문턱과 식민지의 인간
4장 개인·국민·난민 사이의 ‘민족’
5장 식민지배와 민족국가/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에 대하여

제3부 제국의 청산과 아시아라는 장소, 그리고 한반도
6장 ‘결단으로서의 내셔널리즘’과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7장 해적, 시민, 그리고 노예의 자기인식
8장 ‘광역권’에서 ‘주체의 혁명’으로

결론 규범과 사실의 틈새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동아시아는 낡은 질서의 위기와 새로운 질서의 부재 속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한국-대만을 잇는 동아시아 반공체제는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지만, 그것이 향후에도 구속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규범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루야마가 머무르고자 했던 저 중역의 지대는 여전히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상력을 배양하기 위한 자리다. 주권의 번역과 수용으로 독립 주권국가의 성립이 바로 국가의 위기 초래와 중첩되는 역설적 공간 속에 내던져진 근대 동아시아의 정치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37면)

10분 동안의 연설 뒤 “텐노오(天皇) 폐하 만세”를 세번 외치고 미시마는 다시 총감실로 돌아와 준비했던 의식(儀式)을 거행한다. “총감에게 원한은 없습니다, 텐노오 폐하께 자위대를 돌려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유감을 표한 뒤, 미시마는 상의를 벗고 미리 지참했던 단도를 꺼내 할복 의식을 거행한다. 그가 복부를 찌르고 왼쪽으로 배를 가름과 동시에 뒤에 대기하던 ‘방패의 모임’ 대원이 카이샤꾸(介錯, 할복한 자를 돕기 위해 검으로 목을 베는 일)로 의식을 마무리했다. 함께한 네명의 대원 중 한명이 미시마를 따라 자결했고 나머지 세명은 곧바로 체포돼 경찰로 이송됐다. 총감실에는 동체에서 떨어진 두 사람의 머리가 덩그러니 남았고, 즉시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검증한 후 시체의 동체와 머리를 재봉합해 가족에게 보냄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다.
이것이 일본 사회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미시마 사건’의 간략한 전말이다.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 사건은 오해의 여지없이 극우파의 광기 어린 테러와 자해극이다. 당시 많은 이들은 미시마의 행동이 법치를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 허황된 쿠데타 기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근대적인 법치나 제도정치라는 인식틀을 정지한 다음, 미시마 고유의 예술관 속으로 재전위하면 이 사건으로부터는 전혀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89~90면)

여기서 이광수 개인의 친일을 단죄하는 입장은 검토를 요하지 않는다. 개인으로서의 이광수가 이 글의 관심이 아닐뿐더러, 친일이라는 전제 위에서 식민지 치하의 정치ㆍ문화ㆍ사회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민족이 민족주의 없이는 실존할 수 없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민족을 민족주의에 앞서 존재하는 불변의 실체로 간주하는 도착적 의식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민족은 오래전부터 가치와 제도를 공유하며 살아온 인간집단을 민족으로 사념케 하는 민족주의라는 실천을 통해 비로소 실존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의 친일은 한반도에서 펼쳐진 민족주의의 한 양상이지 반민족행위가 아니다. 그의 친일이 한반도에서 민족이 실존하기 위한 사념을 나름의 방법으로 전개했기 때문이다. (128~29면)

두 사람에게 ‘아시아’는 근대 유럽의 ‘정치적 원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장이었다. 마루야마는 그것을 끝나지 않는 ‘근대’의 완성, 즉 무한한 결단의 반복인 ‘결단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이라 정의했고, 타께우찌는 유럽적 근대세계에 대한 근원적 관계설정을 ‘절망’과 ‘저항’으로 극복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고 정의했다. 이들의 이러한 언설은 근현대 일본 사상사 속에서 어떤 때에는 노예적 욕망의 표상으로서(아시아주의-대동아공영권), 또 어떤 때에는 노예적 자기상실의 변명으로서(순수일본-문화국가) 발화된 ‘아시아’를 ‘정치적 원리’의 근원으로 재탈환하려는 시도였다. (234면)

이렇게 그는 1945년 이후 아시아에서 벌어진 혁명과 전쟁이라는 국제적 사건을 전후 일본 국민의 주권의식과 연결시킴으로써 앞에 길이 놓여 있지 않은 동양의 저항을 위한 길을 개척하려 했다. 그는 태평양의 해적선을 노예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종국에는 선상 탈취 끝에 해적선이 될 수밖에 없는 노예선의 선상 반란이 아니라, 노예선 자체의 항해를 멈추고 항로 없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길을 모색하는 난파선의 고통을 일본 ‘국민의 반복적 재형성’을 위한 이미지로 제시한

광복 70주년인 올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지 7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1868년 1월 3일, 일본 메이지(明治)정부는 천황을 국가 원수로 내세우는 제국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80여년간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했다. 풍부한 물자와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을 식민지배하며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일본’의 탄생이다.
오랜 식민지배와 연이은 대규모 전쟁. 제국일본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러나 제국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외치며, 미국이라는 ‘외세’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제국일본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제국의 식민지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았다. 제국일본이 몰락한 이후 미국·소련이라는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주권국가가 하나둘 건설됐다. 이른바 ‘포스트 제국’ 상황이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시작되고 반세기가 지나 사회주의 소련이 몰락했고, 최근에는 서구·일본 등 제국의 침탈에 시달렸던 중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스트 제국에 새로운 전기가 도래한 것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물음이 있다. “과연 제국일본은 청산되었는가”다. 제국일본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는 신문지상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과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위안부 문제, 제국일본을 미화한다는 의심을 받는 친일 교과서 등이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경험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지금의 논란 속에서도 ‘제국일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억을 파묻기만 하는 콘크리트 공사를 멈춰라!”
『제국일본의 사상』은 제국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콘크리트 공사’에 비유한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도래하자마자 동아시아 각국들이 과거 제국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는 일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는 식민지배를 한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전후 일본은 ‘파시즘’ ‘침략전쟁’ ‘식민지배’를 지금의 일본과 분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국을 담론장에서 지워나갔다. 뼈아픈 식민경험을 한 한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 민족’ 등의 구호를 통해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듯 제국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미소냉전과 한국전쟁, 뒤이은 극심한 좌우분열 때문에 제국일본을 성찰할 여유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엄연히 존재했던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려는 노력 없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콘크리트를 바르듯이 제국의 기억을 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일본은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가만히 잠들지 못했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자”며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헌 움직임에 대해 과거 식민지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은 요동쳤고, 콘크리트에 균열을 냈다. 악화 일로에 있는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가 이를 잘 나타낸다. 이제 과거를 콘크리트로 덮는 일을 멈추고, 제국일본이라는 지층 탐사에 나서자는 게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토오꾜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김항(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은 이미 2010년 일본에서 『帝國日本の?』(제국일본의 문턱, 岩波書店)을 저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일본 내부에서 천황제의 의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등 근대 일본이 은폐하고 있는 핵심 요소들을 파헤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더욱 폭넓은 관점에서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의 지층이 콘크리트에 균열을 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세가지를 찾아냈다. ‘주권’ ‘식민지’ 그리고 ‘아시아와 한반도’다.

주권·식민지·아시아를 넘어 ‘동아시아’를 상상하기
이 책의 제1부 제국의 히스테리와 주권의 미스터리는 제국일본의 주권 문제를 다룬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전제군주 천황이 있는 상황에서 서구의 주권개념을 수입했다. 국민을 배제하고 천황에게만 주권을 귀속하기 위해 일본 사상계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제국 몰락 후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또 한번 진통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소설가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 1925~70)의 할복자살 사건은 눈길을 끈다. 미시마는 전후의 ‘민주주의’와 ‘전쟁 포기’가 일본인의 영혼을 부패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명존중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자유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천황 폐하께 자위대를 돌려드리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통해 저자는 천황과 주권 때문에 생긴 강박과 불안이 근원적으로 죽음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한다.
제2부 제국의 문턱과 식민지의 인간은 소설가 이광수와 염상섭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저자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1921)을 독해하며 식민지의 인간은 ‘국민’이 아니라 ‘난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염상섭의 『만세전』(1924)에서는 제국의 지배가 자본주의적 침탈과 겹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을 새롭게 들여다본다.
제국시기 조선인들은 한반도에서 쫓겨나 만주로 사할린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배의 이면에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 있었기 때문인데, 한반도에는 살아갈 땅이 없는 조선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외국으로 팔아 스스로 난민이 되어간 것이다. 이들이 다시 한반도에 돌아올 수 있는 건 죽어서 무덤에 묻힐 때 뿐이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의 민족이 인간으로서 의미를 획득하는 곳은 무덤뿐”이라는 함의를 읽어낸다.
제3부 제국의 청산과 아시아라는 장소, 그리고 한반도는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제국일본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해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해적을 ‘전인류의 적’, 즉 국제범죄자로 해석한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를 차용해 제국일본을 거대한 해적선에 비유한다. 붙잡힌 해적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쇼오와(昭和)천황 히로히또의 목이 잘리는 일은 없었다. 해적선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회주의 소련을 방어하는 ‘극동의 방패’를 자처하며 국제무대에 복귀한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해적선은 이제 유령선이 되어 동아시아를 떠돌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항해를 멈추고 항로 없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본 사상가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 1910~70)를 환기한다. 길을 잃는 것이 도리어 길을 찾는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제국일본을 넘어, 평화의 공간 동아시아로
제국일본이라는 과거가 동아시아라는 지평 위에서 탐구될 때, 한일·한중·중일 등 국가 간의 ‘화해’ 따위가 아닌 인간 실존을 위한 ‘공존’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이 책이 다루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96), 타께우찌 요시미, 미시마 유끼오, 이광수, 염상섭, 야스이 카오루(安井郁, 1907~80)의 사상은 고매한 지성의 산물이 아니다. 제국의 멍에를 짊어진 지식인으로서 생존을 모색하는 절체절명의 몸부림이다.
일본 내부에서 일본의 노예성을 비판하고(타께우찌 요시미), 주권의 문제를 안고 자신의 목숨을 끊고(미시마 유끼오), 민족을 개조하기 위해 반민족의 낙인을 쓰고(이광수), 자신의 진보를 지키기 위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야스이 카오루) 등 그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실존과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지금 우리가 탐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거인 ‘제국일본’과 마주하게 된다. 제국의 기억과 단절된 채 포스트 제국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여태껏 상상하지 못했던 평화의 공간 ‘동아시아’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항

저자 김항金杭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및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오꾜오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 공저로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 역서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근대초극론』 『예외상태』 『정치신학』 『세계를 아는 힘』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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