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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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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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시안은 학교가 끝나고 매일 병원에 간다. 식물인간 상태로 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서다. 엄마는 몇 년 전 온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 전문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과 시안, 아빠가 돌아가며 엄마를 돌보지만 엄마는 깨어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은 특별하다고, 서로를 지켜 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엄마의 손발을 주무르고 엄마의 소변 통을 비울 때마다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열아홉 살 해원(지원)은 평범하게 남자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매년 프록시모 백신 접종을 할 때면 식은땀을 흘리며 손이 떨린다. 해원의 가족이 슈퍼 전파자가 되어 지역 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 후로 해원은 ‘김지원’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개명하여 동네를 떠나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피해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남들처럼 남자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시안은 우연히 해원의 오빠 해일을 마주치고, 잠적 후 일상을 회복하며 살고 있는 해원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말에 시안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한때 쌍둥이 자매처럼 지냈던 해원을 찾아간다. 엄마가 회복되었다고 속인 채 해원에게 접근해 예전처럼 가까워지며 과거의 좋았던 추억과 현재의 고통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시안. 돌이킬 수 없이 갈라져 버린 두 가족의 상황을 견디다 못한 시안은 해원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리고 오래도록 고민하고 시달렸던 어떤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을 하는데…….
작가의 말 266
시원쌉쌀한 여름의 맛, 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상·오늘의작가상 『유원』을 잇는 빛나는 성장소설
“준비할 시간이 있다면,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 소설가 정이현, 문학평론가 김지은 추천!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것이 백온유 소설만의 조용한 힘이다. 정이현(소설가)
지금까지 이런 경로의 형이상학을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김지은(문학평론가)
“담대한 소설적 기량” “이 시대의 가장 긴요한 감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작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제44회 오늘의작가상을 거머쥔, 한국문학의 새로운 얼굴 백온유. 작가 백온유의 두 번째 장편소설 『페퍼민트』가 출간되었다. 『유원』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생존자 유원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와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돌봄과 죽음, 용서와 화해를 가로지르며 한층 확장된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열아홉 살 시안과 해원이 6년 만에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난 두 주인공의 관계와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감각이 돋보이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밝은 자리로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지가 빛난다. 전작 『유원』과 함께 나란히 기억될 눈부신 성장소설이다.
시원쌉쌀한 풀잎 향이 퍼져 나갔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로 끼쳐 왔다
시안은 매일 페퍼민트 차를 우린다. 몇 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를 위해서다. 6년 전 시안의 가족이 전염병 ‘프록시모’에 감염된 뒤, 엄마는 회복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나아질 가망이 보이지 않는 엄마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간병 생활의 괴로움, 문득 지겹다는 생각을 하고 만 뒤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시안을 괴롭히는 감정은 다양하다.
어린 시절 가족과 다름없이 지내던 사이였지만 병을 옮기고 잠적하여 사라진 해원을 다시 만났을 때, 시안의 감정은 어떠할까? 스스로도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소용돌이를 품은 채 엄마도 건강히 회복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해원을 만나면서, 시안은 ‘열두 살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애틋해지다가도 해원의 입시나 남자 친구 고민을 듣고 있을 때면 같아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상황을 자각하고 만다.
“내가 깜빡 존 사이에 엄마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쫓는 마음을 넌 모르겠지. 해원의 빡빡한 일정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후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낙오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보통 사람들의 진도를 죽을 때까지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 미래에 실망하게 되었다.” 본문 71면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 듯 보이는 해원에게도 깊은 불안이 있다. 농담으로 던진 ‘병을 옮긴다’는 말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지원’이라는 흔한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사람들이 알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아는 시안이 나타났을 때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는 듯 보였던 해원의 세계가 다시 요동친다. 작가는 이처럼 위태로운 관계에 놓인 시안과 해원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원망과 거짓, 죄책감과 불안이 마주치며 만들어 내는 팽팽한 긴장을 포착하는 묘사가 돋보이며,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한 두 사람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고르게 몰입하여 곁에 머물게 만든다.
내일을 살아낼 우리를 위해
밝은 자리로 이끄는 용서와 화해
시안의 페퍼민트 차는 엄마를 위한 돌봄의 차이기도 하지만 지친 시안에게 “여유와 평화”(190면)를 주는 차이기도 하다. “20대의 이시안과 30대의 이시안, 40대의 이시안이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소변 통을 비우는 모습을 내가 상상하고”(211면) 마는 숨 막히는 현실이지만, 작가는 엄마의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그리고 돌봄이란 모두가 지나야 할 시기임을 받아들이고 미리 상상해 보기를 주문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한평생 혼자 살지 않는 이상, 결국 누구 한 명은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야.
작가정보
작가의 말
생애 주기 속에서 길든 짧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과하게 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병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전력으로 회피한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그날이 도래하면 신발을 뺏긴 채로 한겨울 거리에 내몰린 아이처럼 아연해져 떨게 될 것이다.
한발 앞서 미리 상상할 수 없을까. 상상으로 면역력을 기를 수는 없을까. 조금 더 의연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소설을 쓰면서도 피하고 싶은 장면들이 많았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내 상상 속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다치거나 의식을 잃었다. 몇몇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통스러운 마음의 끝에는 이기적이게도 ‘그러면 나는 어떡하지,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공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감염병을 겪으며 사람들은 우리 안에 도사리는 무수한 두려움을 공유했고,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은 회복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 마음을 한 번 더 믿어 보고 싶다. 우리가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불안을 나눈다면 소중한 사람을 보호하면서 일상을 지속하는 삶과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계를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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