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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시집
이근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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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0일 출간

종이책 : 2016년 0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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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3640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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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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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산유화
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
코맥스 200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왜 당신이 가져갔습니까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
유통기한
블루베리
요양원
대화
외로운 조지
태극당 성업 중
다시 사랑
세번째여서 아름다운 것
트렁크
그림자
스파이
비의 기록
집은 젖지 않았네
집으로 가는 길
미믹 버스
가짜 논란
네덜란드인과 결혼하기
두시
내 마음은 피바다를 건넌다
나의 소원
미역국에 뜬 노란 기름
도서관에 갔어요
…왔어요
사진 속에 딸기잼 한병
연못 속에 없는 것
나는 비자연
오르페
작은 불빛에도
삶이 모자라서
3
여주
뜻밖에도
햇살에 꽂힌 듯 허공에서 떨고 있는 잠자리와 나의 불편한 관계
모란장
놀이동산에 없는 것
대파에 대한 나의 이해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바나나 전선
탄 것
내 죄가 나를 먹네
두부처럼
이 집의 주인은
좋은 것들
중랑에는 뭐가 있을까
기찻길 옆 마을에서
눈사람
모과
새의 가슴
괴물은 얼굴에 발이 달렸네
졸업식
나의 친구

시인의 말
해설 장철환

“나는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파문에서 ‘미지의 말들’을 포착하는 비명과 침묵

내가 네 미래의 책을 사랑할게/아직 떠오르지 않은 무지개를/거기서 뛰놀고 있는 너의 흰 발을/너는 숨 쉬지 않는다//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땀을 뻘뻘 흘리며//미래의 씨앗들을 뱉고 있다/달콤할까 커다랄까/약속했어 정말이지//이제 너의 손가락이 만들어질 차례/끝까지 네가 씌어질 차례/단단해진다/봉긋해진다//우리가 함께 태어난다/한몸으로/아름답지 않지만/동시에 늙어가지만(「세번째여서 아름다운 것」 전문)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이광호)을 조용히 밀고나가며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가 출간되었다. 『차가운 잠』(문학과지성사 2012) 이후 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욕망과 갈등이 들끓는 고단한 일상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부조리함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면서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과 “나날의 삶이 기실 얼마나 메마르고 외롭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명이자 침묵”(이영광, 추천사)의 목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근화의 시에는 “사람의 절박한 마음이 있다”

오늘밤 한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피부와 머리카락이 없고/입술과 성기가 없는 어여쁜 사람/오늘밤 내가 태어나고 나는/한권의 책을 네 옆구리에서 다시 찾아냈다/여러개의 서랍 속에서/모두들 태어나고 싶은데//그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니/안아줄 팔도 없이/달려갈 발도 없이/네가 나를 부른다/아무 냄새가 없는 꿈속에서/나는 괴로워한다/나의 탄생을/한권의 책을//그건 내가 너를 만나는 동안 만들어낸/길쭉한 귀 동그란 코 벌어진 입술/애써 얼굴을 지우며/한권의 책을 가만히 내려놓았다/그게 너일까/한권의 책 속에서/정말 그렇게 살려고 내가 태어났다//네가 영원히 죽는다 해도/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전문)

이근화의 시는 한눈에 가늠하기가 어렵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도 그럴 것이다”(「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라는 짐짓 무심한 표정의 일상적 어법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도달할 곳이 없는 세계”(「네덜란드인과 결혼하기」)와 사물에 대한 시인의 세심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시인은 “그냥 그럴 것”(「집으로 가는 길」)인 예사로운 풍경들 속에서 ‘정신의 거처’로서의 시를 찾는다. “우스운 과거와 무시 못할 가족력”(「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이 있고 “적막과 허무”뿐인 “정적과 암흑의 놀이터”(「코맥스 200」)인 우리의 인생이 결국은 “불가능한 꽃/불가해한 꽃”(「산유화」)으로 피어나는 한편의 시라는 깨달음에 이르며 삶의 진실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

나는 비자연/여기저기 공기를 섞어놓는다/손에 묻은 얼굴은 지워지지 않는다/물과 흰 빵을 뜯어 먹고/아랫배에 조금씩 나를 버린다/나는 비자연/깡통을 걷어찬다/고인 물이 사방에 퍼뜨린 욕설만큼이나/입김이 뜨겁다/나를 이곳에 내려놓고 가는 건/중대한 오류/원래 있었던 곳에서 내 발걸음이 닿는 곳까지/개그가 넘친다/당신들이 차례대로 쓰러져도/용서해주지 않겠다/나는 비자연/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빗줄기가 우산을 통과한다/엉망으로 튀어서/나는 다시 살아볼 생각이다(「나는 비자연」 전문)

시인에게 일상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눈빛이 떠”도는 미지의 세계이며, 시인은 “네가 나의 절벽이 되는 삶”과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눈사람」) 절박한 마음으로 서 있다. 공감과 소통은 단절되고 곳곳에서 “지옥의 음악 소리”가 “부글부글 흘러나오는” 이 공포의 세계에서 더이상 “슬픔은 들리지 않”고 “고독은 냄새 맡을 수 없”(「가짜 논란」)으며 고통은 흔적도 없다. 하지만 시인은 “길 위에 더럽게 버려진” 채 “오늘도 살아야”(「요양원」) 한다. “길거리에 마구 내뱉어진” 그가 돌아갈 집이라고는 비록 “헛된 망상처럼 높고 반듯하고 분명”(「내 죄가 나를 먹네」)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과 울분 속에서”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눈빛”(「새의 가슴」)을 번뜩이면서 말이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그 사이로 낯선 손을 들이민 사람이 있었다/집은 거부를 모른다/나와 너와 우리가 그 집에 기대어//세상에서 가장 웃긴 일이 일어났지만/아무도 웃지 않았다/발소리가 푹푹 꺼지고/집은 사라질 줄 모르고//(…)//조금 떠 있고/늘 가라앉아 있는/헤매고 방황하는 집/발이 쉬지 못하는 집//너의 집은 어디니/누군가 진지하게 물었다/정확히 그것을 모르지만/나는 밤마다 발이 닳도록/그곳을 찾아가요//큰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키고/나는 즐겁게 죽어간다(「집은 젖지 않았네」 부분)

침묵의 어둠속으로 기울어가는 세계에 대한 의심과 불안 속에서 시인은 맹목적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날마다 죽는 연습”(「코맥스 200」)을 하는 비참한 고통 속에서 “발을 씻듯 허무를 견디고/계단을 오르듯 죽음을 비웃”으며 살아가지만 시인은 “내 앞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대화」)이다. 시인은 어느날 “검은 비닐봉지가 아름답게만 보”이다가 문득 “구겨진 비닐봉지 앞에서/미안한 마음이 든다”(「유통기한」)고 고백한다. 시인은 이제 “더 많이 꿈꾸고 사랑하고 춤을 추”면서 “무너진 꿈”(「왜 당신이 가져갔습니까」)을 일으켜세우고, “내가 모른 척 방치한 것들”(「내 죄가 나를 먹네」)에 대한 처참한 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나’의 삶에서 ‘우리’-공동체의 삶의 영역으로 시야를 넓혀간다.

그래 그 말이야/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그래서 그걸 축복하고/당신의 살아 있음을 내가 안다는 거/지금 우리가//놀랍게도/이백번을 말한다 해도/자연의 속도로/조금씩 늙어가겠지/벌을 서듯 잠을 자는데/겨드랑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들/이미 죽은 네가/새해 인사를 건넨다/이미 죽은 내가/새해 국수를 먹는다//자라다가 만 손톱/가는 머리/더이상 살찌지 않는 몸/나도 나를 새롭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공원 계단에 술 취해 쓰러져 자는 남자의/검은 외투 속으로 들어가/그곳에서 조용하게 잠을 자고/살을 부비고/새해를 낳아주고 싶다/버석버석 일어나 길고 긴 하품을 하고 싶다/향긋한 입속에서 태어날 내 새끼들(「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 부분)

2000년대 시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래파 시인’ 중의 한사람으로서 주목받았던 시인은 여러차례의 수상 경력에서 드러나듯이 한국 시단을 이끄는 젊은 시인으로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면서, 활달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언어가 어우러진 단정한 묘사와 사유가 돋보이는 시 세계를 견고하게 다져왔다. 시인은 “내가 원하는 것은 예술가의 삶이 아니라 예술적 삶인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루한 현실세계를 탐구하는 숭고한 예술로서의 시를 꿈꾸며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과 “길을 찾지 못한 말들”(「작은 불빛에도」)을 찾아 “날마다 새로운 곳을 향해 나가려 하”(「트렁크」)는 그가 이후 또 어떤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지 자못 궁금하면서 그에 거는 기대가 또한 크다.

검은 눈이 쏟아져 세상을 씻어내린다면/헐벗고 굶주린 산이 기지개를 켜고/알록달록 물결친다면/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물고기가 걷는다면/사라진 섬이 다시 태어난다면/미끄럽고 불가능한 바닥에서/한명이 춤추고/두명이 노래하고/세명이 원을 그린다면/불꽃을 옷처럼 껴입을 수 있다면//창문이 열리고/올빼미의 커다란 눈이 돌아온다면/비행기에 몸을 싣고/불행의 씨앗들을 말리며/오늘 하루도 잘 놀았습니다/잘 먹었습니다/주먹을 불끈 쥐고 탁자를 쿵 내리치며/말할 수 있다면/둥글고 뿌연 입술이 길고 향기로운 입술과/포개어진다면(「기찻길 옆 마을에서」 부분

작가정보

저자(글) 이근화

저자 이근화 李謹華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등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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