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트빌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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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서언 ㆍ 9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ㆍ 15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 ㆍ 103
2부
서언 ㆍ 157
옷이 사람을 만든다 ㆍ 161
자기 행운의 개척자 ㆍ 216
작품해설/사회사적 흐름에 대한 문학적 진단 ㆍ 252
작가연보 ㆍ 266
발간사 ㆍ 271
이후 그들의 삶은 작은 널빤지 한개에 몸을 의지한 채 어두운 강물을 떠내려가다가 자기 불행의 근원을 붙잡았다고 생각되자 서로 싸우고 공중에 대고 삿대질을 하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움켜쥐고 파멸해버리는 저주받은 두 사람이 꾸는 악몽과도 같았다.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슈바벤 사람 디트리히만이 정의로운 사람으로서 그 작은 도시의 상류층에 남게 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쁨을 많이 누리진 못했는데, 취스가 그에게 조금도 공적을 돌리지 않고 그를 지배하며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모든 선행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했다.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
이제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 선 젊은이처럼 실제의 십자로 위에 서 있게 되었다. 도시를 화환처럼 에워싸고 있는 보리수나무들 사이로 은은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나무의 정수리들 위로 탑들의 황금빛 둥근 장식들이 유혹하듯 반짝거렸다. 그곳에서는 행복과 향락, 채무와 신비한 운명이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판에서는 탁 트인 원경이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는 일과 궁핍, 빈곤과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량한 양심과 평온한 방랑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것을 느끼는 가운데 단호하게 들판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고 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에서
조용한 밤이 오면 이따금 자신의 운명을 되돌아보았다. 산딸기 케이크를 옆에 둔 리툼라이 부인을 발견한 바로 그날이 돌아오면 자기 행운의 개척자는 몇 년 동안 자신의 행운을 확고히 하려던 그 부적당한 지원을 후회하면서 머리로 화로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그가 망치질해서 만든 못들이 점점 더 잘 팔리자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그런 일시적인 습관도 점점 사라져갔다.
―「자기 행운의 개척자」
‘스위스의 괴테’ 켈러의 대표 노벨레 연작선집
‘스위스의 괴테, 단편의 셰익스피어’라 불린 독일어권 시적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노벨레 연작선집 『젤트빌라 사람들』(창비세계문학 29)이 출간됐다. ‘노벨레’란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을 뜻한다. 켈러는 1840년대 중반에 이 노벨레 연작집 구상을 시작했고, 베를린에 거주하던 1851년 집필에 착수하여 1856년에 1부를, 1874년에 2부를 발표했다. 30여년에 걸친 작가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젤트빌라 사람들』 1부와 2부는 각각 작가의 서언과 5편의 노벨레로 구성되어 있다. 본 선집에서는 1ㆍ2부 서언과 함께, 연작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인한 수공업의 위기 속에서 배금주의와 물욕이 팽배하던 당시 세태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 실제와 가상, 본질과 가면, 사회적 요소와 인간 내적 요소 간의 전형적 대조를 보여주는 「옷이 사람을 만든다」, 당시 세태에 대한 풍자적 비판 「자기 행운의 개척자」 등 4편의 노벨레를 실었다.
시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재창조하는 독일 ‘시적 사실주의’ 문학의 결정체
‘시적 사실주의’란 18세기 자연철학자 셸링이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한 것으로, 19세기 중엽 루드비히에 의해 문학적으로 전용되어, 형식사적ㆍ문체사적 조망하에 이루어진 개념이다. 19세기 독일에서는 고전적ㆍ낭만적 전통에서 이어받은 문학정신과 뜻을 달리하여 사실성에 대한 요구가 팽배해 있었다. 이때 새로이 현실에 눈을 돌린 비더마이어 문학과 청년 독일파가 대두했으나, 이들은 현실을 소극적으로 외면하거나 지나치게 주관성을 드러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이전의 문학경향을 비판하고, 문학과 현실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시적 사실주의’다. 이러한 중개적 태도에 바탕을 둔 ‘시적 사실주의’는 창조적 예술을 통하여 동시대의 일상적 현실을 반영하고자 했다. 즉 현실을 묘사하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적 주관에 따라 재창조된 현실을 묘사하고자 했다.
『젤트빌라 사람들』은 스위스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가 목적이나 그것은 ‘시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루어졌다. 1850년 이후 산업화가 집중적으로 전개되면서 스위스는 1865년을 기점으로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수공업 사회에서 단기간 만에 현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했다. 1856년에 발표한 1부와 1874년에 발표한 2부 서언 사이에는 작가가 경험한 20년에 걸친 사회 변화가 들어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스위스의 사회사적 흐름에 대해 진단한다. 이 연작집에서는 여러 개인들의 운명을 통해서 사회 일반의 형세가 묘사되는데, 이 점에서 연작 형식이 중요한 의미를 띤다.
켈러의 미학적 개념, ‘문화운동의 변증법’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하는 두 남녀가 양쪽 집안의 불화 때문에 동반 자살하는 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에 근거한 것인데, 작가는 옛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근거가 된 사건이 자기 시대에서도 일어난 사실을 목도하고 그것이 걸치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동시대적 환경을 배경으로 제시하려 한다. 바로 여기서 켈러의 미적 개념인 ‘문화운동의 변증법’이 대두한다. 이는 옛이야기, 하지만 순수하게 인간적인 것이어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당 시대 및 역사에 따른 시각으로 조명하려는 변증법적 원리로서, 인간행동의 심리적 원인과 사회적 원인을 동시에 파악하려는 사실주의자 켈러의 문학관을 대변하는 핵심개념이다. 이 이야기는 농경사회이자 수공업사회이던 스위스가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물욕과 명예욕으로 인한 두 집안의 몰락과 그로 인한 젊은 연인의 어쩔 수 없는 비극적 최후를 묘사하고 있다.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에서도 수공업사회에서 현대적인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이야기의 배경을 이룬다.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인한 수공업의 위기 속에서 배금주의와 물욕이 팽배하던 당시 세태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빗 제조공 도제인 욥스트와 프리돌린, 디트리히 세사람은 누구나 다 장인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자신이 장인이 되어 빗 공방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 오로지 독립적이고 경제적인 주체로 상승하는 것만 생각하는 속물들인 그들 세사람은 서로 구분되지 않을 만큼 똑같고, 동일한 욕망과 목표에 사로잡혀 움직인다.
유머러스한 세태 풍자 비판
켈러는 『젤트빌라 사람들』에서 유머러스하지만 세태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인한 스위스의 사회사적 변화를 문학적으로 구체화하고자 했다. 하여 이 작품집은 독자가 유머러스한 우화를 읽듯이 편하게 읽어내려가다 각 작품 말미 서술자의 개입을 통해 비판적 성찰에 이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주인공 잘리와 브렌헨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신문기사로 끝이 나는데,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객관적이다 못해 싸늘하고 몰인정하며, 이를 읽는 독자는 주인공들에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한 당시 시민사회의 편협성과 획일성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미쳐서 자살하는 인물, 불행한 수공업자로 살아가는 인물, 목표를 이루고 상류층이 되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한 인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오로지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진 못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되새기게 하는 결말이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난하지만 선량했던 슈트라핀스키가 젊은 날의 이상과 순수함은 까맣게 잊은 채 눈앞의 실리만 추구하는 소시민적 속물성에 물들게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기 행운의 개척자」에서도 행운을 개척한다는 명목하에 사실은 요행과 술수만 꾀하던 주인공 존 캐비스가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대장장이가 되어 “단순하고 지속적인 작업이 주는 행복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지만 그가 망치질해서 만든 못들이 점점 더 잘 팔리자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그런 일시적인 습관도 점점 사라져갔다”는 말로 결말을 맺는다. 이 또한 서술자의 유머러스하지만 씁쓸한 세태 풍자적 비판이라 하겠다.
추천의 말
켈러는 스위스의 괴테, 단편소설 장르의 셰익스피어다. ―하이제
시적 사실주의의 모범 ―롤프 젤프만
켈러는 『젤트빌라 사람들』이라는 이 노벨레 모음집에서 일반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하지만 세태에 대한 풍자적 비판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19세기 후반 산업화로 인한 스위스의 사회사적 변화를 문학적으로 구체화하고자 했는데, 사실주의자 켈러의 이런 작가적 노력이 이 노벨레 연작집의 본질이라 하겠다. ―권선형(역자)
작가의 말
영원불변한 것은 오직 순수하게 인간적인 것뿐이며 이것을 관철하는 것이 문학의 과제이다.
―고트프리트 켈
작가정보
저자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 1819~90)는 독일어권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사람으로 ‘스위스의 괴테’라고 불렸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독일 뮌헨으로 가서 풍경화가가 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귀향하여, 자연시, 정치 소네트, 연애시 등을 기고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1848년 취리히 주정부 장학금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여기서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무신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5년간 베를린에서 살면서 『신시집』(1851),『초록의 하인리히』 초판(1855)을 출간하고, 『젤트빌라 사람들』의 작업에도 착수한다. 1855년 취리히로 돌아온 켈러는 1861년 마흔두살의 나이에 취리히 주정부의 총서기로 선출되어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이 기간 중에도 『일곱개의 전설』(1872)과 『젤트빌라 사람들』(1874) 같은 노벨레 연작집을 발표하는데, 예리하지만 풍부한 인간애가 흐르는 이 작품들은 독일 노벨레 문학의 백미로 손꼽힌다. 작가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취리히 노벨레』(1877)와 『초록의 하인리히』 개정판(1879), 『경구』(1882), 『마르틴 잘란더』(1886)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1890년 71세의 나이로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역자 권선형은 연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빌헬름 라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독문학번역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연세대, 숭실대, 홍익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정체성』으로 제7회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피스터의 방앗간』 『포겔장의 서류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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