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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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3640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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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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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버스킹, 소설가의 상상이 만나 빚어낸 열여섯개의 이야기
한 소설가를 탄생하게 한 음악적 취향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들은 이상기후로 종말을 앞둔 미래사회,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인공들이 모인 협궤 열차, 성소수자를 검거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군대, 귀가 어두운 노인들만이 들어주는 음악을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미국 등 등장인물과 배경이 다종다양하다. 작가가 직접 찍은 버스커들의 올컬러 사진 16컷과 작가가 사랑한 앨범에 대한 짧은 에세이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나는 버스커를 마주칠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버스킹!』을 썼다. 사진 역시 소설의 일부이고, 일부로 만들려고 고심했다.
버스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내가 버스커가 아닌데도) 이상하게도 나와 오래 함께해온 사람들인 양 친근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건 아마 내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음악을 들으며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오랜 침묵 뒤 문단에 다시 등장한 이후 작가는 10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왔다. 특유의 파괴적인 에너지로 그로테스크한 종말의 세계를 가감없이 펼쳐낸 백민석은 『버스킹!』에서도 어느날 벌레로 변해버린 아내를 둔 미투사건의 가해자(「물곰 가족」), 자본전쟁 이후 더 극심해진 빈부격차 아래에서 매일 해고당하며 일하는 노동자(「악마를 향해 소리 질러라」) 등을 등장시키며, 이상기후로 종말을 앞둔 세계(「마지막 수업」), 디지털이 장악하여 지도도 양초도 라이터도 사라져버린 재난사회(「도망쳐라, 사랑이 쫓아온다」) 등을 배경으로 강렬한 디스토피아의 장면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과 확실히 다른 점은 그 현실 아닌 현실 속에 음악을 체험하는 순간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커브드 에어부터 지미 헨드릭스, 신 리지, 텔로니어스 멍크,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작가는 “나쁜 미래”의 한가운데 그들의 황홀한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해놓았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장 제목처럼 음악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은 불행 속에서도 짧은 볕이 드는 순간을 품은 채 계속될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가 가난하게 살거나 불행하게 산 경우는 많다. 우리는 그런 예를 꽤 알고 있다. 예술은 꼭 부나 당대에서의 성공과 함께 가지 않는다. 『버스킹!』은 바로 그런 예술가들에 대한 내 애정(과 슬픔과 존경)을 담은 책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최근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로 영역을 확대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는 백민석 작가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은 새로움과 기획력을 인정받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선정하는 2019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대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머신 건
우주의 경계 너머
도망쳐라, 사랑이 쫓아온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몽롱세계
아프로디테의 못생긴 아이들
거짓말하는 방
난 의사가 필요 없어
물곰 가족
버서커스 버스킹
멍크의 음악
한밤의 협객 열차
악마를 향해 소리 질러라
방랑 시인과 파란 엽서
마지막 수업
작가의 말_밴드는 준비됐다
나는 소용돌이치는 모래폭풍 한가운데 앉아 아무 영감 없이 노트북을 바라본다. 노트북이 푸들푸들 거부하는 몸짓으로 내 손을 떠나간다. 어떤 소설가는 자신이 결코 쓸 수 없는 소설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다.
마침내 영감의 사막에서 음악이 들려오고, 나의 조잡한 세계는 이렇게 무너진다.(17면)
“사랑은 아날로그야.”
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넋이 빠져 소동을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사랑이 무서워지면 별수 없다, 두 발로 직접 뛰어서 도망쳐라. 사랑은 이메일이나 하드디스크의 여행 사진처럼 쓱 삭제해버리고 말 일이 아니다.(65면)
스승은 언젠가 ‘자신이 너무 똑똑해서 세계를 운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고 충고했다.
“그런 자들은 세계에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자꾸 중심을 세우려 들지. 그러고 그 중심에 맞춰 세계의 질서를 세우려 드는 거야. ”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멍크는 얼굴을 붉혔다.
“주로 남자들이지.” 스승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중심’과 ‘질서’에 공통되게 ‘세운다’라는 동사가 붙잖아.”
“밤낮으로 뭘 자꾸 세우려고 덤비는 사람들이 누구겠니? 남자들이지.” 스승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어쩌다 중심에서 소외되면, 이번엔 중심을 통째로 부정하고 혁명을 일으키자고 부르짖지.”
스승은 다정스레 멍크, 하고 불렀다.
“그런 사람들은 멍크의 음악을 싫어할 거야.”(200면)
삶은 사상자가 속출하는 전장이 됐다. 총성과 비명이 들리지 않는 침묵의 전장. 이번 자본의 전쟁에서 발생한 경제적 사상자의 비율이, 재래식 전쟁의 사상자 비율과 맞먹는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 수와 자살자 수가 전쟁 전보다 두배 반 늘었다는 통계가 어제 나왔다.
다만 자본 전쟁이 재래식 전쟁만큼 끔찍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텔레비전으로 중계할 만큼 쓸 만한 스펙터클이 펼쳐지지 않아서일 뿐이다. 숫자 더미와 그래프 몇줄로는 시청자를 유혹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이 전쟁 상황이고, 우리가 앉아 있는 거실이 바로 전장의한 귀퉁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귀띔해주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236면)
“나야 인생을 살 만큼은 살아봤지. 결혼도 해봤고. 하지만 너희는 그저 젊은 채로 끝나겠구나.” 심은 빈 강의실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심은 어쩌면 눈물을 몇방울쯤 흘릴 수도 있었다. 젊어서 종말을 맞이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나쁜 미래를 물려줘서 미안한 게 아니라, 아무 미래도 물려줄 수 없어서 슬펐다.(2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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