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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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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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 나쯔메 소오세끼와 그의 첫 소설 『이 몸은 고양이야』
작가연보
발간사
“이 몸은 고양이야. 이름은 뭐, 아직 없고.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통 모르겠어. 어쨌든 어두컴컴하고 질척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던 것만은 기억이 나. 이 몸은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이란 걸 봤지.”(7면)
“인간의 심리만큼 이해 못할 것도 없어. 지금 주인의 심경이 화를 내는 건지 들떠 있는 건지, 혹은 철학자의 유서에서 한줄기 위안을 찾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 세상을 냉소하는 건지 세상 속에 섞이고 싶은 건지, 하찮은 일에 짜증을 부리는 건지 만사에 초연한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니까. 고양이는 그런 점은 단순하거든.”(35면)
“이 몸은 점잖게 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인간이라는 건 시간을 죽이느라 억지로 입 운동을 해가며 우습지도 않은데 웃기나 하고 재미 하나 없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구나 싶더라고.”(82면)
“요컨대 주인이나 칸게쯔나 메이떼이나 모두 태평일민, 자기들은 수세미처럼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초연하게 산다는 듯이 시치미 떼고들 있지만 기실 그들도 속된 구석도 있고 욕심도 있지. 경쟁심, 남을 이기려는 마음은 그들이 평소 하는 말 속에서도 불쑥불쑥 드러나고, 여차하면 그들이 항상 핏대 올려 비판하는 속물들과 한통속이라는 건 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안쓰럽기 짝이 없어.”(83면)
“그 이유를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냐. 그냥 서양인이 입으니까 입는다는 것뿐이야. 서양인은 강하니까 억지스럽든 바보 같든 흉내 내야 직성이 풀리는 거지. 긴 것에는 감겨라, 강한 것에는 굽혀라, 무거운 것에는 눌려라,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건 좀 한심하잖아? 한심해도 할 수 없다면 그냥 넘어갈 테니 일본인을 너무 잘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줘. 학문이라고 해봤자 마찬가지지만 이건 의복과는 관계없으니 이하 생략.”(271면)
“천지산천도 일월성신도 모두 자기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 자기를 제쳐놓고 달리 연구할 만한 것이 세상천지 어디 있겠어? 만약 인간이 자기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면 뛰쳐나가는 순간 자기는 없어져버리잖아. 더구나 자기 연구는 자기 말고는 아무도 해줄 자가 없지. 아무리 해주고 싶어도, 해줬으면 싶어도 불가능한 이야기.”(343면)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거의가 동족인 듯하군. 정말 마음 든든해. 어쩌면 이 사회가 모조리 미치광이들의 집합체일지도 몰라. 미치광이들이 모여서 격렬하게 싸우면서 서로 멱살을 잡고 욕지거리를 하고 서로 빼앗는, 그 전체가 하나의 세포처럼 무너졌다가 융성했다가, 융성했다가 무너지면서 살아가는 걸 사회라고 하는지도 모르지.”(375면)
20세기 일본의 대문호 나쯔메 소오세끼
고양이의 눈에 비친 우습고 서글픈 인간 군상
일본 근대문학의 상징 나쯔메 소오세끼의 대표작 『이 몸은 고양이야』가 경쾌한 풍자의 맛을 살린 새 번역으로 창비세계문학에서 선보인다. ‘일본의 대문호’ 소오세끼를 문학의 길로 이끈 작품으로, 잡지에 단발성으로 실은 글이 뜻밖의 인기를 끌어 장편연재로 바뀌었을 만큼 기지 넘치는 해학과 능청맞은 장광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이름 없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제멋대로 우스꽝스러운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한바탕 웃음 뒤에 배어나오는 당대인의 고민과 슬픔, 인간의 근본적 비애를 담고 있다.
이 몸은 고금에 전례가 없는 고양이
대단히 소중한 몸이시지
“이 몸이 말하는 모든 것이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는 소리라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몸은 결코 그렇게 경솔한 고양이가 아냐. (…) 결코 드러눕거나 발 뻗고 앉아 한꺼번에 다섯줄씩 읽어치우는 식의 무례를 범해선 안 돼.”(320면)
20세기가 막 시작된 일본, 중학교 영어 교사 쿠샤미 선생의 허름한 집에 눌러살게 된 고양이인 ‘이 몸’은 희한한 인간들의 행태와 크고 작은 소동들을 관찰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열 받기의 천재, 성질 나쁜 굴 딱지, 그래 봤자 방 안 퉁소에 불과한 주인 쿠샤미 선생과, 황당무계한 거짓말로 노상 사람들을 골려 먹는 미학자 메이떼이, ‘목매달기의 역학’ ‘개구리 안구의 전동’ 따위를 운운하는 젊은 이학사 칸게쯔 등은 시시때때로 드나들며 전쟁이니 개화니 하는 어지러운 세태에 초연한 듯 천연덕스럽게 만담 같은 대화들을 주고받는다. 이 집을 중심으로 의리 망각, 인정 소각, 염치 불각의 삼각술을 구사하는 건넛집 사업가 카네다 집안과 그 추종자들, 활기를 주체 못 하는 이웃한 중학교 낙운관의 말썽꾼들 등이 등장하여 벌어지는 그날그날의 사건사고를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한바탕 익살스러운 재담을 들려준다.
“이 몸은 점잖게 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인간이라는 건 시간을 죽이느라 억지로 입 운동을 해가며 우습지도 않은데 웃기나 하고 재미 하나 없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재주가 없구나 싶더라고.”(82면)
“의지박약인 점이 훌륭하고, 무능한 점이 훌륭하고, 설치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고 고양이가 짐짓 놀려대는 주인 쿠샤미 선생은 직업도 가족관계도 외모도 영락없는 나쯔메 소오세끼 자신이다. 쿠샤미 선생 말고도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실존 인물들이며, 오가는 대화나 일화도 실제에서 거의 그대로 따온 것이다. 물론 고양이 역시 이 소설을 발표하기 한해 전 소오세끼가 들여 키운 고양이를 모델 삼았는데, 나중에 소오세끼는 죽은 고양이를 추억하는 수필을 남기며 애틋한 정을 표하기도 했다.
소오세끼가 이 작품의 첫 장을 발표한 1905년은 일본이 한창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힘쓰는 한편 러일전쟁의 승리로 열강에 진입했다는 도취감에 휩싸여 있던 때였다. 이 들뜬 분위기 속에서 그는 서구를 무조건 추종하는 세태와 근대 자본주의로 재편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봤고, 개인사에서도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그에게 유일한 낙은 자신의 유별난 지인들과 떠들썩하게 부질없는 한담을 나누는 것이었고, 그같은 일상의 면면을 유머러스하게 적어내려간 것이 이 작품이었다. 그래서 소오세끼는 당대 일본 사회와 일본인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냉철한 자기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한편으로, 자기 주변 ‘태평일민’들의 실없는 장난이나 아내와 딸들의 소소하고 정겨운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신랄한 풍자와 웃음에 담긴
근대 일본의 고통스러운 자기인식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서글픈 소리가 나지.”(506면)
나쯔메 소오세끼는 12년 남짓한 길지 않은 창작활동 기간 11편의 장편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 및 다수의 단편소설, 시를 남기며, 일본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 영어 교사로 지내던 삼십대 중반 문부성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2년 남짓 영국 런던에서 지냈는데,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서구 사회에 열등감과 실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일본인으로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독자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분투하는 고독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이는 이후 더 정련될 문제의식을 다듬고 파고드는 계기가 되었지만 평생 지속된 신경쇠약을 안겨주기도 했다.
귀국하고 2년 뒤 발표한 『이 몸은 고양이야』는 날렵하고 경쾌한 유머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그 고투의 흔적은 골계문학의 백미인 이 작품에도 곳곳에 배어 있다. 소오세끼는 그간 쌓인 울적함과 고뇌를 쏟아내듯 근대화의 기만과 모순,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풀어내며 ‘탈뻬팀逃脫亞入歐)’를 외치던 당시 사회에 차가운 우려를 전했다.
이 작품은 뜻하지 않게 그를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이끌었던 첫 소설로, 일면 가벼운 신변잡기와 아직 덜 정제된 필치를 보여주는 듯이 보이지만 이후 노정된 작품세계의 단초를 두루 담고 있다. 능청맞은 언변 속에 비치는 슬픔과 처절한 자기인식은 소오세끼 자신의 초상이기도 했지만, ‘위대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던 일본인의 불안과 강박, 자의식을 지적하고 서양 문명의 위세 앞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당대인의 내면을 그려 보인 것이기도 했다. 나쯔메 소오세끼가 ‘국민 작가’로 불리며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것은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이렇듯 근대 일본인의 정신을 규명하고 다잡기 위해 기울인 노력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의 입을 빌려 재기 넘치게 술술 펼쳐내는 이 이야기는 정신없는 재미를 주지만 그 한편으로 시대에 대한 예민한 문제의식, 인간의 비애와 서글픔을 담아 ‘20세기의 대문호’ 소오세끼의 문학적 여정을 가늠하게 해준다
작가정보
저자 나쯔메 소오세끼(夏目漱石, 1867~1916) 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1867년 토오꾜오에서 5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킨노스께(金之助). 토오꾜오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지내다가 1900년 문부성 유학생으로 선정되어 2년간 영국 런던에서 보낸다. 궁핍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유학 시절, 서양에 대한 열등감과 실망을 동시에 절감한 소오세끼는 ‘문명개화’를 외치던 당시 일본 사회의 문제들과 분투하는 계기를 맞는다. 1903년 귀국하여 토오꾜오 제국대학 등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가 1905년 문예지 『호또또기스』에 단발성으로 게재한 『이 몸은 고양이야』가 호평받으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근대 자본주의와 당대 지식인들을 신랄하고 경쾌한 장광설로 풍자한 이 작품은 장편연재로 바뀌며 큰 인기를 끌어 전업 작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1907년 교직을 떠나 『아사히 신문』에 입사하고 ‘아사히 문예란’을 신설하는 한편, 『산시로오』 『그러고 나서』 『문』 등을 활발히 발표한다. 1910년 지병인 위궤양으로 중태에 빠졌다가 회복한 뒤 문학적으로도 전기를 맞으며 후기 3부작 『행인』 『히간 지나까지』 『마음』 등을 발표하지만, 미완작 『명암』 연재를 시작한 1916년 지병이 다시 악화되어 사망했다. 12년 남짓한 창작 기간 동안 11편의 장편소설과 2편의 중편소설 및 다수의 단편들을 남겼으며, 일본인의 정신적 좌표를 정초하고 후대 작가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국민 작가’로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역자 서은혜는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토오꾜오 도립대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수학했다. 전주대 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성소녀』 『게 가공선』 『라쇼몬』 『개인적인 체험』, 오오에 켄자부로오 3부작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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