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은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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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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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박서련
당신의 세계를 구원해줄 사랑스러운 마법 소설의 등장
이 소설은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들이 등장하는 세계에 신용카드, 리볼빙, 전염병, 기후 재난 등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을 잘 녹여내며 독특한 재미를 불러온다. 각자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 속에 마법 세계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환상과 익숙함을 동시에 체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박서련은 ‘작가 노트’에서 “진짜로 완전히 평범한 지구인으로 태어났고 삼십대가 되기까지” “전생에 마법세계의 공주였다는 증거도 전혀 발견하지 못”한 자신이야말로 그리고 “마법소녀가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누구나 “가끔은 마법이나 기적을 간절히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마법 같은 기적을 간절히 바란다고 상상하는 일에서 이 소설이 출발한 셈이다.
“세계에는 종말론만 있고” 그에 맞서 싸울 존재는 분명히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타인에 의해 존엄을 잃었다는 소식,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그에 따라 날씨는 더욱 종잡을 수 없겠다는 소식, 산불이 나고 물이 넘쳐 누군가는 집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소식.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 시대, 박서련의 소설은 바로 그런 세계이기에 우리 모두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고 말한다. “마법소녀들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끝없이 사유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개인적 편의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사용”하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존재를 너무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멀거나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박서련의 마법 세계에 초대된 당신은 이미 나와 타자 그리고 세계의 관계를 고민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크고 작은 힘들을 ‘우리’를 위해 사용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사상 최강의 마법소녀
지속 가능한 마법소녀
마법소녀가 싸우는 법
마법소녀의 소중한 것
시간의 마법소녀 변신
마법소녀가 보낸 편지
예언의 마법소녀와 나
마법소녀도 곤란한 것
장미꽃을 든 마법소녀
마법소녀 대 마법소녀
사상 최악의 마법소녀
마법소녀를 이기는 법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작가 노트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그저 누군가 지금 내게 말을 걸어준 게 기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울면서 물었다.
“내 운명에 대해 알아요?”
“그럼요.”
정말 믿음직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로아는 다가와서 아주 소중한 것을 만질 때처럼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 쥐고 말했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19면)
“잠깐만요, 종말이라니…… 대마왕이나 외계인 같은 게 나타났나요? 아니면 곧 큰 전쟁이 일어나나요? 그걸 마법소녀들만 알고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모두가 알고 있어요. 진짜 위기는, 재앙은, 기후 변화의 모습으로 온다는 것.”
의장님의 너그럽던 눈빛이 갑자기 무섭게 변했다.
“지구는 대마왕 때문에, 외계인 때문에 끝나지 않아요. 적어도 당장은. 하지만 기후 위기는 실제로 지구에 닥친 최대의 재앙입니다.”(68면)
“이건 좀……”
의장님이 나를 배려하느라 적절한 말을 고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의장님은 우아한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독특하군요.”
딱히 나쁘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좋은 말이었지만, 아기나 강아지를 보고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을 때 하는 ‘참 튼튼해 보이네요’ ‘똑똑해 보이네요’ 같은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너무 부끄러웠다. 마구가 마법소녀의 마음과 가장 닮은 형태로 출력되는 게 사실이라면 내 마음은 신용카드 모양. 머리 한쪽, 마음 한 구석이 항상 신용카드 리볼빙 빚에 대한 생각과 불안에 저당 잡힌 사람인 걸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리게 된 거였다.(76~77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소녀들은 무조건 착할 수 없고 착할 필요도 없다. 이건 만화가 아니니까. 사랑과 희망, 선의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나 어떤 마법세계에서 온 존재들과 맞서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쳐가면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마법의 힘을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것이 만화 같지는 않아서, 이 세계에서 마법소녀와 누군가가 싸우면 누군가는 다친다. 누군가는 피를 흘린다. 그 누군가란 필연적으로 마법소녀와 같은 인간. 그렇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다. 시간의 마법소녀가 각성한 사례가 그렇듯, 마법소녀로서의 최초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투니까.(119면)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그걸 물어봤었죠, 소녀가 아니어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느냐고.”
아로아가 문득 말했다. 아, 응, 네. 생각에 잠겨 걷다가 급하게 대답했더니 아로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론이라기엔 너무 어설픈 얘기지만, 내 생각은 이래요. 뭐랄까, 세계의 의지가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하는 거예요.”
“균형?”
“마법소녀가 생겨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그 힘이 가장 필요했기 때문이니까. 거꾸로 말하면, 각성 직전의 마법소녀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
(…)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부여되기 때문에 소녀들에게만 마법의 힘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그게 내 생각이에요.”(119~120면)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나’는 신용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죽기로 한다. 이달에 갚을 수 없다면 다음 달에 갚으라는 ‘친절한’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한 대가는 혹독했다. 갚아야 할 빚은 점점 늘어났고, 전염병이 퍼져 일자리마저 잃게 된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 주어진 건 많지 않았지만 최대한 낭비 없이 노력해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떠밀려 온 것처럼”(8면) 한강 다리 위에 서게 된다. 한참이나 뛰어내리지 못하고 울고 있던 ‘나’는 문득, 택시 한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택시에서는 천사처럼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내리는데, 곧이어 그는 말한다. “당신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에요”(18면)라고. 자신을 ‘예언의 마법소녀’라고 소개한 하얀 옷의 사람은 믿음직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어 말한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19면)
예언의 마법소녀의 이름은 아로아인데, 아로아의 말에 따르면 ‘나’는 ‘시간의 마법소녀’가 될 사람이다. 마법소녀들이 세상을 지키는 시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법소녀들은 매일매일의 현실을 지켜낸다. 특정 단체에 소속되거나 개인에게 고용되어 보안 업무를 맡기도 하고, 대테러 작전에 투입되기도 하며, 지구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기후 위기를 저지하는 일에도 나선다. 기후 위기처럼 거대한 일에 지속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마법소녀들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전마협)을 만드는데, 이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멸망을 막기 위해서 시간의 마법소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예언의 마법소녀인 아로아의 능력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시간의 마법소녀야말로 자신의 운명이라고 느낀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방에서 어깨너머로 시계 수리를 배우던 ‘나’는 시계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품어왔다. 시계를 좋아하던 ‘나’가 시간의 마법소녀라니, 게다가 시간의 마법소녀는 사상 최강의 마법소녀가 될 거라고 한다.
지구멸망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라!
신용카드를 손에 쥔 미지의 마법소녀
지구멸망을 막는다는 막중한 책임을 얻었지만 ‘나’는 아직 마법소녀가 아니다.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각성의 계기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라는 시급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제작의 마법소녀인 전마협 의장은 ‘나’에게 각성을 촉진시킬 마구를 만들어주기로 한다. 소중하게 간직하던 사진과 시계를 제물로 삼아 간절한 마음을 모으던 ‘나’의 손안에서, 반짝이는 빛 사이로 점점 형태를 갖추던 마구는 다름 아닌 ‘신용카드’였다. 어째서 신용카드가 마구일까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며칠의 시간이 지나도 ‘나’의 각성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야말로 ‘시간의 마법소녀’라고 소개하는 이미래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등장과 함께 날씨의 변화도 급격해진다. 엄청난 비가 내리는 어두운 날들이 이어지던 중, 이미래의 온라인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다. 그는 시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인류멸망”을 이루겠다고 발표한다. 사람들은 환경과 서로를 파괴하므로 “지구에는 인류의 존재가 불필요하다”(135면)고. 기후 재난을 더욱 가속화해 끝내는 인류를 없애겠다는 이미래를 저지할 수 있는 마법소녀가 과연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는 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소설은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들이 등장하는 세계에 신용카드, 리볼빙, 전염병, 기후 재난 등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을 잘 녹여내며 독특한 재미를 불러온다. 각자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 속에 마법 세계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환상과 익숙함을 동시에 체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박서련은 ‘작가 노트’에서 “진짜로 완전히 평범한 지구인으로 태어났고 삼십대가 되기까지” “전생에 마법세계의 공주였다는 증거도 전혀 발견하지 못”한 자신이야말로 그리고 “마법소녀가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누구나 “가끔은 마법이나 기적을 간절히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마법 같은 기적을 간절히 바란다고 상상하는 일에서 이 소설이 출발한 셈이다. “세계에는 종말론만 있고” 그에 맞서 싸울 존재는 분명히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타인에 의해 존엄을 잃었다는 소식,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그에 따라 날씨는 더욱 종잡을 수 없겠다는 소식, 산불이 나고 물이 넘쳐 누군가는 집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소식. 하루에도 여러 차례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 시대, 박서련의 소설은 바로 그런 세계이기에 우리 모두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고 말한다. “마법소녀들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끝없이 사유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개인적 편의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사용”하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존재를 너무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멀거나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박서련의 마법 세계에 초대된 당신은 이미 나와 타자 그리고 세계의 관계를 고민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크고 작은 힘들을 ‘우리’를 위해 사용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우리는…… 마법소녀의 민족이다.
받아들여.”(작가 노트)
작가정보
작가의 말
마법소녀 장르를 ‘아직도’ 좋아하는 성인이라는 점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숨겨야 할 만큼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여긴다. 인정해야 할 약간의 부채 의식은 본래 어린이들의 것이었던 장르를 약탈해 온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 있는데,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는 넉넉한 명제가 어린이들에게도 기쁘게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실상 마법소녀 장르의 주인공은 대충 십대부터인데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면 더 어린 사람에게도 가능성이 열린다. 이론상 갓난아기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고 임신부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으며 별로 놀랄 것도 없이 남자도…… 이미 환웅 얘기를 하지 않았나?
자신을 마법소녀로 여기는 데에 불편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마법소녀가 될 수 있다. 그러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마법소녀-되기에는 유년기 문화적 자산으로서만이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유효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마법소녀들은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끝없이 사유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개인적 편의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제안이 ‘참여 가능한 환상’으로서 수용되기를 기대한다. 당신도 마법소녀가 될 수 있고 그 사실에 만족하기를. 당신은 종말론만 있고 맞서 싸울 이는 없는 이 암울한 세계를 밝힐 촛불이다.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한편 나는 이 작품의 원고료로 마법소녀 고전 완구를 몇점 샀다. 그렇게 해야만 완결 지을 수 있는 개인적인 서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있겠지. 그럼 이만.
2022봄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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