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아비(리마스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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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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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발간된 리마스터판은 기존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좀 더 정교하게 매만진 문장과 작품 순서,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배가한 표지와 예리한 감각으로 무장했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를 비롯해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 등으로 상처 입은 주인공이 원한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긍정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김애란만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실감하게 되고, 우리가 한국문학, 그리고 소설에 바랐던 지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달려라, 아비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사랑의 인사
영원한 화자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종이 물고기
해설 김동식
작가의 말
추천사
새로 쓴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지구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고. 오래전 우리의 짧은 입맞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믿지 않는 일이 당신과 가장 가까운 입술 위에서 일어나던, 그랬던 나날들처럼 말이다. (「스카이 콩콩」 9면)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달려라, 아비」 47면)
그녀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아버지가 점퍼 속에든 편지 한구절을 조용히 읊는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82면)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넘어지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 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영원한 화자」 150면)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서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한다는 실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인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222면)
이것은 당신과 아무 상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수만가지 일들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당신이 절대 가볼 리 없는 지방 관광도시의 고장난 공중전화와 당신, 스타크래프트 챔피언과 당신,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빛도 산소도 없는 곳에 사는 지옥의 오징어와 당신, 당신과 당신 사이의 당신. (「종이 물고기」 262면)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신선하고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새롭게 돌아온 김애란 『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다시 만나는 우리들의 코끝 찡한 눈부신 청춘
오늘 다시 『달려라, 아비』를 읽어야 하는 이유,
독보적 문장감각과 일상을 긍정하는 반짝이는 명랑함
『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은 기존의 차례 구성과는 다르게 아홉편의 단편을 새로운 순서로 배치했다. 전반에 배치된 네편의 단편들은 소년 화자를 중심으로 ‘사라진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배경이 되는 일상을 그린 작품들이다.
전파상을 하는 아버지, 과학자 지망생 형과 옥탑집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스카이 콩콩」과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묻는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와의 첫 만남을 들려주는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서는 어머니의 부재가 나타난다. 어린 ‘나’는 어머니를 찾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성숙하진 않은 모습으로, 적당히 조숙하고 적당히 철없이 자라나며 젊은 아버지는 어설프지만 성실하고 따뜻하게 아이의 일상을 지킨다.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와 네스호의 괴수 미스테리를 겹쳐놓은 「사랑의 인사」나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아버지에 대한 톡톡 튀는 상상력이 담긴 「달려라, 아비」에서의 어린 화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각 소설의 화자들은 솔직하게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유쾌하고 다정한 상상력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긍정한다. 특히 「달려라, 아비」는 상상 속에서 언제나 뛰고 있는 아버지에게 운동화도 신겨드리고 선글라스도 씌워드리는 등 상처를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즐거운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부정과 슬픔이 아닌 긍정과 명랑함으로 드러나는 결핍과 부재는 김애란 특유의 발랄한 문장과 만나 반짝이는 장면과 여운을 선사한다.
후반에 배치된 다섯편의 단편들에는 사회초년생들의 일상분투기가 담겼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젊은 직장 여성이 어느날 불쑥 찾아온 아버지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와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동창과의 아이러니한 대화와 상황을 보여주는 「영원한 화자」는 모두 이십대를 지나는 인물이 겪는 가깝고도 먼 타인과의 소통불능과 단절감을 밀도 높은 심리 묘사로 그려낸다. 한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서울의 대학가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의 눈에 비친 편의점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일상을 예리한 시선과 단순명쾌한 문장에 담은 작품이다. 김애란의 등단작인 「노크하지 않는 집」의 ‘나’ 역시 비슷한 결로 읽히는 화자로, 대학가의 한 주택에서 자취하면서 서로를 의식하는 세입자들, 그러나 결국 같은 모습의 ‘나’들을 발견한다. 타인과 인간적인 유대를 맺고 싶으면서도 타인의 무언의 폭력으로부터 숨고 싶은 사회초년생들의 이야기는 이 시기를 통과했거나 통과하는 중인 모두가 쉽게 공감할 법하다.
친숙한 표정으로 일상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작품들은, 내면의 섬세한 응시를 거쳐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도약한 뒤 종국에는 불행과 상처를 자기긍정의 유쾌한 에너지로 전환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통통 튀는 리듬감과 멜로디는 김애란 특유의 감성을 더욱 배가시킨다. 지난 14년간 이 작품집이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리고 오늘날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게 된 이유다. 다시 만나는 리마스터판 『달려라, 아비』는 여전히 김애란만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실감케 하며 우리가 한국문학, 그리고 소설에 바랐던 지점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할 것이다.
*창비에서는 출간된 지 10년 이상 된 소설 중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엄선해 새로이 단장한 ‘리마스터판’을 연속 출간할 예정입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잡은 작품들이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정보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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