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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이주혜 소설
이주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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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27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8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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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1.33MB)
ISBN 978893640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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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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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나눈 두 여자
한국사회 가족 안에서 여성의 존재를 날카롭게 파헤치다
놀라운 흡인력과 생생한 묘사로 사로잡는 이주혜의 첫 소설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한 신인작가 이주혜의 첫 작품 『자두』가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로 출간되었다. 오늘날 독자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가부장제와 돌봄노동, 여성을 주제로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이 소설은, 탄탄한 문장과 생생한 묘사로 읽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염천’이라 불릴 만한 무더운 여름에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맡게 된 나와 남편 세진, 섬망을 앓게 되는 시아버지 안병일, 그리고 여성 간병인 황영옥의 이야기가 긴장감 높게 펼쳐진다. 붉고 둥근 피자두를 탐냈던 안병일의 일화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가부장제와 나-황영옥 사이에 생겨나는 말 없는 깊은 유대감이 부딪히고 어우러지며 더운 여름 배경의 소설에 날카로운 서늘함을 부여한다. 한편 사랑에 대한 믿음과 환상이 깨진 뒤에도 사랑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이 작품의 노력은, “판에 박힌 가부장제 비판에서 작품을 구원하는 소설적 성취”(해설 강경석)이자 가족과 여성의 존재에 대한 독자들의 고민을 풀어줄 새로운 구원이 될 것이다.
자두

해설 | 강경석
작가의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처절하게 오해받았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진술하는 일은 리치가 말한 ‘짧고 강렬한 움직임’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면)

타인이 불쑥 내비친 날것의 감정을 마주쳤을 때만큼 당혹스러운 순간이 또 있을까요? 그렇지만 왜 울었냐고 한번쯤은 물어볼걸 그랬습니다. 살다보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하면, 모든 말을 다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요. (71면)

“어르신, 죽으려거든 날 좋을 때 죽어요. 이런 염천에는 죽지 말아요. 이런 날 죽으면 자식들 고생합니다. 부디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죽어요. 그래야 자식들이 덜 서럽습니다. 알았지요? 꼭 좋은 날에 죽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염천에 죽어 자식 가슴에 한을 심지 말아요.” (77면)

아직 자두도 한알 못 땄는데. (…) 침이 고인다. 새콤하고 달큼한 자두. 한알만 먹어도 배가 부른 큼직한 자두. 겉도 붉고 속도 붉은 피자두. 한입 베어 물면 입가로 주르륵 붉은 물이 흐르는 기순네 자두. 숙이는 기순네 딸이지. 내가 숙이를 훔쳐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지. (82면)

우리 세진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수줍게 고백했었지. 그애다. 그애. 우리 세진이 뒤를 따라 겨우 수박 한통 들고 온 아이. 반짝이는 내 태양을 가로챈 아이. 내게서 세진이를 빼앗아간 아이. 저 도둑년. (84면)

어느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고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웃었습니다. 절대로 웃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웃고 나니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옥상에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106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

기록적인 더위의 여름날 시아버지 안병일의 병간호를 맡게 된 며느리인 ‘나’와 아들인 세진은 최선을 다하지만 일상을 지킬 수 없게 되자 간병인 황영옥을 고용한다. 능숙하면서도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황영옥 덕에 겨우 한숨 돌리게 되지만, 곧 시아버지 안병일의 섬망 증세가 시작되며 모두의 생활과 서로간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안병일의 욕설과 폭력은 주로 여성 간병인인 황영옥을 향하다가, 끝내는 며느리인 ‘나’에게 숨겨왔던 원망과 미움도 모두 쏟아낸다. 남편인 세진은 한발짝 떨어져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고, 병문안을 온 가족들이나 후에 장례식장을 찾은 친척들은 ‘우리’라는 말로 ‘나’를 원 밖으로 밀어낸다.
세진과의 굳건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 신사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한편 며느리를 친딸처럼 여기고 어여뻐하는 ‘로맨스그레이’의 현신 시아버지 안병일에 대한 환상은 ‘간병의 여름’을 거치며 처절하게 깨져버린다. 사랑이 충만하다고 느꼈던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한 나날” 깊숙한 안쪽에는 끝내 타인을 이해하기엔 역부족한 인간의 한계,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의 존재에 대한 낮은 인식이 잠겨 있다.
저자 이주혜는 안정적이고 단단한 문장과 생생한 인물 묘사를 통해 인간과 제도, 서로간의 오해와 이해, 욕망과 사랑을 세밀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깊은 공감과 흡인력으로 빠르게 읽는 이들을 자신만의 세계로 데려간 후 한국사회의 가족과 여성, 사랑과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영옥씨, 아침에 잘 일어나고 있나요?”
두 여자가 말 한마디 없이 나눈 깊은 유대감

남편 세진, 시아버지 안병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에 처절하게 외면당했던 ‘나’는, 또래의 여성이었기에 오히려 초반에 경계했던 간병인 황영옥으로부터 ‘유일하게’ 위로를 받는다. 간병을 하느라 일상이 깨져나가고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안병일의 섬망 증세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우리 가족’의 원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같은 처지의 황영옥과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이 소설 속에서 단연 압권으로 꼽을 만한, ‘나’와 황영옥이 말없이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소설의 도입에서 소개된 ‘리치와 비숍의 일화’와 겹쳐지며 더 크고 많은 이야기로 증폭된다. 아직도 여성의 희생이나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두 여성이 나누는 연대와 애정은 저자가 말하고픈 새로운 가능성일 것이다.
오랜 기간 번역가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을 지니기도 한 작가 이주혜가 처음 출간한 작품인 『자두』는, 저자가 세상과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해내기 위해 무던히 애쓴 흔적이 돋보이는 수작이기도 하다. 단순히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작품은 가부장제가 극복되어가는 과도기에 겪을 수 있는 혼란과 갈등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는 한편, 입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각 개인이 품는 욕망과 환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오늘날 문학 독자들에게 이 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박력 있게 밀고 나가는 단단한 서사를 읽는 즐거움과 함께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우리 시대에 사랑과 연대를 잃지 않는 새로운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의 말

내 책상에서 보이는 작은 산에는 몇년 전 태풍을 맞고 꺾여버린 큰 가지를 아슬아슬하게 매달고 있는 아까시나무가 있다. 가지는 완전히 끊어져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새잎을 내지도 않고 그렇게 매달려만 있다. 바람이 유난스러운 날이면 창가를 오래 서성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응아. 오늘은 해지는 방향으로 연희동 골목을 걷다가 벽돌담을 악착같이 기어오른 능소화 덩굴을 보았어.
기역아. 지금도 보길도엔 동백이 다글다글 피었다가 목숨처럼 툭 지고 있을까?
치읓님. 손 내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읒씨.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좋아요.

아직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어서 다행이다.
쓸 날이 없지 않고, 쓸 힘은 내가 마련할 몫이다.
같이 불러주면 좋겠다. 다정하게. 이름을. 안부를.


2020년 여름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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